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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3
    소설가 김훈(2)
    구르는돌
  2. 2009/07/06
    김훈의 <남한산성> 읽기
    구르는돌

소설가 김훈

난 김훈에 대해 잘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때 김훈이 <칼의 노래>로 히트칠 때, 책 표지가 풍기는 포스가 심히 휘황하여 붙들고 있던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무참히 쏟아져나오는 한자어를 감당하기 힘들고, 수능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이어서 그런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리고 올 해 들어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었는데, 난 그 묵직한 문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무궁한 표현력에 껌뻑 죽어버렸다. ㅠ.ㅠ

 

얼마 전 학교 후배 및 동기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요즘 읽는 책 얘기를 했는데,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게 이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난 김훈의 소설이 좋더라."라고 말했다. 그 때 옆에 있던 풍선인형이 "걔 쫌 이상하고 보수적이야."라고 말하길래, "그래도 난 그 사람의 문체나 글의 소재가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작가를 그 사람의 이념적 성향으로 재단해서 그걸로 평가를 끝내버리는 것 만큼 작가입장에서 억울한 것도 없을 것 이란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가서 그의 산문집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를 보니까 그의 정치적 입장도 보수주의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허무주의, 아나키즘 등을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이어서 굳이 정치적 색깔로 그를 판단할 꺼리도 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 난 어찌 이렇게 무식하던가?

오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가 한국일보 재직시 전두환 찬양 기사를 '전담'해서 썼다는 것 아닌가? ㅠ.ㅠ 이에 대해 최근 남긴 인터뷰 한 마디...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네이버 지식IN에 누가 올려놓은 글인데, 여기에 누군가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그런다고 보안사에서 동료들 안때릴꺼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냐고... 사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고 안했고를 떠나서 이런 자기 위안으로 자신의 '도덕적'(살인범을 찬양한 것은 전적으로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 결함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안일함인가?

 

그리고 이 사람은 철저한 다윈주의자였다. 여기서 '철저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철저하게 속류화된 다윈주의를 채득한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거의 신경을 안 쓴 부분인데) 여러 논평가들은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에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내가 너무 소설을 통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 그런가? 난 <남한산성>에선 인조와 영의정의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는 무뇌의 대가리에 소스라쳤고, <칼의 노래>에선 사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이순신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같은 이유에서 전공을 세워 목소리를 높일 이순신이 두렵기도 한 선조의 이중성에 냉소를 품게 되었는데... 그 화려한 수사들 속에 숨겨져 있던 다윈주의의 흔적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으악!!!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에서 보여진 김훈의 태도는 그의 말대로 아나키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근주의로 보일지라도 사실상 페미니즘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거나, 세상은 약육강식이기 때문에 세상을 엎을 수는 없다고 뱉어대는 그의 말은 또한 지극히 보수주의적이다. 아나키와 보수주의가 공존하는 그의 정신세계. 아, 난 현란한 문체에 속아버린 것일까?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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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남한산성> 읽기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는 한자어들 때문에 읽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재밌는 소설이다.

 

여기서 재밌다는 말은 약간의 썩소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조선놈으로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진정으로 부끄러워 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놈들은 '외교'를 모른다. 21세기 조선놈들은 세계가 다자주의로 재편되고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는 객관적 정세를 외면하고 오매불망 태평양 건너 코쟁이들 나라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들의 조상들은 강산이 골백번 바뀌어도 오로지 천자의 나라는 한족의 나라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남한산성>은 그렇게 대가리 회전속도가 거의 소달구지 수준인 조선 사대부들의 추태를 담은 소설이다.

 

청나라 칸이 한반도의 정 가운데까지 밀고 들어와 성곽을 맞대로 조선 왕을 죽일까 살릴까 저울질 하고 있는 마당에 조선 왕과 사대부들은 명의 황제를 향해 망궐례(望闕禮;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한 의식으로, 임금을 직접 배알하지 못하는 지방 관리들이 행했다. 임금이 정월 초하루나 동지, 성절(聖節, 중국 황제의 생일), 천추절(千秋節, 중국 황태자의 생일)에 왕세자와 조정의 신료들을 거느리고 황제가 있는 북경 쪽을 향하여 예를 올리던 의식도 망궐례라고 한다. 여기서는 후자를 말함)를 올린다. 대가리가 안굴러가면 팔다리가 고생이라고, 임금과 사대부가 그 지랄을 해대는 통에 고생은 남한산성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다 뒤집어 쓴다. 급기야 나중에 가서는 군졸들이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성문 쳐닫고 뻣대지말고 걍 나가서 항복하자고 성화를 낸다. 물론 지체높으신 사대부양반들은 천자에 대한 예를 갖춘답시고 반대를 한다. 그리고 아우성쳐대는 군졸들을 한 사대부 양반께서 칼을 빼드신다. 허허. 그러나 이미 달관의 경지에 오른 우리 군졸들께서는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그 칼로 나가서 적과 싸우시지요?" 그러자 사대부 왈, "사대부가 어찌 전쟁의 일을 알겠느냐?"

 

밖에 나가선 찍소리도 못하는 것들이 안에서만 괜히 뒷짐지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대는게 꼭 오늘의 뭐시기들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이 양반들의 탁상공론의 추태는 가히 진기명기감이다. 초소를 지키고 있는 군졸들이 겨울날씨에 동상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일어, 빈집 초가지붕을 뜯어 볏짚으로 군졸들이 쓸 깔개를 만들어 올렸다. 그런 상황에서 영의정이라는 양반이 한다는 소리가, "싸움을 하고자 한다면 말이 튼실해야 할 텐데 말 먹이 할 것이 없습니다. 군졸들이야 사람이니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나 말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부디 깔개를 거두시어 말먹이 할 죽을 만드소서" 영의정의 이런 발언에 예조판서인가가 한 마디로 일갈한다. "줬다 뺏으면 군졸들이 삐진다."

 

이렇게 한심한 꼴을 하고 있으니 적의 우두머리인 청나라 칸이 조선의 임금과 사대부를 걱정해주기에 이른다. 다음은 청나라 칸이 조선 왕에게 보낸 문서.(본문 284-5쪽) 그 걱정해주는 맘씨가 하해와 같다. 글솜씨도 칸 자신의 말처럼 군더더기 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것이 너무 빼어나 옮겨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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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나의 선대 황제 이래로 너희 군신이 준절하고 고매한 말로 나를 능멸하고 방자한 침월侵越로 나를 적대함이 자심하였다. 이제 내가 군사를 이끌고 너의 담 밑에 당도하였는데, 네가 돌구멍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몸뚱이는 다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을 굴속으로 처박은 형국으로 천하를 외면하고 삶을 훔치려 하나, 내가 너를 놓아주겠느냐. 땅 위에 삶을 세울 수 있고 베풀 수 있고 또 구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을 훔칠 수는 없고 거저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는 명을 아비로 섬겨, 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소게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 말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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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 왕은 끝까지 돌구멍 속에 대가리 처박고 있다가 궁댕이로 성문을 열고 나가서는 칸에게 똥침을 받고 만다.

 

아, 이래서 세상은 대가리를 써가면서 살아야 하는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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