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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2/16
    하승우,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3)
    구르는돌
  2. 2009/08/03
    소설가 김훈(2)
    구르는돌

하승우,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사실 난 아나키즘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예전 학교 다닐때 다른학교에 나보다 한 학번 낮은 친구가 자기는 고등학교때부터 아나키즘에 관심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아나키즘의 '아'자도 몰랐는데... 신기한 녀석일세..."라고 생각했다. 여하간에 아나키즘은 이런 분야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뭔가 큰 매력을 안겨주는 것임에는 틀림 없나 보다.

 

'아나키즘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한 고전'이라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해설한 이 책은 그럼 왜 읽었냐 하면,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면 다 못 읽을것을 뻔히 알면서도 절대 1,2권씩 안 빌린다. 무조건 최대 대출할 수 있는 3권을 맞춰서 빌려온다. 이것도 거의 30분 정도 뭘 빌려올까 고민하다가 고른 책이다.

 

저자인 하승우는 지행네트워크(http://jihaeng.net)의 일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지행네트워크의 일원인 이명원씨의 글들이 참 좋다고 생각하곤 있었는데, 하승우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런데 첫 만남에 첫인상이 좀 별로다. -_-;;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전혀 집중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복근운동 한답시고 다리를 수직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짓을 하면서 읽었는데, 그래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중간중간에 곁들여진 사진도 볼만했고...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주로 설명한 바와 같이, 제1인터내셔널 시기에 아나키스트들 대립했던 맑스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사회주의자들 중에 훌륭하다고 이름난 사람들을 죄다 아나키스트라고 묶어버리는 듯 하다. 내가 아나키즘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실제 그들이 아나키스트인지 아닌지 따질 형편은 안되지만, 저자 말대로 그들이 모두 아나키스트라고 하더라도 그 처럼 단일집단으로 묶어버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소개한 아나키스트들 중에는 테러리스트도 있고, 평화주의자도 있고, 생태주의자도 있는데, 이들이 모두 아나키스트라는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또한 볼셰비키를 악마화하는 식의 논의도 좀 눈쌀을 지푸리게 한다. 저자는 볼셰비키의 만행과 비민주성을 폭로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아나키즘이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었던 약점들에 대해서는 어물쩡 넘어가는 듯 하다. 내가 구체적인 사례를 아는게 없어서 딱히 반론을 구체적으로는 못하겠지만, 아나키즘의 약점이라고 할 만한 단서들이 이 책에서도 몇 군데 보인다. 그것은 바로 신간회를 통해 민족주의자들과 야합(?)하려 했던 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중국의 한인 아나키스들의 조직 '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의 강령이다.(193-4쪽)

 

1. 일체 조직은 자유연합조직원리에 기초할 것.

2. 일체 정치운동을 반대할 것.

3. 운동은 오직 직접 방법으로 할 것.

4. 미래사회는 사회 만반이 다 자유연합의 원칙에 근거할 것이므로, 정치적 당파 이외의 각 독립운동 단체 및 혁명운동 단체 와 전우적 관계를 지속 존중할 것.

5. 국가 폐지

6. 일체 집단적 조직을 소멸할 것.

7.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공산주의를 실행하되 산업적 집중을 폐하고 공업과 농업의 병합, 즉 산업의 지방적 분산을 실행할 것.

8. 종교, 결혼제도, 가족제도 폐지.

 

 위 내용에서 2번, 6번, 8번은 한편으로는 황당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순진하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정치운동을 반대한다면 전체 사회에 별 영향을 못 끼칠 소규모-자족적 협동조합 활동이나 (협동조합 자체가 자족적인 활동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의 폭발력은 더 광범위 할 수 있는데, 정치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잔뜩 안고 활동하면 자기들 스스로 그렇게 한계지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기껏해야 몇몇 부르주아 인물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테러활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일체 집단적 조직을 소멸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아나코-코뮨적 공동체는 조직이 아니란 말인가? 위계적 조직과 수평적 조직의 경계는 무엇인가?

 

마지막 종교, 결혼제도, 가족제도를 폐지한다는 주장은... 음... 여기서 저자도 인용한 홉스봄의 말이 참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부르주아지에게 충격을 주는 일이 그들을 타도하기보다는 쉬운 것이다." 종교, 결혼, 가족을 폐지하자는 말이 부르주아지에게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막히며 충격적인 언사겠는가? 그러나 그런 '말'로 그들을 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순진한 발상이지 않는가?

 

막판에 가서는 광주항쟁까지 아나코-코뮨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가서는 정말 아무거나 막 갖다 대는구나 싶었다. 

 

그린비에서 나온 책 중 내가 읽어본 것은 왠만큼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정말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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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난 김훈에 대해 잘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때 김훈이 <칼의 노래>로 히트칠 때, 책 표지가 풍기는 포스가 심히 휘황하여 붙들고 있던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무참히 쏟아져나오는 한자어를 감당하기 힘들고, 수능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이어서 그런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리고 올 해 들어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었는데, 난 그 묵직한 문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무궁한 표현력에 껌뻑 죽어버렸다. ㅠ.ㅠ

 

얼마 전 학교 후배 및 동기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요즘 읽는 책 얘기를 했는데,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게 이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난 김훈의 소설이 좋더라."라고 말했다. 그 때 옆에 있던 풍선인형이 "걔 쫌 이상하고 보수적이야."라고 말하길래, "그래도 난 그 사람의 문체나 글의 소재가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작가를 그 사람의 이념적 성향으로 재단해서 그걸로 평가를 끝내버리는 것 만큼 작가입장에서 억울한 것도 없을 것 이란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가서 그의 산문집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를 보니까 그의 정치적 입장도 보수주의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허무주의, 아나키즘 등을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이어서 굳이 정치적 색깔로 그를 판단할 꺼리도 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 난 어찌 이렇게 무식하던가?

오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가 한국일보 재직시 전두환 찬양 기사를 '전담'해서 썼다는 것 아닌가? ㅠ.ㅠ 이에 대해 최근 남긴 인터뷰 한 마디...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네이버 지식IN에 누가 올려놓은 글인데, 여기에 누군가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그런다고 보안사에서 동료들 안때릴꺼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냐고... 사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고 안했고를 떠나서 이런 자기 위안으로 자신의 '도덕적'(살인범을 찬양한 것은 전적으로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 결함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안일함인가?

 

그리고 이 사람은 철저한 다윈주의자였다. 여기서 '철저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철저하게 속류화된 다윈주의를 채득한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거의 신경을 안 쓴 부분인데) 여러 논평가들은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에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내가 너무 소설을 통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 그런가? 난 <남한산성>에선 인조와 영의정의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는 무뇌의 대가리에 소스라쳤고, <칼의 노래>에선 사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이순신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같은 이유에서 전공을 세워 목소리를 높일 이순신이 두렵기도 한 선조의 이중성에 냉소를 품게 되었는데... 그 화려한 수사들 속에 숨겨져 있던 다윈주의의 흔적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으악!!!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에서 보여진 김훈의 태도는 그의 말대로 아나키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근주의로 보일지라도 사실상 페미니즘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거나, 세상은 약육강식이기 때문에 세상을 엎을 수는 없다고 뱉어대는 그의 말은 또한 지극히 보수주의적이다. 아나키와 보수주의가 공존하는 그의 정신세계. 아, 난 현란한 문체에 속아버린 것일까?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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