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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6
    '무상급식연대'에 대한 한 우려(4)
    구르는돌

'무상급식연대'에 대한 한 우려

'무상급식연대'에 대한 한 우려

 

- 이명박에겐 없지만 박근혜에겐 있는 것을 생각하자 -

 

 

 

 

이명박에겐 없는 것

 

대략 2000년 이후, 정치인이 특정 이념을 내걸고 나서는 것은 매우 촌스러운 짓이 되어버렸다. 대신 모든 정치적 가치, 이념은 '경제'라는 지상명제에 왕좌를 내주고 말았다.

 

그런면에서 이명박은 꽤 세련된 존재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의 입장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인데, 그래서 경제라는 고양이를 잡기 위해 일견 그와 안어울리게 보이는 뉴딜이란 용어도 쓰고 케인지언이라는 정운찬도 총리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이념도 이념 나름이다. 정치인은 학자가 아니니 보수주의니 근본주의니, 또는 자유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특정이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만, 대중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생각의 좌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그것도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념은 이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전'이라 해야 맞겠지만...) 이것은 정권에 대한 지지기반을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인데, 이에는 타 정치세력의 동의를 얻어 광범위한 지배블록을 형성하는 것도 포함된다.

 

헌데, 그런면에서 보자면 이명박은 참 촌스럽다. 그는 입만 열면 '선진화'를 부르짓지만 여러모로 구린 면이 많다.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라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비전을 뽐내고 있긴 하지만, 이 비전에 대한 동의여부를 떠나 '선진화의 이명박식 실천방식'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존재한다. 말하자면 자기가 볼땐 흑묘백묘인지 몰라도 남이 볼 땐 아전인수라는 거다. 최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 반대 의원들을 향해 '보스따라 입장이 바뀐다'고 공격한 것은 전형적인 자기중심성의 발현, 즉 '내 생각만 선진화'라는 식의 주장이다. '선진화'야 말로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보수가 장기집권을 노리는데 가장 훌륭한 브랜드인데, 현 정권의 유딩스러운 자기중심성 때문에 이미지를 깎아먹고 여당의 분열마저도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에겐 있는 것

 

이 시점에서 박근혜에게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이 경제를 '짱'으로 여기는 데에는 '세련'됐지만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비전제시에는 촌스러운 반면, 박근혜에게는 이명박의 한계를 넘어설 뭔가가 있는 듯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박이 현재 사실상 야당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종시 정국에서 수정안 반대파의 최고 골잡이는 누가 뭐래도 정세균이 아니라 박근혜다. 이로써 박근혜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수사의 민주당 독점권을 빼앗아 왔다. (지금부터는 나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됨을 염두해 두시고...) 만약에 여기에 박근혜가 지방선거를 겨냥해 무상급식을 추진해 보겠다는 발언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무상급식은 김문수와 경기도의회가 과도한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여서 그렇지 그렇게 급진적인 공약도 아니다. 실제 다른 시도에선 실시하는 곳도 있고, 원희룡도 무상급식을 받아 안았다.

 

게다가 박근혜는 육영수의 핏줄인 만큼 자신을 '국모'의 이미지로 형성화할 강력한 자원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박근혜가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하진 않겠지만, 만약 그런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 어린아이들의 밥을 무상으로 챙겨준다? 내가 볼땐 박근혜로서 필승의 카드다. 심지어 박근혜는 지난해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행사 때 추모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습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셨지만, 경제 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괜히 한번 해 본 소리가 아니다. 박근혜는 최근 자신의 키워드를 '복지'와 '행복'에 두고, 사회복지기본법 개정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박근혜 복지법'나온다>, 매일경제, 09.12.30) 이로서 박근혜는 유신공주 이미지를 벗고 지역균형발전과 복지국가를 두 축으로 반MB전선의 수장이 될 준비를 끝내놓고 있다. (그래서 이번 세종시 논란에서는 박근혜가 지난번 미디어법 사태에서처럼 쉽게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무상급식은?

 

박근혜와 무상급식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전적으로 내 상상의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전혀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원희룡의 무상급식 공약 발언 이후, 노회찬은 적극적으로 '무상급식연대'를 제안했다. 그 동안 반MB전선의 '내용'을 강조해 온 진보신당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주장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원포인트 연대'가 진보신당으로서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음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이번 무상급식 논란은 어느 순간부터 문제의 본질인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벗어나 정치인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이 상황에서 무상급식 문제를 통해 진보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매우 허망한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무상급식연대'가 성사된다고 한다면 노회찬은 무슨 근거로 서울시장 선거를 완주할 것인가?

 

논리전개를 위해 박근혜 얘기를 주로 했지만 진짜 문제는 박근혜가 아니다. 사실상 이미 무상급식은 진보정당만의 것이 아니다. 원희룡의 말대로 그것은 "따뜻한 보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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