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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카페에 올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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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예슬씨. 저는 2003년에 대학에 입학해 2008년 여름에 졸업하고 지금은 고향에 내려와 있는 (무직)청년입니다. 저의 입학년도와 졸업년도가 말해주듯이, 5년반을 대학생으로 살아왔고, 딱 그 기간만큼 학생운동과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남들처럼 일찍 군대를 다녀왔다면 지금쯤 복학생 신분으로 학교 어디선가 동기, 후배들과 예슬씨의 선언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지금 제 주변엔 그런 얘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서점에서 예슬씨가 낸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책 속에 담긴 당신의 작은 외침들 하나하나에,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많이 공감하고 또 가슴 속으로 한없이 울었습니다. 겨우 7,500원하는 그 책을 사들고 왔으면 좋았으련만 그 때 제 지갑엔 딸랑 5,000원 밖에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오고 말았네요. 그래도 책 속에 담긴 예슬씨의 몇 가지 의문들은 저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아, 그리고 그 의문들에 대답하는 것이 마치 제 의무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생겨서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91년 5월, 그리고 오늘
저는 요즘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991년 5월>이라는 긴 제목의 책 한 권을 읽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 한 구절을 인용한 이 제목의 책은 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5월 투쟁을 당시에 대학생 신분으로 이 투쟁을 경험한 이들이 10년이 지난 후 가슴 아픈 회고 속에서 기록하며 평가한 것입니다. 제 얘기를 하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저의 간단한 감상부터 전해야 겠네요.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이 투쟁을 4.19나 광주항쟁, 87년 민주화항쟁에 대해 흔히 그러듯이 그 역사를 자랑스럽게 포장하지도, 자신들을 역사의 피해자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사에 있어 급격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당시 상황에서 자신들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실천들은 올바른 것이었는지 반성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이 직선제 쟁취라는 껍데기 뿐인 성과만을 얻은 채 봉합되고, 이후 벌어진 엄청난 수의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 소위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분리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노태우 정권은 88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체제 갈등에 대한 봉합과 포섭 능력이 이전에 비해 훨씬 향상되어 있었고, 이는 이 둘의 분리와 전자에 대한 의도적인 고립, 탄압을 노골화 했습니다. 91년 5월은 어쩌면 이런 흐름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경대 열사로부터 시작된 죽음과 분신의 행렬은 13명이나 되는 노동자, 학생을 떠나보내게 했지만 노태우 정권은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 정원식총리 계란투척사건 등을 공안사건으로 조작해내면서, 운동권을 '패륜아'로 낙인찍는데 성공했습니다.
'노태우정권=죽음과 폭력의 세력', '노동자와 학생=피해자'라는 명쾌한 논리로 지배세력을 공격했던 운동권은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을 사주하는 어둠의 세력"이라는 말로 이 논리가 자신들에게 돌아왔을 때 어찌할 줄 몰라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 때부터가 우리 사회에서 운동권이 평범한 시민들로부터 고립되어 비주류가 되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민화'된 정권의 변화된 지배형태와 새롭게 만개한 소비문화와 한 몸이 된 시민들의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몸짓만을 보인 운동세력은 그저 앙상한 모습만으로 기억될 뿐이었습니다. 과잉된 도덕적 엄숙주의, 폐쇄주의적 문화, 유사 '군대'적이라고 할만한 권위주의적인 작태, 그리고 어정쩡한 대중추수주의. 91년 이후 지금까지 어찌어찌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학생운동의 문화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모습의 집결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학생운동 속에서 2000년대의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200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말하기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당신이 책 속에서 했던 가슴 아픈 말 때문입니다. 당신이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한가"라고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당신의 의문을 당신이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송구스러운 심정'을 통해 전할 땐, 솔직히 속상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미 졸업했지만,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가졌던 상처와 미련들 때문에 당신이 조심스럽게 던지는 그 말 한 마디도 야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만큼은 냉정해지고자 합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저 스스로 '이걸 빼면 내 인생은 시체'라고 생각한 나의 지난 학생운동 시절에게 '충분히 래디컬했는지' 질문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답하는 과정은 당신이 기존에 스스로를 진보라고 외쳤던 이들에게 실망했던 이유를, 그것을 '거짓 희망'이라고 말해야 했던 이유를, 당신과는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3,4학년 때 저는 주로 학생회 활동을 했고, 연말엔 학생회 선거 준비 때문에 '학고'를 각오하고 수업도 내팽개치며 살았습니다. 그 때 저는 90년대 중 후반 부터 선배들이 만들었던 선거 정책 자료집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면 다음날 학우들 손에 북 북 뜯겨 나가던 때였으니, '자본주의 반대'니 '민중권력 쟁취'니 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거 자료집'에 가감없이 담아내는 선배들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마냥 멋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대략 50페이지 안팎 되는 자료집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시퍼렇게 날이 섰던 힘있는 정치적 문장들은 점차 사라지고, 당의(糖衣)입힌 선물상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 말입니다. 등록금 인하, 매점과 식당 개선, 강의평가제 개선... 그러던 것이 몇 해 전부터 '시험기간 간식 배포' 같은 걸로 바뀌기 시작했고, 선본의 정치적 입장은 자료집 맨 뒤에 '정세'라는 코너를 따로 두어 성명서 같은 글을 집어넣는 걸로 대체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 자료집 안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 재패전략'을 비판하는 것과 식당 밥 개선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료집을 맨날 끼고 살았던 저는 4학년때 정책국장을 맡아 치룬 선거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려진 ○○○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자’(○○○은 학교이름)는 멋들어진 총기조를 뽑아놓고는(그래서 선본이름이 'Zoom In'
이것은 비록 저의 이야기이지만, '이념의 고수'와 '대중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200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이들 모두의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들어줄 이 없겠지만, 혹여나 200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누군가가 증언해야 한다면, 저의 이런 이야기도 한 꼭지 정도로는 들어갈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서 평가해 봤을 때, 2000년대 학생운동은 90년대로부터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소중한 자산인 학생운동
그래서 저는 '스스로 진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당신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대중지향성이라는 말을 마치 '대중이 선호하는 것에 맞게'라는 식으로, 마케팅 이론에나 나올 법한 방식으로 이해했고, 이 때문에 훼손된 우리의 진보성을 정서적 폐쇄성과 비장함으로 상쇄시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당신의 선언과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반응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장 래디컬한 것이 가장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당신도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모두가 다 그런 래디컬한 '대학거부'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개인의 결단 차원이 아니라 대학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하는 '운동'의 차원에서라면 더욱이 말입니다. 그래서 남겨진 자들, '대학거부'를 선택하진 않았지만 '다른 대학'을 꿈꾸는 남겨진 제2, 제3의 김예슬들에겐 당신의 선택이 또 다른 책임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대학거부'는 사실상 '대학포기'와 다르지 않기에 당신의 선택에 마냥 박수만 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대학을 거부하고 노동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예전 대학과 학생운동의 모습을 생각할 때, 당신의 선언이 주목받는 것은 오히려 현재 학생운동 위기의 결과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르면 머릿속이 한 층 더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당신께 바랍니다. 당신이 떠나온 대학이란 공간을 여전히 기억해 달라고. 여전히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 학생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야만 하는 전쟁터같은 대학을 기억해 달라고 말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움을 통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배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평생학습사회에서, 저 또한 쉼 없이 대학을 생각할 것입니다. 솔직히 학생운동을 하는 동안 한번도 대학에 '래디컬'하게 맞서본 적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나의 삶 속에서도 나를 끊임없이 '길러 낼' 이 엄청난 국가-학교-자본의 불결한 동맹에 제대로 맞서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당신도 (물론 그러시겠지만) '나눔 농사터에 세워질 진정한 삶의 대학'을 만들어 가시면서 함께 고민을 키워갔으면 합니다.
지금 저는 후회와 반성 속에서 저의 지난 학생시절을 돌아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의 삶의 기반은 학생운동의 경험입니다. 또한 여전히 대학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싸워나가고 있는 저의 후배들은 사회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소중한 '씨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 경험을, 미우나 고우나 저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렵니다. 물론 나의 이 소중한 자산이 왜 당신께 진정성있게도, 래디컬하게도 보이지 못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겠지요. 그 고민 속에서 언제나 당신과 나의 생각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약한 한 청년의 자기고백과 반성의 글을 이렇게 마칠까 합니다. 언제나 힘내시길 바랍니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6일
요즘 나는 시간만 나면 근처 시내 대형서점에 '아이쇼핑'을 하러 간다.
아니, '아이쇼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무전독서'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지난번에는 아예 이틀에 나눠서 서점에 '출근'을 하여 장편소설 한 권을 다 읽어버렸으니... ㅋㅋㅋㅋ
뭐 나에겐 대형서점은 최신도서가 즐비한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늘도 서점으로 발길을 향했는데, 반가운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촛불'이란 단어때문에 예전에 참여연대 쪽 인사들이 모여 펴낸 "어둠이 빛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류의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들의 면면을 보니 그 쪽과는 약간 뉘양스가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목부터가 좀 다르지 않은가? 왜 촛불을 껐냐? 제목은 존대말로 말을 걸어오지만 실상 내용은 쫌 시비를 거는 투다. 시비 거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진보진영 내에서 촛불에 대해 온갖 찬사를 쏟아내는 입장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말투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실 나는 작년 촛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한 7,8월 정도만 해도 이런 류의 주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었다. 실제 내가 몸 담고 있었던 곳에서도 '촛불'에 대한 어떤 종류에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하려고 항시 대기, 으르렁대고 있었다.
물론 나의 그런 행동에도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좌파들의 촛불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지점에 너무 많았다. 촛불이 가장 뜨거웠던 5-6월에는 아주 소극적인 방식으로, 촛불이 소강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7-8월에는 이 때다 싶은 마음으로 조금은 적극적으로 소위 '촛불 시민'들에게 불만 토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촛불의 주도세력은 자유주의자'라는 식으로 손쉽게 규정해 버린 후(이런 방식은 너무 한나라당 얘들이 하는 짓하고 비슷하지 않나?) 민주당 비판할 때나 쓰는 포퓰리즘 같은 용어를 동원해 이들의 한계를 따지고 들다가 이들이 앞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버리고는 그래서 이후 새로운 운동주체의 형성에 있어서의 대안에 대한 자기 얘기는 한마디도 안하고(아니, 못하고!!) 말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누구 말마따나 그 때고 지금이고 간에, 대중의 행동은 '점수매길' 문제가 아니라, 운동주체가 이에 어떻게 개입하여 어쩌면 대중의 정치에 대한 환멸의 증폭으로만 귀결될 수도 있을 이 촛불집회를 새로운 운동주체 형성의 계기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위의 입장들과의 대결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대중지성'의 찬미를 늘어놓는 이들의 입장에 얼마간 동조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그런 혼란을 갖고 지내던 차에 만나 이 책이 난 참으로 반가웠다.
촛불이 꺼지고 광우병 보다 더 굵직굵직한(특히 용산참사!!)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너도 나도 손쉽게 예언했던 제2의 촛불은 왜 일어나지 않는지 조금은 차분한 마음을 갖고 고민해 볼 계기를 전해 주기에 좋은 책이다.
일단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김정한, 백승욱.
이들은 촛불집회가 뜨겁던 작년 봄에도 찬양과 냉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잡힌 입장을 보여줘서 나에게도 참 인상깊었던 저자들이다.
특히 김정한의 글에서는 두가지 지점에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촛불의 성과를 교육감선거 승리로 갈무리하고자 했던 시도의 한계점에 대해서. 그의 논의는 딱히 교육감 선거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대중투쟁의 양상과 그에 후속해 등장하는 선거국면의 결과가 반비례하는 예들을 보여주면서 사회운동과 제도정치의 결합이 쉬운 과제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리고는 대중정치와 선거정치의 '게임의 룰'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암묵적으로 촛불집회 당시 최장집, 박상훈 등이 주장했던 '원내정치로의 복귀'에 대한 일정한 비판을 암시하는 듯 하다. 둘째로 결론 부분이 참 맘에 들었는데, 촛불은 어찌되었건 간에 앞으로 벌어질 대중운동의 장기지속의 새로운 출발점을 암시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그는 월러스틴의 말을 인용하는데, "1848년 프랑스에서의 혁명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시험무대였고, 1968년 5월 혁명이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예행연습"이었던 것처럼 촛불항쟁도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진짜 그럴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전적으로 운동주체들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백승욱의 글은 사실 비슷한 논조의 글을 참세상에서 접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약간 수긍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는 글을 통해서 '우리가 민주시민이다'를 넘어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라는 선언을 할 것을 제안했었는데, 나는 그게 가능하기나 한 얘기인가가 의심스러웠고, 또 민주시민이라는 범주에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로 나아가는게 어떻게 넘어서는 것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또한 당시 대중들의 행동을 "자랑스런 대한민국 만들기" 정도로 폄하하는 신기섭의 글을 치켜세우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난 이게 전형적인 '점수매기기'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점수를 매기려면 너는 50점 밖에 안되니까 90점 이상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정도는 달려야 하는데 신기섭은 그 정도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기존의 지식인들이 촛불의 자발성에 무비판적으로 부화뇌동하면서 '대중지성 예찬론'을 퍼트리는 조류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류의 주장은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어떤 것보다도 진지하고 아직도 촛불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곱씹어 보아야 할 주장이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백승욱)
사실 난 어떤 식으로든 '비관주의'를 앞장세우는 주장에는 마음이 거슬리는 편이긴 하지만, 이론에서의 비관주의라는 말은 현 정세를 보는 모든 이론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엄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읽은 글은 요 두개인데, 앞으로 며칠 동안 나눠서 서점에 더 출근하면서 더 읽어봐야 겠다. 사실 요렇게 특정 정세에 맞춰서 쓴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놓은 책은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면이 좀 있는게 사실이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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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천에서만큼은, 그리고 삶에서 만큼은 조금은 낙관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비관은 그저 등돌리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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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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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슴다. 저로서도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만한 내용들이군요.부가 정보
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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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예전에 썼던 글을 약간 번안한 거에요.ㅋㅋㅋ 어딘가 써먹으려고 썼는데 용도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좀 아쉬워 했는데, 그냥 이런 식으로 한 번 살려 봤습니다.부가 정보
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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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력이야 어떻든 잘 살리신 듯 ㅎ 저는 1990년대 중반 언저리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쪽인데요. 당시로선 비교적 호방하게 주창되던 '큰 이야기' 내지 총론이 캠퍼스 안으로, 학과/전공 안으로 굽이치지 못하고 밖으로만 향해 있는 게 내심 불만였죠(불만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소위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전파자' 역할에 머물러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설사 안으로 굽이치게 했다 한들, 님께서 겪으셨다는 '낭패'로부터 얼마나 비껴날 수 있었을지는 솔직히 저로서도 자신이 없네요.부가 정보
놀이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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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