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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혁신의 대상이 혁신을 이야기하다.

민주노총이 '조직혁신'이라는 주제로 현장토론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상반기 동안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가시화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곧장 이야기하자면 대단히 실망스럽다. 역시 혁신의 대상들이 혁신을 이야기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충분히 예상했어야하는 것일까?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모두 위기를 말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위기의 양상이나 내용이나 모두 다르다. 아마도 이들이 보는 대상은 같을 것인데, 이렇게 전혀 다른 것을 보면서 동일하게 '위기'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현장에 배포하고 있는 '조직혁신' 소책자의 내용을 통해서 자신들이 보는 위기의 양상과 그 해법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자료집을 받아서 참고하면 되겠다.

민주노총 '조직혁신' 소책자의 구성
 
소책자는 조직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양상을 서술하고 △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조직혁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양상은 제시/묘사되어 있으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부재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예정된 결론을 제시한다.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 돌파구는 산별노조 운동의 성패에 달려"있다는 진단이다. 이것은 이상한 순환론을 이루는데, 산별노조 건설의 지체라는 것 자체가 위기라고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산별노조 지체가 위기이니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 혁신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도 다른 글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산별노조 건설은 노동자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혹은 어떤 정세에서는 운동의 혁신이 역행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과정에 어떤 실천을 경유하는가에 따라 혁신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퇴보가 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 혁신안은 산별노조를 물신화하는 데,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최근의 서울대병원지부노조 사태 등이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세가지 양상'
 
소책자가 제시하는 위기는 세 가지로 제시된다. (1) 지지부진한 산별노조 건설 (2) 얽혀있는 위기구조 (의식 관행 관계 제도) (3) 사회연대성, 계급대표성의 위기 -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위기
산별노조 이야기도 알 수 없지만 '얽혀있는 위기구조' 자체가 위기라니, 도대체 구조가 복합적이라면 모순도 복합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일단 넘어가자.
 
민주노총은 위기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조직적 위기 이상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는 위상의 대안이 모색되어야한다. 조직의 위기가 아니라 '운동'의 위기를 우선 진단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직은 이념, 지향과 함께 운동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혁신안은 모두 조직을 정비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있을 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운동의 위기가 발생한 계급투쟁 지형의 변화를 진단한 가운데 우선적으로 운동의 이념, 지향에 대해서 진단해야 미봉책이 아닌 조직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위치지어질 때 조직혁신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혁신안'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조직형식적인 측면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노조비리 척결을 위해서 '전간부 신념과 도덕교육과정 신설, 의무적 이수'라는 식의 대안이 나오는 것이 사례다. 노조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만연한 노사담합구조를 혁파하는 운동내용, 관행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지 신념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은 곧 비정규직을 고용안정판으로 하는 노사담합구조를 깨기 위한 운동적 실천의 과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은 민주노총의 소책자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위기의 양상 묘사를 넘어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조직'의 혁신의 전제로 '운동'의 혁신을 논의하며, 이를 위한 이념과 지향의 혁신을 우선 과제로 해야할 것이다.
 
'혁신의 양대 축'
 
그럼, 위기에 따라 제시되는 '혁신의 양대 축'을 살펴보자.
하나, 산별전환을 위한 특단의 노력 --> 산별노조 건설
둘, 조직민주주의 확립, 도덕성 회복, 재정안정성 확립,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 지도집행력 강화
 
결국 둘은 같은 말이다.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혁신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하는 혁신안의 본질이 드러난다. 혁신안은 조직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방안이다. (산별노조 건설도 조직정비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정비는 곧 '지도집행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지도집행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오히려 노동운동의 위기라기 보다는 지도집행력의 위기를 극복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지도집행력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여튼, 민주노총은 혁신안 6가지를 ① 산별추진 ② 대의원 선거제도, 구성과 운영의 혁신 ③ 비리엄단, 재정투명성 강화 ④ 재정안정성 강화 ⑤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⑥ 정책대응력, 교육문화사업 강화로 제시한다.
 
산별노조에 관련된 쟁점은 좀 더 살펴보자.
 
혁신안 1번은 산별노조 추진이다. 2006년 3월 전국동시다발 산별전환 조합원 총투표, 산별노조 건설 특위와 추진단 구성,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 로드맵 등이 제시된다.
 
산별노조 건설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어떤 산별을 어떻게 만들것인가는 만들것인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와 함께 나타나는 노조운동의 제도화, 투쟁기풍의 상실, 현장 약화와 같은 문제가 특정한 방식의 산별노조 건설로 오히려 더 악화된다면 산별노조 건설이 '촉진'되어야하는 지에 대해서조차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산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산별이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혁신안'은 산별노조 건설의 일정이 제시되고 기대효과도 제시되고 있으나 건설해야할 산별노조의 상이라든가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단지 투표일정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내년 3월의 산별투표라는 것이 가능한가도 문제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전 실천의 내용이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산별노조의 상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 것은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무엇을 위해서 산별노조를 건설하는가가 운동 혁신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이 일정대로 따라가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운동을 혁신하는 과정의 일환이며,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이라는 점. 따라서 ①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갈 (혁신된) 조직은 어떤 구조, 운동방식, 운영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서 광범위한 대중적 토론이 진행되고 ② 실천 속에서 오류가 검증되고 고쳐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건설의 과정에는 일정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실천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오히려,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해서 관료화를 방지하고 현장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조직혁신 사업의 과제로 제시되어야한다. 조직규모의 확대와 함께 일반적으로 관료적 지도력이 필요성이 증대하게 된다는 점, 노동운동의 제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운동의 제도화는 조직을 체제의 일부로 전화시키고 이는 필연적으로 관료적 통제를 증진시킨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방안이 산별노조 건설 방안보다 더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산별노조 건설의 한 항목에 불과
 
한편, 민주노총 혁신안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은 단지 산별이행을 위한 결의라는 과제의 부분적인 한 항목으로만 놓여져있다. 혁신안 전체가 조직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데 초점이 가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일이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참 황당한 일이다. 남한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과제를 '정규직 비정규직 단일조직 건설'(그것도 산별노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란다)과 '차별해소 로드맵 마련'이라는 것으로 달랑 정리할 수 있는 능력에 놀랄 뿐이다.
 
민주노총은 위기의 양상으로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든다. 그럼 '쪽수'가 모자라서 대표성이 부족한 것인가? 오히려 계급적 요구를 올바르게 제기하고 실천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전노협이 계급대표성을 가졌던 것은 조직률이 아니라 운동과제와 투쟁의 측면 때문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계급투쟁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강제하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노동자계급이 처한 현실의 핵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투쟁과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반대투쟁과 노동의 불안정화 반대투쟁(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요약될 수 있다.
 
혁신과제는 민주노조운동이 변화된 계급투쟁 지형에서 가장 적확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운동의 혁신방향을 제시해야하는 것임. 그렇다면 비정규직 투쟁은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조직혁신에 있어서도 핵심과제다. 그러나  '혁신안'은 '조직확대'를 주된 문제의식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소책자에서는 빠졌지만 초안에서는 산별노조 건설도 노조규모의 문제로 접근하며, 신자유주의 하 노동의 불안정화경향에 대한 투쟁도 '미조직비정규직조직화'라고 해서 조직확대 측면에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명백히 주객이 전도되었다.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를 건설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투쟁 과제가 제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여야한다. 계급투쟁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형태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조직적 과제의 측면에서조차 '혁신안'이 제시하는 '정규직-비정규직 단일노조' 건설이라는 당위적 과제로만 제시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비정규직 확대의 양상이 사업장내 비정규직이 아니라 이른바 '비핵심업무'의 외주화로 인하여 중소영세사업장조직화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연맹과 총연맹의 지역본부 강화가 과제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혁신안 전반의 문제;  '관료적 조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
 
산별노조와 관련된 쟁점을 보면, 그것이 운동의 과제라는 측면보다는 당위로서, 조직의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로 제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혁신' 항목들도 유사하다. 총연맹 대의원 직선이라든가, 의무금 정률제, 산하조직 업무 표준화 등 집행력 정비, 정책과 문화사업 강화 등이 '혁신'을 위한 항목들이다. 하나같이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노조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제시된 대책이다. ; 비리 엄단을 위한 규율위원회 구성. 간부 윤리강령, 도덕교육 의무이수. 군대 마치고 끝난 줄 알았던 주입식 정신교육을 또 받아야하나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러느니 노조활동 그만 두겠다싶다.(그걸 바라나?)
 
자. 혁신안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까지 보신 분들이라면 그것이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도집행력 강화'가 목적인 만큼, 그리고 상급단체 관료들이 모여서 작성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바로, '관료적 조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 이다.
 
이것은 당장 그 자신들이 노동운동 위기의 양상이고 일부인 노동조합의 상층관료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혁신'에 대한 현장의 요구를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할 사람들이 '혁신안'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결과다. 이제까지 위기를 악화시켜온 당사자들이 이제까지 한 것도 모자라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혁신안'을 제출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이고 대중운동으로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운동'의 고유한 요소로서 기층 대중의 자발적인 힘이 활성화되어야한다. 그것은 관료적 조직을 강화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관료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도덕교육'이라는 식으로 현장에 대한 관료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활성화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러한 '관료적 조직의 제도적 강화'는 현재의 정세와 맞물려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한의 노동자운동은 전노협의 쇠퇴 이후, 자신의 존재를 보증할 '제도'를 찾는데 몰두해왔다. 이것은 YS 때부터 신자유주의 정권의 노동정치 재편전략과 일정하게 호응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87년 대투쟁 이후의 변화된 노동정치 지형을 법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불안정성을 제거하고자했다. 물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말이다. 그 결과 노동정치 제도의 부분적인 '양보'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교환되었다.
 
사회적 합의, 노사관계로드맵, 혁신안
 
그 마지막 귀결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운동을 사회적 합의기구에 포섭하는 것과 일명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이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여러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노동정치 정세의 변화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면서 집단적 노사관계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복수노조 하의 교섭구조를 구성한다든가 이번에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파업에 적용된 긴급조정의 활성화, 직장협의회 활성화 등 많은 내용이 그렇다. 교섭비용(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제도화된 교섭형태로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관리하고자하는 것이 핵심적인 의도다.
 
민주노총의 비극(혹은 희극?)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요구하면서 노사관계로드맵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양립불가능한 요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둘 모두 노동운동이 제도화와 교섭 비용관리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더 놀라운 조응은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안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 --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내부로부터 완성하고자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전체 과정을 하나의 '세트'로 바로보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제기되는 쟁점들은 모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반적인 노동자운동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실천들도 일관된 흐름으로 진행되어야한다. 사회적 합의기구 참가 반대로 진행된 투쟁은 노사관계로드맵 저지와 민주노총 혁신안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중운동을 재활성화하는 다른 방향의 혁신운동으로 전개되어야한다. 노동자운동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혁신안'은 그러한 실천 속에서 대중들이 만들어 줄 것이다.
 

※ 이 글은 다른 토론들에 제출된 바 있는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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