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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시를 만났다.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의 속물스러움, 누워서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 누군가에게 마음껏 능멸당해도 싸다 싶을 자신의 내면에 거침없이 맞서는 사람. 그런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그런 사람, 김수영은 너무나 무섭고, 충격적인 인간이다.
6.25 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에 잡혀있는 동안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친구와 살림을 차린 부인, 게다가 수용소에서 탈출한 뒤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는 간청을 뿌리쳐 시인의 인생에 거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부인. 그리고는 결국 54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부인 김현경.
아래의 시는 63년 어느날, 부인 김○○을 백주 대로에서 때린 일과 관...련된 시이다.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는 기겁할 시 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인의 떨리는 시선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행을 읽고, 책을 집어던졌다. 결국 이 꼬라지를 한게 인간이구나 싶어서... 시인의 눈을 통해서 이 따위 꼴을 한 인간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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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은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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