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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5
    반독재 투쟁은 시효만료?(2)
    구르는돌

반독재 투쟁은 시효만료?

 

최근 정연주 KBS사장이 검찰조사를 받는 등 MB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한층 가속화 되는 상황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쟁점이 다시 부각되는 느낌이다. 아, 물론 정연주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촛불의 등장 그 자체가 우리(흔히 자칭 타칭으로 '좌파'라고 호명되던 사람들)에게 아픈 기억과 함께 그 '쟁점'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재냐 민주주의냐(반독재)'라는, 흔히 87년 항쟁의 부정적 성과물로 인식되던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쟁점은 이미 좌파들 내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두 신자유주의 '개혁'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효만료되었다고 판정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독재정권 물러나라'라고 외쳤을때, 고등학교 정치과목 시간에나 대충듣고 말았던, 그래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외쳤을 때... 아마 기존 운동판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 중에 그런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였을까? 5월 말, 촛불 집회가 피크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시점에 참여연대 류의 논자들과 최장집 부류의 인간들이 '정당정치의 위기인가,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인가' 따위의 논쟁을 하고 있을 때, '계급적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청난 지지율의 이명박 대통령을 두번이나 사과하게 만들고, (집회 자체에서 전면적으로 한미FTA반대의 구호가 내세워지지는 않았지만) 한미FTA 비준 흐름에 브레이크를 거는, 당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성과를 내고 있던 시점에, 소위 '데모꾼'들은 손가락빨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기분은 나쁘겠지만 사실관계상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민중언론 참세상에서는 그런 시기에 '대중은 진보적인가'와 같은 칼럼을 게재하면서, 글이 의도했던 안했건 간에, 현 정세속에서 촛불대중 진출의 의미를 폄하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한 시차가 있긴 했지만, 좌파가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결합해 오면서 '민주주의'를 둘러싼 투쟁의 첨예한 공간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어제 배성인의 "촛불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칼럼에서 강조한 '프로젝트의 복원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주장은 촛불투쟁 속에서 좌파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지적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 며칠전에 올라온 유영주 기자의 기사, "KBS 구성원들 '독재-반독재'프레임 넘어설 수 있을까"는 솔직히 실망스러움을 다시 반복하게 만든다.


빵구라닷컴님이 말했던 것처럼 2004년 탄핵 때 만들어진 독재(=한나라당) vs 반독재(=민주당 또는 노무현)이라는 왜곡된 전선은 남한 사회운동에 있어서 성가신, 아주 성가신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KBS, 공영방송, 민주주의) 그 당시 철이 덜 들었던 나는 광화문에서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홍위병'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좀 차분히 생각해 보자. 누구 말마따나 '모든 반역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를 조반유리(造反有理)라고 불러왔다.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에서도, 2008년 쇠고기 수입반대, 공영방송 장악 반대 촛불도 다 이유가 있다. 이걸 배성인처럼 '진짜같은 가짜'라고 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부분을 비롯해서 배성인의 글은 그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말 중요하고 절대 패배해서는 안되는 싸움이라는 사실이 방송장악 반대 투쟁이 가짜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촛불과 함께하기 위해 내걸었던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라는 구호에 동의한다. 그러나 참세상의 많은 기사들, 그리고 많은 좌파들이 이 구호를 가짜 아닌 진짜는 ‘반-이명박’ 투쟁으로 상징되는 ‘반독재’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식으로 억지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투쟁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이명박에게 가장 사활적인 과제는 공기업민영화를 추진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조정해 줄 언론을 꽉 쥐어내서 전방위적인 사회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륭전자 같은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 이런 사안이 완성된 다음에는 정말 수두룩 뻑뻑하게 많이 나올 것이다. 지금 전자에 해당하는 투쟁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체들(언론노조, PD협회, 각종 시민단체와 촛불 시민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87년 식의 독재-반독재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이유로 그 투쟁의 중요성을 부차화시키는 건 정말 아니라는 거다. (어떤 좌파단체에서는 방송장악 저지 투쟁이 소시민적 쁘티 부르주아적 투쟁이라고 까지 하더라.)


문제는 변화된 정세를 읽고 있지 못하는 우리가 아닐까? 지난 5년간 독재-반독재와 같은 투쟁 방식이 문제였던 것은 집권세력이 민주주의라는 담론을 신자유주의적으로 포섭하고 변용하면서 정치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좌파의 무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의 등장과 함께 정당 정치 - 대의민주주의 일반이 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고, 대중들은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예전에 모 좌파 단체에서 냈던 성명서 제목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대체 어쩌자는 건데?)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인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권은 분명 독재정권이다. 물론 박정희-전두환과 똑같이 유비시키면서 ‘군사독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잠정적으로 ‘자본독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적 담론을 둘러싼 투쟁을 87년, 04년의 흉부를 드러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 안을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문제는 ‘독재-반독재’ 프레임을 벗어나는게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다. 반독재, 민주주의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이를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 프로젝트로 확장해 나가는 것.



(아, 너무 중언부언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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