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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06
    김대중, <대중참여경제론>
    구르는돌
  2. 2009/08/25
    DJ 경제학(2)
    구르는돌
  3. 2009/08/21
    씁쓸한 하루, 씁쓸한 할배들의 몽니
    구르는돌
  4. 2009/08/19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그속에 우리는??(4)
    구르는돌

김대중, <대중참여경제론>

구르는돌님의 [DJ 경제학] 에 관련된 글.
 

 

 

책을 읽은지는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후기를 남긴다. 사실 그냥 김대중의 경제학이기 때문에 관심이 간 것도 있지만, 하버드대학에서 교재로 쓰인다는 책이라길래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라는 생각을 갖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나서야 대학에서 교재로 쓰는 책들이 항상 다 좋은 책은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하버드라고해서 별 수 있겠나...

 

본문의 내용에 왈가왈부하기 전에 고인에게 괜히 몇 가지 따지자면,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바탕이 된 논문을 미국의 교수들이 읽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책으로 출판하자고 제의했다는데, 그 교수들이 대체 누구인지 전혀 얘기를 안한다. 그냥 '저명한 교수'라고만 말한다. 뭐야? 이름이 '저명한'이야? 게다가 남의 말을 인용한 부분들에서 한 번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처음에 논문으로 쓰여졌던 것을 대중적 출판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러 뺀 건가 싶으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이게 뭐 신변잡기 농담따먹는 책이 아닌 이상 기본적인 것은 지켜야 하지 않나 싶다. 그가 책 전체에서 출처를 밝힌 부분은 오직 숫자와 표로 이루어진 통계자료들 뿐이다.

 

<대중참여경제론>에 담긴 김대중의 경제사상을 몇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경제는 지금껏 정부주도의 관치경제의 심각한 폐해를 겪어왔다. 관치경제는 자유로운 경제주체의 활동을 제약하고 독재정권과 유착된 일부 재벌에게만 편향적으로 재정분배가 이뤄지도록 했다.  2)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금리가 낮게 유지됨으로 인해서 은행으로 돈이 모이질 않고, 게다가 부족한 은행자금의 기업 대출과정에 정치권력이 개입함으로써 대출을 통해 사회적 부가 대거 재벌로 이전된다. 은행을 통한 자산증식의 경로를 찾지 못한 돈들은 대부분 부동산 투기로 몰려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  3) 결국 이런 정부주도 경제성장 정책은 일부재벌과 대토지소유자의 이익만을 보장하고 중소기업과 근로자의 이익을 배제한다.  4) 한국이 기존의 경제성장의 성과를 이어받아 '세계 8대 선진국에 들려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대토지 소유자에게 중과세를 매겨 불로소득을 차단함과 동시에, 금리 자유화-한국은행 독립, 그리고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시장경제를 원활히 작동케 해, 금융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런 논의 속에서 얼마간 정치적인 결론도 도출되는데, 이는 어느정도 87년 이후 정세에서 김대중이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대립전선의 재구축에 대한 주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에는 권위주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일부 재벌과 대토지 소유자가 한 편에 있고, 다른 한편엔 건전한 기업가(중소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민주화 세력이 버티고 있다. 후자의 세력은 지금껏 관치경제의 폐해로 인해 성장이 발목잡힌 이들로서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경제주체이다. 이들은 성장된 금융시장에 동등한 투자자로서 활동할 수 있으며, 특히 근로자들은 소규모 다수조합으로 활동하여 국민경제에 제동을 걸기보다는 광범위한 전국적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국가적 단위의 협상에 참여해 자신들의 법적 권익을 지키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요로한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나는 김대중이 정말 준비된 대통령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저런 내용은 IMF가 남한에 요구했던 경제개혁 조치의 주요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그리하여, 김대중이 IMF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던 것이, IMF의 강요때문이었다고 항변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니들이 김대중을 그렇게 떠받들고 싶으면 최소한 선상님이 쓰신 책 정도는 읽어보고 떠들어야지...

 

이 책을 읽으면 김대중이 추진했던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들이 IMF 사태에 의해 우발적으로, 자기 의도와는 다르게 추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전국단위 노동조합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실제 파견법, 정리해고법과 맞거래된 민주노총의 합법화로 이어진 것을 생각하면 그의 사상과 정치적 실천 사이에 놓인 잘 뻗은 고속도로가 참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항간에는 김대중이 2000년도에 생산적 복지를 내걸고 기초생활보장법 도입한 때에 정권 초반 신자유주의 정책과 단절하고, 그의 원래 경제사상이라 할 수 있는 대중경제론을 실현해 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하는 놈도 있더라. 그러나 이 말을 김대중이 대선 첫 도전 때 낸 <대중경제 100문 100답> 집필을 막후에서 지원했다는, 심지어 요즘엔 그 때문에 대필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는 박현채 선상님께서 듣는다면 저승문을 박차고 뛰쳐나오고 싶으실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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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경제학

한겨레21에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청년 DJ와 대통령 DJ의 가상대화

 

이런식으로 깔끔하게 한 인물의 다른 두 시기간의 대화를 구성해낸 정도면 기자가 얼마나 DJ의 저서를 열독했는지 눈에 선하다. 내가 사회복지학과를 입학하고 공부한 몇 안되는 사회복지관련 개념들 중에 제일 오랫동안 나를 (물론 나 뿐만은 아니겠지) 괴롭힌 주제는 바로 "생산적 복지"였다. DJ가 99년 전면에 내걸어 그의 '대중경제론'이 현실화되는 경로라고 여겨진 이 "생산적 복지"는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시장경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물론 <한국 사회복지 성격논쟁>에 참여한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듯이, 생산적 복지는 기든스가 제창한 제3의 길의 변종에 불과한 것이지만, 위 기사를 보면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 소리냐 하면, 신자유주의가 안착화되기 시작한 90년대의 한국과 영국의 경우를 놓고 생각했을 때, 생산적 복지가 갖는 정책적 위상은 어쩔 수 없이 한계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갖는 '역사적 함의'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뭐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가 71년 대선에서 처음 세상에 발표한 대중경제론은 그 당시 관점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또 따지고 들자면 이광일 교수가 평가하듯이, 그것도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이 어느정도 관철될 수 있는 자본주의 호황기에나 내놓을 수 있는 경제플랜일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의 체계적인 담론을 당시 척박한 남한 땅의 지식 풍토 속에서 일궈 낼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덤으로 대중경제론을 작성하는데 박현채 선생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브레인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믿음이 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대중 선생의 대중경제론이 '대중참여경제론'으로 이름을 바꿔 재출간되는 시점과 맞물려 어쩜 이렇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걸맞는 이론이 될 수 있었을까? 물론 (세번째로 나오는 '물론'이다 ㅋㅋㅋ) DJ정권 당시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교수의 증언처럼 97년 말 당시는 IMF를 등에 업은 미국 재무부 차관보가 유력 대선 후보 3명을 면접을 보고 협박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아서 울며겨자먹기로 IMF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관련기사 보기) 하지만 그렇게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DJ선생을 평가하기에는 그의 사상적 변화가 뚜렷해 보인다

 

DJ선생은 90년대에 앨빈 토플러의 <제3의물결>을 읽고 뿅 가셨단다. <제3의 물결>이 무엇인가? 정보화 혁명의 도래를 이야기하며 이에 걸맞는 유목적 인간으로 재탄생 할 것을 종용한 책 아닌가? 그런 주장에 동감했던 그가 IMF의 요구를 억울하게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을까?

 

어찌되었든 간에 DJ의 사상적 변화는 남한 재야인사의 정치적 위상 변화와 함께 시장주의가 내면화된 여정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도 장날 엿장수들마냥 DJ의 유훈이랍시고 '민주대연합론'을 부르짖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DJ노믹스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한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       *       *

 

그래서 선택한 내 9월 독서목록

 

 

1. 민족경제와 민족운동 (박현채 저, 창비, 1988)  

 

 

 

2. 대중참여경제론 (김대중 저, 산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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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하루, 씁쓸한 할배들의 몽니

행인님의 [조갑제는 제2의 허경영이 되고픈가?] 에 관련된 글.

 

 

오늘부터는 차분히 책도 읽고, 그동안 준비만 하고 있었던 자격증 시험 공부도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완전 기분이 어그러졌다. 재교육과 재시험은 9월 초에나 가능하다고 하니 이거 원... 지난번 코스 시험에서도 그랬는데, 평소에 잘 되던 부분에서 뽀록이 나버리니 기분이 더 엉망이다. 절반도 못 달리고 실격처리 되어버렸으니....

 

제대로 베베꼬인 기분으로 들어와서 인터넷을 또 하염없이 뒤적거리다보니 행인님의 조갑제에 대한 논평이 돋보인다. 난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에 우리 할배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사뭇 궁금해서 포털에서 난리를 치기 전에 이미 인터넷 독립신문과 조갑제닷컴을 뒤져보았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국장 반대운동이라니... 게다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을 잡수시고 오신건지 국민의 95%가 김대중을 싫어한다고... 솔직히 다른거 다 접어두고 '글로벌 스탠다드'의 기준으로만 치자면, 독재자로 명성이 자자한 박정희보다는 노벨평화상 수상한 김대중이 더 인물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설마 우리 할배들께서는 노벨 위원회도 빨갱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사족: 물론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알몸으로 드러누워 투쟁하는데 군홧발로 짓이기고, 롯데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 결국 임산부까지 유산시킨 화려한 '전적'은 김대중이라는 한국사에 전무후무한 인물을 평가하는데 빠져서는 안될 대목이지만 말이다.)

 

이런 할배들의 작태를 보고 있자니 얼마전에 읽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의 장영달 옹이 생각났다. 월남전 참전 용사이자 자랑스런 애국시민으로서 매일 아침마다 파고다공원에 나가 시국강연을 하시며 종로에 있는 기원에서 박정희 신을 접신했다는 여인네의 강연을 들으며 뽕을 잡수시는 장영달 옹께서, 이번 국장을 통해서 박정희 신과 반란 선동꾼 김대중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데 비분강개하여 소설의 벽을 박차고 현실로 나오신 듯 하다. 이들은 국장을 하게 되면, 소설 속에서 그려진 코엑스몰의 십헤드 카니발과 같은 난동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걸까? 양머리를 뒤집어쓴 테러분자들의 집단 난동?

 

우리 할배들의 씁쓸한 몽니를 보고 있자니 주원규씨의 그 훌륭한 현실 묘사가 다시 떠오르면서 안 써도 될 글을 그냥 또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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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그속에 우리는??

올해 들어서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나 많다. 용산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경우가 가장 가슴이 아프지만, 이 나라의 거목들이 줄줄이 스러지는 것도 용산의 경우만큼은 아니어도 가슴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올 해 들어 세명의 거목들이 스러졌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을 제외한 두 사람은 내 인생 자체와 별 상관이 없던 사람이긴 하지만, 요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이 세 사람이 세트로 연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몇 달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묻지마 추모'열기에 거품무는 글을 쓴 적이 있긴 하지만,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고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우리'(??)를 '대표'(??)했던 이였는데, 그런 감정이 조금이라도 안 든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정치인으로서 상상해 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해서 너도 나도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는 그 때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임기 당시에도 '그 노인네 임기만 채우면 다행'이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던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덤덤 한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그렇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차분한 분위기 때문인지 좀 딴 생각이 든다. 김수환 추기경 때도 그렇고, 노 대통령때도 그렇고 소위 '좌파'라는 사람들은 (물론 나도 그랬지만) 참 냉소적이었다. 물론 게 나쁜 건 아니다. 5년 내내 그의 정책이 맘에 안들었는데 죽었다고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라는 맘에도 없는 고백을 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참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느 누가 죽어도 그럴 것 같다는 거다. 물론 좌파에게는 '열사'가 있긴 하지만 '열사'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것은 희생된 자에게 느끼는 연민과 고통이지, 일부 사람들이 노무현과 김대중의 영정 앞에서 드러냈던 것과 같은 '존경'과는 사뭇 다른 것일테다. 사회적으로 명성이 난 어떤 이가 이승을 떠나도 그렇게 '쿨'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는 원래 나쁜 놈이었으니까 당연하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왜냐면 그런말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좌파'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사실 이건 좀 비극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다 같이 보고 배울 만한 '스승'이 없다는 거.... 내가 아직 한 세기로 따지면 1/4분기 정도밖에 안 살아서 잘은 모르지만 좌파가 다 같이 존경하는 그런 스승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전태일 열사 정도가 있으려나? 김진균 교수 돌아가셨을때는 어떤 분위기였을지 세삼 궁금해 진다.

 

그리고... 이런 얘기 미리 하는 건 완전 무례한 말인 거 알지만, 백기완 선생님이 돌아가신다면 좀 많이 슬플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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