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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두편의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된 소설을 읽게 되었다. 하나는 박범신의 <나마스테>, 또 하나는 김려령의 <완득이>. <나마스테>가 한국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주노동자와 그를 포함한 이주노동자 공동체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비극적인 시련을 과연 작가가 표현해 내는 것 이상의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슬프게 표현해 냈다면, <완득이>는 이주노동자 어머니를 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통해 그것이 비극이 아닌 경쾌한 삶의 에너지, 그리고 내 안에 오롯이 박혀있는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임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나마스테>와 <완득이> 모두 훌륭한 작품이지만, 나는 이 구리고 구린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불쌍하고 때론 불결한 이미지로 범벅이 된 이주노동자의 삶을 경쾌한 목소리로 전달해 준 <완득이>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나는 <완득이>에 필적할 만한 영화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이 영화는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와 거침없는 행동과 말투로 당당한 포스를 자아내는 10대 소녀의 아슬아슬한 러브스토리(??)를 통해 한국사회의 치부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한국사회는 한 일주일은 머리 안 감은 사람처럼 비듬 투성이이다. 아닌척 하고 앞머리에만 대충 왁스를 범벅하고 돌아다니는, 이 비듬으로 떡이 된 한국사회의 뒷통수는 <반두비>에 의해 하나둘씩 경쾌하게 까발려진다.
"저 사람이 끼어들어서..."
카림이 컵라면을 먹고 있던 편의점에서 우연히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 로또를 사러 왔다. 그러나 편의점 직원은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그러자 중년 남성은 "너 지금 내가 명박이 믿고 뉴타운 투자했다가 쪽박찬 놈이라고 무시하는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편의점 직원에게 시비를 건다. 이에 편의점 직원 왈 "그걸 왜 시급 3500원짜리한테 따지세요? 명박이 한테 가서 따지지!" 그렇게 시비가 붙은 둘은 결국 멱살잡이를 하는데, 이를 보다 못한 카림은 둘의 싸움을 말린다. 그런데 이 둘은 그 사이에 눈빛이 통했는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갑자기 연대를 형성해 싸움의 책임을 카림에게 덮어씌운다.
뉴타운으로 쪽빡차고 로또에 하룻밤 희망을 걸다가 그게 여의치 않자 시급 3500원짜리한테 분풀이를 하고, 그러다 경찰서까지 끌려가자 엉뚱한 사람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게 바로 '내국인'들의 모습이다. 여기서 카림을 둘러싼 상황은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에서 동물원을 뛰쳐나온 동물들이 친구였던 사자가 야생성을 되찾아 점점 자신들을 고깃덩어리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 해 일종의 '제물'로 바닷고기를 회를 떠서 사자에게 갖다 바치던 상황과 겹쳐진다. <마다가스카>에는 온갖 금수(禽獸)들이 등장하지만 오로지 바닷고기들만이 눈빛이 없고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나온다. 중년 남성과 편의점 직원의 눈에 비친 카림 또한 마찬가지다. 실업자든 시급 3500원 짜리든간에 '한국'이라는 정상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계급적 지위를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은 이주노동자라는 무표정의 제물을 경찰이라는 국가기구에 상납한다. 그리곤 중년 남성은 이렇게 내뱉는다. "이딴 새끼 그냥 지네나라로 보내 버려요. 괜히 여기서 우리 일자리나 뺏지 말고." 한번도 카림이 했던 3D업종에서 일하겠단 생각을 한 번도 안해 봤을 법한 양반이. 아마 이 중년 남성도 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고, 08년엔 촛불을 들고 시청광장에 나와 "이명박 개새끼"를 외쳤을 것이다. (아마도...) 그리고 지금은 "재수없는 깜댕이"를 읊조리고 있다.
"자지 하나 달고 들어와서 빌붙는 주제에..."
민서의 절친이 된 카림은 민서의 친구들과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와의 만남에도 초대된다. 그 만남에서 카림은 내내 굳은 표정인데 반해, 원어민 강사는 김치가 햄버거보다 맛있다느니, 한국사람들 너무 좋다느니 수다를 떨고 있다. 카림의 어두운 표정이 불만이었던 민서는 돌아오는 길에 카림에게 화를 내며 말한다. "후진국에서 와서 그래." 하지만 카림은 그 잘난 선진국에서 온 원어민 강사가 한국 여자들을 두고 뭐라고 했는지 상기시킨다. "한국여자들 다루기 쉽데. 그게 무슨 말이겠어? 한국여자들 창녀같다고 말한거야." 카림과 원어민 강사의 영어대화를 못 알아듣고 내내 웃음만 짓던 민서가 이제서야 그 뜻을 알고 빡돈다. 그리고 학원에서 만난 원어민 강사의 '자지'를 휘어잡고는 말한다. "너 어제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 한국여자들 다루기가 쉽다고?"
남성의 상징(??)인 이 '자지'는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주유소 알바에서 짤린 민서는 마사지 업소에서 남성의 '자지'를 만져주는 일을 한다. 남자들 세계에선 그것이 '남근의 상징'일지 몰라도 민서에게는 그저 돈벌이에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게다가 업소에 출입하는 남성들은 그런 성적 서비스를 받는 것에 금전적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이는 곧 그 물건이 그냥 '물건'일 뿐이라는 거다. 원어민 강사의 자지를 휘어잡고 "다시 한번 말해봐"라며 윽박을 지르고, 카림을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한 민서의 '아빠 지망생' 기홍에게 "자지하나 달고 들어와서 빌붙는 주제에..."라는 일격을 가한다. 카림의 1년치 월급을 떼먹은 사장집에 찾아것는 "만수야, 너 언제 인간될래?"라고 말하며 집안을 때려부순다. 자지하나 달고 세상을 호령하는 남성들이 여성, 그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어보이는 여고생에게 시종일관 엿을 먹는 거다.
이 영화의 핵심은 '여성'의 세계에서 최하층인 여고생이 '남성'의 세계에서 최하층인 이주노동자와 '반두비'로서 연대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서가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에선 늘 공격의 타겟이 되었던 '자지'는 카림과의 관계에서만은 친밀함의 코드로 상징화된다. 이 영화에 '19금' 딱지를 붙이고 '원조교제를 조장한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인간들이 볼 때에는 불순한 장면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어떤 사람들은 카림이 순진한 여고생 꼬득여서 성관계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장면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인간들은 영화 안보고 지껄이는게 분명하다. 카림은 분명 민서의 손길을 뿌리쳤고, 집에 돌아와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물론 나중엔 둘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져 바닷가에 가서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남녀가 사랑한다는데 누가 말릴꺼야? 20살 가까이 나이차이 나는 사람들끼리도 잘 만 결혼하는 세상에 여고생과 29살 청년의 사랑이면 예쁘게 봐줄 수도 있는 거지... 혹여나 무슬림 남자들은 여성들을 명예살인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난 이영애씨처럼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적어도 이런 말은 그 무슬림 나라에 가서 섹스관광 즐기는 남정내들이 벅지글거리는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는 아닌거다.
촛불집회, 그리고 한국사회의 풍경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2008년 한국사회를 집약하는 상징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학교 정문 바로 옆을 비추면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 벽보가 보이고, 민서가 던져놓는 가방엔 촛불소녀 뱃지가 달려있다. 신만수 사장집에 쳐들어간 민서는 테이블에 놓인 조선일보를 집어들고 흔들며 "이 따위 신문이나 읽고 있으니까 니가 쓰레기처럼 살지"라고 말한다. 심지어 마사지 업소를 그만둔 민서는 대문짝만한 광우병 소 반대 현수막이 걸린 서점에서 알바를 한다. (눈치 챈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서점은 바로 서울대 앞 고시촌에 있는 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이다.)
그런 역동적인 2008년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를 보면서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광우병 반대'를 외쳤던 그 속에서도 여전히 이주노동자는 타자로 남아있고, 내국인들이 쳐 놓은 욕망의 울타리에 이주노동자는 '출입금지'를 선고받았다는 점 또한 영화는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편의점에서 명박이 탓하던 중년남성과 민서가 하나가 아니듯이 2008년 촛불도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가 아닌것을 하나라고 외치는 사이 우리는 카림을 울타리 밖으로 또 추방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점이야 말로 촛불에 동의했건 안했건 간에 '내국인'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아했던 한국사회의 지저분한 뒷통수가 아닐까? <반두비>는 그런 내국인들의 얼굴 앞뒤로 거울 하나씩을 갖다놓고 "자, 니 뒷통수좀 봐. 얼마나 더러운지..."라고 말하고 있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6일
요즘 나는 시간만 나면 근처 시내 대형서점에 '아이쇼핑'을 하러 간다.
아니, '아이쇼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무전독서'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지난번에는 아예 이틀에 나눠서 서점에 '출근'을 하여 장편소설 한 권을 다 읽어버렸으니... ㅋㅋㅋㅋ
뭐 나에겐 대형서점은 최신도서가 즐비한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늘도 서점으로 발길을 향했는데, 반가운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촛불'이란 단어때문에 예전에 참여연대 쪽 인사들이 모여 펴낸 "어둠이 빛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류의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들의 면면을 보니 그 쪽과는 약간 뉘양스가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목부터가 좀 다르지 않은가? 왜 촛불을 껐냐? 제목은 존대말로 말을 걸어오지만 실상 내용은 쫌 시비를 거는 투다. 시비 거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진보진영 내에서 촛불에 대해 온갖 찬사를 쏟아내는 입장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말투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실 나는 작년 촛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한 7,8월 정도만 해도 이런 류의 주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었다. 실제 내가 몸 담고 있었던 곳에서도 '촛불'에 대한 어떤 종류에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하려고 항시 대기, 으르렁대고 있었다.
물론 나의 그런 행동에도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좌파들의 촛불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지점에 너무 많았다. 촛불이 가장 뜨거웠던 5-6월에는 아주 소극적인 방식으로, 촛불이 소강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7-8월에는 이 때다 싶은 마음으로 조금은 적극적으로 소위 '촛불 시민'들에게 불만 토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촛불의 주도세력은 자유주의자'라는 식으로 손쉽게 규정해 버린 후(이런 방식은 너무 한나라당 얘들이 하는 짓하고 비슷하지 않나?) 민주당 비판할 때나 쓰는 포퓰리즘 같은 용어를 동원해 이들의 한계를 따지고 들다가 이들이 앞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버리고는 그래서 이후 새로운 운동주체의 형성에 있어서의 대안에 대한 자기 얘기는 한마디도 안하고(아니, 못하고!!) 말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누구 말마따나 그 때고 지금이고 간에, 대중의 행동은 '점수매길' 문제가 아니라, 운동주체가 이에 어떻게 개입하여 어쩌면 대중의 정치에 대한 환멸의 증폭으로만 귀결될 수도 있을 이 촛불집회를 새로운 운동주체 형성의 계기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위의 입장들과의 대결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대중지성'의 찬미를 늘어놓는 이들의 입장에 얼마간 동조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그런 혼란을 갖고 지내던 차에 만나 이 책이 난 참으로 반가웠다.
촛불이 꺼지고 광우병 보다 더 굵직굵직한(특히 용산참사!!)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너도 나도 손쉽게 예언했던 제2의 촛불은 왜 일어나지 않는지 조금은 차분한 마음을 갖고 고민해 볼 계기를 전해 주기에 좋은 책이다.
일단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김정한, 백승욱.
이들은 촛불집회가 뜨겁던 작년 봄에도 찬양과 냉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잡힌 입장을 보여줘서 나에게도 참 인상깊었던 저자들이다.
특히 김정한의 글에서는 두가지 지점에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촛불의 성과를 교육감선거 승리로 갈무리하고자 했던 시도의 한계점에 대해서. 그의 논의는 딱히 교육감 선거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대중투쟁의 양상과 그에 후속해 등장하는 선거국면의 결과가 반비례하는 예들을 보여주면서 사회운동과 제도정치의 결합이 쉬운 과제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리고는 대중정치와 선거정치의 '게임의 룰'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암묵적으로 촛불집회 당시 최장집, 박상훈 등이 주장했던 '원내정치로의 복귀'에 대한 일정한 비판을 암시하는 듯 하다. 둘째로 결론 부분이 참 맘에 들었는데, 촛불은 어찌되었건 간에 앞으로 벌어질 대중운동의 장기지속의 새로운 출발점을 암시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그는 월러스틴의 말을 인용하는데, "1848년 프랑스에서의 혁명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시험무대였고, 1968년 5월 혁명이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예행연습"이었던 것처럼 촛불항쟁도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진짜 그럴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전적으로 운동주체들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백승욱의 글은 사실 비슷한 논조의 글을 참세상에서 접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약간 수긍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는 글을 통해서 '우리가 민주시민이다'를 넘어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라는 선언을 할 것을 제안했었는데, 나는 그게 가능하기나 한 얘기인가가 의심스러웠고, 또 민주시민이라는 범주에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로 나아가는게 어떻게 넘어서는 것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또한 당시 대중들의 행동을 "자랑스런 대한민국 만들기" 정도로 폄하하는 신기섭의 글을 치켜세우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난 이게 전형적인 '점수매기기'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점수를 매기려면 너는 50점 밖에 안되니까 90점 이상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정도는 달려야 하는데 신기섭은 그 정도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기존의 지식인들이 촛불의 자발성에 무비판적으로 부화뇌동하면서 '대중지성 예찬론'을 퍼트리는 조류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류의 주장은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어떤 것보다도 진지하고 아직도 촛불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곱씹어 보아야 할 주장이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백승욱)
사실 난 어떤 식으로든 '비관주의'를 앞장세우는 주장에는 마음이 거슬리는 편이긴 하지만, 이론에서의 비관주의라는 말은 현 정세를 보는 모든 이론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엄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읽은 글은 요 두개인데, 앞으로 며칠 동안 나눠서 서점에 더 출근하면서 더 읽어봐야 겠다. 사실 요렇게 특정 정세에 맞춰서 쓴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놓은 책은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면이 좀 있는게 사실이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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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천에서만큼은, 그리고 삶에서 만큼은 조금은 낙관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비관은 그저 등돌리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할 테니까....
한 때 불자였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불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요즘 MB정권이 휘둘러 대는 종교편향 행위에 적지않은 불만을 갖고 있고, 그래서 이번 불교계의 총궐기에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계의 대응에 약간의 불만 또는 불만족을 느끼면서 몇 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지금 불교계의 외도(!!)가 얼마간 전국민적인 동의를 얻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건 딱히 불교계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MB가 너무 못해서이다.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이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이 노동운동이 잘해서라기 보다는 MB의 고유가 정책에 모두들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대중적인 반이명박 정서. 현재의 대중 이데올로기는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거리로 뛰어나오는 모든 대중들의 행동을 승인하는 아주 보기드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름대로의 호조건이 아니었다면, 불교계가 이 정도로 힘을 쓸 수 있었을까? 사실 따지고보면 불교계도 소망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계 못지 않게 부패와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MB가 워낙 기독교 라인으로 권력의 줄을 형성하다보니까 불교계가 위축되는 것처럼 보일 뿐... 웬만한 사람들은 예전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문제로 전국의 승려들이 조계사에 모여 몽둥이 들고 싸움질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불교계의 '흠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불교가 그 동안 한국사회의 진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나 주저할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욕을 먹고 있지만, 기독교는 그래도 그 내부의 건강한 분파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기여했던 측면이 많다. 7,80년대 성행했던 노동야학 등은 대부분 '교회'에 기반을 둔 것이지 않는가? 천주교 또한 도시빈민 사목회 등을 통해 빈민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등 종교의 양심을 '실천'으로 보여준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그에 비하면 '실적'이 한없이 미미하다. 지율스님 단식 투쟁을 통해서 환경문제에 두각을 보였던 것 외에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역할에 있어서 불교의 이름을 찾는 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랬던 불교가 아이러니하게도 반이명박 전선의 선두에 서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주간지 기사를 보니 불교계의 투쟁을 80년대부터 불교계 내에서 민주화운동, 사회운동과 관계를 맺고 있던 단체들이 주도를 하여 조계종 총무원을 견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측면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지금 불교계를 둘러싼 정세의 핵심은 '불교 코포라티즘'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존립을 지키고, 임금과 근로조건만을 가지고 정부, 기업을 압박하며 그 성과로 협상을 따내려고 하는 것처럼 현재 불교계의 행동도 현 정권의 종교차별을 막기 위한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종교차별을 막는 것이 하찮은 일은 아닐테지만, 그간 정권과 밀월관계로부터 그닥 자유롭지 못했던 불교계가 정부와 법제화에 합의한 이후 투쟁을 소강시키는 시나리오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이야 주요 요구안에 '어청수 퇴진'이 들어가 있어 냉각국면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서는 요구라고는 할수 없을 것이다. 사실 '어청수 퇴진' 요구의 주요한 이유는 경찰이 얼마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를 불심검문한 데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것이고, 여타의 사회운동과 촛불에 대한 탄압에 대한 분노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는, 그래서 사찰 밖의 차별과 폭력(예를 들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같은)에 둔감한 분노와 저항이라면, 이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란 장담은 할 수 없다.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에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이 불교계의 '대사찰 이기주의'로 향하지 말란 법도 없다.(들리는 얘기로는 불교계가 소유한 재산은 기독교 버금가는 수준이라더라. 얼마라고 계산도 불가능할 만큼...) 불교계가 정말 제대로 이명박 정권의 정책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사찰 지명 표기가 누락된 것에만 분노할 것이 아니라, 전국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자연 환경을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는 개발정책에 대해 종교적 양심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소수의 탐욕을 위해 다수의 노동 대중을 희생케 하는 비정규직에 대해 분노하고 싸워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바로 5년 전에 이라크에 한국 군대가 파병을 한다고 했을 때, 지금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스님들은 다 어디에 계셨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언젠가 꼭 불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 땅의 불교가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는 종교가 되길 바란다. 그것만이 진정한 '성불'(成佛)의 길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불자'(佛者)들이여!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 '성불'(成佛)합시다.
최근 정연주 KBS사장이 검찰조사를 받는 등 MB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한층 가속화 되는 상황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쟁점이 다시 부각되는 느낌이다. 아, 물론 정연주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촛불의 등장 그 자체가 우리(흔히 자칭 타칭으로 '좌파'라고 호명되던 사람들)에게 아픈 기억과 함께 그 '쟁점'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재냐 민주주의냐(반독재)'라는, 흔히 87년 항쟁의 부정적 성과물로 인식되던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쟁점은 이미 좌파들 내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두 신자유주의 '개혁'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효만료되었다고 판정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독재정권 물러나라'라고 외쳤을때, 고등학교 정치과목 시간에나 대충듣고 말았던, 그래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외쳤을 때... 아마 기존 운동판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 중에 그런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였을까? 5월 말, 촛불 집회가 피크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시점에 참여연대 류의 논자들과 최장집 부류의 인간들이 '정당정치의 위기인가,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인가' 따위의 논쟁을 하고 있을 때, '계급적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청난 지지율의 이명박 대통령을 두번이나 사과하게 만들고, (집회 자체에서 전면적으로 한미FTA반대의 구호가 내세워지지는 않았지만) 한미FTA 비준 흐름에 브레이크를 거는, 당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성과를 내고 있던 시점에, 소위 '데모꾼'들은 손가락빨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기분은 나쁘겠지만 사실관계상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민중언론 참세상에서는 그런 시기에 '대중은 진보적인가'와 같은 칼럼을 게재하면서, 글이 의도했던 안했건 간에, 현 정세속에서 촛불대중 진출의 의미를 폄하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한 시차가 있긴 했지만, 좌파가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결합해 오면서 '민주주의'를 둘러싼 투쟁의 첨예한 공간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어제 배성인의 "촛불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칼럼에서 강조한 '프로젝트의 복원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주장은 촛불투쟁 속에서 좌파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지적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 며칠전에 올라온 유영주 기자의 기사, "KBS 구성원들 '독재-반독재'프레임 넘어설 수 있을까"는 솔직히 실망스러움을 다시 반복하게 만든다.
빵구라닷컴님이 말했던 것처럼 2004년 탄핵 때 만들어진 독재(=한나라당) vs 반독재(=민주당 또는 노무현)이라는 왜곡된 전선은 남한 사회운동에 있어서 성가신, 아주 성가신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KBS, 공영방송, 민주주의) 그 당시 철이 덜 들었던 나는 광화문에서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홍위병'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좀 차분히 생각해 보자. 누구 말마따나 '모든 반역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를 조반유리(造反有理)라고 불러왔다.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에서도, 2008년 쇠고기 수입반대, 공영방송 장악 반대 촛불도 다 이유가 있다. 이걸 배성인처럼 '진짜같은 가짜'라고 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부분을 비롯해서 배성인의 글은 그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말 중요하고 절대 패배해서는 안되는 싸움이라는 사실이 방송장악 반대 투쟁이 가짜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촛불과 함께하기 위해 내걸었던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라는 구호에 동의한다. 그러나 참세상의 많은 기사들, 그리고 많은 좌파들이 이 구호를 가짜 아닌 진짜는 ‘반-이명박’ 투쟁으로 상징되는 ‘반독재’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식으로 억지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투쟁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이명박에게 가장 사활적인 과제는 공기업민영화를 추진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조정해 줄 언론을 꽉 쥐어내서 전방위적인 사회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륭전자 같은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 이런 사안이 완성된 다음에는 정말 수두룩 뻑뻑하게 많이 나올 것이다. 지금 전자에 해당하는 투쟁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체들(언론노조, PD협회, 각종 시민단체와 촛불 시민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87년 식의 독재-반독재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이유로 그 투쟁의 중요성을 부차화시키는 건 정말 아니라는 거다. (어떤 좌파단체에서는 방송장악 저지 투쟁이 소시민적 쁘티 부르주아적 투쟁이라고 까지 하더라.)
문제는 변화된 정세를 읽고 있지 못하는 우리가 아닐까? 지난 5년간 독재-반독재와 같은 투쟁 방식이 문제였던 것은 집권세력이 민주주의라는 담론을 신자유주의적으로 포섭하고 변용하면서 정치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좌파의 무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의 등장과 함께 정당 정치 - 대의민주주의 일반이 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고, 대중들은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예전에 모 좌파 단체에서 냈던 성명서 제목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대체 어쩌자는 건데?)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인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권은 분명 독재정권이다. 물론 박정희-전두환과 똑같이 유비시키면서 ‘군사독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잠정적으로 ‘자본독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적 담론을 둘러싼 투쟁을 87년, 04년의 흉부를 드러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 안을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문제는 ‘독재-반독재’ 프레임을 벗어나는게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다. 반독재, 민주주의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이를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 프로젝트로 확장해 나가는 것.
(아, 너무 중언부언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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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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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니 얼릉 상상마당가서 봐야지,하는 생각이 마구 드네요.:)부가 정보
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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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제 글이 너무 스포일링이 심했죠? ㅋㅋㅋㅋ 그래도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으니 보시는것이 좋을 듯^^;;부가 정보
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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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평가가 후하신 듯;;;감독이 담아내고자한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표현력이나 "영화"적 완성도는 정말 최하였습니다. 보면서 그래도 나와 정치적 입장이 비슷한 사람이니 좋게봐줘야지 좋게봐줘야지 마음을 다스리면 봤지만 좋은 평을 내리기 힘들었어요 ㅠ.ㅠ 영화 초반부에 편의점에서"너 지금 내가 명박이 믿고 뉴타운 투자했다가 쪽박찬 놈이라고 무시하는거야?","그걸 왜 시급 3500원짜리한테 따지세요? 명박이 한테 가서 따지지!"라는 대화가 오가는 걸보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방학식을하고 하교하는 것으로 예측되는 여고생들이 어느 학원 다니게 된 걸 기뻐하고(그리고 "MB수학"학원차를 타고 갔죠;) 원어민 강의를 듣고 학교성적을 올렸다는 놀라운 이야기(원어민강의는 회화에 도움이 크지 수능이나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 듣지않잔아요;;이후에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와 대조해 보여주고싶어 그런 설정하신거겠죠) 그래서 원어민 강의들으려고 마사지 업소에서 알바까지 감수하는 여자주인공,PC방에서 이명박을 풍자하는 사진을 넘기고있는 주인공 옆자리 손님,"조선일보"를 들고 카림과 민서를 편견의 시선으로 보는 지하철 승객, 까딱하면 너가 좋아하는 "한우장조림"해놨다는 엄마,뜬금없이 엄마차를 끌고 카림과 바다로 도망가는 고등학생 민서(아무리 조숙하고 남달라도 운전면허없는 고딩이 능숙하게 차를 끌고 바다까지!!민서가 카림에게 바다를 보여주는 애틋한 장면 연출+카림이 엄마의 신고로 출입국단속반에 끌려갈 수 있게하고싶어서 한 설정이겠지만 너무나 억지스러운!!)...영화 속 현실이 너무나 현실감이 떨어져서 감독이 말하는 사회비판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동동 떠다녔습니다. 두 주인공의 갑작스럽고 개연성없는 감정선 변화도 거북했구요. 말로 "이명박"을 거론하지않아도 우리 모두 다 이명박정부 시대에 살고있고 그냥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서민으로 살아가기 팍팍하고 고된 현실을 살짝만 보여줘도 비판은 충분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드네요.부가 정보
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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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보셨습니다. ㅋㅋㅋ 제가 일부러 이 영화에 대해 후한 평가를 준 이유가 있어요. 사실 저도 세영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의 설정이 좀 억지스럽다는데에는 동의하는데, (특히 저는 과연 원어민에게 영어수업 듣겠다고 마사지 업소 알바하는 고딩이 과연 있을까 싶더군요. 민서의 전반적인 캐릭터가 그닥 학구적인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저는 영화를 '미화'하고 싶더군요.저를 이렇게 만든 건 전적으로 다음과 네이버에 영화별점에 '0점'을 날린 인간들 때문이에요. 그 네티즌들이 만약 세영님같은 이유로 0점을 날렸다면 이해하겠지만, 이 영화가 여성에 대해 살인에 가까운 차별을 저지르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체류자가 한국 여고생 꼬득이는 불순한 영화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평을 내리면서 0점을 준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구요. 그런 모습들이 괘씸해서 전 당당하게 10점을 날렸지요. ㅎㅎㅎㅎㅎ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명박과 안티명박을 대표하는 소재들이 세영님처럼 거북하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08년을 과잉규정하는 조건이지 않았을까요? 영화가 시시껄렁한 사랑얘기를 담은게 아닌 이상, 이런 2008년 한국사회의 풍경을 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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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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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영화에서 사랑이야기만 기대하고 가진 않았어요.(사실 사랑부분은 전혀 생각지 않았어요;) 임금착취와 만연한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청년과 입시경쟁의 압력은 받지만 남들처럼 학원수업 하나 듣기 힘든 여고생이 만나게되고,그들이 우정을 쌓는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이 고루 담겨있겠거니 기대했죠.제가 명박과 안티명박을 대표하는 소재들이 거북했던건 2008년의 반이명박 정서의 대중성을 무시하거나 담아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노골적이고 설명적이며 개연성이 떨어져 그 비판의식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못하고 설득력 역시 "확"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2008년 한국사회의 풍경을 촛불소녀 뱃지나 광우병수입반대 현수막, 조중동 안보기 부채의 문구를 주의깊게 비춰내는 장면들은 우리사회의 문제들을 너무나 선언적으로 표현하고 담아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명박 반대,이주노동자 차별반대,광우병 반대,조중동 반대.. 선언하듯 이런 구호를 외치기만한다고 동의가 구해지지않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반이명박 소재를 비추는 것만으로는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억압적 현실이 담아지지도 않고 그 비판의식이 전달되긴 더더욱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운동권들이 모여앉아서 그동안 거리에 나와 열심히 뛰어다니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아홉시 뉴스에 스쳐지나기조차 쉽지않았던 소외감을
'어어 저기 그날이 오면 서점이잔아!''저 부채 언제 뿌렸던 건데''촛불소녀버튼이다''교육감선거 벽자보잔아!'...하며 기뻐하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 이상
선언적인 소재들로 2008년을 담아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차라리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차에 올라타야하는 고등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걸 설레여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시공부에 치여살아야하는 처지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편의점에서 취객과 알바생의 대화에 '이명박믿고 뉴타운..''..시급3500원..이명박한테..' 다 빼고 술취해서 신세한탄과 행패를 부리는 손님과 삶이 팍팍하고 피곤해서 하소연 따위 들어줄 여유가 없는 알바생 사이에 실랑이가 나고 그것을 말리던 카림에게 "재수없다"한마디 내뱉는 정도가 훨씬 현실성 있고 사회비판의식이 살지 않았을까요?
(물론 님의 분석처럼 현 사회에서 함께 억압과 착취받는 처지의 실업자와 비정규노동자조차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데 동조한다 라는 고발을 위해 "이명박","시급3500원" 운운하다 싸우고 경찰서까지가는 설정을 한거겠지만 너무 억지스러울 뿐더러 이들이 "한국'이라는 정상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계급적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아 "이주노동자라는 무표정의 제물을 경찰이라는 국가기구에 상납"한다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 그러고보니 임금착취하고 달아난 사장의 악독하고 위선적인 모습 보다 일반시민들의 편견어린 시선을 담아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공정하지 못한 것 같네요 +_+)
엄마가 "한우장조림" 말하기보다 영화 속 시기를 조금 땡겨서 정말로 '대중'적이었던 촛불시위에 카림과 민서가 함께 참가하는 모습을 담았어도 됐을 듯 싶고...
여성에 대해 살인에 가까운 차별을 저지르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체류자가 한국 여고생 꼬득이는 불순한 영화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평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반편향으로 영화를 '미화'하셨다고 하는데 그런식으로 평가한 사람들이 잘못되고 미운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좋게 평하신건 쫌 그렇네요^^;
(다음과 네이버에서 그런 이유로 0점을 내린 사람들은 영화를 아예 안봤거나 눈감고 본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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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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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과 안티명박과 관련된 소재들이 드러나는 방식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된다고 해서 세영님과 같이 영화속의 이런 장면은 빼고 이런 장면을 넣어여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영화평에서 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차라리 따로 영화를 하나 만들어 보심이 어떤지....??그리고 저는 세영님이 제시하신 방식으로 영화가 수정된다고 해서 '사회비판'적인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원에 가는 걸 기뻐하는 학생들을 비추는 것보다 입시공부에 치여살아야하는 처지에 대해 투덜거리는 학생들을 비추는 것이 오히려 더 작금의 입시현실에 대한 계몽주의적 관점을 더 강화하지 않을까요? 또한 극중에서 보여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내국인연대'는 정확하게 현실을 포착한 것입니다. 작년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강화된 '내국인'들의 이주자에 대한 악무한적 혐오와 이에 기반한 '집단행동'을 볼 때 더욱 그러하죠. 지금 반두비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단체중에 하나가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명칭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인가 하는 데인데, 거기서 하고 있는 행동은 정확히 영화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내국인 연대'를 호소하고 있죠. 그런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왜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저는 오히려 사장에 대한 문제를 다 빼버리고 이런 부분만 담았어도 하등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님의 말씀처럼 감독은 작년 촛불집회의 풍경을 드러내면서 일종의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을 하려고 했던 것일지는 몰라도, 저는 글에서 썼듯이 이런 장면들을 통해 오히려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신동일 감독도 <씨네21> 인터뷰에서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이 영화에 대한 구상은 이미 끝내 놓았다고 하죠. 그래서 이 영화는 이주노동자라는, 한국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겪게되는 절망적인 일상과 촛불집회라고 하는 축제적인 국민저항의 기억이 이중적으로 공존하는 조금은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님과는 다르게 그 두 개의 층위가 다른 사건 사이의 이질감을 느꼈고, 촛불에 함께했던 시민들이 이주자라는 타자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비시민'의 영역으로 내몰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여지가 영화속에 얼마간은 담겨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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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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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인터넷을 돌다가 단두비 예고편 영상을 봤는데, 거기 의미있는 문구가 있더군요.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놀이터, 누군가에게는 피눈물나는 전쟁터" 촛불집회를 통해 정치적 문제도 '놀이'라고 생각했던 민서가 카림을 통해 사실은 그게 전쟁터임을 알아가는 과정, 그것이 이 영화가 (때로는 교장선생님처럼 투박하게 전달하긴 하지만) 말하고자하는 진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부가 정보
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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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돌님과 세영님 둘 다 공감되지만, 세영님 쪽이 좀 더 공감되네요. 편의점에서의 대화는, 뭐랄까, 손발이 오그라지는 그런 민망한 느낌? 촌스러운 느낌? '우리는 왜 세련되게 만들지 못할까 --;;;;'하는 기분? 내용이 아니라 스타일에 대해 그렇게 느껴지네요.부가 정보
이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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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같은것들 무슬림불체자놈들을 비호하는더러운것들 모조리사형시켜야된다부가 정보
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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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신 발언이 형사처벌감인건 아시나요? 얼마전에 버스 안에서 이슬람계 사람에게 그런 식의 발언을 했다가 실형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부가 정보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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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가 가라사대 여자는 장난감과 같다고 했다.이슬람에 히잡안하다고 코자르는 종교다.알겠냐.터키가 교리가 제일 세속적인 세속주의 이슬람인데 명예살인이 판치지 ㅉㅉㅉ부가 정보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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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는 이교도여자는 강간해도 죄가 안된다.그래서 터키놈들이 외국여자에게 꺼덕되고 자기나라여자 사귀려는 외국인 살인위협까지 한다.부가 정보
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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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장자연은 뭐라고 생각하심? 그렇게 남욕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면 정신건강에는 좋겠어요~~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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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돌님의 말씀은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란 뜻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당신은 여성을 차별하고 멸시하면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슬람의 여성억압적인 문화가 무슬림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줄 수 없듯이, 한국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성상납을 한다고 해서 일부 터키 남성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국인이 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저도 고스트님의 댓글은 악의적인 댓글이라고 생각하지만.상대의 약점을 잡아 입을 막는 행위는 나쁜겁니다. 만일 한국남성이 무슬림 남성의 약점을 잡아 차별한다면, 그 문제도 나쁜거도 당싱이 하고 있는 짓도 똑같이 나쁘거나 더 저질이라고 쏘아붙여주면 됩니다. 항의하는 무슬림 노동자에게 한국 남성이 너나 잘하세요 하고 빈정거리는 일은 나쁜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런 말은 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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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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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여성'의 세계에서 최하층인 여고생이 '남성'의 세계에서 최하층인 이주노동자와 '반두비'로서 연대를 했다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의 중년남성은 보통 여고생과 데이트하고 싶어합니다. 충분히 한국남자들의 질투를 살만한 설정이네요.부가 정보
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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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어 보시지 않았다면 좀 읽어보세요. 제가 무슨 논문을 쓴 것도 아닌데, 이거 읽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최소한 상대방의 주장에 비판을 하시려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게 최소한의 노력 아닙니까? 그리고 reverie님의 말씀으로 비춰보자면 님은 이 '반두비'라는 영화도 안 보신것 같은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의 설정만 보고서 이 영화가 한국남자들의 질투를 살만한 설정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태도군요.제가 이슬람 사회를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이슬람의 여성억압적 문화가 한국사회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할 근거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슬람이 극악무도한 여성차별적 사회라 한다해도 그 사회를 '비난'하려면 최소한 우리 스스로 그럴 자격을 갖추고 해야된다고 보는 거구요. 그렇지 못하다면, 이라크 아부그라이브에서 참혹한 고문극을 태연하게 저지른 미국이 중국에게 인권문제 해결하라고 어줍짢은 '충고'를 하는 것처럼 우습기 짝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또한 이슬람이 여성억압적 사회라는 것이 명명백백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이 영화를 비난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속한 사회가 '악한' 사회라 할지라도 그 사회에 속한 개인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적어도 이 영화에서 나타난 카림의 모습은 '악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박은 그저그런 악한 개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 유교문화 국가라는 한국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동성동본 결혼을 반대할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약이 어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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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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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더 하자면, 미국은 세계적인 인종차별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미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하면 그건 맞는 말입니까? 이런 기본적인 논리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반두비'에 대한 비난은 그저 이슬람 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감정배설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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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 여성억압적 사회라는 것이 명명백백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이 영화를 비난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고스트님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지, 반두비라는 영화를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스트님이 다소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고스트님이 이슬람 문화를 빌미로 이주노동자를 비난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무슨 이유로 저런 댓글을 달았는지는 추측의 영역입니다."그 사회를 '비난'하려면 최소한 우리 스스로 그럴 자격을 갖추고 해야된다고 보는 거구요."
구르는돌님의 논리라면 터키 남성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미국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온갖 악행에 대해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에 노근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주한미국인들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는지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학살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럼 그들이 정말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을 비난하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노근리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입막음을 하려고 했던겁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 얘기 하는데 죽은 연예인의 이름을 꺼내는 것은 보기좋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분은 피해자이고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원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들 중에서도 진정으로 자국문제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고민할 겁니다. 당연히 우리에겐 외국문제지만 그들에겐 자국문제니까요.
이주노동자는 언어가 어눌해서 그렇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압니다. 그들은 우리의 피보호대상이 아닙니다. 구태여 대신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대신 나서서 싸워주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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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더 하자면, 미국은 세계적인 인종차별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미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하면 그건 맞는 말입니까"미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미국에는 인종차별주의자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랍인은 여성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아랍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이 한국남성은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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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본적인 논리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반두비'에 대한 비난은 그저 이슬람 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감정배설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구르는돌님의 글에 달린 문제적 댓글은 이것입니다.
"쓰레기같은것들 무슬림불체자놈들을 비호하는더러운것들 모조리사형시켜야된다"
"모하메드가 가라사대 여자는 장난감과 같다고 했다.이슬람에 히잡안하다고 코자르는 종교다.알겠냐.터키가 교리가 제일 세속적인 세속주의 이슬람인데 명예살인이 판치지 ㅉㅉㅉ"
"이슬람에서는 이교도여자는 강간해도 죄가 안된다.그래서 터키놈들이 외국여자에게 꺼덕되고 자기나라여자 사귀려는 외국인 살인위협까지 한다."
어디에 반두비에 대한 비난이 있습니까. 반두비에 관한 글에 달린 댓글은 전부 반두비에 대한 비난인가요. 뜬금없이 이슬람 문화 얘기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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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슬람 사회를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이슬람의 여성억압적 문화가 한국사회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할 근거를 잘 모르겠습니다."어느 문화가 더 심각한 수준인지 그것을 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란에서 한국과 축구경기가 있었을 때 이란 여성들이 축구장에 입장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거기에 그렇게 써 있었습니다. 자매님들, 축구장에 들어가면 한번만 우리를 위해서 외쳐주세요. 우리는 축구장에 들어갈 수 없어요. 우리도 축구팀을 응원하고 싶지만, 우리의 함성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아요. 우리는 함성을 지르고 싶을 때마다 울음을 삼킵니다. 자매님들, 한번만 우리를 위해서 외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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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란은 버스 앞좌석에 여자들 못앉습니다. 버스안에서도 남녀 구분 있습니다. 앞좌석은 남자, 뒷자석은 여자. 그런데 최근에 이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여성 버스 운전수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남자들보고 뒤에 가서 앉으라고. 어쨌든 저도 여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란의 버스관행에 화가 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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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한마디만 하고 정리할께요. 그렇게 이슬람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게 님의 목적이시라면, 왜 제 블로그에 와서, 그것도 '반두비'라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에 대한 제 감상글에다가 그걸 표출하시냐구요.... 님도 지적하신 그 '악의적 댓글'이 반두비라는 영화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고 하시지만, 저는 반두비라는 영화에 대한 글을 썼거든요. 저는 이슬람 사회를 옹호한 적이 없다구요... 이란의 버스문화에 대해 그렇게 화가 나시면, 이란 대사관 앞에가서 기자회견이라도 하세요.하나만 물읍시다. 반두비의 어떤 점이 이슬람사회의 성차별문화를 비판할 껀덕지를 준 겁니까? 아마도 이슬람 청년이 대한민국의 고교생과 사랑을 한다는 영화의 스토리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은데, 카림의 자리에 미국청년을 갖다 앉혀놔도 사람들의 반응이 같았을까요? 전세계의 미군기지 앞에서 집장촌이 성행하고, 심심하면 한번씩 미군 성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는데 말이죠. 이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 어떤 남자들이라도 여성과 사랑을 한다는 컨셉 전체가 다 문제가 되는 거에요. 안그래요? 그게 아니라면 남는건 이슬람 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뿐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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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이 다소 뜬금없는 댓글을 달긴 했지만 분명히 님도 이렇게 쓰셨습니다."혹여나 무슬림 남자들은 여성들을 명예살인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난 이영애씨처럼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마찬가지로, 님도 반두비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면 되지, 뜬금없이 무슬림 남자들은 명예살인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 무슬림 남성이 명예살인을 하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고, 사실을 얘기하는게 비난받아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님도 다소간에 감정적인 표현을 사용했고, 다소간에 상관없는 얘길 한 겁니다.
이란을 비난하고 싶으면 이란 대사관에 가서 기자회견이라도 하세요라뇨. 님이 먼저 말하지 않았나요. 내가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지 이슬람 문화가 특별히 우리보다 더 억압적인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셔놓고서 저보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대사관에 가서 기자회견이나하라고요. 님은 대화를 할 생각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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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바로 밑에서 얘기하잖아요. 적어도 그 무슬림 나라에 가서 섹스관광이나 즐기는 남정내들이 벅지글거리는 나라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이건 뭐 전두환이 카다피 욕하는 꼴이잖아요. 혹시 전두환이 카다피 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시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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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예를 드신건 참 황당하네요. 한국군이 베트남에는 왜 갔습니까? 미군때문에 간거 잖아요. 거기서 한국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미군이 비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건데... 참... (이건 뭐 별로 중요한 논점이 아니니까 뭐...)"이주노동자는 언어가 어눌해서 그렇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압니다. 그들은 우리의 피보호대상이 아닙니다. 구태여 대신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대신 나서서 싸워주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일까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제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문제입니다. 그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경제성장 좀 해보겠다고 그들을 인간이하의 취급을 해서 생긴 문제라구요. 그런데 뭐 "구태여 대신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다"구요? 아, 제발 그딴식으로 합리적인 척좀 하지 마세요. 제 말에 동의를 안하시면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사천원 인생>이라는 책을 좀 읽어보시죠. 그러면 좀 이해가 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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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베트남에 간게 미국 때문이니까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학살은 미국이 책임져야하나요. 베트남인들이 항의하면 우리한테 그러지 말고 미국에 항의하라고 해야하나요. 베트남 전쟁은 미국 책임이지만, 한국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은 우리 책임입니다.제가 님에게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갖지 말라고 했나요. 저는 일일이 이주노동자를 대변해서 싸울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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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정말로 4천원 인생과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이주노동자에 대해 한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한번 생각해보시죠. 저도 마트에 가면 꾀죄죄한 옷차림에 소주나 막걸리, 야채 조금 사가는 아저씨들 많이 봅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부터도 그런 분들 보면 얼굴 한번 쳐다보고 장바구니 한번 쳐다보게됩니다. 그런 분들이 혹시라도 자기보다 더한 약자에게 한풀이를 한다고 해서 얻는게 뭐가 있나요. 솔직히 그 분 보기에 이주노동자들 처지가 더 낫다고 느낄 수도 있는겁니다. 제가 아는 이주활동가들은 그런 사람들하고도 차이를 좁히려고 하지 괜히 실랑이 벌이지 않습니다. 같이 살아야하니까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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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대변해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 관심갖을 필요 없다는 말하고 같은 겁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아이돌에 대한 관심 같은 거랑은 다른거에요.그러면 님은 우리나라 내의 문제인 이주노동자 문제에도 이들을 대변할 필요가 없는데, 남의 나라 문제인 이슬람 여성의 문제에는 왜 관심을 가지세요? 저는 관심 갖는 것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님이 가진 그 관심의 기준이 참 오묘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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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하시는군요. 제가 말씀드린건 무슬림 불체자 꺼져라 이런 댓글에 일일이 대응하실 필요가 없다는 얘기에요. 그런 댓글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댓글에도 일일이 신경써주면 이주노동자들 살림살이 좀 나아지나요. 정말 이주노동자들을 대변해서 싸우고 싶다면 저같으면 그런 분들과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를 하겠습니다. 님은 그분들은 대화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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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란 다른게 아닙니다. 혐오는 그 사람이 자기와는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거짓말쟁이나 위선자를 혐오하듯이, 자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위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거에요. 무슬림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님은 뭐라고 했나요. 피장파장이라고. 마찬가지에요.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도 사실 이주노동자 차별해요. 저도 차별하고 님도 차별하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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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슬림 혐오하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했는데요? 제가 쌍시옷이라고 날렸습니까? 개버러지 인간 말종이라고 했습니까? 무슨근거로 저를 거짓말쟁이 위선자 이주노동자 차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시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제가 누군지 아세요? 저는 님을 모르는데.... 토론 할때 말을 공손하게한다고 해서 예의를 갖추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상대방이 한 말을 가지고 비판하고 쓸데없는 추측같은거는 하지 마셔야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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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장자연은 뭐라고 생각하심? 그렇게 남욕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면 정신건강에는 좋겠어요~~"남을 야유하고 빈정거리는 모습이 욕설을 하거나 인간말종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지 모르겠지만,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아니죠. 그것 역시 차별이에요. 님은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람들은 일상속에서 차별을 해요.
제가 언제 님을 거짓말쟁이, 위선자,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사람이라고 했나요. 차별은 저도 하고 님도 하고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했지. 그게 그렇게 놀라운 얘기인가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저도 대화 나누면서 빈정거리기도 하고 야유도 하고 말 심하게 하기 때문에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익명으로 들어와서 무슬림 불체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분들은 조용히 무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그 분들이 대화를 나눌 용의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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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정거림이 듣는사람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겠죠. (그리고 전 기분 나쁘라고 쓴 말이에요.) 근데 빈정거림이 차별이라는 것은 살다살다 처음들어보네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차별이란 부당한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구분짓고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인데, (위키백과 찾아보세요) 저는 저의 빈정거림이 부당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불리한 처우를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거든요. 개념구분은 좀 확실히 합시다. 존중하는 태도는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 제 블로그에까지 찾아와 이주노동자 혐오하는 발언을 쏟아놓고 가는 사람에게 존중을 표할만큼 착하지 않아요.저는 제 나름대로 그런 사람들을 빈정거림 정도로 끝내고 무시했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그게 참 거슬리셨나봐요. 그렇다면 그런 빈정거림또한 제 삶의 방식이니(저는 그게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저의 그런 태도를 무시하고 지나가심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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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행위에는 욕설과 구타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는 존대말을 하는데도 꼬박꼬박 반말하는 것, 머리 쓰다듬으면서 어린애 취급하는 것, 이름 안부르고 방글라~ 이러는 것 여기 다 적기도 힙듭니다. 빈정거림이 곧 차별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똑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대응한다면 그것은 차별일 수 있습니다. 최소한 교수나 사장이 무슬림은 여자들 명예살인 하고 어쩌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님이 거기다 대고 그런 식으로 남욕하면서 자위하면 정신건강에는 좋겠네요~~~ 하지 못하고 달리 표현한다면 분명히 님은 차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차별은 보통 약자나 자기가 차별을 해도 해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자기보다 위에 있거나 자기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님이 자기 블로그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내 삶의 방식이니 무시하고 지나가라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님도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다른 분이 어떤 발언을 하든 그건 그 분의 삶의 방식이니 무시하고 지나가셔야 합니다.
결국 좌파에게 블로그 활동이란 그런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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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님의 태도에 반드시 화가 나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대체로 익명으로 들어와서 이상한 소리 하는 분들에게 거칠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입니다.잘 아시겠지만 요번에 프랑스에서도 국민전선이 급부상했습니다. 국민전선 지지층이 청년 실업자, 노동자들로 확대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솔직히 인터넷에서 어느 정도 배설과 익명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종의 견해를 갖게 됩니다. 그것 역시 추측의 영역이고요. 어쨌든 극우정당은 프랑스에서 약자들의 소외감을 기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도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같이 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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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태도를 무시하고 지나가라는 것은, 님이 제 태도를 고쳐보겠다고 달려들 만큼 이게 전혀 대단한 사안이 아닌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조계사 안에 들어와 '예수천국 불신지옥' 외치고 가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조계사 주지스님이 기독교 신자들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기 위해서 예의바르게 대해야 합니까? 저는 오히려 그런 기독교 신자들에게 욕을 퍼부어서 내쫓아버리는게 오히려 자비와 지혜를 설파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데요.들리는 소문엔 '진보신당 게시판 들어갈 때는 우황청심환 한알 먹고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진보파들의 인터넷 글쓰기가 거칠다고 하던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선 저도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저의 저 짧은 빈정거림이 님이 그렇게 폭발할 만한 사안인가요? 이것 뿐만 아니라 하신 말씀 중에 '구태여 대신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다'는 말씀도 그렇고, 제 본문 영화평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슬람사회의 여성차별 사례를 나열하신 것도 그렇고(저는 한국사회에서 차별받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말해야 하는 지점에서 이슬람사회의 성차별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는, 그 의도야 어쨌든 반동적인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사회의 여성차별을 논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논쟁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서 차별받는 그들을 더 이상 자신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자리로 몰고가게 되지요.), 저는 님이 이주노동자의 권리의 편에 서 있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의 댓글들을 대했던 태도와 비슷한 태도로 님을 대했는데, 그것이 불편하셨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만약 님이 그것을 불편해 할 만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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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그게 제가 님의 태도를 고쳐보겠다고 달려드는건가요. 저는 처음에 제 견해를 말씀드렸고, 맨 처음에 제가 쓴 댓글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님도 계속 댓글을 달면서 님의 견해를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댓글이 길어지게 된거지 제가 님의 태도를 고쳐보겠다고 달려들어서 이렇게 된 건가요. 그렇다면 님은 그 사람의 태도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악성댓글에는 야유로 대하시는건가요. 아니잖아요. 그냥 야유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님의 태도를 고치려고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냥 제 의견 말씀드린거고, 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든 그건 님의 자유지만, 저 역시 님의 태도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려하는 뜻에서 말씀드린거에요.자꾸 말씀드리지만 본문 영화평과는 달리 이슬람의 여성문화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된건 님이 자초하신거에요. 님은 한국남성을 야유할 자격이 있고, 다른 사람은 이슬람남성을 야유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안되죠. 솔직히 한국여성 입장에서는 한국남성이 한국남성 야유할 자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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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사회에서 차별받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말해야 하는 지점에서 이슬람사회의 성차별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는, 그 의도야 어쨌든 반동적인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이런 태도가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무력화시키려는 태도라고 봐요. 요즘 사람들은 신문, 방송, 인터넷, 해외여행 기타등등을 통해서 다 알아요. 제가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를 빌미로 이주노동자를 멸시하는건 사실 차별할 구실을 찾는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녜요. 왜냐면 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도 여성억압적인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 무슬림 노동자도 한국말만 잘하면 그럴거에요. 무슨 여성을 존중한다는 나라가 룸살롱에다 성상납이 이렇게 많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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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만난 이주노동자는 절 보자마자 한다는 말이 이놈의 나라는 법도 없고, 정의도 없고 계속 얘기하는데 저는 죄인처럼 고개만 속이고 있었어요.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언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는게 우리가 할 일이지, 고작 이주노동자들이 차별당할까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요. 사람들 다 안다니까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