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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이것도 페이스북에 썼던 글. 20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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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을땐 그냥 쏟아지는 질문공세가 짜증나서 대충 읽고 별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L모 선생의 '생각보다 허접한 책'이라는 평가에 귀가 솔깃하여 '대체 얼마나 허접하길래!?'라는 의문으로 다시 집어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허접하다고(물론 L선생도 그런 의미로만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뭔가 이 책이 담고 있는 파괴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말미에 가서 샌델이 끊임없이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연유하는 도덕과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선택의 자유만을 앞세우다가 그런 도덕과 가치라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을 보수주의자들에게 빼앗겼다는 비판 속에서 나온다. 이 대목을 읽다가 프레임 전략을 외치며 보수주의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던 조지 레이코프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레이코프나 샌델 모두 (그들이 아무리 고전철학적 논의를 하더라도) 순수하게 '현실정치적' 고민 속에서 나온 철학을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현실적인' 철학이 대중들에게 일정한 설득력, 파급력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가치, 미덕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계는 어디인가가 문제다. 샌델은 '충직 딜레마'라고 이름 붙인 장에서 갑자기 '애국심'이라는 쟁점을 들고 나온다. 웹사이트를 통해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정당성 문제를 논하면서 그는 마이클 왈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사회 구성원이 되는 조건을 규제하는 능력, 즉 입국허가, 거부 규정을 정하는 능력은 공동체 독립의 핵심이다."

결국 그가 앞에서 이러저런 쟁쟁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며 신나게 썰을 풀었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미덕은 '국경'을 근거로 하는 미덕, 즉 타국의 인민을 배제하고 내부의 동일성을 단단히 하고자하는 '도구'로서의 미덕이다. 뒤에 가서 그는 이를 '연대'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연대라고 이름붙이기 민망한

'내식구 감싸기'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영포회 감싸기도 훌륭한 연대의 사례다. 반면 어떠한 공동체적 소속의 근거를 공유하지 않음에도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구고 공유하는 한진중공업 앞의 희망버스 난장은 샌델식 정의론으로는 당췌 설명이 안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런 식의 '정의론'이 보수주의에 맞서는 진보주의적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할 정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서사속에 구현된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간의 가치 충돌이 빈번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욱 보편적인 가치를 '새롭게' 형성할 것인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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