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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새로운 진보정당 흐름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5/03/10 11:46
  • 수정일
    2015/03/10 11:47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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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석기의 실체 없는 ‘RO’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 박근혜 정권의 ‘종북’ 공안통치 강화의 로드맵이 드러났었다. 당시 법무부는 위헌정당단체관련대책 태스크포스를 만들며 "위헌 정당뿐 아니라 반국가·이적 단체 등 위헌 단체 문제까지 함께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팀"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새누리당은 ‘종북’을 잣대로 한 ‘반국가단체 강제해산법’을 발의하겠다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석기의 ‘RO’→ 통합진보당 → 전체 진보ㆍ좌파진영으로 ‘종북’의 범위, 즉 제거대상의 범위를 확대해나가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다. 대법원은 결국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의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 통합진보당 인사들에 대한 내란선동죄만을 확정할 수 있었을 뿐 ‘RO’의 실체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그 전에 이미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것이다. 이어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국가혁신분야 2015년 업무계획보고’ 자리에서 헌법가치 부정세력을 발본색원하고 안보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대공수사 전문화, 반국가ㆍ이적단체 해산 등을 제시했다.

 

이미 종북몰이는 제도적으로 비제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법원은 채널A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을 두고 종북이라 한 것은 “종북 성향의 어떤 핵심 인사들이 움직이는 단체, 세력”을 뜻한 것이므로 “민언련의 활동들을 비춰볼 때 그렇게 표현할만”하다며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은 이러한 사법부의 결정은 종북에 관한 문제를 결국 갑론을박이 요구되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반면에 ‘종북’에 대한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세력과 공안기관의 초법적 심판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얻고 있으며 사법에 의해 제재당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북몰이에 대한 저항행동은 아주 미약하게 조직되고 있다. 정당해산 직후 열린 규탄집회에부터 정치사상과 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의 월요집회는 그 정치적 중요성과 심각성에 비해 상당히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종북몰이에 대한 저항은 진보진영의 여론 이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많은 세력들이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선긋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들은 통합진보당의 비민주적 패권주의와 북한 정권에 대한 옹호, 주체사상의 수용 등이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방어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공안탄압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며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은 그들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여 탄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우고 있음에도 그들의 정치는 노동계급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걸림돌이었다는 역사적 평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비판적 평가는 대중운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정권의 해산을 통해 이루어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안탄압에 대한 광범위한 방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유의미하다. 그러나 이를 단지 통합진보당이 ‘종북’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종북’과 선을 그은 진보 혹은 좌파세력은 지금과 같은 공안통치에서 ‘반국가단체’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물리적ㆍ사법적 폭력으로부터 대중적인 방어를 조직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결국 ‘종북’이기 때문이라는 선긋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낙인찍힌 ‘투쟁’ ‘급진’ ‘혁명’과 같은 수식어들과 거리를 둔 세련된 진보로 탈바꿈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의당에서 이런 태도가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의혹투성이인 채로 애국주의 증진에 이용되고 있는 천안함 사건 위령탑에 참배를 했다. 심상정 의원은 새누리당의 것과 다르지 않은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려다 당내의 반대로 인해 중단되었다고 한다. 정의당에 속해있는 인천연합 등 NL계열에 대한 당원들의 자체검열이 시작되었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 자체검열의 잣대가 지배세력이 제시하는 ‘종북’ 개념과 별다르지 않을 정도로 그 기준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함께할 것으로 보이는 ‘진보적 대중정치 복원과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모임’도 유사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들 세력은 박근혜의 공안통치에 저항하는 흐름과 오히려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통합진보당 세력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원칙부터 제시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정확히 ‘민주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치’를 구획하는 지배세력의 통치에 정확히 포섭되는 것이다. 좌파 정치의 범위를 공안통치가 구획하는 선 안으로 한정하는 것은 정치 전반의 우경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이후 노동자민중운동의 급진성을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기능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 통합논의의 한 축에 ‘진보민주 합작의 첫 실험’을 하고자 하는 정동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이 ‘세련된’ 새로운 진보정당이 사실은 우경화된 진보정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권이 ‘종북’ 공안통치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저항의 가능성을 꺾어 놓아야할 필요성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완화, 비정규직 기간연장, 기업규제 완화, 의료민영화, 서민증세 등 경제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방안은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지율 폭락을 불러일으킨 증세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볼 수 있듯이 박근혜 정권은, 즉 남한의 지배계급은 시간조절이나 양보를 할 여유가 없다. 그저 밀어붙일 뿐인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은 하루하루 떨어지며 레임덕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는 다른 노선을 선택할 여지가 없으며, 북한과 관련한 이벤트 이외에는 별다른 지지율 회복 수단도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박근혜의 경제구조 재편, 즉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에 맞선 저항을 ‘세련된’ 의회정치의 틀 안에 제도적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움직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관철시킬 정치세력의 형성과 노동계급운동의 성장이다. 그리고 이 정치세력의 형성은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에 대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김사자 saja@jinbo.net

 

[박스] 정당해산이 보여주는 법치와 민주적 질서

위헌정당해산제도를 얘기할 때 ‘자유의 적에게 자유는 없다’는 말로 요약되는 서독 기본법의 ‘전투적 민주주의’가 자주 언급된다. 정당의 목표와 활동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대한 침해와 폐지를 목적으로 할 경우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서독의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을 뒷받침하는 원리가 되었으며, 남한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은 물론 반정부 정치활동이나 피지배계급의 저항에 대한 탄압의 이데올로기적 근거가 되고 있다.

물론 소수정당의 해산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맥락도 있다. 남한의 경우 1958년에 진보당을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간첩정당’으로 간주하고 이승만 정권의 행정처분으로 등록을 취소한 일이 있었다. 이는 피지배계급의 요구를 대변하며 가파르게 지지율을 확보한 세력을 친미반공주의 지배계급의 정부가 손쉽게 제거한 것이었다. 국가보안법, 반공청년단 등을 통해 가릴 것 없이 독재를 강화하던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을 통해서야 막을 내렸고, 정당해산심판제도 또한 이때 헌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50여 년 전에 이루어진 정부의 등록취소를 통한 진보당 해산과 2014년에 이루어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결정은 처분의 주체와 절차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논리와 숨은 목적은 다르지 않았다. 진보당은 ‘북한이 밀파한 간첩과 접선해 폭력혁명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에 대해 논의했다’는 이유로 해산된 것이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폭력을 통한 체제 파괴의 현실적인 위협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최후 수단으로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국제사회의 역사적 판단은 남한에서 의미를 잃는다.

이렇게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두고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박근혜 정권이 뒤로 되돌리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북한과의 대립 상황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적을 색출해야 한다는 ‘종북 프레임’을 통한 통치가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단적으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 더욱 방대해지고 강화되었고, 민주화 운동의 계보 속에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에서도 사라지기는커녕 통일운동 뿐만 아니라 반정부적 정치활동,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작동하면서 한해에 백여 명이상을 입건시킨 바 있다. 또한 국가정보원ㆍ국군기무사ㆍ보안수사대 같은 공안기관은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 종횡무진 정치사상과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원주의 보장을 통한 통합을 향한 민주주의’를 거론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민주당과 같은 지배세력의 일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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