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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4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에 대한 코멘트 한 가지 더.(1)
    구르는돌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에 대한 코멘트 한 가지 더.

구르는돌님의 [이계삼 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에 관련된 글.

 

 

교사들은 대개 모범생입니다.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임용고사 제도가 생긴 이후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지만, 교사들은 다채로운 인생체험이 없고, 임용을 위해 몇년간 애써 터득한 기술 말고는 별로 가진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사들의 신분에 대한 자긍심 -- 안도감이라 해야겠지만 -- 은 걱정스러울 만큼 높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른바 요즘 아이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난해한 존재입니까. 그래서일까요, 교무실에서는 교사의 지도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을 탓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동병상련의 정들을 나누는가 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사는 스스로가 이미 학교 교육이라는 폭력의 일부임을, 자신의 내면에도 폭력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바탕에서 아이들과 세상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중.고교시절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 '범생'이었지만, 대학 시절 4년 내내 열등생으로, 방황하는 영혼으로 살 수 있었음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임용고사에 탈락하여 패배자의 자리에 서 본 기억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을 이미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잇는 아이들의 아픔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50p

 

나는 어차피 교사도 아니고 앞으로 교사가 될 사람도 아니기에 위의 글이 나와는 하등 상관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슨 글을 읽든지간에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습관 때문에 그저 이게 남 얘기 같지는 않다. 이걸 보고 있자니 괜히 내 학생운동 경험이 생각났다.

 

사실 나 때도 그렇고 지금 학생운동이란 걸 하고 있는 이들은 (교사가 그런 것처럼) 대개가 다 모범생이다. 옛날에는 전문대에서도 학생운동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가끔 언론에 오르내리는 학생운동 집단들은 서울의 몇 개 '명문' 대학에 근거를 둔다. 간혹 지방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한다는 국립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좀 억지스럽게 해석해 보자면 지금의 학생운동은 고딩시절 선생님 말 가장 잘 들었었고 사교육도 받을만큼 받은 얘들이 자신이 받은 혜택을 부정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모범생들이 모여 하는 운동이라는게 강의석처럼 튀는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작정하고 투쟁적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마음맞는 얘들끼리 모여 쿵짝쿵짝 세미나 몇 번 하다가 끝나기 십상이다. 실제로 나는 내 자신이 그런 식의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그런 경험을 '운동'의 경험으로 기억(또는 추억)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한번도 상처받아 본 적 없을 것처럼 한없이 밝기만 한 후배들을 대하는게 힘들었다. 나는 여태 한번도 내돈 주고 사 신어본적 없는 10만원이 넘는 신발을 예사로 생각하는(가끔 그런 신발을 모으는게 취미라는 얘도 있었다) 얘들도 있었는데, 그런 얘들은 우리의 운동을 이러저러한 소비활동의 하나 쯤으로 생각했던 것만 같다. 그런 아이들과 노동자 농민 철거민의 아픔과 고통에 연대하자고 말하는건 어쩌면 아이티 지진참사에 봉사활동 가자고 말하는 것 정도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얘들 데리고 다니려면 가장 만만한게 그저 세미나 였다. 그러나 세미나에만 몰두하는 것만큼 자폐적인 짓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일에 몇명을 동원했는지로 내 활동을 자족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무슨 영업사원도 아니고....

 

학생운동이 '모범생운동'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즈음에 활동을 빈곤아동 공부방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의 활동을 너무 평가절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와 나를 규정했던 집단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말을 걸 수 있도록 시선을 외부로 향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외부가 나의 경계를 뚫고 들어오도록 문을 열었어야 했다. 한때 내 주변에 진보적인 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이 대학원 진학을 많이 하는 걸 보는데,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얼마간 우리는 '모범생'이라는 정체성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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