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상처

미루는 손톱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랍니다.

 

저와 주선생님이 번갈아가면서,

생각날 때마다 미루 손톱을 깎아주기는 하는데

 

생각의 속도보다 손톱의 속도가 빠릅니다.

 

미루는 아직도 잠자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잠을 못 자고 보챌 때 이 긴 손톱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졸리다고 눈을 비비다가

손톱으로 눈 주위를 긁는 건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그저께는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니까

오른쪽 허벅지에 상처가 3줄이나 나 있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허벅지는 뭔가 참을 일이 있을 경우

송곳으로 찌를 때 주로 이용되었는데

 

미루는 졸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좀 힘차게 놀다 그랬는지

손톱으로 상처를 참 선명하게도 냈습니다.

 

어제는 명실공히

상처의 날이었습니다.

 

오전에 온 몸을 꼬며 보채는 미루를

주선생님이 재우려고 노력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상구~얘 이거 피 아냐?"

 

세상에 미루 오른쪽 입가에 피가 묻어 있고

 

배를 덮어준 천기저귀를

미루가 손으로 끌어다 얼굴 근처에서 갖고 놀고 있었는데

그 천기저귀 여기저기에도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혼자 손을 빨려고 손가락을 입속에 넣으려는데

그게 잘 안되면서 손톱이 입가의 피부를

여러 차례 긁었었나 봅니다.

 

여기 저기 묻어 있는 핏자국.

이건 좀 충격이었습니다.

 

오후엔 유모차 타고 산책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랬는지 왼쪽 볼이 눈 옆부터 입 옆까지

쭉 긁혀 있습니다.

 

회칼이나 야구방망이를 벗삼아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시는 분들에게나 있을 법한

참으로 굵고 긴 상처입니다.

 

잘 신경 써주지 않아서 자꾸 상처 나는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안한 마음을

사상 최악으로 키워놓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역시 잠을 안 자고 보채는 미루를

요새 주선생님이 미루 재우느라고 너무 고생이 많아서

이번에는 제가 한 번 재워보겠다고 나섰습니다.

 

4달간 써먹었던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미루는 난공불락입니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고

미루는 급기야 샤우팅 창법으로 울어댑니다.

인내의 한계를 느낀 저는 애타게 주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주선생님, 얼른 미루를 받아 안았습니다.

미루는 이제야 겨우 진정이 됩니다.

 

하지만 덩달아 열이 올라놓고 그때까지 분이 안 풀린 저는

천정을 향해 "으아아아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딱 두번.

 

근데 이게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제 절규에 놀란 미루가

온 몸의 에너지를 집중시켜 울어댔습니다.

 

얼굴은 벌개지고,

눈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손가락을 입에 넣는 건 자기 위안을 위한 행위입니다.

이게 제대로 되면 좀 진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손가락을 제대로 빨리가 없었습니다.

 

대신, 미루는 그 손가락으로

아직 이빨이 나지 않은 자기 잇몸을

집어 뜯었습니다.

 

잇몸에서 피가 많이 났습니다.

 

주선생님은

미루를 안고 있다가

좀 많이 놀랐습니다.

 

저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미루한테 미안하고

주선생님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이번에 생긴 마음의 상처는

좀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