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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 후기 - 2012.8.29

페이스북에 쓴 글. - 20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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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영화 은교를 보았다. 몇 가지 생각해 볼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 적어본다.

1. 늙은 시인과 패기넘치는 신예 작가의 대결 구도 속에서, 문학적 열정과 출세욕을 투영한 것은 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 스승이 제자의 작품을 대필해주는 이런 식의 사제관계가 현실에서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2. 이적요 시인의 욕망을 그리면서, 단지 그 욕망의 소중함만에 주목하지 않고, '늙어감'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한 부분이 좋았다. (특히 이적요 시인의 대사 "젊음이 니 인생에 대한 상이 아니듯이, 늙음도 니 인생에 대한 벌이 아니다.")

3. 하지만 다른건 다 접어두고, 나는 이 두 작가의 관계에 돌발적으로 끼어든 '은교'의 출현이 좀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 너...무 동화적이기도 하고... 아니, 마치 요정같다. 사건의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좀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노 시인과 은교가 가까워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마치 남자가 몽정할 때 눈앞에 그려지는 흐릿하고 몽롱한 장면들을 옮겨놓은 것 같다. 나이 70먹은 할아버지가 자는데 17세 소녀가 그 다리 옆으로 들어와 잠을 자고, 잡자기 할아버지를 자기 무릎에 눕히고 헤나를 그려주겠다거나 하는 건 좀 지나친 남성의 성적 판타지 투사 아닌가?

4. 내가 말하고 싶은건 노 시인의 그런 욕망이 문제라는게 아니라, 이 요정같은 '은교'는 영화 내내 그런 욕망의 객체로 그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영화에서 은교는 흔들의자에 하얗고 눈부신 허벅지를 드러내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할아버지가 써 준 소설 속에서 자신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된 자신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5. 감춰진 은교의 욕망. 난 그게 궁금하다.

6. 어쨌든 '은교'는 근래 내가 본 영화중에 가장 충격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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