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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저희 집에는 특이하게도

가스렌지, 전자렌지, 압력밥솥, 그리고 세탁기가 한 데 모여 있습니다.

 

직접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배치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히히히~"

 

제가 밥그릇을 들고 압력밥솥 옆의 가스렌지로 가더니

밥그릇에 국을 퍼담고 있는 걸 보고

주선생님께서 날려주신 웃음입니다.

 

'오늘도 한 건 했군' 정도의 뜻입니다.

 

요즘들어 가뜩이나 건망증이 심해져서,

주선생님은 저를 '덤앤더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결국 한 건 한 겁니다.

 

저는 '뭘 이런 걸 가지고'란 의미를 담아서

살짝 미소를 날려줬습니다.

 

주선생님께서 한 마디 더 하십니다. "후라이팬 불 좀 끄지"

 

몇 분 전에 계란 후라이를 해서 접시에 담았었는데,

가스렌지 불을 안 껐던 모양입니다.

재빨리 불을 껐습니다.

 

주선생님, '그것까지 포함해서 한 건으로 쳐주지'라는 미소를 다시 보냅니다.

 

식사를 하다가 보니까

된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서 배추를 씻어놨는데,

그걸 도마 옆에 그냥 놔뒀습니다.

 

식탁으로 배추를 가져오는 걸 보고 주선생님이 또 묻습니다.

 

"된장은 어딨는데?"

"여기 있잖아.."

"이거...고추장 아냐?"

 

아...'한 건'으로 치기엔 너무 많은 플레이를 해버렸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이게 말로만 듣던 주부건망증인지

암튼, 제가 어떤 짓을 할 지 한 치 앞이 예측 불가능입니다.

 

사실, 그 동안 참 많은 일을 했었습니다.

 

밥을 앉히기 위해 쌀을 씻은 다음

솥을 드럼세탁기를 열고 넣기도 했고, 

 

국 뎁혀 먹을려고 냄비를

세탁기 안에 넣기도 했었습니다.

 

쌀 씻어 놓은 솥을 압력 밥솥에 안 넣고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5분 넘게 불을 켜놓기도 했었습니다.

 

샤워하다가 샤워기 꽂는 데다가 칫솔을 꽂으려고도 했고

 

장보고 온 물건들은 남겨두고

그 물건 넣어 온 비닐만 냉장고에 넣기도 했습니다. 

 

...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안되니까

건망증이라도 있어야지..이게 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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