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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정자

얼마 전에 한참 날씨 좋을 때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좀 걷다가

애를 안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곧 앉을 만한 데를 찾았습니다.

 

저만치 정자가 보이더군요

할머니 세 분이 그 정자에서 돗자리를 깔고

 

두분은 누워 계시고, 한 분은 앉으셔서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고 계셨습니다.

 

"아이고, 꼬맹이네~"

 

할머니들은 저희들을 굉장히 반겨주셨습니다.

 

여자들 넷이 만나니까 참 할 얘기가 많더군요

 

할머니들은 예전에 아이 일곱, 여덟씩 키우셨기 때문에

좀 처럼 잊어버리지 않는 각종 육아의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다가 한 할머니는 또 누워서 주무시고

또 한 할머니는 계속 주선생님한테 말 걸어주시고

미루는 한바탕 싸대서, 기저귀 갈아주고..

그리고 지나가던 아이와 아이 엄마가 그 정자에 합류해서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정자가 얼마 전에 부숴졌습니다.

누군가 포크레인 가져와서 단박에 박살을 냈습니다.

 

우리 아파트 복도에서 보이는 정자가 있던 자리에는

기둥 박아 놓느라고 시멘트로 발라놓았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들은요?

 

그 할머니들은 이제

그 정자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 화장실 앞 벤치에 앉아 계십니다.

 

돗자리를 펼 수도 없고 누워 있기도 힘들고

우리가 놀러갈 수는 더더욱 없는 곳입니다.

별로 자세가 안 나옵니다.

 

공원의 주인은 그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애용했던 정자를 부술려면

사람들이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소외됩니다.

 

아파트 들어와서 다섯달 쯤 살다가

엘리베이터에 입주자 대표자회의에 참여할 동대표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었습니다.

 

거기 나가볼까 생각했었는데

조건이 '6개월 이상 거주하신 분'이어서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좀 더 알아보니까

법에는 아파트 소유자만이 입주자 대표자회의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저 처럼 전세 사는 사람은,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더라도

입주자 취급을 안합니다.

 

실제 공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자를 부수기 전에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도 모르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빨리 그 정자를 누가 부쉈는지

부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

공원 근처의 주민이 의견을 말할 기회 같은 건 정말 없는 건지 알아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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