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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3
    소설가 김훈(2)
    구르는돌

소설가 김훈

난 김훈에 대해 잘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때 김훈이 <칼의 노래>로 히트칠 때, 책 표지가 풍기는 포스가 심히 휘황하여 붙들고 있던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무참히 쏟아져나오는 한자어를 감당하기 힘들고, 수능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이어서 그런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리고 올 해 들어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었는데, 난 그 묵직한 문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무궁한 표현력에 껌뻑 죽어버렸다. ㅠ.ㅠ

 

얼마 전 학교 후배 및 동기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요즘 읽는 책 얘기를 했는데,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게 이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난 김훈의 소설이 좋더라."라고 말했다. 그 때 옆에 있던 풍선인형이 "걔 쫌 이상하고 보수적이야."라고 말하길래, "그래도 난 그 사람의 문체나 글의 소재가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작가를 그 사람의 이념적 성향으로 재단해서 그걸로 평가를 끝내버리는 것 만큼 작가입장에서 억울한 것도 없을 것 이란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가서 그의 산문집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를 보니까 그의 정치적 입장도 보수주의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허무주의, 아나키즘 등을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이어서 굳이 정치적 색깔로 그를 판단할 꺼리도 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 난 어찌 이렇게 무식하던가?

오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가 한국일보 재직시 전두환 찬양 기사를 '전담'해서 썼다는 것 아닌가? ㅠ.ㅠ 이에 대해 최근 남긴 인터뷰 한 마디...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네이버 지식IN에 누가 올려놓은 글인데, 여기에 누군가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그런다고 보안사에서 동료들 안때릴꺼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냐고... 사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고 안했고를 떠나서 이런 자기 위안으로 자신의 '도덕적'(살인범을 찬양한 것은 전적으로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 결함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안일함인가?

 

그리고 이 사람은 철저한 다윈주의자였다. 여기서 '철저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철저하게 속류화된 다윈주의를 채득한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거의 신경을 안 쓴 부분인데) 여러 논평가들은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에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내가 너무 소설을 통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 그런가? 난 <남한산성>에선 인조와 영의정의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는 무뇌의 대가리에 소스라쳤고, <칼의 노래>에선 사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이순신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같은 이유에서 전공을 세워 목소리를 높일 이순신이 두렵기도 한 선조의 이중성에 냉소를 품게 되었는데... 그 화려한 수사들 속에 숨겨져 있던 다윈주의의 흔적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으악!!!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에서 보여진 김훈의 태도는 그의 말대로 아나키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근주의로 보일지라도 사실상 페미니즘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거나, 세상은 약육강식이기 때문에 세상을 엎을 수는 없다고 뱉어대는 그의 말은 또한 지극히 보수주의적이다. 아나키와 보수주의가 공존하는 그의 정신세계. 아, 난 현란한 문체에 속아버린 것일까?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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