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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실상부한 합리적 세계, 또는 낙원의 회복은 가능한가?
우리가 그 결과가 불확실한 길고 어려운 이행과정을 겪는 중이라면,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커다란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실제로 어떤 종류의 세계를 원하는가? 그리고 어떤 수단 혹은 경로를 통할 때 거기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클까? 나는 이에 대해 유토피스틱스 즉 역사적 대안에 대해 진지하게 평가하는 동시에 가능한 대안적인 역사적 체제들의 실질적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수행한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확실성의 종언(다시 말해 진보의 필연성이 아닌 가능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던지고자 한다.
1. 근대 세계체제 내의 역사적 사회주의
역사적 사회주의에 적용되는 주된 죄목은 다음 세 가지이다. ①국가 및 당 권력의 자의적 사용 또는 공포정치 ②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에 베풀어진 온갖 특권 ③국가의 개입으로부터 기인하는 광범위한 경제적 비효율성.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이들 당의 휘하에 있지 않았던 체제의 경우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자신의 원만한 작동을 위하여 이러한 종류의 정권을 필요로 했던 것은 바로 전체로서의 체제 그 자체 아닐까?
물론 혹자는 모든 국가체제가 이와 같지는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도 세계체제의 매우 좁은 한 구석(일부 부유한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매우 커다란 중간계층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지구의 파이 가운데 자신들의 몫에 대해 이들 집단이 상대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이들을 보호해주는 ‘법치’가 제도화된 점을 꼽을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한번도 자율적인 전체였던 적이 없으며, 언제나 국가간체제의 작용에 의해 제한을 받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틀 안에서 움직였을 분만 아니라 대안적 역사체제의 활동을 뜻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2.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체제를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삶의 질을 극대화시켜주는 데 우선권을 주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폭력수단들을 제한하고 통제하여, 모든 사람이 대체로 그리고 평등하게 신변의 안전을 느끼고 타인들의 생존이나 평등권을 위협함이 없이 가장 폭넓은 범위의 개인적인 선택권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고안해내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이는 기만적이게도 민주적 체제라 불려온 수정되고 변형되고 은폐된 전제정치 대신에, 자유주의의 이상을 평등주의적 체제 혹은 이론 그대로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것만으로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 체제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구 저쩌구~~~)
3. 끊임없는 자본축적의 우선성의 극복을 위한 제언
일반적으로 금전적 보상은 질 높은 노동을 위한 유인책이라고 주장된다. 그러나 질 높은 공예품에 대해 장인에게 보상을 주는 것과 회사를 위해 특단의 이익을 올린 데 대해 경영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을 더 잘하게 되는 일차적 자극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늘어나는 물질적 보상보다는 오히려 명예와 자신의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력의 증대 등의 결합에서 오는 대학교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전문직의 뚜렷한 예가 있다.
효율성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이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자본의 축적을 증가시키는 데 따르는 보상은 주어지지 않고 다만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분배를 확대하는 데 대해서만 보상을 받는 경우라고 해서, 그 주체가 덜 효율적으로 일할 것이라는 예상은 전적으로 타당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기업가들이 소도시의 건축가나 정비공장 기술자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큰 조직은 작은 조직보다 효율적인가? 비영리기관들이 영리기관에 비해 항상 능률면에서 떨어지는가? 이와 같은 문제에서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따라서 대안적 체제의 가능한 기초로서 내가 제안하는 첫 번째 구조적 요소는 체제 내 생산의 기초양식으로서 탈집중화된 비영리 단위들을 설립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가진 독점적으로 통제되는 세계시장이 아니라 진정한 시장, 즉 번잡한 도로의 신호등과 흡사한 종류의 규제를 갖춘 시장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4. 인종․성․민족의 평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능력주의(meritocracy)는 민주화의 압력을 대변하는 것도 사실이고, 동시에 현체제에서는 손에 쥔 팻장이 (인종․성․민족이라는 기준에 의해) 부당하게 조작되었다는 말도 맞다. 이에 우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인간의 능력차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공평한 사회적 ‘자리’의 배분에 대한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1)
우리는 계급없는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양극화의 종식이 모든 사회적 편차를 종식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스럽지만, 인간적 필요에 관한 부분을 모두 비영리기구가 제공하고 그 비용을 집단적으로 부담하도록 하여 상품화의 외부에 놓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노멘클라투라의 형성을 막을 수 있을까? 교육과 의료 및 평생에 걸친 최소한의 임금에 대한 접근이 오로지 공직을 통해서만 보장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윤추구적 경제구조를 위한 판로가 없다면, 노멘클라투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에는 물론 보수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생태계 보존에 있어서도 우리는 모든 생산조직으로 하여금 그들의 생산활동이 생태계 자원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을 내부화하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특정한 생산적 활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선택으로 귀결될 것이다. 근원적인 쟁점은 사회적 비용의 측정 평가를 둘러싼 것이며, 문제는 어떻게 그러한 결정이 진정으로 집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가 결정의 장을 보통사람들의 참여와 통제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를 가장 잘 제도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점에서 한 가지 우리 편인 것은 인간의 창조성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필연적인 지노라는 개념을 슬쩍 끌어넣고 싶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창조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그리고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정치적 문제에 이르게 된다.
5. 디 람뻬두자 원칙 -- 변화를 통한 불변의 유지전략
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투쟁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다음 500년간의 역사적 체제의 기초를 놓는 일에 대하여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살펴야 할 점은 현재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이며 실제로 헌재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이다. 그들은 현재 구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권층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체제의 위기를 의식했을 때 일어난다. 즉 그들이 위기의식을 실제로 느끼고, 그들의 활동과정에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통합시킬 때 말이다. 그 시점에서 그들이 아무것도 변화히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자 (아니면 그렇게 하려는 듯이 보이고자) ‘디 람뻬두자 원칙’2)(di Lampedusa principle)을 도입하려 할 가능성이 쾌 크다. 첫 번째 문제는 변화를 고안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자기 진영의 대부분을 속이는 일이요, 세 번째는 적들을 속이는 일이다.
반평등주의적 결과를, 그것도 많은 경우 바로 같은 계층에게, 적어도 처음 몇 백년 동안 보장해준 결정적 성과를 빼놓으면 거의 모든 면에서 봉건체제와는 다른 것이 자본주의체제인 것이다. 앞으로 특권층은 현재 불만을 가진 자들의 어법을 많이 끌어들여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했던 것과 같은 행위를 할 것이다. 그것은 환경이라든가 다문화주의 혹은 여성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운동 자체가 흡수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수사법은 흡수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세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3) 첫째는 세계적인 차원의 집단 전체에는 이득이 되는 일이 특권층 내의 하위집단들에게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손해를 보는 하위집단들은 물론 동조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 조치의 정치적 생존가능성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둘째는 특권층 가운데 일부가 생각해 낸 ‘디 람뻬두자’ 전략이 있다고 할 때, 특권층의 다른 일부는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이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전략의 옹호자들은 모든 것을 낱낱이 까발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디 람뻬두자 저략의 목적 자체를 짓밟는 것이 된다. 이는 세 번째 문제로 직결된다. ‘디 람뻬두자’ 전략의 핵심 요소는 실제 전략에 대해서는 결코 너무 공개적으로 선포하지 않으면서 표면적 전략만을 고수하는 것이다. 즉 자신들 쪽에 인력을 동원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에게 맹렬한 반대의 증거나 동기를 제공하지는 않을 만큼의 설명만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행동은 어떠할 것인가? 그들의 내부는 특권층보다 이질적이며 무정형적이기 때문에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어떤 강령이 아니라 단지 강령에 대한 토론이 포함해야 할 몇가지 요소들, 즉 실질적으로 더욱 합리적인 역사적 체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행의 시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점들을 제시했다.
6. 새로운 질서의 성격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
체제의 마지막 시기 즉 이행기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또한 특히나 개인과 집단의 참여에 좌우되는데, 이를 나는 자유의지 요소의 증대라 부른 바 있다. 우리는 당면한 구조적 위기의 성격과 나아가 21세기를 위한 우리의 역사적 선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의 틀을 재구축해야 한다. 일단 우리가 선택의 여지들에 대해 이해하고 난 후, 우리는 승리하리라는 아무런 보장 없이도 투쟁에 참가할 태세가 되어야 한다. 이는 긴요하다. 왜냐하면 환상은 오직 환멸을 낳을 뿐이며, 그에 따라 탈정치화를 낳기 때문이다.
현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과정에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하며, 이러한 한계들이 체제의 작동을 막는 제동장치로서 현재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내가 작동 메커니즘의 점근선이라 부른 이러한 구조적 한계들은 겪어내기에 불쾌하며 그 궤적을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구조적인 혼돈의 상황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으로부터 약 50년간에 걸쳐 새로운 질서가 떠오를 것이며, 이 새로운 질서는 그 사이 모두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가 더 나아질지 더 나빠질지를 예측하지도 않으며 또 할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나의 분석은 낙관적인 것도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이로운 종류의 구조와, 그러한 방향으로 우리를 움직여줄 종류의 전략에 대한 논의를 고무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동아프리카에서 쓰는 말대로 하람비(harambee)!4)
1) ex) 100명에게 시험을 치게 해서 50명에게 자리를 나눠준다고 했을 때, 상위 10명에게는 일단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위 10명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그러면 가운데 80명은? 사실 이 80명이 그야말로 ‘중간’의 실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 내부에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이들은 대개 100명 중에 평균적 능력을 갖춘 이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 40개의 자리는 80명의 추첨을 통해서 배정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월러스틴)
2) 『살쾡이』(1958)의 작가인 이탈리아의 소설가 주제뻬 디 람뻬두자에서 따온 것으로, 19세기 중엽 씨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한 귀족이 다른 귀적에게 “만사를 전과 같이 유지하려면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3) 책에는 두 가지라 말하지만, 첫 번째 문제가 두 개로 나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세 가지.
4) 1950~60년대 케냐 민족운동의 구호로서, “힘을 모아 해보자”는 뜻이다.
■ 어려운 이행기, 지상의 생지옥?
1. 거대이윤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자본주의는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을 허용하며 긍정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거대 이윤을 내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닌데, 왜냐면 경쟁자들은 가격과 그에 따른 이윤폭을 낮추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손’인 가격과 비용은 안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보이는 것도 아니며, 페르낭 브로델이 자본주의의 ‘불투명한 지역’이라 부르는 어렴풋한 중간세계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장에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국가와 관련된다. 전통적으로 자본주의 이론가들은 애덤 스미스를 따라 국가의 시장 ‘개입’을 개탄해왔다. 그러나 나는 무제한적 자유방임주의가 자본주의의 대들보라는 주장은 속임수일 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생산자들은 임금지출액과 세금부담액을 줄이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 우리는 이를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지출액이 거의 제로인 경우, 물론 이윤의 즉각적인 폭은 치솟을 것은 분명하지만, 유효수요에 미칠 중기적 영향은 참혹할 것이다. 마찬가지의 경우가 세금부담액에도 해당된다. 세금은 생산자들이 필요로 하는 봉사에 대한 대가이며, 여기에는 특정한 생산자들이 시장을 부분적으로 독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가의 노력이 포함된다. 따라서 지나치게 낮은 세율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세금부담액과 임금지출액이 각기 늘어날 때마다 이윤의 폭은 잠식된다. 실제로 이것이야말로 자본가들 사이에서 성공의 시험대이며, 가장 잽싸고 정치적인 연줄이 가장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경기이다.
2. 생산자 부담의 증대와 생태계의 위기
임금과 봉급의 형태로 개별 피고용자들에게 사회적으로 규정된 재생산 비용보다 더 많이 이전되는 잉여가치의 일부는 작업장과 정치적인 장에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의 결과이다. 국지적인 노동자집단이 작업장이나 정치적 영역에서, 혹은 좀더 흔히는 양쪽 모두에서 조직화됨으로써,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생산자가 실질임금의 상승을 거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높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임금지출액의 상승은 또한 유효수요의 상승이며 따라서 어느 집단의 생산자들에게는 이득이지만, 상승된 임금을 지불하는 집단에게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상승이 일정한 집단의 생산자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런데도 이들이 그곳의 정치적 장에서는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을 때, 그들은 자기네 생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노동자들의 임금이 역사적으로 낮은 곳으로 재배치함으로써 해결책을 찾고자 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약한 노동자집단은 화폐화가 덜 된 농촌지대를 벗어나서 도시의 생산지대로 처음 옮겨온 사람들이다. 이렇게 정치적 약점을 지녔던 어떤 노동자집단도 그런 약점들을 30-50년 내에 극복했고, 오늘날에는 훨씬 더 짧은 기간 안에 그렇게 되리라 장담할 수 있다. 즉 생산의 재배치라는 것은 그것에 따른 이득이 다분히 일시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제 지구에서 재배치가 가능한 지대가 존재하는 비율을 가리키는 곡선은 점차 점근선에 도달해가고 있다. 세계의 탈농촌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은 증대하고 있다.
점근선은 세금부담액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본가까지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국가가 더 많은 지출을 하기를 바라왔는데, 만약 국가가 더 많은 지출을 하려면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 국가로 하여금 더 많이 지출하되 동시에 더 적게 과세하라는 모순적 압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세 번째 점근선은 생존조건의 고갈이라는 곡선이다. 점점 더 많은 발전과 그에 따른 더 많은 파괴가 점근선에 다다르게 만든다. 이렇게 된 이유는 파괴에 의해 이득을 보는 생산자들이 대부분 그러한 파괴를 생산비용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비용의 절감으로서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신고전경제학에서는 이를 비용의 외부화(externalization of costs)라고 부른다. 국가는 점차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재정지출을 늘리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고, 이는 생산자에 대한 이윤압박과 기업의 재정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3. 신자유주의는 성공할 것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자본가들마저도 강한 국가를 요구한다. 강한 국가가 없다면 상대적인 독점이란 있을 수 없으며, 자본가들은 경쟁적 시장의 부정적인 면들을 겪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왜 약해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초국가적인 기업체들이 제 진정으로 전지구적이 되어서 국가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오류다.
우리는 주변에서 온통 반국가주의적 목소리들을 듣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반국가주의적 목소리들은 세계 노동인구 그 자체로부터 나오고 잇는데, 이들은 모두 서방세계의 조절된 ‘사회 경제’ 모델이건, 이제 신용을 잃은 쏘비에뜨 모델이건, 혹은 제3세계의 ‘개발주의적’ 모델이건 간에 자유주의 국가들의 개혁주의적 과제에 대한 환멸의 결과이다.
신자유주의에 덧붙여 이윤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두 번째 계획은 마피아 원칙의 확대이다. 여기서 마피아란, 법적 제약을 어기고 탈세를 하거나 보호비용을 갈취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또 이를 위하여 사적인 물리력이나 엄청난 뇌물, 국가 공식과정의 부패를 동원할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약한 국가들의 관료와 정치가는 많은 경우, 점점 더 약해지고 대중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국가기구 외부의 마피아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곤 해왔다. 몇몇 경우에는 그 두 집단을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지도 않고 무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이는 점점 더 국가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결과가 된다.
4. 국가의 쇠퇴와 국가외적 자기방어 증가의 악순환
권력의 바깥에 있는 ‘보통사람’들은 국가의 행동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효과적으로 봉사해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환상을 버리면서 국가에 대하여 적대적으로 돌아서게 되고, 그 결과 자신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는 결국 보통사람들이 국가의 결정들을 바꾸는 대신에 피호관계나 국가외적인 자기방어, 혹은 이 두 가지의 복합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뜻한다. 이는 거의 500년간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피호관계나 국가외적인 자기방어의 역할이 줄어왔다는 근대 세계체제의 장기적 추세가 역전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
국가 정당성 하락의 가장 크고 즉각적인 결과는 두려움, 즉 범죄와 인종갈등과 관련된 것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범죄가 빈발한다고 생각되는 지역을 피하게 되며, 또한 국가에 징벌적 구조를 증가시키도록 압력을 넣는다. 이는 정당성의 관점에서건 재정적 자원의 관점에서건 궁극적으로 체제에 과부하를 가져온다.
경찰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형성된 19세기 초엽에는 개인적 치안과 자경단을 만들어냈던 공포스러운 환경을 끝장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개념은 세계체제 전역으로 확산되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25년 동안 최고치의 효율성에 도달했다. 이제 그 추세가 눈에 띄게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범죄의 확산에 대해 국가의 대처능력이 명백히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커다란 초조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범죄율 증가에 따라 경찰력은 점점 더 강력하고 무절제한 힘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연방수사국(FBI)은 한때는 갱단을 소탕하는 영웅으로 우상화되고,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는 없어서는 안 될 수호자로 간주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자신의 무법성과 무능력으로 욕을 먹는 조직이 되었으며, 이는 우파 쪽에서 주로 제기되기 십상이었다.
5. 근대 세계체제의 창조물로서의 인종갈등
최근 레바논,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르완다, 등에서 일어난 종교적, 언어적 공동체에 기반한 전쟁에 대한 통상적인 분석은 이들이 원시적인 분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인종적’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근대 국가구조의 틀 안에서 주장되는 정체성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행동의 양식이며, 기존 정치구조가 최소 수준의 공정한 경기도 보장해줄 수 없는 것으로 탈정당화된 바로 그때, 그리고 다른 분할선들, 다시 말해 좀더 납득이 갈 수도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정치적 분할선들이 정치적으로 가당찮아 보이게 된 바로 그 때 더욱 격렬해진다. 인종분규의 증가는 국가 정당성 상실의 가장 큰 지표이다.
19세기 초부터 인류가 경험한 민족주의는 스스로 근대주의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의 전통에 호소했다. 오늘날 인종정화의 지지자들은 바로 이 전통을 거부하며 행동한다. 상대적으로 문명화되었다고 주장하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이러한 종류의 절망적인 인종분규가 출현하는 것 또한 목격할 수 있다.
6. 세계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몇가지 형태의 분출
앞으로 다가올 콘드라티예프 A국면은 틀림없이 양극화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세 가지 분출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하나는 적어도 지난 2세기 동안 세계 안정성의 중요한 대들보였던 필연적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정당성을 잃은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비중심 지역에서 자본축적의 근본 원리를 전면 부정하는 강력한 운동들을 보게 될 것인데, 이는 기존 맑스주의의 거부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다. 우리가 마구잡이로 ‘근본주의적’이라고 부르는 운동의 다수가 이러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종종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여기에는 유대교, 기독교, 힌두교, 불교 기타 등등의 다양한 변종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현존 세계체제에 내재한 양극화를 극복할 능력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자각으로 인해 자신들이 세운 국가구조나 고전적인 반체제운동들에 대해 느끼는 대중의 환멸에서 나온다. 이 운동들은 아마 그 자체로서는 근본적인 변화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넘어서는 (전지구적인 이윤압박이나 개혁주의적 자유주의의 대한 전지구적인 환멸과 같은) 요소들의 맥락에서 보면, 전체 구조에 심각한 파탄을 초래하게 된다.
그보다 더 큰 해체의 힘은 세계 군비의 민주화이다. 이제 핵의 확산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일부 무기는 국가가 아닌 집단들의 손에 이미 들어가 있을 지도 (혹은 곧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옴진리교는 비국가집단이 화학무기를 통해 끼칠 수 있는 해악을 보여준 바 있다. 이에 따라 비중심지대에서 강대국들에 군사적으로 도전하는 싸담 후세인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미국은 그를 물리치는데 매우 힘든 정치적 동원을 했는데, 앞으로 그런 동원이 또 다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도전은 가난한 나라로부터 부자 나라로의 개인적인 이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심지대는 얼마간의 이민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오려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이고자 하지는 않는다. 경기하강국면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그리하여 그들은 장벽을 세우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벽의 효과는 희미해진다. 이에 따라 범유럽권국가는 점점 덜 백인적이게 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이민자들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한다. 그런데 이민자 집단이 일정 비율 이상에 도달하면 국내 분규의 조건이 갖춰지게 된다. 그리고 그야말로 모든 개별 국가들이 나름대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을 것이기에, 어떠한 충돌이든 촉발되기만 하면 마치 번지는 산불처럼 쉽게 국경을 넘을수 있을 것이다.
7. 위기에 처한 체제와 자유의지 요소의 부상
체젲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구조적 결정력은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지를 능가한다. 그러나 위기와 이행의 시기에는 자유의지의 요소가 중심적이 된다. 2050년의 세계는 우리가 만드는 대로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주체성과 우리의 헌신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전적인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 이는 또한 이 시기가 끔찍한 정치투쟁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데, 이른바 정상적인 시기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1) ‘봉건제적 정치양식의 부활’ 가능성에 대한 암시라고 보여짐. (요약자)
■ 꿈들의 실패, 또는 낙원의 상실?
1. 유토피스틱스 -- 가능한 역사적 대안의 탐구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기능이 있으며, 때로는 정치적인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또 그것은 환상을 길러내며, 환멸을 낳는다. 내가 대체 용어로 고안해 낸 유토피스틱스라는 단어의 취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대안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이며, 가능한 대안적 역사체제의 실질적인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 행위이다. 이는 인간의 사회적 체제들과, 이 체제들이 지닌 가능성의 한계, 그리고 인간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주의적인 평가이다.
유토피스틱스는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수단이라 불리는 부차적이고 부수적인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전반적인 목표-- 에 대해서 과학과 도덕 그리고 정치학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바를 조화시키는 일이다. 수단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체제가 정상적인 삶을 누릴 때 지속되는 문제들의 일부이다. 내가 변혁적 시공간(TimeSpace)이라 부르는 바로 이러한 순간들에 이르러서야 유토피스틱스는 그저 타당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집단적 지식의 타당성과, 특히 이 지식으로부터 우리의 역사적 체제들에 대해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들의 타당성은 무엇이 실질적 합리성을 구성하는가에 관한 투쟁에서 중심 쟁점이 된다. 따라서 유토피스틱스는 지식의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세계의 작동방식에 관해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재검토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2. 근대세계의 혁명은 왜 환멸만을 낳았는가?
인간이 정치적 혁명의 꿈을 가져온 이래 언제나 환멸을 겪어온 듯 하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그 좋은 예이다. 보수주의 사상가들은 이것이 사회공학의 결과로서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마련인 사태일 뿐이라고 한다.
근대세계의 혁명적 격변들의 대부분은 피억압 대중의 자발적 봉기라기보다는 (적어도 초기에는) 특정 집단이 국가질서의 붕괴 순간에 기회를 장악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중들의 지지는 사후적인 것이었다. 보수주의가 대중에게 강요하는 인내심은 결코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하층집단들은 이를 그저 감내해 왔을 뿐이다. 하층집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혁명에 지지를 보낸다.
진정한 혁명적 변화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논란이 많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은 기본적 변혁은 국가 수준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근대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국가들에서 혁명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혁명이라는 말이 그 근저에 놓인 사회구조나 혁명을 겪었다는 국가의 작동양식을 뒤바꾸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혁명은 있을 수도 없었다.
국가간체제의 제약 내에서 작동하는 이른바 주권국가들의 창출은 자본주의 세계경제 창출의 요체였으며, 그 구조화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국가는 결코 자율적인 실체였던 적이 없으며 세계체제의 주요한 제도적 특성에 불과하다. 생산양식을 가졌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전체로서의 세계체제였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 국가는 체제의 제도이며, 따라서 그 특정한 형태에 관계없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추진력의 우선성에 어떤 방식으로건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이라는 용어가 이전에는 봉건적이었던 국가가 자본주의적으로 되었다거나, 이전에 자본주의적이었던 국가가 사회주의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현재 적용 가능한 의미를 갖지 못하며 현실의 기만적 묘사일 뿐이다.
사회주의 국가도 이러한 세계체제의 일부였는데, 이런 주장에 대한 주요한 반박 중 하나는 바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순수하지 못했고 제대로 사회주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충분히 혁명적이었다. 그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체제로서 자신들이 세계체제의 구조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그리고 특정한 매개변수 내에서 움직이도록 제약받고 있으며, 이를 무시할 경우 세계체제 내에서 중요한 행위자가 될 모든 능력을 상실하게 되리라는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기의 이르고 늦음은 있을지언정 자신들의 의도를 현실에 맞춰 굽히게 된다.
프랑스와 러시아 등 대부분의 혁명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정상적이고 지속적인 삶 가운데서 일어났다. 일부 사람들이 보여준 혁명에 대한 열광과 또 다른 사람들이 보여준 엄청난 적대감은 그 체제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일부였다. 열광이 누적된다는 사실이 한 가지 메커니즘이며, 열광이 환멸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혁명은 결코 그 옹호자들이 바란 방식이나, 그 반대자들이 두려워한 방식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혁명이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그러한 격변의 거듭된 패턴은 체제의 어떠한 장기적 추세를 수립하는 중대한 요소였으며, 그 장기적 추세들의 영향은 오늘날 1945년 이후에 와서야 그리고 1989년 이후에 더욱더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3. 프랑스혁명 이후 -- 민중의 열말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누군가가 이들 나라에서 혁명 20년 전의 어느 한 순간과 일반적으로 혁명이 종결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으로부터 20년 후의 어느한 순간을 비교한다면, 형편은 비슷하되 이른바 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그 변화가 과연 클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세계체제 전체를 본다면 결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들 두 혁명의 결과로서 세게체제의 지구문화(geo culture)에서는 커다란 변화들을 추적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체제 전체의 장기적 추세에 반영되는 변화인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 개념은 세 가지가 있다. ①정치적인 변화가 예외적이며 본질적으로 부당하다기보다는 항상적이며 정상적이라는 개념. ②주권이 군주나 귀족집단체가 아닌 인민에게 있다는 것. ③국가 안에 거주하는 인민이 민족을 구성하며 그들은 그 민족 내지 국민공동체의 시민이라는 점. 이에 대해 프랑스혁명에 대한 거부로서 보수주의 이념이 등장했고, 프랑스 혁명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만 기본개념들은 승인하는 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법제화를 통한 변화가 사회질서에 끼칠 수 있는 손상에 주목하면서, 전통적 기구들과 상징적 지도자들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희망을 걸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민중이 요구하는 이론적 정상성, 민중주권, 시민권을 허용하되 이들 원칙에 따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변화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통제된 변화를 원했다.
4. 1848년 혁명 -- 지구문화로서의 자유주의의 확립
1848년 혁명은 좌파 이념이 중도파 자유주의로 간주되던 것과 결별하여 우파 보수주의와 중도파인 자유주의 모두에 대립하는 제3의 이념으로서 출현한 순간을 이른다. 이를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이 혁명은 매우 빨리 불타올랐으며, 그만큼이나 빨리 소진되었다. 그럼에도 당국자들은 이 때문에 크게 겁먹었고, 이 두려움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세력이 함께 기성의 질서를 수호하는데 협력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48년 실패는 좌파에 정치적 현실주의라는 각성을 강요했는데, 이는 주권국가에서 권력의 획득과 국가사회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게끔 했다. 이러한 전략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전문가들에 의하여 관리되는 합리적인 변화라는 자유주의의 전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거의 어디서나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라는 3대 이념이 정치적으로 경합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중도파인 자유주의가 세계적인 이념이 되었는데, 이는 보수주의와 사회주의가 결국 관리된 개혁을 기초로 하는 자유주의적 주제의 변형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로서 대중의 압력이 정당화된 상황에서 이를 억제할 방법에 관해 한 조를 이루는 세가지 이념이 등장하자, 한 세기 넘게 모든 사회적 행동이 그 안에서만 일어나도록 할 매개변수가 수립되었다. 그 결과로 참정권과 복지국가가 등장했다. 결국 자유주의적 양보들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들에 대한 압력을 낮추게 되었다.
5. 민족주의․인종주의․성차별주의의 대두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자의 저항이지만, 그 반대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에 이러한 특성을 부여한 것은 바로 민족주의와 시민권의 연계이다. 무엇을 포함시킨다는 것은 또한 무엇을 제외시킨다는 뜻이다. 시민권이 한 일은 배제가 공개적인 계급장벽이 아니고 민족적인, 혹은 숨겨진 계급적 장벽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바꿔놓는 것이다.
백인종의, 혹은 아리안족의 우월성에 대한 노골적인 이론화인 인종주의는 19세기에 북부와 서부 유럽에서, 그리고 유럽의 정착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서 흥성하였다. 자유주의적 정치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강대국 집단의 공통 시민권이라 할 일종의 특급시민권을 수반하는 것으로서, 현재는 강대국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인종적으로 세계의 나머지 부분에 기원을 둔 사람들이나, 백인들이 정착한 국가의 토착민을 포함한 세계의 나머지사람들이 거기서 배제되었음을 뜻했다.
성차별주의는 주부(housewife)의 개념을 창조하고 신성화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단독임금 가정'의 남성 생계담당자와 주부는 한 짝이 되는 위치에 자리매김 되었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효과를 낳았다. ①얼마만큼의 잉여가치가 노동계급에 실제로 재배당되고 있는지를 흐리게 했다. 단독임금의 남성 임노동자의 늘어난 임금은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어린이 경쟁자가 배제됨으로서 얻어진 결과일 뿐이다. ②커다란 집단이 배제된 현실에서 편입의 가치는 올라갔다. 백인 여성들은 비백인 세계에 간단히 추가되었고, 남성 노동계급의 지위는 덜 모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③시민권의 부대조건으로 군복무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6. 러시아 혁명 -- 민중적 열망의 비유럽세계로의 확산
러시아혁명은 볼셰비끼들에 의한 계획된 봉기의 결과라기보다는, 혹독한 군사적 패배에 더하여 주민 사이의 기아가 확산됨으로써 러시아의 정치질서가 완전히 붕괴되었을 때, 볼셰비끼가 상대적으로 더 잘 조직화되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실의 결과였다. 또한 볼셰비끼는 러시아혁명 완수를 위해서는 독일혁명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독일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스탈린주의, 그리고 91년 소련의 붕괴다.
러시아혁명은 범유럽의 강대국들에게는 노동계급을 무마하기 위해 자유주의가 나눠주는 꾸러미에 담아야 할 분담금을 상당히 증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유럽세계의 경우에는 이보다 효과가 더 크다. 러시아혁명 이후 민족주의의 세균은 유럽의 경계 바깥으로까지 확산되어갔다. 이는 비유럽 국가가 유럽의 통제로부터 해방되어 산업화를 이루고 군사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프랑스혁명이 범유럽세계의 위험한 계급들에게 희망과 기대, 그리고 더욱 커진 열망을 불어넣었다면, 러시아혁명은 이를 비유럽세계의 위험한 계급들에게 불어넣은 것이다. 비유럽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은 자유주의 이념이 전지구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양보에는 전지구적인 내용이 담겨야만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7. 1968년 혁명 -- 자유주의의 퇴출과 구좌파에 대한 환멸
1848년 세계혁명의 변이는 세계체제의 지구문화의 토대로서 자유주의가 수립되는 것으로 이어졌다면, 1968년 세계혁명은 바로 이 역할로부터 자유주의를 퇴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바로 지구문화에서 지닌 자유주의의 지배적 역할 자체를 과녁으로 삼았으며, 갖은 수단으로 자유주의를 이 위치에서 끌어내리고자 했다.
68이후 세계는 지정으로 삼분법적인 이념상의 분열상태가 되었다. ①보수주의. 가부장적 전통주의와 극단적 반복지주의를 강화했다. ②자유주의. 이 이념의 대표주자는 이제 사민주의 정당으로 넘어갔는데, 이들은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는 개혁이라는 벤섬과 밀의 전통을 공개적으로 수용했고, 여기에 적당히 ‘사회적인’ 경제를 가미하는 정도였다. ③급진주의. 마오주의 분파들이 등장했다 희미해지고, 묵시론적 변혁을 추구하는 세력과 개혁주의적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대중들이 전통적인 반체제운동들(이른바 구좌파)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의 본질적인 요소는 환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환멸은 이들 정당이 했던 역사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의식에 다름아니었다. 이는 특정한 정부팀의 업무수행에 대한 일시적인 실망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런 대중적 감정은 구소련의 붕괴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8. 국가에 대한 희망의 상실 -- 역사적 이행기의 시작
이러한 희망 상실은 반국가주의(antistatism)의 확산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국가구조의 전반적인 정당성 상실이자, 도덕적 연대와 실질적 자기보호를 위한 비국가 기구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돌아섬을 의미했다. 부활한 보수주의 운동은 복지국가의 장치들을 폐기하는데 이러한 정서를 이용했다. 이렇게 만연한 반국가주의는 (국가간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 승리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른바 전지구화의 이데올로기 찬양이란 우리의 역사적 체제가 죽어가면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에 대해 참을성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곧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열망을 버렸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욕망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하며, 이 사실이 희망과 믿음의 상실을 더더욱 절망하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역사적 이행기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이는 또한 역사적 이행이 고난의시기, 그리고 이행이 계속되는 동안 내내 지속될 암흑의시기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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