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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8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서자.(1)
    구르는돌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서자.

한 때 불자였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불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요즘 MB정권이 휘둘러 대는 종교편향 행위에 적지않은 불만을 갖고 있고, 그래서 이번 불교계의 총궐기에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계의 대응에 약간의 불만 또는 불만족을 느끼면서 몇 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지금 불교계의 외도(!!)가 얼마간 전국민적인 동의를 얻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건 딱히 불교계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MB가 너무 못해서이다.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이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이 노동운동이 잘해서라기 보다는 MB의 고유가 정책에 모두들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대중적인 반이명박 정서. 현재의 대중 이데올로기는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거리로 뛰어나오는 모든 대중들의 행동을 승인하는 아주 보기드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름대로의 호조건이 아니었다면, 불교계가 이 정도로 힘을 쓸 수 있었을까? 사실 따지고보면 불교계도 소망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계 못지 않게 부패와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MB가 워낙 기독교 라인으로 권력의 줄을 형성하다보니까 불교계가 위축되는 것처럼 보일 뿐... 웬만한 사람들은 예전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문제로 전국의 승려들이 조계사에 모여 몽둥이 들고 싸움질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불교계의 '흠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불교가 그 동안 한국사회의 진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나 주저할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욕을 먹고 있지만, 기독교는 그래도 그 내부의 건강한 분파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기여했던 측면이 많다. 7,80년대 성행했던 노동야학 등은 대부분 '교회'에 기반을 둔 것이지 않는가? 천주교 또한 도시빈민 사목회 등을 통해 빈민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등 종교의 양심을 '실천'으로 보여준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그에 비하면 '실적'이 한없이 미미하다. 지율스님 단식 투쟁을 통해서 환경문제에 두각을 보였던 것 외에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역할에 있어서 불교의 이름을 찾는 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랬던 불교가 아이러니하게도 반이명박 전선의 선두에 서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주간지 기사를 보니 불교계의 투쟁을 80년대부터 불교계 내에서 민주화운동, 사회운동과 관계를 맺고 있던 단체들이 주도를 하여 조계종 총무원을 견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측면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지금 불교계를 둘러싼 정세의 핵심은 '불교 코포라티즘'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존립을 지키고, 임금과 근로조건만을 가지고 정부, 기업을 압박하며 그 성과로 협상을 따내려고 하는 것처럼 현재 불교계의 행동도 현 정권의 종교차별을 막기 위한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종교차별을 막는 것이 하찮은 일은 아닐테지만, 그간 정권과 밀월관계로부터 그닥 자유롭지 못했던 불교계가 정부와 법제화에 합의한 이후 투쟁을 소강시키는 시나리오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이야 주요 요구안에 '어청수 퇴진'이 들어가 있어 냉각국면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서는 요구라고는 할수 없을 것이다. 사실 '어청수 퇴진' 요구의 주요한 이유는 경찰이 얼마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를 불심검문한 데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것이고, 여타의 사회운동과 촛불에 대한 탄압에 대한 분노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는, 그래서 사찰 밖의 차별과 폭력(예를 들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같은)에 둔감한 분노와 저항이라면, 이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란 장담은 할 수 없다.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에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이 불교계의 '대사찰 이기주의'로 향하지 말란 법도 없다.(들리는 얘기로는 불교계가 소유한 재산은 기독교 버금가는 수준이라더라. 얼마라고 계산도 불가능할 만큼...) 불교계가 정말 제대로 이명박 정권의 정책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사찰 지명 표기가 누락된 것에만 분노할 것이 아니라, 전국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자연 환경을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는 개발정책에 대해 종교적 양심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소수의 탐욕을 위해 다수의 노동 대중을 희생케 하는 비정규직에 대해 분노하고 싸워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바로 5년 전에 이라크에 한국 군대가 파병을 한다고 했을 때, 지금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스님들은 다 어디에 계셨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언젠가 꼭 불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 땅의 불교가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는 종교가 되길 바란다. 그것만이 진정한 '성불'(成佛)의 길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불자'(佛者)들이여!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 '성불'(成佛)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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