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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30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전투>(2)
    구르는돌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전투>

redbrigade님의 "선거? 그거 이겨 뭐하게?"에 관련된 글

 

 

 

3일 전에 그 동안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못 보고 있었던 <칠레 전투>를 보았다.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편당 거의 90분에 육박하는데,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인터넷에 그걸 다 올려놨더라. 낮 시간 내내 일이 없을 때 짬짬이 봤는데도 결국 2부작까지 밖에 못봤다.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를 탄핵하기 위한 2/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기독교민주당 세력들이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옌데를 대중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외곽조직을 만들어 낸다. 조직의 이름까지 영화에서 명확히 나오는 것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들은 반 정부 친위대라 할 수 있을만한 조직이다.

의회에서 다수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아옌데 정부가 내놓는 개혁법안이나 임명하는 장관들의 대부분을 꼬꾸라뜨리고 있는 동안  이 조직은 맑시스트 정부가 칠레를 망쳐놓았다는 선전을 하면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친정부 단체들을 공격한다.

이렇게 의회 내외적으로 파시즘적 기운이 충천해 가고 있는 동안, 기독교민주당은 아옌데 정부 초기에 국유화를 통해 소위 '귀족 노동자'가 된 구리광산 노동자들을 부추겨 파업을 일으키도록 한다. 40%의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구리광산 노동자들은 아옌데 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동은 민중연합파 노동자들 내부의 갈등을 불러와 보수파의 공세에 직면한 아옌데를 궁지로 몰아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차피 기독교민주당에게는 미국 CIA라는 강력한 백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 밑에서 강력하게 훈련된 군 조직이 있었으며, 독점 자본과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도 이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중조직과 노동계급의 분열을 통한 파시즘적 기운을 북돋움으로서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를 아사상태로 몰아갔고, 결국엔 군사 쿠데타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40여년 전에 벌어진 이 광경이 한반도 남녘의 과거이자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거라고 한다면, 노무현의 집권 5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비적으로 아옌데의 민중연합과 기독교민주당의 관계는 노무현과 한나라당의 관계를 빼다 박은 듯 하다. 물론 전자가 합법적인 탄핵은 못시켰어도 무력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후자가 합법적으로 탄핵시켰음에도 헌법재판소라는 최고 법률기관의 판정에 따라 무효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영화를 통해서 2004년 3월 12일을 떠올리는 것은 기억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의 매우 자연스러운 두뇌작용일 것이다. 얼마 전에 <시대와 철학> 최근호의 서문으로 실린 김교빈 교수의 글을 보니 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예 대놓고 노무현은 한국의 아옌데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같은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칠레 전투>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완전히 억지는 아니겠다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김교빈 교수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면 한국과 칠레는 엄연히 정치적 대립의 선이 다른 지점에 그어져 있다는 것일게다. 아옌데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 민병대, 각종 노동자의 자주적 위원회, 노조 등에 근거하고 있었다면, 노무현은 그런 기반은 물론 경제적 기반까지 무너져 상실감에 빠진 대중들의 '비물질적인' 열망에 기반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건 이 글을 쓰면서 우연히 든 생각일 뿐이니 이런 정의에 대해 딴지걸지 마시길 ㅋㅋㅋㅋ) 그래서 노무현의 이념적 지향은 쉽게 묻어갈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자리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쨌든 과거는 과거인거고,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일텐데... 영화 초반에 등장한 기민당의 친위조직을 보면서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장면이 있다. 바로 얼마전에 거국적으로(!!) 창립하신 '애국기동단' 어르신들!!! 그들이 서울대 교수들 시국선언하는데 쫓아가서 깽판치고 노무현 분향소를 때려부시는 모습들... 게다가 그들은 항상 '군복'을 입고 다닌다. 그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칠레에서와 같은 군사쿠데타의 전주부분을 연주하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전에 통과된 미디어법. 이걸 보면 그런 징후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것을 통해 보수세력의 전방위적 선전망이 강력하게 확보된다면, redbrigade님의 말처럼 사실상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당선이 안되도 이들 입장에서는 별 상관없는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들은 대통령 자리보다 더 강력한 것을 가진 것이기에, 정치의 모든 인풋 아웃풋을 자신들 통제하에 검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제일 안좋은 경우의 수는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다음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낙선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자본권력, 언론권력, 거기다 지방권력까지 보수세력이 독점한 상태에 민주당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정치권력의 일부(분명 위 법들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대통령이라는 것은 권력의 '일부'일 뿐인 존재가 될 것이다)를 가지게 된다면? 정세는 지금보다 더 엄혹한 상황이 되겠지만, 지금과 같이 불만스러우나마 반MB전선 따위도 만들지 못할 것이고,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결집을 도모하기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

 

물론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림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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