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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한판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 실례합니다~계십니까?"

 

저는 후덥지근해서 웃통을 벗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티를 찾아입고 나갔습니다.

 

"아이고, 쉬시는 데 죄송합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날 누군진 몰라도 참 고생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 요즘 저희가 너무 힘들어서요,

이거 받으시라고요..."

 

그 아저씨는, 꽤 젊어보였는데

한 손에는 우리 아파트 각 동호수를 적은 표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롯데상품권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눈치빠른 저는 바로 감잡았습니다.

 

"참나~아저씨, 또 오셨네요, 자꾸 이러시면 안되잖아요"

 

"아니, 저희가 요즘 많이 힘들어서요.."

 

얼핏보니까, 아파트 동호수 적은 표의 몇 군데에는 v표시로 체크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주차장에서 얼마짜린진 모르겠는데

어떤 느끼하게 생긴 아저씨가 상품권 세장 줄테니까 동아일보 보라는 걸

정중하게 거절한 적이 있었고

 

주선생님은

집에 찾아온 역시 동아일보 아저씨에게

죄송하다면서 그 신문 안본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동아일보예요?"

 

"아니요, 조선일보요..."

 

"아...조선일보?"

 

여기서 갑자기 몸에 열이 확 올랐습니다.

 

"아저씨, 저는 조중동은 매우 문제가 많은 신문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런 식으로 상품권 돌리면 공정거래위원회 신문고시에 걸리잖아요

그러면 아저씨 다니는 신문사 지국, 몇 배로 돈 물어내야 돼요..."

 

이렇게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얘기했어야 하지만

그새 흥분한 저는 덜덜덜 떨면서 간신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저씨...지금 이거.... 공정거래위원회에다 찔러도 되죠? ...아니면 언론노조에다 찌를까요?

돈 이거... 천만원 벌금이예요...천만원.

그리고 ...조선일보라고 하셨죠? 저 그 신문 경멸하거든요? 빨리 가세요..!!"

 

완전히 산후우울증걸린 남자한테 잘못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 이런 일 좀 겪어보셨나 봅니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말합니다.

 

"저 한테 무슨 유감 있으세요?"

 

"누가 아저씨한테 유감 있대요? 아...빨리 가세요~!"

 

놀랍게도 저는 그 와중에도 

진짜로 공정거래위원회에다 찔러봐야,

가난한 신문사 지국만 손해보고 신문사 자체는 꿈쩍도 안할 거라서

그렇게 되면 신문사 지국하는 사람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착한 마음을 읽었는지, 그 아저씨 더 세게 반격합니다.

 

"그리고 증거 없으면 안 걸리거든요?"

 

"그럼, 아저씨가 저한테 상품권 줄테니까 신문보라고 했다는 확인서 한장 써주실래요?"

 

아..말도 안되는 요구입니다. 점점 제가 밀립니다.

 

"당연히 안 써주죠. 아무튼 저한테 유감 없죠?"

 

"유감 없어요..그러니까 1402호 표시해놓고 다른 사람한테도 여긴 들르지 말라고 해주세요~"

 

"그러죠, 뭐.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왜 이렇게 화를 내~~"

 

여전히 씩씩대는 저한테 주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냥 좋은 말로 해도 되잖아..요즘은 저러다 나중에 애한테 해꼬지할까봐서도 나는 화 못내겠던데.."

 

음...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앞으로는 화를 안 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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