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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반격하는 세계 계급 전쟁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5/06/29 12:27
  • 수정일
    2015/06/29 12:29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Aurora 35호>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Aurora>는 국제적인 좌익공산주의 조직 ICT가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최근 해외에서 벌어진 주요한 투쟁들의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어 번역했습니다. 번역기사는 사노신의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사노신]

 

“물론 계급전쟁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고 승리하고 있는 것은 나의 계급인 부유한 계급입니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이 2006년 <뉴욕타임즈>에 한 말이다. 버핏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1960년대 말 미국의 임금은 총생산의 51%에 맞먹었다. 버핏이 저 말을 했을 때 그것은 45%로 떨어져 있었고 지금은 42%가 돼 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정은 다 비슷하다. 전후 활황이 1970년대 초에 끝난 이래 노동자들은 ‘국민소득’의 점점 더 작은 몫을 얻고 있다.  

 

세계 노동계급의 후퇴 


수십 년 동안 자본가들은 더 적은 노동계급을 더 많이 쥐어짜서 이윤을 높이고자 혈안이 되어왔다. 1970년대 처음으로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이 자행됐을 때 노동자들은 대규모로 저항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생산기지들을 저임금 경제들로 급속히 이전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세계화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더불어 1980년대부터 시작된 극소전자혁명도 오래된 산업노동계급의 진지를 파괴하는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는 1인(주로 남성의)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2인 임금으로 간신히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도 안 돼서 저임금자들이 근로세액공제Working tax credit의 혜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노동계급이 후퇴하고 있자 노동계급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이제 이런 소문들을 강력하게 부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07~2008년 투기거품의 붕괴가 전환점이었다. 자본주의 미디어마저도 “맑스가 돌아왔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다 중요하게는 그것이 아큐파이와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완전한 노동계급 운동은 아니었지만 (99%에는 자본주의의 관리자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우리와 연결될 수 있는 노동계급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운동들은 자본주의의 지속에 의문을 표시했다. “반-자본주의”라는 말은 그전에는 멸종 위험에 처한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은 그 단어를 쓴다고 당신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시기 우리는 비슷한 성격의 아랍의 봄을 목도했다. 물론 그 운동은 그것을 고무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운동 역시 진짜 초점이 결여된 범-계급적인 운동이었다. 이집트에서 800명이 죽은 뒤에도 무바라크는 여전히 권좌에 남아 있었다. 섬유산업노동자들이 파업을 다시 시작을 때에야 (섬유노동자들은 2007년에도 파업을 했으며 그것은 아랍의 봄을 불러온 젊은 블로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군대는 진정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늙은 독재자를 제거했다. 


이집트에서 다른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거리 시위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파업과 결부될 때만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진정 자본주의를 아프게 때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거기 ― 생산의 지점이기 때문이다. 2011년 이후 자본에 대한 저항은 천천히 성장하고 있지만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징후는 분명하다.

 

중국 : 증가하는 노동자 투쟁


중국은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이다. 그것은 (애초부터) 국제자본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농촌의 끝없이 고된 노동을 피해 애플과 삼성 등 세계 소비 경제의 거인들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폭스콘처럼 그나마 보수가 좀 나은 쪽의 고된 노동을 기꺼이 감수하는 노동력에 기초하고 있다. 더 싼 중국 제품들은 구 자본주의의 중심부의 더 부유한 국가의 자본가들에게도 더 낮은 임금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나 한때 시민권이나 풍족한 임금 없이도 기꺼이 병영 같은 공장 생활을 감수했던 이런 노동력들은 갈수록 그것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실린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지난 몇 년 간 저항행동이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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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극 산업 노동자 행동의 증가 
 

현재 중국 정부는 지도적 투사들을 구속해 5년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대규모 작업장들에서 노동자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파업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결할 재판소를 세우고 있다. (국가기관인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은 매우 크다.)  


하지만 현대 중국 프롤레타리아트는 겨우 한 세대가 지났을 뿐이며 (결코 사실이 아니었지만) “공산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 있다는 혼란스러운 역사를 넘어서야 한다. 또 아무리 많더라도 노동계급만이 싸우게 되어서는 안 된다. 


현대 자본주의와 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시아 등으로 일자리가 이동하는 것은 제쳐놓더라도 부유한 국가들의 노동자들도 극히 부당한 근무형태들에 직면하고 있다. 제로시간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 최소한의 근무시간과 최소임금을 보장하는 파트타임보다도 못한 근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역주]), 파견근무, 위장 “자영업” 계약 등이 여기 속한다. 그 목적은 단순하다. 회사 앞에 노동자들을 철저히 개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눈 불안정성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집단 저항의 조직을 어렵게 만들거나 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불안정한 조건을 감수하도록 강요당한 시기를 겪으며 노동자들은 반격의 방법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 그 고전적인 사례가 스페인에서 나타났다. 
 

스페인 통신노동자들의 파업


1996년 스페인 정부가 거대 통신회사에 팔아넘긴 이후 작업장 인원은 75% 감축됐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다수는 자영업자로 불린다. 한 노동자는 우리에게 그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위장 자영업 노동자가 뭐냐고요? 대개 계약직으로 있다가 계약이 끝나면 때 일이 없어서 잘리는 노동자죠. 하지만 자본가들은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죠.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만약 그/녀가 실업수당을 투자해서 도구를 사면 그 또는 그녀는 사장으로 계속 일하면서 동시에 직원으로서 명령을 듣는 거죠. 거기에 적은 액수지만 계약금까지 내니 공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유급휴무도 병가도 의무도 없고, 즉 비용 제로에 이윤은 높고. 완벽한 사업이죠, 노동 비용은 안 들고 노동조건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저선 밑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노동계급에게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가들의 다양한 방식들 중 하나로 받아들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위 “무한 계약(loop contracts)”에 의해 “하청”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그것은 회사가 계속 더 나쁘게 갱신할 수 있는 계약이다. 시간이 흐르자 텔레포니카 노동자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다양한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들을 단결시켜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특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2주 간격으로 열리는) 총회와 파업위원회를 조직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의 투쟁은 이런 저런 노조들이 체면치레로 벌이는 의례적인 파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무기한 전면파업이었고 2달 동안 계속되고 있다. 노조연맹(CCOO)과 노총(UGT) 같은 전통적인 노조 조직들은 파업을 사보타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노동자들의 힘은 자신들이 처한 다양한 처지들을 극복한 연대와 자기 행동에서 나왔다. 다른 많은 노동자들도 식품과 돈 및 생필품들을 지원하여 그들이 전면파업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왔다. 아직 투쟁의 전망은 밝다.
 

터키 금속노동자 


전통적 노조의 반동성은 터키 자동차산업의 금속노동자에게서 오랫동안 명확히 나타났다. 르노 소유 공장 하나를 비롯해 3개 공장의 노동자 총 15000명은 임금 60% 인상과 부당행위 금지, 스스로 대표자들을 선출할 권리와 함께 공장에서 터키금속노조의 축출을 요구하며 5월 14일 파업에 들어갔다.   


세계 전역(특히 인도, 남미)의 많은 노조들과 마찬가지로 터키금속노조는 노동력을 통제하면서도 보호하진 않는 깡패들이다. 자주적으로 투쟁하려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노조 깡패들이 폭력을 행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들은 사장들과 한통속이라 노조를 탈퇴하면 일자리도 잃게 되었다. 파업 슬로건 중 하나가 “우리에겐 노조가 필요 없다. 우리는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했다.”라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그것들은 소비에트라기보다 여러 공장들과 연결된 파업위원회들의 협의체에 가깝다. 이런 연대 투쟁은 성공적이었고, 회사는 그들과 교섭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편집을 마감했을 때, 파업참여자 2인에 대한 부당한 탄압 때문에 파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파업의 다른 점은 진전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노조가 전통적 교섭술의 일환으로 벌이는 하루, 반나절, 세 시간짜리 가짜 파업이 아니라 계급 전쟁이었다. 


반격을 조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예전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진정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독일의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이탈리아의 이케아의 운송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국과 미국의 패스트푸드 노동자들 사이에서 파업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진실은 조만간 체제의 모순이 노동자들을 스스로 일어서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연금수급권 상실에 반대해 현장노동자 17000명 중 80%가 무기한 파업에 찬성한 영국의 타타 철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영국에서 완전히 철수 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겁내지 않고 있다. 일자리를 잃으나 연금을 잃으나 그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오래 계속되고 있는 위기가 쉽게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가들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우리가 지금 한 것처럼 모든 노동자들이 쇠락하는 존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선전을 약화시키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업들에 대한 부르주아언론의 무시와 침묵을 파괴해야 한다. 우리 웹사이트에 이 투쟁들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있지만 더 많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는 그런 입장에서(이 문제에 대한 관련 기사를 보라) 체제에 대한 의미있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전후 활황을 앞둔 1945년에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축적 사이클의 쇠퇴국면에 있으며 자본주의의 해결책은 더 많은 착취와 더많은 전쟁, 더 많은 비참함 뿐이다. 자본주의의 지속은 우리의 존재와 양립하기 어렵다. 이런 메시지는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정치조직을 만들기 위해 긴축에, 무주택 문제에, 환경 재앙에 맞선 모든 파업과 모든 투쟁들에 전달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여기 이바지하는 것을 돕고 싶다면 그것은 당신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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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극기를 태우는 것을 처벌하는 대한민국,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5/06/01 11:06
  • 수정일
    2015/06/01 11:0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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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태극기를 태운 집회 참가자가 결국 경찰의 추적에 의해 체포되고 현재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이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으며 스스로도 국가보안법 피해를 당한 한 동지가 사노신에 이 사건에 대한 긴급하게 기고를 해 주셨다. 기고해 주신 동지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편집자] 


2011년 '박정근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트위터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 청년을 구속하여,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해외토픽감이 되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구속하였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태극기를 태웠던 또 다른 청년을 구속하려고 합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입니다. 2012년 어느날, 제가 사는 집으로 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관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죄, 이적표현물 배포죄)이었습니다. 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중 하나인 트위터 상에서 북한의 정권을 풍자ㆍ조롱하는 내용을 배포하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계정의 글을 리트윗한 것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입니다.

당시 수사당국은 저의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물건들까지 모조리 압수를 하였고,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대공분실로 소환하여 수십차례, 수십시간에 걸쳐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계속해서 합니다.

"국가안보를 해칠 의도가 있었느냐? 배후는 누구이냐? 당신의 행위가 국가안보를 해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국가를 모독할 의도가 있었습니까?'


지난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학살로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는 집회에서 태극기를 태웠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게 수사당국이 몇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질문했던 내용이라고 합니다. '의도'를 파헤치고, 배후를 캐물으면서 세월호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악의적으로 훼손하려는 '대한민국'의 '의도'입니다.

애국자가 아니면, 모두가 죄인이 되어야합니까? 저는 민중에게 폭력적이고 무능할 수 밖에 없는 국가의 본질이 세월호 학살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배 안에서 죽어갔던 희생자들, 울분을 토했던 유가족들, '국가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던 수많은 시민들, 그 모두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사랑할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모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태극기를 태운 청년에게 수사당국이 계속해서 의도를 캐묻고 있습니다. 저는 피의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피의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이 사건에서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기를 모독당했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의도'입니다. 이것이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이고, 우리 모두가 가장 궁금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가택 압수수색을 당하고, 대공분실로 불려가는 황당한 피해를 당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당했던 피해와 지금 태극기를 태웠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가 당하고 있는 '피해'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가지 다른 사건에서 대한민국의 '의도'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도'는 굳이 제가 밝히지 않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혹시나 태극기를 태우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대한민국'이 생각한다면, 저는 그런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캐물음으로써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그러한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피의자가 태극기를 태우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생수를 들이부으며 그를 제지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필자 본인입니다. 수구언론과 대한민국의 '의도'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당시 그 청년을 보호하고 싶은 생각이 우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 한 사람으로써, 그 국가를 지키려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를 당한 한 사람으로써, 이미 2011년 박정근 사건으로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된 대한민국의 사법부에 의해 무고한 청년이 또 다시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저는 애국가를 4절까지 전부 외우고, 태극기의 건곤감리까지 전부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례도, 애국가 제창도 지난 10년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애국'은 강요로 인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속에 강요된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시간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민중에게 '애국'을 강요하고 '모독'이라는 죄로 공포감을 심어 겁박으로 통치할 시간에,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갇혀있는 세월호 학살 실종자 분들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부터 고민하길 바랍니다.
 

2015년 6월 1일 (세월호 학살 411일째)
최용근 (국가보안법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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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노동자신문 2015년 워크샵 : 여성주의

  • 분류
    교육
  • 등록일
    2015/03/20 11:03
  • 수정일
    2015/03/20 11:03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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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노동자신문 2015년 워크샵에서는 여성주의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그동안 좌파운동 내에서도 주로 반성폭력운동을 중심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한편에서는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가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폭력에 관한 논의를 넘어 여성주의에 대한 더욱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우선 여성들의 다양한 투쟁의 역사, 자본주의 이행기와 산업화 시기가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관계 등에 대해 소개하는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 첫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

실라 로보섬. <아름다운 외출> 1~5장

3월 28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는 추후에 공지할 것입니다~

문의는 010.7647.7076으로 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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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새로운 진보정당 흐름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5/03/10 11:46
  • 수정일
    2015/03/10 11:47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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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석기의 실체 없는 ‘RO’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 박근혜 정권의 ‘종북’ 공안통치 강화의 로드맵이 드러났었다. 당시 법무부는 위헌정당단체관련대책 태스크포스를 만들며 "위헌 정당뿐 아니라 반국가·이적 단체 등 위헌 단체 문제까지 함께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팀"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새누리당은 ‘종북’을 잣대로 한 ‘반국가단체 강제해산법’을 발의하겠다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석기의 ‘RO’→ 통합진보당 → 전체 진보ㆍ좌파진영으로 ‘종북’의 범위, 즉 제거대상의 범위를 확대해나가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다. 대법원은 결국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의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 통합진보당 인사들에 대한 내란선동죄만을 확정할 수 있었을 뿐 ‘RO’의 실체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그 전에 이미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것이다. 이어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국가혁신분야 2015년 업무계획보고’ 자리에서 헌법가치 부정세력을 발본색원하고 안보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대공수사 전문화, 반국가ㆍ이적단체 해산 등을 제시했다.

 

이미 종북몰이는 제도적으로 비제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법원은 채널A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을 두고 종북이라 한 것은 “종북 성향의 어떤 핵심 인사들이 움직이는 단체, 세력”을 뜻한 것이므로 “민언련의 활동들을 비춰볼 때 그렇게 표현할만”하다며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은 이러한 사법부의 결정은 종북에 관한 문제를 결국 갑론을박이 요구되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반면에 ‘종북’에 대한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세력과 공안기관의 초법적 심판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얻고 있으며 사법에 의해 제재당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북몰이에 대한 저항행동은 아주 미약하게 조직되고 있다. 정당해산 직후 열린 규탄집회에부터 정치사상과 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의 월요집회는 그 정치적 중요성과 심각성에 비해 상당히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종북몰이에 대한 저항은 진보진영의 여론 이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많은 세력들이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선긋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들은 통합진보당의 비민주적 패권주의와 북한 정권에 대한 옹호, 주체사상의 수용 등이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방어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공안탄압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며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은 그들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여 탄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우고 있음에도 그들의 정치는 노동계급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걸림돌이었다는 역사적 평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비판적 평가는 대중운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정권의 해산을 통해 이루어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안탄압에 대한 광범위한 방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유의미하다. 그러나 이를 단지 통합진보당이 ‘종북’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종북’과 선을 그은 진보 혹은 좌파세력은 지금과 같은 공안통치에서 ‘반국가단체’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물리적ㆍ사법적 폭력으로부터 대중적인 방어를 조직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결국 ‘종북’이기 때문이라는 선긋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낙인찍힌 ‘투쟁’ ‘급진’ ‘혁명’과 같은 수식어들과 거리를 둔 세련된 진보로 탈바꿈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의당에서 이런 태도가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의혹투성이인 채로 애국주의 증진에 이용되고 있는 천안함 사건 위령탑에 참배를 했다. 심상정 의원은 새누리당의 것과 다르지 않은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려다 당내의 반대로 인해 중단되었다고 한다. 정의당에 속해있는 인천연합 등 NL계열에 대한 당원들의 자체검열이 시작되었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 자체검열의 잣대가 지배세력이 제시하는 ‘종북’ 개념과 별다르지 않을 정도로 그 기준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함께할 것으로 보이는 ‘진보적 대중정치 복원과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모임’도 유사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들 세력은 박근혜의 공안통치에 저항하는 흐름과 오히려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통합진보당 세력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원칙부터 제시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정확히 ‘민주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치’를 구획하는 지배세력의 통치에 정확히 포섭되는 것이다. 좌파 정치의 범위를 공안통치가 구획하는 선 안으로 한정하는 것은 정치 전반의 우경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이후 노동자민중운동의 급진성을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기능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 통합논의의 한 축에 ‘진보민주 합작의 첫 실험’을 하고자 하는 정동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이 ‘세련된’ 새로운 진보정당이 사실은 우경화된 진보정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권이 ‘종북’ 공안통치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저항의 가능성을 꺾어 놓아야할 필요성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완화, 비정규직 기간연장, 기업규제 완화, 의료민영화, 서민증세 등 경제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방안은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지율 폭락을 불러일으킨 증세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볼 수 있듯이 박근혜 정권은, 즉 남한의 지배계급은 시간조절이나 양보를 할 여유가 없다. 그저 밀어붙일 뿐인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은 하루하루 떨어지며 레임덕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는 다른 노선을 선택할 여지가 없으며, 북한과 관련한 이벤트 이외에는 별다른 지지율 회복 수단도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박근혜의 경제구조 재편, 즉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에 맞선 저항을 ‘세련된’ 의회정치의 틀 안에 제도적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움직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관철시킬 정치세력의 형성과 노동계급운동의 성장이다. 그리고 이 정치세력의 형성은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에 대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김사자 saja@jinbo.net

 

[박스] 정당해산이 보여주는 법치와 민주적 질서

위헌정당해산제도를 얘기할 때 ‘자유의 적에게 자유는 없다’는 말로 요약되는 서독 기본법의 ‘전투적 민주주의’가 자주 언급된다. 정당의 목표와 활동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대한 침해와 폐지를 목적으로 할 경우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서독의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을 뒷받침하는 원리가 되었으며, 남한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은 물론 반정부 정치활동이나 피지배계급의 저항에 대한 탄압의 이데올로기적 근거가 되고 있다.

물론 소수정당의 해산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맥락도 있다. 남한의 경우 1958년에 진보당을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간첩정당’으로 간주하고 이승만 정권의 행정처분으로 등록을 취소한 일이 있었다. 이는 피지배계급의 요구를 대변하며 가파르게 지지율을 확보한 세력을 친미반공주의 지배계급의 정부가 손쉽게 제거한 것이었다. 국가보안법, 반공청년단 등을 통해 가릴 것 없이 독재를 강화하던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을 통해서야 막을 내렸고, 정당해산심판제도 또한 이때 헌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50여 년 전에 이루어진 정부의 등록취소를 통한 진보당 해산과 2014년에 이루어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결정은 처분의 주체와 절차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논리와 숨은 목적은 다르지 않았다. 진보당은 ‘북한이 밀파한 간첩과 접선해 폭력혁명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에 대해 논의했다’는 이유로 해산된 것이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폭력을 통한 체제 파괴의 현실적인 위협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최후 수단으로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국제사회의 역사적 판단은 남한에서 의미를 잃는다.

이렇게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두고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박근혜 정권이 뒤로 되돌리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북한과의 대립 상황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적을 색출해야 한다는 ‘종북 프레임’을 통한 통치가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단적으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 더욱 방대해지고 강화되었고, 민주화 운동의 계보 속에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에서도 사라지기는커녕 통일운동 뿐만 아니라 반정부적 정치활동,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작동하면서 한해에 백여 명이상을 입건시킨 바 있다. 또한 국가정보원ㆍ국군기무사ㆍ보안수사대 같은 공안기관은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 종횡무진 정치사상과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원주의 보장을 통한 통합을 향한 민주주의’를 거론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민주당과 같은 지배세력의 일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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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칼럼] 직선제와 총파업



1.

최초로 직선제로 치러진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한상균 후보가 당선됐다. 2004년 이후 계속된 국민파의 집권 끝에 이른바 좌파 집행부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애초에 직선제는 기존 간선제로는 고착된 정파 구도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으로 제기되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은 국민파와 중앙파라는 기존 양대 정파가 연합한 4번 선본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때문에 이번 직선제 선거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조합원의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국민파·중앙파·현장파라는 기존 정파구도의 해체와 이합집산은 이미 단위노조와 산별노조에서 꽤 전부터 진행되어온 현상이다. 대공장의 경우 2000년대 들어 기존 현장조직들이 해체되거나 분화되고 적대하던 현장조직들끼리 선거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에는 민주노총과 상급단체들에서도 국민파와 중앙파가 연합하거나 중앙파와 현장파가 연합하거나 정파 통합지도부가 등장하는 등 비슷한 양태가 나타나고 있다. 한상균 선본 역시 현장파라기보다는 노동전선을 골간으로 여러 좌파 단체들이 참가했다. 이중에는 과거 현장파와 별 관련이 없는 정파도 있다.

정파구도의 와해는 거꾸로 중간 활동가들의 현장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진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이번 직선제 선거도 줄곧 투표율이 미달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는데, 비록 1차 투표에서 62%이라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이 나오긴 했지만 조합원들의 관심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박빙으로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선 투표율은 첫 투표보다 훨씬 떨어진 56%에 불과했다.

소위 국중파의 몰락은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통합진보당 관련 사태들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NL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반 조합원들, 특히 노년층 조합원들에게 크게 확산되었다고 하며, 이는 NL 후보가 포함된 4번 선본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정 정파에 대한 대중의 평가라고 볼 수도 있는 문제긴 하지만 색깔론에 기반 한 혐오 정서가 노조 운동에 번지는 것을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직선제로 더 강한 지도부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자주 나왔는데, 만일 직선제이기 때문에 지도부에 더 많은 권력을 위임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위험한 발상일 뿐 아니라 현실도 아니었다. 1차 투표에서 14만 표를 득표했던 한상균 선본은 결선에서 18만 표를 얻었다. 결국 전체 조합원의 4분의 1의 지지를 얻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번 선거가 선거비용이 높아지고 정책보다 이미지가 중시 되는 부르주아 선거의 부정성이 유입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노동자대회나 집회 현장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홍보물을 돌리거나, 잘 가지 않던 투쟁현장에 후보들이 와서 열심히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활동가 층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 가운데 현장 조합원들에게 정책이 전파될 통로는 많지 않지 않았고, 인물과 이미지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선거비용의 상승은 간선제나 마찬가지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세력이 뛰어들기 힘든 구조를 만들 것이다.

번거롭다는 이유로 투표인 명부를 아예 제출하지 않은 노조도 있다는 소문, 개표과정에서 부정투표 증거가 나왔다는 소문 등 투표 관리에 문제점이 많았다는 뒷얘기도 무성하다. 그러나 설사 문제가 있었다하더라도 통합진보당 사태 등에 대한 학습효과로 정파들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특별히 문제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거과정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철저한 평가 없이 직선제가 정착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
 

2.

가장 큰 문제는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편향의 구조적인 문제가 직선제를 통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말하는 현재 민주노총의 최대 문제는 대공장 정규직 편향성이다. 67만 조합원 중 완성차·조선·철강 등 금속대공장 정규직 약 12만 명, 전교조 5만 명, 공무원노조 14만 명, 철도·도시철도 같은 대형 공기업 3만 명 등 굵직굵직한 정규직노조만 따져도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다. 반면 민주노총에 조직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불안정노동자처럼 존재 조건상 분산성·유동성이 강하고 신생 조합이 많은 경우 대공장에 비해 투표 조직이 어렵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보완책으로 ARS나 우편투표가 시행되었으나 이것이 얼마나 실효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약 10만 명 정도 할당된 우편과 ARS 투표는 평균 투표율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반면 대공장이나 대규모 노조에서 투표율은 70% 이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5%도 조직하지 못한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을 거의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조합원들만의 직선제로 노동자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네 선본은 모두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에서 비정규직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으나 말과 달리 출마한 12명의 후보 중 비정규직 출신은 기호 3번 허영구 후보조의 신현창 사무총장 후보가 유일했다. 각 선본이 내놓은 정책들도 조직화에 필요한 자금이나 인력의 확보, 조직체계, 혹은 정규직 운동의 엄호가 중요하다는 원론적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노총에서 늘 해오던 얘기다.

매우 특별한 극소수의 사례 외에 비정규직 운동의 역사는 정규직 운동질서로부터 억눌리고 배제돼 온 역사였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조직화에 별 성과가 없었던 것은 돈과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민주노총 조직질서는 스스로 조직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번번이 장애물이 되어왔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기술적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3.

물론 이번 선거 결과가 경제 악화로 인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작년 현대중공업노조에 십 년 만에 민주파 지도부가 등장했다. 경제악화로 회사가 최악의 적자를 내며 조합원들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뿐 아니라 많은 사업장들이 구조조정 위기에 몰려있다. 여기에 정권의 반노동적 태도,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불만이 투쟁적인 이미지의 지도부를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싸울 태세가 되어 있느냐는 이와 또 다른 문제이다. 2000년 대 초 이후 금속 대공장과 대형 공기업노조 등 민주노총의 중심 사업장 조합원들은 형식화된 임단협 외에는 거의 투쟁 경험이 없다. 조합원들은 자기 이해에 따라 실리파와 전투파를 번갈아 선택했지만 스스로 투쟁에 나서려 하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용이든 민주파든 실제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는 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재를 뿌린 8·18합의를 체결한 이경훈 집행부를 어용이라고 비난하지만 현장파·민주파라는 집행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5년 비정규직 조합원 류기혁 열사 투쟁에 반노동자적 작태로 일관한 이상욱 집행부, 비정규직지회에 신규채용안을 종용한 문용문 집행부는 모두 현장파·민주파로 알려진 집행부들이었다. 이경훈 집행부의 일련의 행위들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최근 금속노조 지도부가 8·18 합의를 존중한다는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격분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위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지만 그 후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현재 금속노조 지도부의 정치적 색깔은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와 비슷하다. 위원장 성명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는 금속노조 중집에는 노동전선이나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회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전투파라는 지도부에서 대체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15만 금속노조 조합원 중 현대차 정규직만 6만 명에 가깝다. 조합 질서에서 얽매여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지만 이런 위기감은 대개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적 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나왔다. 98·99년 구조조정 분쇄 투쟁 당시 정규직노조들은 가장 먼저 해고되는 하청노동자들을 수수방관했다. 노조를 결성하고 함께 투쟁하기 위해 찾아온 하청노동자들을 쫓아내는 일도 있었다. 이는 이후 그대로 현장에 정착되어 상시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고용을 보장받아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노사 평화 속에 민주노조 운동의 투쟁성을 이어 간 것은 새롭게 건설된 비정규직노조들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비정규직노조들은 건설과 함께 치열한 장기투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 대한 민주노총 사업장 노동자들의 연대는 미미했다. 2008년 이후 장기 투쟁사업장을 지탱하게 해온 힘은 흔히 사회적 연대 운동이라고 불리는 조직노동 밖에서의 연대였다.

반면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계급성을 점차 잃어갔다. 민주노총이 곧 민주노조라는 등식은 과거의 것이 된지 오래다. 지난 십 년 동안 상당수의 공기업노조와 금속 대공장 노조들이 어용에 장악되어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민주노총에 남아 있는 노조들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일부 상급단체들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노조 민주주의를 내세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투쟁을 억지로 마무리 짓곤 했다. 단위노조 뿐 아니라 상급단체까지 어용화가 진행된 지 오래이며 이들은 이제 민주노총 내부에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4.

한상균 선본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을 가장 우선적인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선되었다. 처음에는 당선 즉시 정권과 맞짱을 뜨는 총파업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선거운동 후반기에는 상반기에 동력을 모아 하반기에 총파업을 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오히려 일정을 앞당겨 “박근혜를 멈춰! 오늘 하루 제껴”라는 슬로건으로 4월 선제 총파업 계획을 내놓았다.

보궐 선거를 빼면 내년 4월까지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권이 연기금 개악 등 밀린 과제를 빠르게 밀어 붙일 것이라는 점, 이미 박근혜가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를 3월말까지 마무리 지으라고 촉구한 점으로 볼 때 상반기부터 노동에 대한 주요한 공격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못하다. 3월 4일 금속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동참이 결의되었지만 대공장 노조들이 참여한다 해도 말 그대로 “오늘 하루 제”끼는 것 이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 연기금 개악 투쟁의 주동력인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파업 돌입 여부도 미지수다. 6월까지 파상적으로 파업을 넓혀가겠다고 하나 얼마나 확대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파업의 목표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저지, 공무원 연금개악 중단,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및 노조법 2조 개정 등을 내걸었다. 정치 총파업이라지만 현실적으로는 각 부분의 현안들을 묶어 일정을 맞추는 예전 방식과 크게 다르진 않다.

선거기간 중 어떤 후보는 총파업이 어려우며 먼저 모든 조합원과 함께 할 수 있는 투쟁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민주노총만 놓고 보면 조합원들을 아우를 요구를 찾기 힘들다. 이미 처지가 달라진 조합원들의 이해를 억지로 모아낸다고 하나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총파업이 의미 있는 계기가 되려면 기존 노동운동 질서에 연연하기보다 전체로서 노동자계급의 가장 중요한 이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나가야 할지 전망을 제시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재정확대 정책으로 경기 활성화에 실패한 정권은 작년 하반기 다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유연화를 꺼내들었다. 임금체계 개편,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 정규직에 대한 공격이 주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98년 이후 지금까지 자본과 정부는 조직노동의 고용 및 노동조건을 일정 보장하여 합의 혹은 암묵적 방조를 이끌어 내는 대신 노동유연화를 제도적으로 확대해 왔다.

연기금 개악이나 연공서열 임금체계의 변경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이해에 민감한 사안이지만 이미 고령화된 그들에게 정년연장·임금피크제 등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충분히 바꿔치기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파견법 완화 등 대부분 미조직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들은 2006년 비정규직법 개악 총파업 때처럼 소수로 조직된 비정규직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당선 이전 토론회에서 “공무원연금 개악과 공공부문 민영화, 노동기본권 개악 등의 의제를 모아 상반기 투쟁에 나서고, 간접고용과 사내하청 노동자 10만 대반란을 조직해 그 힘으로 박근혜 정부와 물러설 수 없는 전면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로 총파업이 앞당겨졌지만 이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확대의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전한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동력이 되진 못할 지라도 민주노총이 누구의 이해를 대표하려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8·18 합의를 추인한 금속노조 위원장 성명에 대해 비판 성명을 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거라도 어디냐는 반응이 많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며 면피용으로 보일 뿐이다. 이런 불분명한 태도에 편승해서 일각에서는 현대차 노조를 총파업에 동참시켜야 하기 때문에 금속대대에서 8·18 합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해괴한 논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금속 대의원대회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8·18합의 폐기 안건을 계속 뒤로 미룬 끝에 성원 미달로 안건을 유보시켰다. 대신 총파업 결의를 이끌어낸 것을 성과로 홍보하고 있다.

이렇게 기존 조직질서의 이해관계에 얽매여서는 설사 총파업이 잘 된다 해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반란은 꿈도 꾸기 어려울 것이다. 형식적인 총파업 참여율을 높이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중산층화된 조합원들과 내부의 어용이 투쟁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의 타파는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자기부정에 가까울 정도로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되며, 비정규직 조직화와 이 과정은 분리될 수 없다. 지금 노동자 계급운동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투쟁 속에서 계급을 재조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어용을 달래서 총파업 규모를 늘린다고 해서 대체 무엇을 얻을 것인가.

5.

지금까지 최초의 직선제 지도부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매우 실망스럽다. 선본 시절에도 여성 의제를 부차화하지 않겠다는 공약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반여성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선본 참여 단체를 감싸 안기 급급한 모습, 겉으로는 투쟁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어용화된 상급단체들과 대형노조에 대해서 불명확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그대로 계속되고 있으며, 선거운동 시기 찾아갔던 투쟁사업장에 상급단체의 눈치를 보며 공식 방문이나 연대를 꺼리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정권에 대한 불만은 매우 높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으로 사회적 불만에 불을 붙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급성을 잃은 조직노동 질서의 눈치를 보면서 막연한 대중의 불만에 호소하려든다면, 그 속에 노동자계급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계급의 중심이 누가돼야 하는지, 누구를 대표해야 하는지, 이 투쟁의 성과로 무엇을 얻어야 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 현장파가 민주노총과 대부분의 대공장 노조를 장악하고도 사회적 고립 속에 패배하고 정규직/비정규직 분열의 싹을 틔웠던 과거 구조조정 분쇄투쟁 때의 경험을 반복할 뿐이다. 


2015년 3월 6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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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회주의가 성폭력 문제 앞에 당당하기 위하여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5/03/08 23:25
  • 수정일
    2015/03/09 14:3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사건 관련 기사 삭제 요청에 대한 반론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은 2013년 7월 당시 다함께·대학문화성폭력사건피해자지지모임에서 활동하던 류한수진 동지로부터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글을 기고 받아 게재한 바가 있다. 오랜 민사재판이 끝나고 작년 말 다시 이 사건이 이슈가 되자 가해단체로 지목된 노동자연대(구 다함께)는 기사에 대해 반론과 함께 허위사실이 들어있는 글이라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본지는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정정하나 기사 전반을 볼 때 허위사실로 판단할 부분은 없으므로 삭제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첨부한 사노신 입장 참조), 필자인 류한수진 동지도 직접 노동자연대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보내 주셨다. 이 글은 노사과연이 발행하는 <정세와 노동> 2월호에도 게재되었으며 기고 글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정세와 노동》, 《FOCUS》 등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사건, 해방운동의 현주소>라는 나의 글을 실은 매체들에 최근 들어 삭제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해당 사건의 가해 조직인 노동자연대(당시 다함께)에서 ‘허위사실이고 명예훼손’이라며 글 삭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내용증명을 보내며 소송을 운운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동지들을 예고도 없이 여러 명이 찾아가 압박하는 등 매우 무례하거나 심지어 위협적인 행동까지 하고 있다. 나에 대해서도 긴 글을 여럿 할애하여 십자포화를 쏟아내는 중이다. 노동자연대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을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기에, ‘인용하며 반박할 거라면 전문을 게재할 권리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요청했으나, ‘허위사실이 담긴 글을 다른 매체에 게재한 상태’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및 2차 가해 사건을 ‘중상모략 및 명예훼손 사건’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대책위1) 동지들은 공히 정식 매체의 지면을 얻어 이들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이치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고글 원필자로서 노동자연대의 주장들을 반박하고 이 문제에 대한 나의 현재 입장을 확인하는 반박글을 기고글을 실었던 두 매체에 보낸다. 이 글은 전에 내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던 글들을 바탕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1. 사건에 관한 노동자연대의 주장과 나의 반론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한 마디로 내가 “노동자연대 낙인찍기를 목적으로” 노동자연대를 “터무니없이 중상 비방” “날조 음해” 해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사실 왜곡이거나 그릇된 추측, 혹은 거짓말이라 틀린 부분을 전부 반박하려면 책 한 권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 여기에서는 사건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만 요약하고 반박하도록 하겠다. 나와 대책위 둘 다가 노동자연대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나에 관한 비난들만 주로 다루도록 하겠다. 이 글은 대책위에서 인준을 받고 쓰는 것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여기서 책임지고 해명할 수 있는 부분은 나에 관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1-1. 노동자연대를 ‘가해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노동자연대가 이 사건을 “불순한 의도로 재구성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정황상, 가해자인 이**가 포르노를 보여줄 당시 다함께 회원이었던 정**는 가해에 가담하지 않았다. 정**가 성희롱에 가담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따라서 노동자연대는 원사건 가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 2) SNS에서 회원들이 단 덧글은 피해자의 주장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진상에 대한 토론이었고, 조직적 의결에 따른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 행동은 2차 가해도 아니고 조직적 행위도 아니다.
 

지지모임과 대책위에서 냈던 숱한 선전물 중에는 이**가 했다고 지목된 행위(평상시 교지 내에서의 성희롱을 했다는 것 등)를 마치 정**가 함께 한 것처럼 표현되거나, 누가 주 가해자고 누가 공범이나 동조자인지 구분되지 않거나, 이**도 다함께 회원인 것으로 오인할 수 있게 서술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실수 중 일부는 내 직접적 책임이 있고, 이에 대해 사과한다. 그러나 사건의 전체 흐름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발언들이 일관된 거짓말이 아니라 사건을 매우 압축적으로 서술한 한두 개의 글에서 일어난 말실수였고(지지모임의 입장서와 기고글들은 대부분 이**와 정**의 소속에 대해 정확히 명기하고 있다.) 사건의 핵심도 아니며 지지모임의 입장과도 관련 없다는 것을 너무나 명백히 알 것이다. 피해자와 지지모임이 문제 삼은 것은 이**가 다함께 회원이었는데 다함께가 이**를 징계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함께가 성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정치적인 요청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의 입장은 ‘피해호소인과 가해피의자들이 공히 인정하는 사실만으로도 이 사건은 성폭력이며 다함께의 행동은 2차 가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a. 편집장 이**가 포르노 동영상을 틀었고 b. 피해호소인은 싫어했으며 c. 다함께 회원이었던 편집위원 정**는 옆에서 상황을 보고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까지를 확인하고 피해호소인을 실제 ‘피해자’로 판단했다. 그리고 여전히 이것이 판단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함께 회원 정**와 다함께의 책임은 어느 정도인가?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정**는 단순방조자가 아니라 같이 성폭력을 저지른 공범이고 정**의 진술에 따르면 방조자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쪽의 진술이 맞는지는 아직 객관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법정 판결은 정**측의 진술을 근거로 ‘강제로 야동을 보여준 것을 함께하지는 않았다’고 판정했으나, a. 우선 왜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가해자의 진술을 채택했는지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고 b. 피해자가 정**를 공범으로 적시한 것은 정**가 포르노가 담긴 휴대폰을 같이 조작했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의 행위에 맞장구를 치고 성희롱적 농담에 동조했다는 이유에서인데, 후자의 행위가 없었다고는 쓰고 있지 않다. 형법 민법적으로는 포르노를 같이 틀지 않았다면 ‘공범’이 아닐지 모르나, 포르노를 같이 틀지 않았어도 피해자에게 포르노를 볼 것을 종용하고 전후로 한 성희롱에 동조했다면 정치적으로는 ‘가담’이라고 보고 그에 맞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보다, 공범인지 방조자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그리고 다함께의 책임이 문제되는 한 그 부분만으로도 근거는 족하다. 가담은 더 잘못이고 방조는 덜 잘못이기는 하지만 둘 다 올바른 활동가라면 하지 말아야 될 잘못인 것은 같다. 그러므로 다함께는 정**가 가담을 했든 방조를 했든 회원의 행동을 반성하고 시정토록 할 책임이 있었다. 지지모임이 정**가 공범이라고 강변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지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2)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는 정**가 회원이기 때문에 다함께에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정**가 회원이었기 때문에 다함께를 ‘가해 조직’이라고 칭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폭로는 다함께 내부에서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내가 피해자의 편을 든 것은 이 폭로에 대해 다함께 회원들이 SNS상의 집단린치로 응답했기 때문이다. 정**가 공범이었든 방조자였든 이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요컨대, 1) 회원 정**가 성폭력에 직접 가담한 것인지 방조한 것인지는 진술이 갈리지만 어느 쪽이든 잘못한 것에는 틀림이 없고 그렇다면 다함께는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2) 또한 피해자가 다함께에 사건 해결을 요청했으므로 다함께는 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회원 정**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이**의 행위를 비판하고, 이**에게 사과와 시정을 요구하는 것 정도가 이 단계에서 적절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이상의 근거에서, 원사건에 관해 이미 다함께가 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다함께 조직 자체를 ‘가해자’라고 부르는 것은 과도하다. 진짜 문제는 피해자가 사건을 폭로한 뒤에 일어났다.
 

피해자가 다함께에 대해 조치를 촉구하며 사건을 폭로하자, 다함께 회원들, 특히 학생조직 책임자를 비롯한 대학생 회원들은 피해자에게 정신이 이상하다느니 연애결별에 대해 앙갚음하려고 이런다느니 등 온갖 입에 못 담을 인신공격과 언어폭력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것은 피해자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몇몇 개인의 사적 감정 분출이 아니라 조직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원들의 대응이었다. 이는 다함께가 조직 기관지에 이 때의 인격 모독과 언어폭력을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반복하고 있다는 데서도 재확인되는 바이다. ‘조직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행동’이라는 이유로 이것이 ‘조직적 가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연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것을 그 자체로 성폭력 가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성폭력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동임은 ‘2차 가해’라는 개념의 사전적 의미를 수용한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이 때 다함께 회원들의 언사 중 상당수는 성폭력이라는 맥락을 빼고 봐도 영락없는 언어폭력이었다. 이것이 조직적 가해가 아니면 무엇이 조직적 가해인가? 성폭력을 저지르자고 조직 운영위원회에서 의결이라도 해야 ‘조직적 가해’가 성립하는가?
 

이 대목에서 노동자연대의 주장은, 여태껏 나왔던 글 중에서도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피해자는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이며, 이 사실은 사건이 악의적으로 날조된 것임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므로 ‘연애결별의 앙갚음’이니 ‘자살시도’ ‘우울증’ 등의 말들은 “진상에 대한 해명”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이 2차 가해라는 피해자 측의 지적을 “구체적인 맥락과 사실관계를 일부러 회피하는” “교활함”이라고 도리어 비난하고 있다. 무오류의 조직의 외견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연대는 도대체 어디까지 전락하고 있는가!
 

정신과 의사도 아닌 사람들이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 정신병을 진단하며 낙인찍고 그것을 그 사람을 비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편승하며 그것을 강화하는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가? 그건 차치하고라도, 이 주장대로라면 다함께는 상황에 대해 얼마나 할 말이 없었기에 말한 사람의 인격을 공격하는 식으로밖에 “진상을 해명”할 수 없었단 말인가? 노동자연대는 지금 진술하는 사람에게 인격장애가 있다면 진술을 악의적 날조라고 가정하고 독해하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하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다함께는 가해자로 지목된 정**가 명예훼손 소송에 나서도록 부추기고, 소송에 관해서 보고를 받았으며, 정**가 소송을 그만두려고 하자 그러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노동자연대는 “노동자연대가 소송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대책위에서 입수해 공개한 노동자연대 대의원협의회 자료집을 보면, 다함께 학생팀 담당자가 정**와 소송에 대해 상의하였고, 정**가 민사소송을 할 경우 비용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모금을 하든가 해야지”하며 조직에서 지원할 의사를 비추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이후 실제로 비용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변호사 선임이나 비용 마련 등을 정**와 그 대리인 이**가 알아서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정**가 소송에 돌입할 당시 다함께가 이를 종용했다는 사실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에게 소송을 하라고 해서 총알받이로 내세워놓고, 막상 약속과 달리 부담은 전부 떠넘긴 무책임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행동 아닌가?3) 게다가 피해자에게 가장 앞장서서 온갖 인격모독과 인신공격, 비방을 퍼부어온 사람이기도 한 정**의 대리인 이**(필명 D*******)는 사건 직전까지 다함께 회원이었다가 ‘이 사건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다함께 활동을 중단하겠다’며 다함께를 탈퇴한 인물이다.
 

게다가 다함께가 소송 이후에 완전히 개입을 중단한 것도 아니다. 이**를 통해 소송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었으며 정**가 소송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여러 차례 비쳤으나 담당자였던 최**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정**를 압박한 사실이 상술한 자료집 글에서 드러나고 있다.4) 또한 한 대학에서는 다함께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자 다함께 회원들이 자보 인쇄를 해주는 곳에 찾아가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러는데, 이 자보를 출력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심지어 인쇄 담당자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거절하자 ‘그러면 우리가 CCTV를 돌려볼 테니 자보를 인쇄해 간 시간이라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집요함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했을 때, 다함께가 소송에 들어간 후 사실상 정**와 이**를 방치해 두었다고 하더라도 배후에서 소송을 압박했다는 점에서 조직적 책임은 분명하고 부정할 수 없다.
 

1-2. 류한수진은 무조건 피해자 말을 들을 것을 강요하고 있는가?

노동자연대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입장은 이번 사건이 피해자중심주의와 지나치게 확장된 성폭력 개념, 무분별한 2차 가해 규정 등 잘못된 개념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와 대책위가 피해자의 말을 무조건 사실로 취급하면서 성폭력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2차 가해라는 이름으로 봉쇄하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노동자연대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1) 원사건은 성폭력이 아니라 성희롱에 불과한데 피해자 측은 성폭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2) 사건 폭로 후 대책위가 진상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3)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을 다 2차 가해자로 몰았으며 4) 내가 정**를 단순 방조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지목하는 등 진술이 다른 부분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사실로 선전했다는 것이다.
 

첫째 지점에 대해서는 원 기고글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니 길게 말하지 않겠다.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의 자보 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달은 ‘여성에 대한 폭력’ 일반을 전부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광의의 성폭력 개념이 잘못되었고,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정의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성폭력이 여성의 ‘정조’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고 말해 온 것은 반성폭력 운동의 정당한 문제의식이자 소중한 성과였다. 이것을 부정하고, 강간만을 성폭력으로 간주하려는 노동자연대의 시도는 명백한 오류이고 퇴보이다. 성폭력이 여성의 ‘정조’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침해라면, 당연히 성폭력 개념은 언어적인 것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다른 매개에 의한 것이든 모든 종류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포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노동자연대처럼 ‘성희롱’이라는 말을 끌고 오는 것은 아무런 운동적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거부하는데도 포르노를 보여주는 행위는 명백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 여기에 성폭력 이외의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둘째 주장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애초에 진상조사나 문의도 없이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난도질한 것은 바로 다함께였고, 대책위는 이 행위에 충격 받은 활동가들이 피해자 주변으로 결집하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리고 결성 직후부터 대책위는 양자 납득할 수 있는 절차에 의한 해결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반면 다함께는 사건에 대해 피해자에게 진술 한 번 요청하지 않고 사건을 ‘명예훼손’으로 규정하였다. 일방의 말만 듣고 사건에 대해 결론내리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인가?
 

셋째 지점에 대해서는, 노동자연대가 말하는 이른바 ‘합리적 의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앞에서 충분히 보았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행동을 2차 가해라고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년이 넘게 입이 부르트도록 반복해 온 말을 여기서 다시 한 번 하자면, 이 사건에서 2차 가해로 지목된 행동은 <피해자의 말을 거짓으로 단정짓고 인신공격과 언어폭력을 퍼부은 것>이다. 정신이상, 연애결별, 정치적 음해를 운운하는 악성 덧글이 ‘합리적 의심’이라면 노동자연대 중앙의 눈에 ‘비합리적’인 의심이란 것이 도시 존재할 수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넷째 지점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대리인이자 지지모임 회원으로서 피해자의 주장을 선전한 것은 당연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옮기는 과정에서 일방의 주장을 확인된 사실처럼 읽힐 수 있게 쓴 부분은 일부 있고, 그 점에 대한 비판은 기꺼이 인정하고 시정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실수로 그런 문구가 누락된 몇몇 문장들을 제외하면 나는 모든 글에서 일관되게 ‘피해자의 폭로에 따르면’ ‘~라고 했다’ 등의 문구를 넣는 등 이것이 누구의 주장인지를 밝히려고 했으며, 이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은 기정사실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었다.
 

노동자연대는 물론 그런 단서와 관계없이 일방의 주장을 선전해준 것 자체가 ‘기정사실화’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당시 피해자는 개인으로서 조직과 맞서고 있었고 나는 이 조직에 뭔가를 권고하거나 중재할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누구도 그런 역할을 맡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이것이 내가 ‘피해자중심주의’를 배격하는 이유다), 그래서 ‘양자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한 해결’을 계속 주장했지만, 나는 이 힘의 불균형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해자의 말을 좀더 신뢰하고 피해자를 지지 지원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몇 명은 필요하다고 봤다(이것이 내가 ‘지원자들이 피해자의 편을 드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다). 그게 이 사건에서 내가 택한 역할이었고, 나는 여전히 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시에 누구도 어느 쪽에도 힘을 싣지 않고 모두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관망했다면, 피해자의 입장은 그냥 묻히고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렇게 끝나고 말았을 테니까.


1-3. 류한수진은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가?


노동자연대는 마치 나나 대책위가 주장한 대부분의 내용이 허위사실이고 날조인 것처럼 쓰고 있지만, 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두 가지 정도다. 1) 다함께 내부에서 여성이 뒷바라지하는 것이나 데이트 강간, 가정폭력 등에 대해 문제의식 없이 용인되는 분위기였다는 서술. 2) 다함께가 여성의 전화 주관 진상조사를 거부했다는 주장.
 

우선 첫째 지점에 대해서 경위 설명을 좀 해야겠다.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은, 다함께 활동 당시 일부 회원들 사이의 연애관계에 대한 다른 회원들의 발언 등 피해자가 경험한 다함께 기풍에 대한 진술을 요약한 것이었다. 피해자는 나에게 성폭력 사건에 대해 회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숙박업소에 같이 갔으면 성관계에 동의한 것 아니냐’는 발언이 나왔고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으며, 커플 사이에 데이트강간이 있거나 여성이 뒷바라지하는 역할로 떨어지는 경우에도 이를 비판하는 회원이 없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그런 경우가 있어도 비판하지 않고 넘어갈 정도로 분위기가 성인지적이지 못했다는 것이지, 노동자연대의 주장처럼 이런 일이 “횡행했다”고까지 말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다함께의 내부 문화에 대한 피해자의 이러한 진술이 ‘내규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피해자의 요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것을 글에 집어넣었다. 물론 내가 겪지 않은 사실을 마치 내가 보증할 수 있는 사실인 양 쓴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때문에 노동자연대에서 공문을 받은 후 노사과연 동지들께 부탁드려서 이 부분은 ‘~라고 전해 들었다’는 말을 붙여 수정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 노동자연대는 “날조도 출처만 대면 비방이 아니라는 강변”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근거로 고발하는 것은 허위사실 유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노동자연대의 말이 진실이고 피해자의 말은 거짓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왜 그렇게 믿어야 하는가? 피해자의 증언이 날조라는 주장은 “검증된” 것인가? 누구에게? 노동자연대가 2년간 “개인들끼리 해결하라”라며 대화 자체를 거부해 온 바람에 양측의 주장은 검증될 기회도 없었다. 그러니 노동자연대식 논리대로라면 이 주장도 ‘검증된 적 없고’, 따라서 노동자연대의 주장 역시 ‘허위사실 유포’이다.
 

잠시 말장난을 용서 바란다. 노동자연대 회원들은 피해자의 말이 거짓이라고 믿고 있으며, 나는 피해자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이 상황에서 ‘~~는 이렇게 말하고 있고 나는 이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각자의 권리이고, 그것은 성급하거나 잘못된 판단일 수는 있어도 거짓말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조직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피해자가 이런 고발을 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실’이며, 이 고발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아니라 개인의 주장이라는 것을 명시하는 한에서는 이 고발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는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주류 언론에서도 고발이나 비판이 물증을 심사하는 단계를 거치기 전에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류의 선전에 대한 책임은, 그 판단이 검증됨으로써 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피해자의 고발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고발이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다함께 내부 문화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추론을 제출한 나의 신뢰성도 당연히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내 잘못은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기껏해야 ‘잘못된 고발을 성급하게 신뢰한 것’이 될 것이다.5)
 

둘째 지점에 대해서도 ‘새빨간 거짓말’ 운운하는 것이 전혀 정당치 않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 노동자연대의 주장과 달리 내가 지지모임에 있던 당시 지지모임은 계속해서 양자 납득 가능한 사건 해결 절차를 모색하고 있었고, 이에 진상조사와 사건에 대한 토론을 주관할 단위를 계속 찾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때 지지모임을 도와주고 있던 한 여성 활동가분이 있었는데, 이 분이 ‘내가 여성의전화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성의전화에 의뢰하면 진상조사를 주관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이에 지지모임은 ‘여성의전화 주관 진상조사가 가능할 것 같다. 응하라’는 요구를 노동자연대에 공개적으로 했다.
 

그런데 글을 올린 후 자신이 여성의전화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이 허위사실을 유포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경위를 설명드리고 필요하다면 공개사과하겠다고 했고 다음날 여성의전화 상근자에게 전화가 와서 진상조사를 주관할 의향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여성의전화 공식 입장을 타진하기 전에 공개제안부터 한 것은 분명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악의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착오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성의전화에서 진상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노동자연대가 거부했다’는 식으로 말한 적은 전혀 없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런 언급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보여주기 바란다. 오히려 이걸 가지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말하는 쪽이 악의적인 왜곡 아닌가?
 

내가 이런 글을 올리자 노동자연대는 “다시 말하지만 피해자 지지모임과 대책위는 내가 활동했던 8개월 내내 양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자고 요구했고 다함께-지지모임 면담, 대리인 간 면담, 운동 단체들의 테이블, 여성단체에 의한 진상조사 등 구체적인 제안도 여러 가지 했다.”라는 부분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게 왜 거짓말인가? 비록 여성의전화가 응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잘못 들어간 제안이었지만, 지지모임이 이런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공정한 절차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지지모임의 노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근거이다. 이를 두고 ‘단체 섭외까지 끝났는데 다함께가 거부해서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니 안 될 말이지만, 그렇다고 ‘여성단체에 의한 해결을 제안했다’는 사실까지 감추고 말하지 말라는 것은 피해자 측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을 한 마디라도 덜 말하게 만들고 싶은 노동자연대의 억지 요구에 불과하다.


1-4. 류한수진은 피해자를 믿지 못하는가?


다음으로, ‘심지어 류한수진이나 대책위도 피해자를 믿지 못한다’는 주장에 대해 (다시 한 번) 답변하겠다. 노동자연대는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류한수진과 대책위 본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피해자와 지원자들 사이에 모종의 불신이 있다는 추측을 고수하고 있는데, 나에 관해서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내가 법정에서 “사과문”을 쓰고 발을 뺐으며 지지모임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나는 법정에서 ‘사과문’을 쓴 적이 없다. 지지모임에 참여하게 된 경위와 입장에 관한 진술서라면 쓴 적 있다. 그 진술서는 내가 왜 사건에 뛰어들게 되었고, 왜 노동자연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며, 현재는 어떤 입장인지를 설명하는 글로써, 피해자의 주장을 모두 믿은 것은 아니지만 드러난 것만으로도 노동자연대의 행동에는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근거는 1-1과 비슷했다. 다만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일방의 주장을 사실처럼 쓰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피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잘못을 범한 적이 있는 것을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내용이 두 페이지짜리 진술서 끄트머리에 딱 두세 줄 들어가 있다. 그것을 거기에 집어넣은 이유는 실제로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는 게 상호 간 소모적인 논쟁과 불필요한 상처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내용은 노동자연대가 어떤 잘못이 있고, 여기에 항의하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 주장으로 채워져 있다.
 

이것이 노동자연대가 “사과문”이라고 부르는 글이다. 이게 법정에서 도망가기 위한 반성문인가? 이 사건에 대한 내 판단과 입장을 철회하는 것인가? 앞에서도 물었지만, 이거야말로 악의적인 왜곡이고 비방 아닌가?
 

다음으로 지지모임을 그만두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겠다. 노동자연대는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데도 계속해서 ‘류한수진도 피해자를 못 믿어 대책위를 나왔다’라는 스토리를 고수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첫째로 지지모임 성원들 일부와 여성주의에 관한 사상적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둘째로 그 갈등을 감당하기에 감정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지지모임을 그만두고 대리인 두 명은 소송에서 빠지라는 판사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나는 피해자중심주의를 폐기하고 성폭력을 성차별이나 성별권력관계의 작용 일반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지지모임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좌절해서 지지모임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사건에 관한 피해자의 입장과 요구를 지지한다는 견해는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이견이나 갈등은 최대한 논쟁하고 설득해서 풀어가는 것이 옳다는 점에서 내 탈퇴는 정신적 심리적 나약함에서 기인한 무책임한 포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 입장의 변화나 피해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는 노동자연대의 해석은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 나는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이 사건이 전체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핵심적인 지점들에서 피해자의 편이며, 노동자연대가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은 이유에서, 피해자중심주의나 확장된 성폭력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사건이 성폭력이고 노동자연대는 조직적 책임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에서도 이 사실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노동자연대를 비판하고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좀더 일반적인 차원의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노동자연대가 글을 읽고 쓰는 태도에 굉장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노동자연대는 의도적으로 지엽적인 사실들을 핵심인 양 부각시키면서 논점을 흐리고 있으며(가령 여성의전화 차원 진상조사를 제안한 건을 가지고 노동자연대가 사건해결을 거부해왔다는 비판 자체가 날조라는 식으로 일반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말이나 글을 앞뒤 내용에서 떼어내 전혀 다른 의미로 왜곡시켜 유포하고 있다(가령 노동자연대를 비판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 가지 실수에 대한 사과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반성문’ ‘사과문’이라고 부르며 내가 입장을 철회하고 도망쳤다는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이래서는 조중동 같은 극우 황색저널과 무엇이 다른지 하나도 모르겠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 동지들이 인신공격과 사생활 침해, 심지어 ‘정신병’ 진단과 낙인찍기 등 언어폭력까지 마다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운동 사회에서 논쟁의 방법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사건에서 성폭력을 대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이 흔들리는 것 못지않게, 노동자 계급 운동 내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는 것이 우려스럽고 불안하다.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끼리의 논쟁과 대립은 철저하게 사실과 논리에 기반한 상호 조직화와 설득, 혹은 최소한 대중에게 지금 사태의 핵심 쟁점이 무엇이며, 누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명료하게 드러내는 선전의 과정이지 폭력을 사용해 서로를 공격해 쓰러뜨리는 패싸움이 아니다. 폭력은 적들에게나 쓰는 것이다. 물리적 폭력은 물론이고 인신공격이나 욕설, 인격모독 등의 언어폭력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운동사회 내의 이견과 갈등에 대응하는 올바른 방법으로 인정될 수 없다. 사실 왜곡과 흑색선전도 마찬가지다.
 

상황의 본질이나 진상을 편집하고 감추고, 동지들의 신상과 인신을 공격해서라도 ‘이기고 보면 된다’라는 정신으로 운동을 한다면, 앞으로 그 폐단과 소모가 얼마나 클 것인가? 운동 내의 갈등이 매번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노동자 민중의 단결과 승리가 도대체 가능할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도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 투쟁 전체의 성패가 달린 문제다.
 

2.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여성주의와 성폭력


지면이 주어진 김에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포괄적으로 써보려고 한다. 내가 서울대 대책위 사건(이른바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 그 난리를 겪고도 왜 또다시 성폭력 피해자의 편에서 성폭력 사건에 개입했는지, 지지모임에서는 왜 탈퇴했는지, 그런데 왜 여전히 피해자를 지지하는지, 이 글을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1. ‘페미니즘’과 ‘여성 해방’에 관해서, 또는 왜 사회주의자는 성폭력을 외면하면 안 되는가


나는 사회주의 활동가가 여성해방과 성평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에는 백번 동감하지만 ‘페미니즘’을 수용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페미니즘’이 사회주의와 분리된 독자적인 여성해방운동 및 그 운동의 사상(주로 가부장제 이론을 골자로 한)을 말하는 한에서는 그렇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체제를 세워서 노동자나 농민 등의 피억압 계급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이 모두 해방될 수 있는 전체 운동이, 지금 사회의 온갖 부조리에 대한 내가 아는 유일한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이다. 그리고 그 운동의 핵심적 정강은 경제적·정신적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여 재화와 용역, 지식과 문화, 그리고 인간의 생산·재생산을 사회적으로 결정하고 수행하는 것, 즉 ‘생산수단의 사회적 통제’이다. 그렇게 되면 생산의 목적에서 이윤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가 우선이 될 수 있고, 절차에서 기업가의 전제 대신에 민주적인 통제가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하루종일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는 동안 어머니는 집에 갇혀 청소하고 애를 봐야 할 이유가 없고, 실업과 빈곤을 두려워하는 여성이 ‘취집’으로 도피하고 가족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어머니 노릇을 (혼자) 감당하는 데 그렇게나 많은 정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핵심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며, 작업 현장에서 생산수단을 다루고, 매일 직접적으로 계급모순과 맞부딪히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나는 이러한 운동이 사회주의 운동 바깥에서 따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 해방을 위해 필요한 변혁이 사회주의라는 기획의 분리불가능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출산, 양육을 사회가 책임지고 남성, 여성 모두에게 육아와 가사노동에 쓸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무정부적으로 운용되는 이윤 본위의 경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역으로, 사회의 성원들이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생산을 계획하고 통제할 것을 요구하는 경제시스템은 사적 가족의 울타리에서 개인과 가족의 안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이기적 인간들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리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애초부터 공동체 속에서 길러진 인간들이 성원이 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당대의 가장 탁월한 여성해방운동가 중 하나였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공산주의와 가족>에서 이러한 전망을 훌륭하게 정식화했다.
 

그렇다고 생산 수단의 노동자 통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성차별이나 성폭력 같은 문제는 뒤로 치우자는 단계론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자는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이 되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등 사회주의 건설과 이해를 같이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기해방에 대한 열망을 고취하고 상승시키며 전체 운동 안에서 그 각각의 열망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민중의 단결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의 강령은 모든 부문에서 가장 진전된, 가장 해방적인 요구들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운동이 도덕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전취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또한 유물론이 의식과 문화는 어찌되었든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기계적 환원론이로 이해될 수도 없다. 한 사회는, 경제적인 구조가 먼저 세워지고 거기서 그에 맞는 이념과 사상이 솟아나오는 식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의식적 실천의 성과이고 따라서 이를 올바르게 해내려면 당연히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모든 민중이 주체가 되어서 쟁취하고 건설해야 하는 사회라면, 투쟁 과정에서 의식과 문화를 쇄신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경제적 구조는 이데올로기를 규정하지만, 낡은 생산양식을 타파하는 투쟁과 낡은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투쟁은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가 사회주의의 일부라는 것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가끔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하는 운동에 박수를 쳐주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 해방을 위한 요구들이 모든 사회주의자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선전하고 실천해야 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강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 모든 여성에 대한 양질의 일자리 보장, 남녀 모두에게 유급 육아휴직 보장 같은 내용뿐만 아니라 순결주의나 성녀/창녀 이분법 등 여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와의 투쟁, 가정 내에서 가사노동의 균분을 위한 노력, 그리고 성차별이나 여성 비하 및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처리 및 피해자의 권익 회복도 포함된다. 나는 이 점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태도는 단순한 도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회주의를 국가 권력에 대해 사고하게 된 노동자주의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을 핵심 주체로 한 인간 해방의 이념으로 본다면 말이다.
 

2-2. ‘반성폭력 운동의 전통’에 관해서, 또는 왜 그 운동이 만든 모든 것을 배격할 수 없는가


100인위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성폭력 특별법 제정 운동 때부터 제창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성폭력’이나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을 골자로 한 ‘반성폭력 운동’6)의 전통이 이런 이유에서 정당화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실재하는 문제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그 운동을 지도하는 사상과 기치는 거기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 아니었다. 이 개념들은 사상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전선을 치고 이를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 모순으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피해자 당사자성을 주장하는 급진페미니즘이나, 그것을 사회주의와 어떻게든 양립시켜보려는 이원론적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근거하고 있다.
 

나는 이 사조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비적대적 모순을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모순으로 취급하여 양자의 대립을 당연시하고, 이를 근본 모순으로 취급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남성 지배 사회이며 개별 남성이 지배집단으로서의 권력을 언제나 자기 편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고(실제로 개별 남성은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다), 대안으로 여성/피해자 당사자성을 주장함으로써 당사자의 경험과 느낌을 절대시하는 주관주의로 경도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대책위 사건에서 노출되었던 광의의 성폭력이나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개념 등의 문제는 이러한 사상적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일말의 진실도 담고 있지 않은 사상은 세상에 없다. 그렇게 많은 활동가들이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그토록 천착해왔는데 그 문제에 관해 배우고 취할 성과를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중심 원칙을 바로잡는 것을 그런 이유에서 방기하거나 미룰 수는 없지만, 세부적인 부분들로 들어가면 나는 남한의 반성폭력 운동이 발견하고 개척해온 경험들에서 참고하고 가져갈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또다시 억울하게 고통받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여성들을 비롯해 성폭력을 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약자들에게 조직 운동이 안전하기 위해서, 전체 인민 앞에서 운동의 신뢰를 위해서 말이다.


2-3. 성폭력의 범위의 확장에 대해서


성폭력의 범위는 시간이 흐르면서 확장되어 왔다. 강간에서 몰래카메라나 성희롱으로, 그 다음으로는 음담 패설이나 여성 비하 등 일상적인 언행들까지로. 나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맥락에서 ‘폭력’은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바, 폭력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곧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인권의 수준이 향상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적 상처에 무한히 민감해진다는 것이 꼭 인권을 향상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폭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객관적 준거를 갖추고 있을 때, 즉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인정될 수 있는 특정한 권리에 기반한 것일 때 타당하다. 이런 맥락에서 ‘젠더 폭력’ 또는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성폭력’ 개념 즉 ‘어떤 권리가 침해되었는가’가 아니라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해서 행위가 일어났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성폭력 개념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성별권력관계는 일상 속에 숨 쉬듯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행위에서나 성별권력관계는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은, 실천적으로 피해자중심주의와 결합되어 여성이 그렇게 느꼈다면 무엇이든 성폭력이라고 부름으로써 완전히 주관적인 감정을 근거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은 객관적 규정이 상당 부분 가능한 개념이고, 따라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서의 성폭력’에 대해서 이러한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폭력의 외연을 확장할 경우에 그만큼 ‘폭력’이라는 말 자체의 무게는 좀 줄어들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나는 성폭력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 기존에 인정되던, 가령 강간이나 성추행의 무게감을 조금도 더 가볍게 하지 않으며 굳이 따진다면 그 반대일 거라 생각한다. 언어폭력이나 정서적 학대 같은 개념을 인정한다고 해서 폭행이나 납치감금 같은 범죄가 사회적으로 덜 지탄받는 것이 아니듯이. 그러나 성폭력의 외연을 확장한다는 것이 가령 의도치 않은 성적인 코멘트를 강간과 동일시한다는 뜻이라면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드라콘 법전으로의 퇴행이다. 거기에 따르는 응징이 물리적 형벌이든 사회적 지탄이든 마찬가지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악의 없는 언행들까지 폭력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역으로 폭력 자체를 일상에서 의도치 않게 생겨날 수 있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다룬다는 것이다.
 

성폭력은 분명히 폭력이고, 그에 맞는 비판과 제재가 따라야 한다는 인식은 반성폭력 운동이 확립한 소중한 성과이며, 여전히 유효하고 올바르며 필요하다. 그러나 성폭력의 개념을 확장하려면 모든 성폭력 가해자는 중죄인 취급받고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해야 마땅하다는 사회적 통념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강간이나 아동성추행 등 어떤 종류의 범죄에 대해서 그러한 통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욕설을 한 사람도 언어폭력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고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살인강도를 저지른 중범죄자처럼 비난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을 하면 피해에 경중을 둔다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째, 피해의 경중을 구분하는 것과 가해의 경중을 구분하는 것은 다르다. 즉 어떤 사람에게 사소한 말실수 하나가 폭행 만큼이나 모욕적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그러므로 양자를 똑같이 처벌하자는 것은 다르다. 둘째, 일절의 경중이 없이 모든 잘못이 중범죄로 취급되는 세상 만큼 숨 막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싫다는 사람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는 행위가 강간과 등치될 수는 없지만, 그것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인 것은 맞다는 것이다. 그것을 성폭력이 아니라 성희롱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그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고 다닌다면 비판하고 시정하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자기 조직이나 대중 단위의 성원이라면 적절한 교육과 설득을 통해 태도를 고치도록 해야 한다.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고칠 때까지 활동을 정지시키거나 배치를 바꿔서 여성들과 활동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사건의 원 가해자가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했다는 식의 말을 떠들고 다니기 전까지 피해자의 애초 요구사항은 그 정도였고, 나는 이 요구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2-4.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에 대해서


‘피해자의 진술과 해석을 일차적으로 신뢰한다’는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이 실천적으로 낳은 폐해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피해자중심주의는 노동자 계급 당파성의 급진페미니즘적인 대체물이며, 사실 당파성이라는 말 자체를 당사자주의와 혼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원본보다 조악한 대체물이다. PT독재는 노동자 출신의 인사들에 의한 타 계급에 대한 전제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주도 하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가 농민이나 소상공인보다 선하고 훌륭한 계급이라는 감정적 경외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사회주의 건설의 주역을 담당한다는 과학적 분석에 기초한 것이고 그 한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폭력 문제에서 올바르게 당파적이라는 것은 피해자의 요구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한에서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것이지, 전자를 후자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자체가 ‘올바름’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제일의 준거일 수는 없다. 그것을 혼동할 때 ‘피해자 권력화’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애당초 이 주장이 나오게 된 사회적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억압과 무시는 부르주아 여성들이 만들어낸 신화가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아직도 많은 경우에 가해자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경기장에 서게 된다. 성폭력은(일상적 성폭력이 아니라 성추행, 성희롱조차도!) 여전히 너무나 자주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별 것 아닌 문제로 취급당하고, ‘피해자가 문란해서’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당하고, 심지어 공동체의 화목을 깬다는 비난을 듣는다. 정성을 다해 사건을 해결해야 할 주체들이 가해자를 옹호하고 보거나, 피해자에게 불필요하게 자세하고 모욕적인 질문을 쏟아붓거나, 혹은 그저 고압적이거나 무심한 자세로 문제제기를 외면해버리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성폭력이 대부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폭력이 그 안에서도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저지르는 권력형 범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폭력 피해 여성의 정조를 심사하려 드는 순결주의나 성폭력 사건을 가십거리로 삼는 비뚤어진 호기심이 여전히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원인들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호소인에게 무게를 실어주지 않으면 성폭력 사건의 공정한 해결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무게를 실어준다는 것이 꼭 피해호소인을 우선 믿고 본다거나 사건의 해결 과정을 피해호소인의 의사에 종속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피해호소인을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세하게 그리고 실효성 있게 노력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개정학생회칙에서는 이를 ‘피해호소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고 표현했다. 변혁재장전 그룹의 조형석 동지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더불어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이름을 뭐라 붙이든 그런 조치들의 필요성을 포착하고 매뉴얼을 개발해 온 것은 ‘반성폭력 운동’의 하나의 성과였고, 그 매뉴얼은 핵심 원칙은 틀렸어도 새겨들어야 할 지난 실천의 교훈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거나 은폐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들을 유형화하고, 이에 대해 특별한 경계를 주문하게 된 것은 거기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2차 가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나는 그 일부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피해자에게 재차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단순히 이견을 제시하거나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2차 가해로 몰리는 것이 대표적인 폐단이고, 절차를 잘못 밟았거나 충분히 했어야 할 주의를 하지 않은 것이 적극적인 가해와 동치되는 등 과잉 책임을 지울 위험이 다분한 관례들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행동들이 있고, 그것도 상당히 자주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즉 적극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혹은 미필적 고의로 사건 해결을 방해하거나 피해자를 억압하는 행동들이 있고, 그것은 단순히 ‘실수’나 ‘잘못’보다는 구체적이고 무게감 있는 표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당한 문제제기를 폭력으로 틀어막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그런 결과를 의도하고 피해호소인의 사생활과 성격을 거론하며 인신 공격과 폭언을 퍼부었던 다함께 회원들이나 명예훼손 소송을 걸고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공개 선전을 원천 금지하려 들었던 정**와 그 대리인의 행동은 2차 가해의 명확한 사례다. 다른 예로는 피해호소인에게 조력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보고를 차단하고 사건을 은폐하거나, 절차를 고의로 사보타주하는 등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물론 ‘2차 가해’로 명명되는 행동의 대부분은 성폭력 피해호소인이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 해도 잘못이다. 하지만 이미 성폭력으로 인해 심리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에게, 바로 그 사건에 관해 문제제기를 방해하거나 억압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데는 그냥 인격권이나 발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피해호소인에게 그것은 ‘네 고통을 말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겠다’ ‘네가 폭력을 당해도 공동체는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많은 경우에, 피해호소인에게는 폭언이나 발언권 제약이나 일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가 결정적인 상처가 된다. 그 상처는 원 사건으로 인한 상처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자신의 피해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공동체가 이를 바로잡아줄 거라는 신뢰’가 인간 존엄과 얼마나 직결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나는 이러한 감정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 할 의무가 모든 사람에게 있고,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한다.
 

앞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피해호소인이 이러한 고통을 느꼈다고 해서 무조건 누군가가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2차 가해’라는 말은 사건을 무마하고 피해자를 억압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대해서, 그것이 객관적으로 그러한 행동임을 논증할 수 있을 때만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가령 문제제기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일이 밀려서 절차를 지연시켰다면, 피해호소인이 ‘나를 부차화했다’고 느껴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이것을 2차 가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 일에 좀더 우선을 둘 여지가 없었는지, 일들을 미리미리 처리할 수는 없었는지 따져야 하고, 만약 이런 점에서 잘못이 있었다면 그 잘못으로 인해 피해호소인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가 생겼다는 것을 감안해서 책임을 따질 필요는 있다. (정치적 책임이란 의도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 결과에 따르는 것이니, 이건 사실 어느 경우에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 행위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비롯해서, 나쁜 결과를 낳지만 폭력은 아닌 행동들이 무척 많고, 거기에 대해 처벌이나 제재는 아니더라도 비판이나 경계는 가능하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피해자에 대한 비방이나 인격 모욕을 퍼뜨렸거나 절차를 지연할 것을 모의한 경우 등이 아니라면, 피해자에게 직접 건넨 말이 아니라 사건에 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 단순한 이견이나 의문을 ‘2차 가해’라는 잣대로 검열하는 것은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관련된 일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든,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감안해달라고 요구할 사회적인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설령 대다수 구성원들의 보수적 견해로 인해 피해호소인이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보수적 견해가 피해호소인에 대한 책임 전가나 비방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그것은 설득과 교육과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처벌과 제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아직 명료하게 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론적 난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폭력이니, 피해자중심주의니, 2차 가해니 하는 원칙과 개념을 물신화하지만 않는다면, 원칙적인 대안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세하고 복잡한 지점들도 거기에 입각해서 하나하나 풀어가면 된다.


2-5. 성폭력 사건 해결의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성폭력 사건 해결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동은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폭력 가해자를 중죄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 사건은 공정한 해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 쪽의 진술과 해석을 기정사실화하고 사건에 접근해서는 안 되며, 물증이나 진술의 일관성, 개연성 등 객관화될 수 있는 근거를 토대로 진상을 판단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사건의 성격을 평가하는 절차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동시에, 피해호소인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필요하다. 단, 가해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신원 보호, 대리인 제도, 불필요한 질문에 대한 거부권 등 피해호소인이 안심하고 발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사건을 은폐하고 문제제기를 묻어버리려는 경향을 적극 예방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해결을 방해하거나 피해호소인을 억압하는 행동은 폭력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게 조치해야 한다.
 

내가 피해자를 지지하는 까닭은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봤을 때 피해자의 요구는 정당하고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싫다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는 행동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성폭력이고,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이에 대해 반성이 없다면 이에 대해 비판하라는 요구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SNS상의 악플 테러는 단순히 부적절한 행동이나 합리적 논쟁이 아닌 명백한 ‘폭력’이었으며, 이것이 노동자연대 스스로 시인하듯이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 조직원들 다수가 집단적으로 저지른 일인 이상 조직은 여기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
 

나는 최근에 노동자연대가 보이는 행보가 너무나 안타깝다. 단순히 노동자연대라는 한 조직이 안타까운 것만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여성 문제에 관한 후진적 의식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불려나오는 것이,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된 바람에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여성 문제 앞에서는 늘 위축되고 자신감 없어지거나 대중에게 불신을 받는 상황이 안타까운 것이다.
 

실제로 대오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성 억압에 대해 손을 놓고 있으면서,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선진 대중보다도 후진적인 의식을 고수하면서, 주류 페미니즘을 부르주아적이라고 욕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사회주의가 여성해방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의제와 운동들을 아우르는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주의의 원칙 위에서 가장 선진적인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올바름을 입증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급진페미니즘의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주류 페미니즘의 여론에 굴복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운동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운동 뒤에 있는 대중의 열망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해하고 조직하는 것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나는 사회주의 운동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한다. 2012년의 서울대 대책위 사건에서도,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에서도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란 것이 그것이었다.


결론


노동자연대가 끊임없이 그러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문제에서 전선은 분리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사이가 아니라 조직원에 의한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개인과 이를 침묵시키고 책임을 회피하려 드는 조직 사이에 그어져 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후자를 비호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는 반여성적이고 몰성적이다’라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오도된 비판을 마치 진실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운동의 대의와 결속을 해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성폭력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가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발현도 아니거니와, 분리주의 페미니즘과 투쟁한다는 것은 성폭력을 비롯해서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성해방의 올바른 전망으로 대중을 견인함으로써 그 운동을 대체한다는 것이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편승하여 그 운동의 문제제기를 짓밟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 주체가 설령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이라 해도, 분리주의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누군가가 전자가 아닌 후자의 방식으로 투쟁할 경우 나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중단하지 않으면서도 전선의 이 편에 설 것이다. 그 운동이 그런 방식으로 패퇴했을 때, 민중들의 삶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조금도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연대의, 나아가 사회주의 운동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은 대책위나 나의 선전이 아니다. 지금 노동자연대가 쏟아내는 입장과 노동자연대가 하고 있는 실천적 대응이야말로 그 어떤 선전물보다도 많은 경악과 불신을 불러들이고 있다.
 

노동자연대에 다시금 부탁한다. 조직이 신뢰를 얻는 것은 무오류의 존재라는 표상을 방어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런 조직은 없다) 오히려 과오를 빠르게 고쳐나가면서 올바른 원칙을 정립하고 실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2차 가해를 중지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그리고 공정한 사건 해결 절차를 마련하는 데 적극적이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뛰어들라. 그것이 노동자연대 조직에도 가장 나은 길이다.
 

사회주의 운동 전체에도 부탁한다.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곧 성폭력 문제를 대하는 사회주의적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입장과 떨어질 수 없다. 피해자를 이런 식으로 린치하고 사회주의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동원해서 성폭력에 관한 문제제기를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 선례로 남게 되면, 머지않아 수많은 이들이 그 선례를 따르려 할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의 폐단은 올바른 대안으로 대체되지 못해 온존되는 한편 그 성과는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에서 상당 부분 침식되어갈 것이다. 잘못된 행동으로 각인되었던 피해자 비난하기나 조직 보존주의가 슬금슬금 부활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성폭력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한참 진전된 상황에서 사회주의 운동 내에 그러한 경향이 생겼을 때 운동이 얼마나 많은 신뢰를 잃고 대중적 입지가 얼마나 훼손될지, 아니 사회주의 운동 전체가 얼마나 비난받고 희화화될지, 사회주의에서 전망을 보고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 복무하기를 원하는 여성 활동가들이 불필요한 고통과 갈등을 얼마나 겪어야 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문제제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인다’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판단에 적용되지 않으면 공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성폭력 문제를 둘러싼 혼란과 소모가 그 얼마이던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의 원칙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부디, 모호함 없는 판단을 제출해주시라!  


1) 편집자주: ‘노동자연대·대학문화성폭력대책위원회’를 말한다. 다함께·대학문화성폭력대책위원회로 활동했었으나 다함께가 노동자연대로 조직명을 바꾸면서 대책위의 이름도 바뀌게 되었다.

2) 이에 대해 다함께는 이렇게 주장한다. “당시 다함께가 정아무를 ‘방관’ 혐의로 곧바로 징계하지 않은 것은 다함께가 정아무를 ‘비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정아무의 진술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함께 중앙은 사건이 온통 의문투성이어서 정아무가 ‘공범’이라는 A의 말이든, ‘방관’만 했다는 정아무의 말이든 아무것도 믿지 못해 재판 결과를 기다려 보기로 한 것이다.”

다함께가 당시에 주장한 바가 “방관인지 공범인지 등 먼저 밝혀야 할 쟁점들이 있으니 진상조사를 거쳐 조치하자.”였다면 이렇게 쓰는 것이 타당했겠지만 실제로 다함께의 회원들이 한 일은 피해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거짓으로 단정하고, 피해자를 “다함께를 음해하려는 세력”, “여기저기 꼽사리나 끼는” 사람, 정신이상자 등으로 매도한 것이다. 재판은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의 말이 거짓이라고 단정 지은 상황에서 피해자를 압박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동자연대는 이것을 자신들의 신중함을 입증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3) “더 안 좋은 것은, 이후 우리의 대응이 조직 전체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B 개인을 통한 대응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 @@@는 B, 이**(이 자리에는 나도 있었다) 와 만난 자리에서 B에게 법적대응을 권하며 변호사 선임을 하라고 권하였고, 이**와 B가 변호사 수임에 따른 비용부담을 누가 할것인지에 대해 묻자 “모금을 하든지 해야죠”라며 마치 단체에서 일정부분이라도 어떤 형식으로든 지원해줄 것처럼 대답했다. 이 말을 믿고 이**는 B가 학생임을 감안하여 수임료 500만원을 개인 대출까지 해가며 감당했으나 이후 단체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전술했다시피 이 자리에는 나도 있었으므로, 이후 몇차례 @@@ 동지에게 모금계획이 있는지 등을 물어봤으나 나중에 확인해주겠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다.“ – <“페미니즘에 대한 엘리트주의를 경계한다—성폭력 추문을 돌아보며” 에 더하여>, 노동자연대 다함께 대의원협의회 자료집 중에서

 

4) “그러나 ***의 글에도 이미 나와 있듯이, 민사재판 변호인 선임, 그 비용 마련, 증거 수집, 증언 확보, 정당성 주장, A지지모임의 온·오프라인 상의 음해에 대한 대처, 심지어 우리 단체에 하는 보고조차 B가 직접 하는게 거의 없었다. 위의 행위는 압도적으로 대리인인 이** 씨(신문사 이** 기자와 동명 이인)를 통해 이뤄졌다. 이게 행위 주체는 온데 간 데 없는 대리주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한 성추문 사건에 대한 *** 동지의 글을 읽고>, 노동자연대 다함께 대의원협의회 자료집 중에서

“내가 B에게 행위 주체로서 분명히 의식하며 행동하라고 논쟁한 또 다른 이유는 B가 여러 차례 스스로 소송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비쳤기 때문이다. 나는 B가 정말 본인이 진실하다고 주장한다면 자신을 변호할 마지막 수단인 소송을 포기하는 것은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송 포기는 곧 자신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뜻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위의 글.
 

5) 이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한 마디. “류한수진이 중상모략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A[피해자] 핑계를 댈수록 우리로서는 A 주장의 진위 여부와 그의 동기, 의도 등을 캘 수밖에 없다.” 진위 여부야 논쟁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동기, 의도는 뭘 말하는 것이고 그건 왜 필요한 것인가? ‘경계선 인격장애’나 ‘연애결별’ 같은 말이 진상을 설명하는 데 필요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나는 이 말이 피해자에 대한 조직적 차원의 (정말로 조직 의결을 거쳤다는 의미에서 ‘조직적 차원’의!) 악성루머 유포를 내 탓으로 돌리면서, ‘네가 피해자의 말을 듣고 그랬다고 하면 우리는 더더욱 피해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6) 성폭력에 맞서는 운동을 하면서도 이 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의 특정한 운동 조류를 반성폭력 운동이라는 일반 명사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아 따옴표를 쳤다.

 

류한수진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서울대분회 평회원,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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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주류들의 행복한 만남은 가능할까?

  • 분류
    문화
  • 등록일
    2015/02/17 12:59
  • 수정일
    2015/02/17 13:0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두리반 투쟁에 연대한 자립음악가들의 이야기 <파티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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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홍대 근처에 있던 칼국수 가게 두리반이 철거 위기에 몰린다. 주인 부부는 두리반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가고, 주변의 젊은 음악가들과 학생, 작가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연대한다. 인근 지역의 재개발 소식에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농성장에 발걸음을 한 동네 주민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정용택은 이후 2년 가까이 이 투쟁과정을 카메라에 기록하게 된다.


특히 공연할 곳을 찾기 어려워 했던 젊은 음악가들에 의해 농성장은 공연장으로 바뀐다. 그들은 2010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두리반에서 51개의 밴드가 공연하는 <뉴타운컬쳐파티 51+>를 기획한다. 이 공연은 목표치를 훨씬 넘어 60여개 밴드가 참여하고 2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531일의 농성기간 동안 50회가 넘는 공연과 두 번의 '뉴타운컬쳐파티 51+'이 개최되었다.


영화 제목인 <파티 51>, 그리고 원제였던 <51+>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 이 영화는 두리반 투쟁 자체보다는 이 투쟁에 참여한 “자립” 음악가들의 삶이 이 투쟁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포커스에 맞춰져 있다.

 

사회적 연대 운동의 상징

 

하지만 이 영화의 근저에 흐르는 것은 무엇보다 두리반이 계기가 되었던 새로운 운동과 문화의 기운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 동시에 가장 큰 웃음을 불러온 장면은 최저임금 집회에 공연을 간 자립음악가들의 음악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당혹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추측컨대 감독이 이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자 싶은 것은 화석화된 낡은 운동과 새로운 운동의 충돌인 것 같다.


실제로 두리반 투쟁은 2008년 촛불투쟁 이후 사회적 연대 운동이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사회운동의 중심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운동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2000년대 들어 대사업장 정규직의 이익집단화되면서 사회변혁의 주력으로서 성격을 상실했다. 예컨대 2006년 비정규직 개악반대 총파업에서 민주노총 사업장의 참여율은 바닥을 쳤다.


이러한 시기에 2008년 촛불투쟁이 일어났다. 촛불투쟁은 87년 이후 조직노동운동이 거의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최초의 대규모 대중운동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해 사건, 노무현 탄핵 반대 투쟁 등이 있었지만 모두 2008년의 촛불 투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 투쟁은 조직에 의한 동원보다 자발적인 개인들의 집합적인 운동으로 등장했고, 이는 SNS를 통한 투쟁사업장 연대를 거쳐 2011년 희망버스 운동으로 이어졌다. 두리반은 촛불 투쟁과 희망버스 운동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투쟁이었다. 지금 수도권에서 연대운동을 하는 젊은 세대는 대부분 촛불과 두리반과 희망버스를 자기 운동사의 주요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영화에 나와 있다시피 두리반 투쟁은 어떤 기적의 순간을 보여준다. 이 투쟁은 전통적인 철거투쟁과 아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전철연 같은 세입자 단체와 당사자 뿐아니라 주인 부부 중 소설가인 유채림 씨가 소속된 작가회의의 작가들, 젊은 음악가들과 학생들이 단순히 힘을 보태는 연대단위의 역할을 넘어 함께 투쟁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그리고 1년 반의 투쟁 끝에 거둔 보기 드문 승리는 젊은 연대자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했다.

 

밀실과 광장의 행복한 결합의 순간

 

80년대에서 90년대의 청년 문화의 주류는 운동권 문화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운동권 문화의 헤게모니는 몰락하고 개인주의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나 왕가위의 영화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이정표적인 현상이었다.


최인훈 식으로 말하자면 80년대가 광장만 있고 밀실은 없던 시대라면 90년대는 밀실만 있고 광장은 없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광장만의 세상은 개인들에게 억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80년대의 시대정신이 끝나자 세상은 급격한 탈주의 시대로 변했다. 개인의 실현, 개인의 저항이 그렇게 중시된 적은 없었다.


개인의 발견은 80년대 운동문화를 지배했던 "결의", "헌신", "희생"과 같은 가치에 묻혀 있던 많은 문제들을 드러냈지만 그것이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는 사실 역시도 부정하긴 어렵다. 90년대 문화논리를 선도한 것이 상품논리와 성공신화라는 것 역시 이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을 실현하기 위해 영화나 음악 등 문화운동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80년대 운동권 문화의 주역이던 386세대는 2000년대 들어 문화시장에서 스스로 주류로 변모했다. 이속에서 독립영화나 인디음악도 주류 제도권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는 징검다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개별적 저항으로 기존의 독립영화, 인디 음악과 다른 일종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미약하게나마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런 아방가르드적인 예술 운동은 나날이 대자본에 잠식되어 가는 문화시장에서 틈새시장으로도 존속하기 어려웠다.


촛불 투쟁은 80년대 이후의 세대들에게 개인의 저항이 집단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자기 경험이었다. 촛불 시위는 한편에서 경찰과 대치해있으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하는 투쟁과 문화가 결합한 기이한 축제의 공간을 보여주었다. 이런 기운이 처음으로 운동 문화 속으로 융합된 계기가 바로 두리반이다. 요즘 집회에서 일반화된 음악회, 시낭송, 촛불미사 등 흔히 문화시위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두리반으로부터 자리잡게 된 것들이다.


<파티 51>의 주인공들인 일군의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은 이 투쟁에 대한 연대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디를 넘어서는 자립으로 정체화한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그 독립과 다른 "자립"이란 연대의 경험 속에 형성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고립된 섬처럼 개인으로 존재하던 음악가들이 연대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80년대와 90년대를 넘어 광장과 밀실의 어떠한 종합, 아방가르드 예술과 현실 투쟁의 결합이란 보기드문 황홀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늦게 도착한 영화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가 너무나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다. 두리반이니 희망버스가 상징하던 사회적 연대의 기적은 이제 빛이 바래고 있다. 촛불과 두리반과 희망버스가 있었지만 정권은 박근혜에게 넘어갔다. 세월호 투쟁이 있었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바닥이지만 여전히 세상은 천지개벽없이 돌아간다.

 

지난 몇 년 간 우리가 충분히 경험했듯이 압도적인 공권력 앞에 사회적 연대의 마법같은 힘도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이 영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두리반의 승리 이후 연대했던 음악가들은 두리반처럼 강제철거에 직면한 명동의 카페 마리로 옮겨간다. 그러나 작가회의의 힘이건 무엇이건 간에 커다란 탄압없이 행복한 공연장이 될 수 있었던 두리반에 비해 마리에서 음악가들을 기다리고 있던 덧은 자본과 국가의 냉혹한 폭력이었다. 마리는 제 2의 두리반이 될 수 없었다. 두리반의 기적은 반복될 수 없는 "예외상태"였던 것이다.

 

이는 사회적 연대운동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와 자본의 폭력이라라는 바깥의 장벽 뿐아니라 기존 운동질서의 관성이라는 내부의 벽이 사회적 연대 운동을 압박하고 있다. 예컨대 2008년 촛불투쟁과 사회적 연대의 기운을 대중적으로 받아안은 진보신당-노동당은 이제 존폐의 위기에 서있다. 촛불세대들은 제도 정치 질서로 들어가려고 혈안이 된 기성 운동권 선수들의 끝없는 재편 놀음에 지치고 알면 알수록 깨게 되는 낡은 노동운동의 현실에 실망했다. 그렇다고 그 두꺼운 관성의 벽을 깨고 독립적인 세력으로 등장하는데도 실패했다.

 

이제 사회적 연대운동의 성과는 촛불세대의 것이라기 보다 그 투쟁을 계기로 오랫동안 운동을 떠나있다 돌아온 386세대의 것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것도 아예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운동의 미래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밤섬해적단이 그토록 통쾌하게 까대는 옛 세대의 한계는 돌아온 형님, 오빠들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주류들의 행복한 연대로

 

다시 인상적인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은 약간 핀트가 어긋나는 장면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최저임금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주류 노동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집회에 참석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기존의 조직노동운동의 주변부에 얇고 불안정하게 조직되어 있는 새로운 노동자들이다. 오히려 이 장면은 낡은 운동과 새로운 운동의 충돌이라기 보다는 만나야하는 두 개의 비주류 운동이 아직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으로 읽혀져야 할 것 같다.


2012년 미국의 아큐파이 투쟁 때에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주로 유색인종으로 이루어진, 최저임금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비슷한 직종에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월스트리트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을 무심하게 남의 일처럼 바라보며 아침 출근길을 서둘렀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저런 건 배부른 WASP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비주류들의 행복한 만남은 가능할까? 아니, 이런 질문은 잘못됐다. 그들은 만나야 한다. 이미 늦게 도착한 이 영화가 미래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되려면.

 

 

 

 

 

 

 



이정인 wjddls72@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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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거대한 체스판’과 북한의 변화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5/02/09 16:46
  • 수정일
    2015/02/09 16:50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 그람시는 그의 저작 <옥중수고>에서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2014년 한 해 동안 국제 정세의 난맥상은 그람시의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 옛 질서와 새 질서가 한데 뒤엉킨 지금의 세계질서는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이 홀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포스트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 역시 미국이 혼자서 영구히 패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략가 브레진스키는 그래서 일찌감치 미국의 역할을 향후 20~30년에 걸쳐 서서히 다른 국가들에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대상은 바로 서유럽과 일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우정의 댓가’로 이들이 기존의 무임승차적 자세에서 벗어나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적극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뒤따랐다. 첫째는 러시아․중국․이란을 중심으로 반미동맹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일본이 절대로 재무장의 길로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럴 경우 미국의 유라시아 전략은 파탄 나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나 현실은 브레진스키가 우려한대로 진행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미국의 위상은 이라크 전쟁의 거듭된 실패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의 공조체제는 갈수록 더 견고해지고 있으며,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아베정권의 질주도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계를 무대로 한 ‘그레이트 게임’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역내 질서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이 와중에 단연 눈에 띄는 건 북한의 거침없는 대외 행보이다. 지난해 북한은 특유의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그 핵심은 지정학적 전략이었다.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도 평양을 거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에서 외교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진 북러 관계를 시작으로 그 충격파는 세계질서의 새로운 전환기와 맞물려 현재 동아시아 일대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꺼내든 ‘러시아 카드’


처음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북한은 북일 협상에 나름 기대를 걸고 있었다. 작년 5월29일 전격 발표된 북한과 일본 간의 ‘스톡홀름 합의’는 겉으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를 다루고 있지만 실상은 일본을 통한 북미접촉이 핵심이었다. 협상 초반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그해 8월 중순 북한은 미국과 2년여 만에 평양에서 비밀접촉을 가졌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에 북일 협상도 곧 지지부진해졌다.

북한은 포기하지 않고 미국을 향해 다시 문을 두드렸다. 9월 들어 케네스 배 등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의 CNN 방송 인터뷰를 내보냈고(북한 억류 미국인 3명은 결국 10월과 11월에 걸쳐 석방되었다), 급기야 강석주와 이수용을 각각 유럽과 뉴욕으로 보내 미국과 막후접촉을 시도했다. 강석주는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를 봉합시킨 ‘제네바 합의’ 때 미국과 직접 상대했던 현 북한 외교의 실세이며, 이수용은 유엔 총회에 15년 만에 참석한 북한 외무상이었다. 북한은 중량감 있는 외교 인사들을 급파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반전을 노렸지만 되돌아온 건 미국의 냉대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 오바마 정권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및 중동 문제로 코너에 몰려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러시아와의 갈등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이라크 및 시리아의 상당 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이슬람국가(IS)의 등장은 사실상 제3차 이라크 전쟁을 촉발시키며 미국의 중동전략을 전면 재수정토록 강제했다. 가뜩이나 국내 여론으로부터 외교적 무능을 질타당하는 위기상황에서 오바마 정권은 북한 문제만큼은 기존대로 압박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북한 입장에서 최후의 선택지는 러시아뿐이었다. 미국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 끝내 무위에 그치고 일본과의 관계개선도 한계에 부딪친 상황에서 한국이나 중국도 대안이 될 수는 없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는 2013년 제3차 핵실험 이후 역대 최악이었다. 북한은 곧바로 러시아를 향한 플랜 B를 가동시켰다. 뉴욕에서 별 성과가 없었던 이수용을 서둘러 러시아로 보냈고, 그 다음에는 최룡해를 특사 자격으로 보내 푸틴을 만나 양국 정상회담 개최까지 의제에 올리는 등 북러관계를 급진전시켰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개선이 급박하게 전개되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사건은 아니었다. 사실 러시아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꾸준히 북한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북한의 부채 90%(약100억 달러) 탕감 조치를 시작으로 러시아는 그동안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한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도 참여의사를 밝혔다. 당시 북일협상을 통한 북미접촉의 향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의 접근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러시아를 한반도 깊숙이 끌어들임으로써 북한은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한껏 더 높였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그토록 바라던 경제회생의 종자돈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회생이 절실했던 김정은의 고군분투


지난해 12월17일 김정일 사망 3주기 이후 북한은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일부 보수층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북한붕괴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는 지난 3년을 거치면서 확고한 통치 권력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십 수 년 간 비상체제로 군림해온 ‘선군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당 우위의 국가체제로 복귀하는 ‘선당정치’로 체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재편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장성택 처형 때는 북한 내부에서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주민 뿐 아니라 핵심권력층까지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음이 재차 확인되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출범과 동시에 막중한 과제도 짊어져야 했다. 그것은 경제회생을 통한 인민생활의 향상이었다. 북한은 김일성 출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원년이라고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해왔으나 2011년 12월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이 약속을 잠시 유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북한이 수령 유일 지도체제를 고집하고 있고, 고도로 통제된 폐쇄적 사회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경제회생이야말로 체제존속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정은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경제발전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당정치로 당의 제도적 통치 기능이 강화되면서 그동안 당·정·군 등으로 비효율적으로 분산된 경제 부문들을 당 내각 주도의 경제로 일원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가장 핵심이라 할 군 경제에 속한 각종 이권 뿐 아니라 장성택 숙청을 계기로 당 행정부 일각에서 특권으로 쥐고 있던 기업소들도 당 내각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사전 정지작업을 통해 김정은은 북한의 국민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해가는 동시에 국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집권 3년 동안 대단히 빠른 속도로 경제개혁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특히 지난해 발표된 5.30 조치를 놓고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가히 북한의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강령성 문헌”(2014년 10월20일자 <한겨레> 칼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책의 집행 결과 현재 북한 사회에서는 생산권, 분배권에 이어 무역권까지 원래 국가 몫이던 권력이 하방되어 공장과 기업의 독자적인 자주경영권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적극적인 경제회생 노력은 집권 이후 3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1% 가량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시장의 기능을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경제조치를 취한 것은 김정일 집권시절에도 이미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박봉주 내각총리가 경제전반을 이끌었다. 2002년 7.1 조치가 대표적이다. 밖으로는 소련의 붕괴와 안으로는 고난의 행군에 직면하여 기존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치명타를 입은 반면, 이른바 장마당의 활성화로 북한 사회 전반에 시장지향적인 경제관념이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경제개혁 조치의 등장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자본의 부족이다. 외부 지원이 없다면 지금처럼 당장의 ‘먹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1월 최룡해의 방러를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 간에 이뤄진 합의내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시사인>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서 양국은 시베리아 철도와 북한 철도의 연결을 시작으로 시베리아 가스관 연결 사업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시베리아 개발에 필요한 산업인력도 북한의 노동인력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하나 같이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되는 거대 프로젝트다. 북한으로서는 드디어 막대한 산업자금, 즉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물론 러시아가 북한을 지렛대 삼아 극동지역에서 추진하려는 야심찬 계획은 다가올 세계질서의 새로운 재편과 긴밀하게 연동된 것이었다. 


“세계질서의 일극 지배는 실패로 끝났다.”


지난해 5월22일 국제경제포럼이 개최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표한 푸틴의 선언이다. 러시아판 ‘다보스포럼’이라는 이 자리에서 푸틴은 시종일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선 푸틴의 도전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막이 올랐다. 러시아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이는 소련의 해체 이후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국경선의 변화를 가져왔다. 굳건해 보였던 ‘포스트 냉전체제’의 질서는 러시아의 완력 과시로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현재 러시아 국경 상공에는 핵전략 폭격기가 재배치되었고, 서방과는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유라시아 서쪽에서 러시아가 여전한 군사강국으로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면, 유라시아 동쪽에서는 중국이 경제대국으로서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 분기점은 작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였다. 이때 중국은 4조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외환보유고를 밑천 삼아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역사적으로 화려했던 당나라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자 이제는 중국이 국제규범의 ‘규칙 제정자’로서 그 위치가 격상되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동시에 앞으로 아시아 일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은 자연스레 양국관계를 굳건하게 만들고 있다. 냉전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 오늘날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소련과 중국은 스탈린 사후 서로 반목하는 불편한 관계였다. 심지어 중국은 1979년 미국과 수교하며 소련 봉쇄에 나선 미국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이 손을 잡고 미국에 맞서는 형국이다. 지난해 격화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중러 관계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산유국 러시아와 공업국 중국의 경제협력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고, 양국 군사협력은 올해 지중해와 태평양에서 합동 해상훈련을 계획할 정도로 진척되고 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은 러시아부터 제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유럽연합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에 착수한 데 이어 러시아의 핵전력 증강을 빌미로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핵무기 현대화 작업 계획까지 발표했다.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장하며 노벨 평화상을 선불로 받았던 오바마의 역주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에 대해선 직접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현재 막바지 단계에 와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을 서두르며 우회적인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당장은 중국봉쇄의 기회로 삼고 나중에 중국이 협정 가입을 희망할 경우에는 미국식 경제체제를 밀어붙여 중국의 체질 변화를 강제하겠다는 심산이다.

해를 넘겨 연일 하락하고 있는 국제유가에도 다분히 미국의 입김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다. 이번 국제유가 급락사태는 명목상 미국의 셰일에너지 고사를 겨냥한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공급과잉으로 촉발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미국은 사태를 수수방관할 뿐이다. 저유가 피해의 직격탄을 루블화 폭락 등 러시아가 고스란히 맞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논리만 갖고서는 사태추이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국제적인 수요위축에 따른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해오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치킨게임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만일 러시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면 세계 경제에 미칠 후폭풍으로 미국의 전략적 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저유가를 통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것 역시 미국이 보기에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북한의 지정학적 요충지론


당장 미국의 칼끝이 러시아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에게 석유 및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수송로 확보는 사활을 건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을 밀어붙인 것도 실은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으로 기울어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에너지 수송 루트가 불안정해지자 흑해를 통한 새로운 수송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푸틴이 터키를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더 눈독을 들이는 것은 시베리아 및 북극 일대의 에너지 자원이다. 러시아의 미래가 북극 개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판매처인데 성장잠재력이 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때문에 ‘아시아로의 귀환’은 정작 러시아의 몫이 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동 문제로 발목이 잡힌 사이에 러시아는 전략적 이해를 위해 거침없이 동진을 선택했다. 이때 그 핵심 고리가 바로 북한이다. 시베리아와 북극의 에너지를 동아시아 일대로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서는 그 길목에 위치한 북한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까닭이다. 이로 인해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새롭게 재평가되었고,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등장이 미칠 파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 단초는 지난해 12월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미국과 쿠바의 관계정상화 선언에 있다. 미국이 53년 만에 쿠바와 적대관계를 청산한 것은 단순히 오바마의 ‘업적 남기기’ 차원이 아니었다. 백악관 스스로 인정했듯이 “미국의 봉쇄 정책은 중남미 지역과 전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쿠바는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붕괴되기는커녕 반미화되는 중남미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결정적으로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중국의 등장은 이 지역에서 독보적이었던 미국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으로 고통 받는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산유국에게 중국은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북한 진출에 속도를 내는 러시아의 존재는 중남미 지역을 파고든 중국에 비견된다. 이 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북 봉쇄정책을 견지해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국가도 아니고 러시아를 미국이 물리적으로 막기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특성상 그 주변 안보환경이 쿠바와는 전혀 다르다. 북러 관계의 급진전은 중국과 일본에게 새로운 대외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단적으로 러시아는 에너지 수송로 확보를 명분으로 극동함대의 전력을 강화하며 북한과 군사협력까지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지정학적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대북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는 중국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지정학적 열세를 우세로 전환시켜 주변 강대국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게 아니라 새우 싸움에 고래가 뒤집힌다는 논리다. 냉전이 한창일 때도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시계추 외교를 감행했던 북한이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의 귀환은 기존의 동아시아 역내 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대북정책 수정이 머지않았다는 주장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워싱턴 정가에서 북한과의 대화 타진 쪽으로 기류가 바뀌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중남미 지역처럼 동아시아에서도 미국의 고립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택 :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수 있다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냉전적 대결구도는 맹위를 떨쳐왔다. 소련의 빈자리는 북한의 핵개발로 채워졌고, 미국은 북핵을 문제 삼아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를 마련하며 동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개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방안도 줄곧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핵의 비확산으로 쏠려 있었다. 북핵문제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지부진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핵능력을 고도화했다. 지난 1월6일에 발표된 한국의 ‘2014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경량화 기술은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공식 확인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의 향상된 핵 기술과 러시아의 북한 진출은 지난날의 냉전질서 속에 기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균열을 내고 있다. 여기에 일본 자민당의 선거 압승은 미국의 셈법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넘어 내심 핵무장까지 노리고 있는 아베정권이 러시아의 남하로 인해 독자적으로 북일 관계 개선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소리 소문 없이 지난해 12월 러시아 석탄을 북한의 나진항을 거쳐 포항으로 수입하며 북한과 러시아의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친미국가들조차 미국의 대북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게 된다면 동아시아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미국의 위상은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을 통제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다. 오히려 북핵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때마침 북한은 2013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발전과 핵무력의 병진노선’(이하 병진노선)을 결정한 이래 핵을 통해 국방비를 줄여 남는 재원을 경제에 돌리고 있다. 병진노선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들은 그것이 잠정조처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사실상 개혁개방 실험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내놓은 제안도 위협용 엄포보다는 경제회생을 위한 유리한 대외환경의 조성측면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러시아·중국의 반미동맹이 더 강화된다면 미국은 북한의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쿠바처럼 한순간에 북한을 끌어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은 쿠바와 달리 핵보유로 인해 더 많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친미국가 북한’은 미국으로서는 꽃놀이패가 될 수 있는 만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것은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미국의 고립을 타개할 수 있는 반전카드이자 러시아와 중국을 일대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반격카드가 될 수 있다. 또한 북핵을 이유로 독자적인 핵무장론을 굽히지 않는 한국과 일본의 우익세력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회심의 일격이 될 수도 있다.

오바마의 개인적 업적 쌓기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비록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는 정황상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오바마 정권은 핵협상을 고리로 하여 이란과의 관계개선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이참에 향후 북한마저 북미수교에 이르는 양자협상을 급진전시킨다면 오바마는 냉전 잔재를 청산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일정에 올려놓고 추진할 수는 없는 만큼 일단 대북 강경메시지를 통해 기선제압에 나서고 있다. 영화 <인터뷰> 논란이 불거지자 미국은 신속하게 추가 대북제재에 나섰다. 올해 들어 남북대화 흐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이를 조기에 차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지금 현 단계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러시아 및 중국과 관계 문제로까지 직결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세계와 위험한 한반도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되레 북한을 자극하여 제4차 핵실험을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고 있다. 미국에게 북한의 친미화 카드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현 상황에서 곧바로 써먹기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판을 아예 뒤집는 ‘게임 체인지’를 노린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동안 북한은 다시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작년 하반기부터 가속화된 북러 관계의 동력도 상당 부분 잃을 수밖에 없다. 현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북한도 핵실험 카드를 쉽게 꺼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다간 미국의 페이스에 말릴 수 있고, 무엇보다도 급한 건 미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여건이 여전히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북러 관계의 급물살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질서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어떠한 방향으로 귀결되든 결국은 세계질서의 새로운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과 경쟁으로부터 강한 규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아시아 일대의 모든 국가들은 핵을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핵무장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전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군비경쟁을 펼치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둔화 속에서 자국민의 불만을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로 돌파하려는 경향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더 크게 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한반도 상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성렬 tjdfuf@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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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6일 간의 서울시청 농성이 남긴 것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5/02/06 13:28
  • 수정일
    2015/02/06 13:3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토론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었다>


지난 1월 7일 저녁,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이 주최한 <서울시청 점거 농성의 의미를 짚어보는 토론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었다!’>가 진행되었다. 작년 12월 6일에서 11일까지 6일 간 계속된 서울시청점거는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이하 ‘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킨데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 제정과정에서부터 보수 기독교 혐오세력들의 혐오발언과 폭력을 수수방관하던 서울시가 급기야 시민위원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인권헌장을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폐기시킨 것이다. 여기에 박원순 시장이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은 끓어오르던 성소수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은 12월 6일, 서울시청 로비에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걸고 농성을 시작했고, 박원순 시장 면담과 사과, 인권헌장 선포, 헌장 제정과정에서 벌어진 혐오폭력에 대한 엄정 대처를 요구했다. 농성은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참여로 유지되었다. 5일째 되는 10일, 박원순 시장은 농성단 대표를 만나 사과하고, 페이스북에 “농성의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 다음날인 11일에는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성소수자 단체들과의 면담에서 2015년 1월부터 간담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서울시청 점거농성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이 토론회에서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의 일란, 동성애자인권연대 나라 활동가가 발제를 하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의 가람,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 활동가가 발제에 대한 토론을 맡았다. 서울시청 점거농성의 현장에 함께 하고,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토론회장을 가득 채웠다.


‘성소수자’에게 농성의 의미
 

토론회는 기존에 성소수자 운동에서 농성이 자주 있는 투쟁방식은 아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성소수자에게 농성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짚으면서 시작되었다. 일란 활동가는 성소수자 운동에서 ‘농성’이라는 투쟁방식은 다른 노동자 투쟁 등에서의 ‘농성’과 그 의미가 달랐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소수자운동의 농성은 필연적으로 커밍아웃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농성 그 자체로 ‘집단적 커밍아웃’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일란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의 농성은 비가시화 되었던 존재들이 가시화되는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장애인 운동, 특히 이동권 투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명숙 활동가는 이번 농성에 대해 그 자체로서 성소수자가 투명인간이 아닌, 저항하고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협의의 정치의 의미에서도 성소수자가 더 이상 ‘쉽게’ 무시될 수 없는 유권자 집단임을 알리는 행위이기도 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농성 이후에도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사업이었던 성북구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센터’ 예산이 폐기되는 등 여전히 성소수자는 상대적으로 작은 유권자 집단으로, ‘교묘하게’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농성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성소수자가 주체가 된 농성의 특징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가람 활동가는 농성이 성소수자에게 낯선 투쟁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카페, 바, 클럽과 같은 특정 공간/지역을 점유하고 모이는 것은 익숙한 일이며, 이렇게 성소수자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재미를 만들어냄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청의 농성 역시도 성소수자들의 모임 장소로서 분노와 긴장뿐 아니라 희로애락이 동시에 드러날 수 있는 재미있고, 즐거운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명숙 활동가는 이에 대해 각 저항 주체들은 모두 자기고유의 방식으로 투쟁하며, 이러한 투쟁의 다름이 위계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됨을 지적했다. 오히려 어느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를 넘어서 다양한 싸움에 대한 상상력을 확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인권은 목숨이다
 

여러 토론자들은 이번 농성에서 인상적인 슬로건으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말을 꼽았다. 이는 농성 첫 날부터 서울시청 로비에 내걸린 슬로건으로 농성기간 동안 자주 언급되었다. 일란 활동가는 이 슬로건을 이야기하며 이번 서울시청 점거 농성이 성소수자 운동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장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처음 농성장에 걸린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슬로건부터, 농성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농성장에 부착한 문구들은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드러내고, 설명해내는 구체적인 언어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슬로건은 단순히 성소수자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는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일란 활동가가 지적했듯이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는 슬로건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권리로만 여겨졌던 생존권의 범위를 문화적, 사회적 영역까지 확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즉, 경제적 요구에 비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의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슬로건이었다. 가람 활동가는 성소수자들 역시 성소수자 ‘인정투쟁’이 ‘경제적 생존권’에 비해 낮은 수준의 요구라는 내면화된 낙인을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번 농성투쟁을 통해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임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운동과 주체의 성장
 

이번 농성이 성소수자 운동과 주체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데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 했다. 이번 서울시청농성은 2007년에 있었던 누더기 차별금지법 반대 투쟁, 2011년의 학생인권조례 원안 통과를 위한 서울시의회 점거투쟁 등을 통해 성장해온 성소수자 운동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나라 활동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혐오세력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번 농성을 통해 차별과 모욕에 맞서 싸우려는 성소수자 대중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무지개농성은 단순히 성소수자운동 활동가 몇 명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으며,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청농성은 지금까지 운동의 성장결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자체로 성소수자 주체를 변화시키는 경험이기도 했다. 가람 활동가는 2007년 차별금지법 투쟁, 2011년 서울시의회 점거농성, 2014년 서울시청 점거농성까지의 투쟁에서 성과는 투쟁으로 얻어진 제도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투쟁을 통해 만나고 힘을 받게 된 성소수자 주체들의 변화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농성의 과정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농성장을 지나며 농성의 이유와 성소수자의 개념에 대해 묻는 시민에게 당당하게 성소수자의 의미를 설명하며 커밍아웃을 하던 농성단의 모습을 꼽았다. 이러한 모습은 성소수자로서 당당할 수 있는 집단이 만들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농성은 성소수자 운동과 다른 운동과의 연대가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보여주었음이 지적되었다. 나라 활동가는 환경, 여성, 장애운동 등 다양한 시민단체의 연대,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의 농성물품 지원, 시청 바로 옆 프레스센터에서 농성하던 희망연대노조 씨앤엠 지부의 연대를 이야기하며, 이번 농성을 통해 성소수자 운동이 쌓아온 연대의 폭과 깊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이번 농성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 투쟁의 대상이 박원순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간 시민단체 출신의 진보적인 인사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던 박원순이 ‘불통’의 대상이었기에 이번 투쟁은 소위 ‘진보진영’, 시민사회 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많은 토론자들 역시 이번 투쟁의 목표와 그 성과로 ‘진보’진영 내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이 ‘진보’의 기준점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나라 활동가는 농성에 들어가면서 애초에 박원순 시장 면담 등 4가지 요구안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실질적인 농성의 목표는 성소수자의 투지를 보여주고 우리의 편이 누구인지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목적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가 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켰을 때부터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비판 성명서를 냈고 농성을 포함한 성소수자 운동의 적극적 활동으로 이 문제가 커다란 쟁점으로 부상했다. 나라 활동가는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장되었으며 따라서 이는 시민사회운동/진보진영의 중요한 준거점이 될 수 있었음을 이번 농성의 큰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보수세력’에 맞선 ‘진보’의 단결을 주장하며 성소수자의 문제제기를 억제하려는 시도에 대한 날선 비판도 나왔다. 명숙 활동가는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진보’진영, 시민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특히 보수와의 편 가르기를 통해 정권교체만을 강조하며 ‘진보’ 내부의 문제제기를 억압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의제야말로 옛 민주화운동세력들인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세력과 타협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운동/진보진영의 준거점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의제를 억압하는 목소리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왜곡이었다는 것이다. 


투쟁 과정의 민주주의
 

토론 과정에서 가장 논쟁적인 제기된 문제 중 하나는 투쟁 과정의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참여자들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하고 의사소통과정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이번 시청점거농성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발제과정에서 나라 활동가는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부분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농성단의 주요 활동가들이 박원순의 면담요청을 예상치 못하고 당황했던 부분들, 농성장 전체 토론의 분위기와 상반된 농성 종료 결정이 충분히 토의되지 못하고 집행되었던 지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플로어 토론의 참가자 중 몇몇은 농성 중단 결정이 충분히 민주적으로 토론 결정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여성주의저널 일다 기자인 나랑은 농성 5일차인 10일 저녁 박원순의 ‘사과’이후 농성자들의 전체토론에서 ‘박원순의 사과는 형식적일 뿐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방향과 계획도 제시하지 않았기에 농성을 유지하자’는 입장이 다수였음에도 다음날 그와 상반되는 농성중단 결정이 내려졌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농성을 유지하자는 견해가 다수임에도 농성이 일방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 투쟁에서 합의안이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되었는데도 사측과 합의가 진행되는 것과 유사한 상황임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부족한 점은 맞지만 더 싸울 수 있었을지에 대해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음을 지적했다. 특히 형식적이더라도 박원순이 사과를 한 이후에 사회적 여론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리고 그러한 여론 변화와 고립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 상황에서 승리와 성과의 의미를 지킬 수 있었을지 고려한 끝에 내린 결정임을 밝혔다. 물론 냉정한 판단은 필요하며, 판단 결과에 따라 투쟁을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반 상황이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유지 불가능성을 설득하는 과정 역시 그곳에 있던 활동가들의 역할이어야 했을 것이다.
 

조합원 여부가 명확한 노동조합의 투쟁과정과 참가자 범위가 불분명한 시청의 점거농성 과정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었다. 물론 시청 농성장의 참가자들의 경우, 멤버십이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질문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11년, 많은 사람들이 월가점령운동(Occupy)에 주목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무작위로 모인 사람들이 보여준 민주적 의사결정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번 시청점거농성은 갈수록 연대의 중요성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우리의 투쟁과정에서 민주적 의사수렴을 어떻게 이뤄낼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2015년
 

열띠게 진행된 토론회는 2015년에 어떻게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마무리 되었다. 한 편으로는 보수 혐오세력의 논리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가해지고 있는 낙인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고 이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보수 혐오세력이 사용하는 단어와 논리 중에는 ‘종북 게이’, ‘군대에 에이즈가 퍼져서 김정일만 좋아한다’는 등의 소위 ‘종북’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미 진행중인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싸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현재 성북구청장은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라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대해 급작스럽게 예산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는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센터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참여로 기획된 이 사업에 대해 성북구청장은 ‘목사들과의 약속’을 이유로 예산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인권도시’ 등을 표방하면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은 끊임없이 분리 배제하는 흐름에 대한 투쟁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다양한 평가지점과 앞으로의 과제들을 갈무리하면서 2015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아이다호데이에 혐오에 맞서는 적극적인 활동을 만들어 갈 것을 이야기하며 막을 내렸다.
 

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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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김백선 사무장 인터뷰 (3) : 원하청 공동투쟁체는 현중 새로운 주체형성의 맹아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5/01/28 16:04
  • 수정일
    2015/01/28 16:16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노동] 원하청 공동투쟁체는 현중 새로운 주체형성의 맹아

(1, 2편에 이어서)





 비정규직의 입장에서 보면 대공장 노조는 어용과 민주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은 어떠하였고 결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여전히 비정규직 독자성의 현재적 의미를 설명해 달라.

정병모가 어용보다 더하다 하청노조 조합원들 중에 이러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즉자적인 분노이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어용과 민주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어용노조와 민주노조는 다르다. 오히려 민주노조인데도 조합주의를 극복하지 못 해서, 조합주의 틀 안에 갖혀 있는 경우라서,사고도 많이 치는 것이고, 비정규직 문제에 특히나 사고를 많이 쳤다. 그래서 현대미포조선에서는 노조가 어용노조이기 때문에 아주 대놓고 부결투쟁을 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부결투쟁을 하더라도 그렇게 부결투쟁을 하지 않는다. 대중적 선동을 할 때, 이 집행부가 회사의 똘마니라면 말을 섞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민주파이기 때문에 회사로부터의 독립성, 자주성을 강조한다. 실천적 관계가 확 달라지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이지만 조합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게 문제의 본질이다.

젊은 현장실천단 동지들의 주장과 사업제안들이 무시당하거나 진압 당했다. 예를 들어 현장실천단이 집행부 선봉대의 역할이었으나 실천단 전체모임을 가진 것이 1222일이 처음이었다. 임단투 정리국면으로 갈 때 처음으로 현장실천단 전체 총회를 했던 것이다. 정리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설득이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방식이다.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파업 과정에서부터 전체 총회 혹은 부서별 조합원 총회를 열어 투쟁을 상승시키기 위한 사업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총회 형태들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청노조와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는 결국에는 긴장관계일 수밖에 없다. 하청노조의 독자성은 하청노조의 생명이다. 독자성이 없다면, 광의의 자주성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규직 노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현실 역관계 속에서 의존성이 커진다.

그래서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를 보면 독자성을 확고히 가지면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조는 힘이 있고 하청노조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조 투쟁 과정 속에 내부 변수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청노조가 독자성을 갖는 경우, 정규직 노조에게는 외부적 변수가 되고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정규직 노조에 대한 의존성을 갖는 것은 하청 판 조합주의일 수 있다. 실리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힘이 센 정규직 노조에게 잘 보여서 따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성이 거세되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에게 외교를 잘하면 알아서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이니까.

하청노조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이유는,현실의 힘이 정규직 노조에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나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과 실리를 통해 얻는 것은 계급적으로 명확히 다르기 때문이다. 계급으로 자각되고 계급으로 조직되는 것과 아닌 것. 그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계급적 수단이 하청노조 독자성이고 이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깃발에는 노동자는 하나다란 문구가 있다. 이것이 공문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노동자계급이라는 자각이 필요하고 계급적 이해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실리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대공장 조합주의와의 투쟁, 노동조합관료주의와의 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하고 성장해온 노선이 비정규직 독자성이다. 조합주의와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조직 하고 대중성과 계급성이 서로 긴장감을 갖는 것.긴장관계 속에서의 실천적 조화로움을 가져야 한다.  ​





 무엇보다 현대중공업에서 주체 구성의 문제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이에 대한 자기계획을 말해 달라.


정규직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하청노조 조합원들을 계급적으로 구성하는 매개고리는 원하청 공동투쟁이고 이를 위한 공동투쟁체의 건설이라고 생각한다. 원하청 공동투쟁체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급적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현대중공업 원하청 임단투가 이러한 과정을 밞아 왔다고 생각한다.​.


하청노조 싸움에 결합하는 현장실천단 동지들은 순수한 마음이 있고 싸울 때 싸워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원하청이 함께 싸워야 한다는 본능적인 계급적 자각이 있다. 해양사업부 같은 경우, 현장실천단 내에서 원하청 공동투쟁이 너무 쉽게 나온다. 해양에서는 정규직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원하청 공동투쟁체가 향후 새로운 대안적인 주체형성의 맹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하청 공동투쟁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와 함께 이데올로기 투쟁, 정치 교육의 문제가 중요하다. 학습하고 선전하라! 원하청 공동투쟁체가 정치선동 정치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원하청 공동투쟁의 경험과 공동투쟁체의 건설은 정규직 젊은 노동자들이 자기 운동의 정체성을 갖는 관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운동관이 되려면 정치선동과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작년 10월달 정당 정치조직 간담회가 있었다. 현대중공업에 제발 제 단위에서 정치적인 유인물을 보급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이러한 활동이 부단히 축적될 필요가 있다.


80년대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성장한 고참 활동가들은 막연한 노동해방의 기운도 있었지만 지금 남아있는 그 세대는 실패하고 파산한 조합주의자들이다.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다 사고를 쳤다. 그 세대가 그대로 현장실천단 젊은 동지들을 가르치고 전수한다면 이 운동은 망하게 될 것이다. 이미 현장실천단 젊은 동지들은 선배들의 한계들에 대해서 느끼고 있다. 이들과 단절된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자 민주주의 경험 속에서 성장한 자발성이 만나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이후의 전망은 현대중공업 내에서 사회주의적 전망을 갖는 원,하청 공동투쟁체가 구성되고 이들의 실천 속에서 지도력을 인정받는 시간이 올 것이다.이것은 대공장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현대중공업에서 새로운 주체의 구성과 관련해서 사회주의적 전망을 갖는 원하청 공동투쟁과 공투체의 건설이 하나의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공장사내하청투쟁 과정에서 원하청 공동투쟁은 실천적으로 비정규직 독자성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파괴하는 모습으로 드러났다기아차 11노조의 경험은 그 반동적인 모습의 예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중공업에서 제기되는 원하청 공동투쟁, 사회주의적 전망을 갖는 원하청 공동투쟁체의 건설은 자동차와 어떤 조건의 차이가 있고 또한 자동차에서 드러났던 반동적인 경험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주도하는 주체들의 지향의 문제가 크다. 11노조가 노동조합의 조직체계에 그대로 대응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주도하는 주체들의 정치적 전망이 핵심이다. 이것이 원하청 공동투쟁과 공투체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자동차 업종과 객관적인 조건의 차이가 있다. 조선사업장의 경우, 원하청 공동투쟁을 하지 않으면 조합주의도 하지 못하는 조건이다. 조선소는 라인이 아니고 정규직 자체가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1,700, 하청노동자는 15,000명이고 현대미포조선은 정규직 2,800, 하청노동자들은 10,000명이다. 하청노동자들 조직하지 않으면 답이 안나온다. 정규직 노조도 자본과 싸우려면 하청조직화, 원하청 공동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고 이것이 자동차와의 조건의 차이이고 이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원하청 공동투쟁과 공동파업의 경험 속에서 조선사업장 운동의 전망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공동파업을 위해서라도 파업위원회나 공장위원회의 조직적 전망을 가져야 하고 이 운동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조건이다. 아래로부터 직접행동이 성장하면 할수록 정규직이나 하청노동자들 스스로가 자기 필요에 의해서라도 원하청 공동 파업위원회나 공장위원회를 요구할 것이다.


현대미포조선은 베트남에 비나신 조선소가 있다.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들은 경제 불황 이야기가 나오면 본능적으로 수주가 안되면 비나신 것 가져오면 되겠네, 이윤이 안되면 비나신 물량을 줄이면 되지라고 말한다. 젊은 하청노동자들의 입에서 툭툭 튀어 나온다. 계급관계에서도 이중적인 위치가 있다. 사내하청이지만 아제국주의의 국가에 있는 노동자로서의 위치도 있다. 이것을 자본이 의식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부분들이 있고, 정규직으로 가면 더 심하다. 정규직 어용집행부 때 회사와 함께 수주하러 다닌다. 회사가 잘 돼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깨기 위해서라도 사회주의적 전망을 가져야 한다.


공장위원회 운동의 조직적 전망이 필요하다. 조선소에서 정규직 조합원, 하청노동자들이 분리가 되어 있고, 하청노동자 비율이 과반수가 넘어선 상태에서 현장 대표성을 갖는다는 것은 조합주의적 질서에서는 불가능하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정규직 따로, 하청 따로 갈 수 없다. 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이 함께 결정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 이것이 공장위원회로 가는 가교가 될 수 있고 원하청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성을 구성하기 위해서라도 공장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 이 공장위원회 운동은 원하청 공동투쟁과 공투체 건설을 주도하는 주체들이 사회주의적 전망을 가지고 정규적인 정치활동을 강화할 때 등장 할 수 있다.
 


 현장에서 1만인 현장선언운동과 거점농성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투쟁의 미와 올해 하청노조의 전망을 이야기 해 달라



정규직 임단협은 하청노동자들의 기대와 관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지만 다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청노조의 독자적인 투쟁은 현대중공업 임단투 전선을 사수하는 역할을 했지만 정규직이 파업했을 때 하청노조의 파업은 표도 나지 않았다. 역량의 한계였다. 정규직 집행부는 원하청 공동요구안을 협력사 처우개선이라는 기만적인 문구로 폐기했다. 현장 1만인 선언운동은 이제 하청노동자가 직접 투쟁해서 자신의 요구를 스스로 쟁취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이번 투쟁에서 무엇을 교훈으로 남겨야 하느냐? 민주냐 어용이냐는 바람직한 평가는 아니다. 제대로 된 평가는 하청노동자가 참여하고 노조로 단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청노조가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의 수단이 현장 1만인 선언운동이다. 1만인 선언운동은 현장에서 문화제 형식으로 하고 있다. 이는 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좀더 많이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청노조 쟁대위원들이 현장에서 싸워 쟁취했던 노동3권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의 성격도 있다. 1만인 현장선언운동은 잠정합의안 나오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좋다가 잠정합의안 나오고 나서는 주춤하다가 다시 부결된 이후에는 분위기가 좋다.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힘을 받고 있다.


거점농성투쟁은 정규직 임단투가 잠정합의 되자 마자 하청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기 시작했고 하청노조 지도부를 중심으로 해서 분명하게 항의하고 투쟁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 크다.


하청노조의 가장 핵심적인 자기 전망은 하청노동자조직화다. 작년 1년 하청노조 독자 임단투를 통해 현장에 기반을 가진 대중조직으로 거듭났다. 올해는 더 전면적으로 확대 해 노동3권 쟁취 투쟁을 전개 할 것이다. 올해는 50개 업체 교섭, 500명 조합원 조직화를 목표로 힘차게 달려 나갈 것이다.


50개 업체 교섭은 단순한데, 정규직 노조 상집이 50명이다.  50명의 상집이 쟁대위 속보 배포, 중식시간 선전전을 다한다. 우리 하청노조도 그 숫자만큼 조직해보자는 것이다. 하청노조가 현장 대표자들을 양적으로 확대되면 하청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질적인 변화를 하게 될 것이다. 하청노조 현장대표자들 50명이 퇴투를 한다. 상상해보라! 대중과의 관계에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고 100개 업체 교섭, 조합원 1,000명 조직화는 직선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고 이것이 돼야 실질적인 원하청 공동투쟁이 될 수 있다.


정규직 현장실천단도 하청노조 빡쎄게 싸우지만 너무 소수다라고 말한다.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양적으로 확대되면 정규직 현장실천단과의 실질적인 공동투쟁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 독자성과 원하청 공동투쟁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작년 임단협 투쟁을 통해서 경험했다.

인터뷰 & 정리 : 조성웅 siwano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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