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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한바탕

싸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전 자고 있었습니다. 주선생님께서 저를 깨웁니다.

 

"지금 몇 시야?"

"응..6시 거의 다 됐어.."

"어..그래"

"있잖아...나, 짜증이 나 죽겠어.."

"..왜?"

 

젖량이 많은 데다,

밤새 생긴 젖 때문에 가슴이 퉁퉁 불은 주선생님은

 

한달만 더 지나면 일도 나가야 하고 하니까

미리부터 유축기로 젖을 짜놓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유축기랑 젖병이랑 소독을 해놓고

새벽에 저 잘 때 일어나서 젖을 짤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유축기 중 가슴에 닿는 깔대기 부분에 기름이 잔뜩 묻어 있었나 봅니다.

닭백숙을 했었는데, 그때 썼던 집게를 제대로 안 닦아 놨었고 그 집게 그대로,

젖병이랑 깔대기를 끓는 물에서 꺼냈던 것입니다.

 

...

 

주선생님은 충격으로 쇼파에 누워 계셨습니다.

 

주선생님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제가 기름 때문에 받은 충격이 있었나 가만히 떠올려 봤습니다.

있었습니다.

 

두 달 전 쯤에 장인어른이 식사시간이 다 끝난 시간에 느닷없이 집에 찾아오시더니

삼겹살을 마구 구워드셨었습니다. 기름이 무지하게 튀었죠.

 

저는 그때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오전에 스팀 청소기로 평소 잘 안하던 바닥 청소를 다 해놔서,

하루 내내 그 깔끔함에 뿌듯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발바닥에 느껴졌던 삼겹살 기름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주선생님은 발바닥도 아니고, 가슴에  

닭기름이 묻었습니다.

 

멀쩡하게 잘 있는 사람한테 누가 기름으로 범벅된 닭껍질을 턱 하니 올려놓은 거랑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것도 아침부터, 그것도 애한테 젖먹일 생각을 하며 가슴 벅차하는 순간에...

 

주선생님은 여전히 쇼파에 누워 계십니다.

아무래도...정신적 충격이 심한 모양입니다.

 

불러도 안 일어납니다. 

 

전 주선생님이 누워 계시는 동안 젖병 소독 다시 다 해놓고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던 집게는 그야말로 후회없이 씻고 또 씻었습니다.

빨래 돌리고, 밥 앉히고, 어제 밤에 미루 깬다고 미뤄놨던 설거지까지 다 했습니다.

 

그래도 안 일어납니다. 

 

깨우니까, "으..." 하고

신음 소리만 냅니다.

 

계속 깨우니까, " 나...20분만.."합니다.

 

평소에 더 자고 싶을 때는 주로 "10분만..."혹은 "5분만.."을 외치거나

좀 많이 자고 싶으면 "30분만.."을 외치는 데

특이하게 '20분'을 요구하는 걸 보니, 

정신적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소독, 위생...이거 아이들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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