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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까기 진자부로오의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읽으며...

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들을 정리하기 위해 블로그로 옮겨옵니다. 그런데 2011년에 썼던 글들이 다 확인되지 않네요. 페이스북 나빠!!!

 

 

20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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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터진 이 판국에 나는 일본의 반핵운동가 타까기 진자부로오의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원자핵공학을 연구하던 대학교수가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반성하고 고뇌하는 모습들이 내 가슴이 꾹꾹 눌러 담기고 있다.

 

"토지를 강제수용하려고 공항공단 측에서는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해서 반대파 학생들을 밀어낸 뒤 불도저로 땅을 뒤집어엎고 나무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몸을 사슬로 나무에 묶고 저항하는 농민들과 지하땅굴 속에서 저항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았다."(82쪽)

"이러한 저항을 지속시키고 농민들이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려면, 농민들이 대지 위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푸른 들을 파괴하고 공항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사회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84쪽)

"실험과학자로서, 나 또한 상아탑 안의 실엄실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자체를 실험실로 삼아, 방사능을 두려워하는 어민들과 불도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농민의 처지를 내 것으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가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87쪽)

 

 

 

 

얼마전 326집회때 장애인동지들이 쇠사슬 사진관을 하면서, 쇠사슬로 자신의 삶과 투쟁을 표현하는 모습들이 인상깊었다. 그런데 농민들에게는 쇠사슬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투쟁에서 쇠사슬이 시설과 집안에만 묶여있던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당당하게 알리는 것이었다면, 농민들에게 쇠사슬은 이 땅과 농민 자신은 절대 분리될 수 없음을, 그것은 이 땅과 농민 자신 모두의 죽음임을 처절하게 알리는 것이었다. 죽음의 공항에 반대하며 삶의 농토를 추구했던 나리따 농민들의 쇠사슬과 죽음과도 같은 침묵만이 강요되는 시설을 뛰쳐나와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장애인의 쇠사슬은 왠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삶을 위한 투쟁들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암담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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