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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6일 간의 서울시청 농성이 남긴 것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5/02/06 13:28
  • 수정일
    2015/02/06 13:3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토론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었다>


지난 1월 7일 저녁,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이 주최한 <서울시청 점거 농성의 의미를 짚어보는 토론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었다!’>가 진행되었다. 작년 12월 6일에서 11일까지 6일 간 계속된 서울시청점거는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이하 ‘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킨데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 제정과정에서부터 보수 기독교 혐오세력들의 혐오발언과 폭력을 수수방관하던 서울시가 급기야 시민위원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인권헌장을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폐기시킨 것이다. 여기에 박원순 시장이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은 끓어오르던 성소수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은 12월 6일, 서울시청 로비에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걸고 농성을 시작했고, 박원순 시장 면담과 사과, 인권헌장 선포, 헌장 제정과정에서 벌어진 혐오폭력에 대한 엄정 대처를 요구했다. 농성은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참여로 유지되었다. 5일째 되는 10일, 박원순 시장은 농성단 대표를 만나 사과하고, 페이스북에 “농성의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 다음날인 11일에는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성소수자 단체들과의 면담에서 2015년 1월부터 간담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서울시청 점거농성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이 토론회에서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의 일란, 동성애자인권연대 나라 활동가가 발제를 하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의 가람,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 활동가가 발제에 대한 토론을 맡았다. 서울시청 점거농성의 현장에 함께 하고,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토론회장을 가득 채웠다.


‘성소수자’에게 농성의 의미
 

토론회는 기존에 성소수자 운동에서 농성이 자주 있는 투쟁방식은 아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성소수자에게 농성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짚으면서 시작되었다. 일란 활동가는 성소수자 운동에서 ‘농성’이라는 투쟁방식은 다른 노동자 투쟁 등에서의 ‘농성’과 그 의미가 달랐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소수자운동의 농성은 필연적으로 커밍아웃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농성 그 자체로 ‘집단적 커밍아웃’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일란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의 농성은 비가시화 되었던 존재들이 가시화되는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장애인 운동, 특히 이동권 투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명숙 활동가는 이번 농성에 대해 그 자체로서 성소수자가 투명인간이 아닌, 저항하고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협의의 정치의 의미에서도 성소수자가 더 이상 ‘쉽게’ 무시될 수 없는 유권자 집단임을 알리는 행위이기도 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농성 이후에도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사업이었던 성북구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센터’ 예산이 폐기되는 등 여전히 성소수자는 상대적으로 작은 유권자 집단으로, ‘교묘하게’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농성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성소수자가 주체가 된 농성의 특징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가람 활동가는 농성이 성소수자에게 낯선 투쟁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카페, 바, 클럽과 같은 특정 공간/지역을 점유하고 모이는 것은 익숙한 일이며, 이렇게 성소수자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재미를 만들어냄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청의 농성 역시도 성소수자들의 모임 장소로서 분노와 긴장뿐 아니라 희로애락이 동시에 드러날 수 있는 재미있고, 즐거운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명숙 활동가는 이에 대해 각 저항 주체들은 모두 자기고유의 방식으로 투쟁하며, 이러한 투쟁의 다름이 위계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됨을 지적했다. 오히려 어느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를 넘어서 다양한 싸움에 대한 상상력을 확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인권은 목숨이다
 

여러 토론자들은 이번 농성에서 인상적인 슬로건으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말을 꼽았다. 이는 농성 첫 날부터 서울시청 로비에 내걸린 슬로건으로 농성기간 동안 자주 언급되었다. 일란 활동가는 이 슬로건을 이야기하며 이번 서울시청 점거 농성이 성소수자 운동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장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처음 농성장에 걸린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슬로건부터, 농성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농성장에 부착한 문구들은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드러내고, 설명해내는 구체적인 언어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슬로건은 단순히 성소수자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는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일란 활동가가 지적했듯이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는 슬로건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권리로만 여겨졌던 생존권의 범위를 문화적, 사회적 영역까지 확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즉, 경제적 요구에 비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의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슬로건이었다. 가람 활동가는 성소수자들 역시 성소수자 ‘인정투쟁’이 ‘경제적 생존권’에 비해 낮은 수준의 요구라는 내면화된 낙인을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번 농성투쟁을 통해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임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운동과 주체의 성장
 

이번 농성이 성소수자 운동과 주체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데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 했다. 이번 서울시청농성은 2007년에 있었던 누더기 차별금지법 반대 투쟁, 2011년의 학생인권조례 원안 통과를 위한 서울시의회 점거투쟁 등을 통해 성장해온 성소수자 운동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나라 활동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혐오세력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번 농성을 통해 차별과 모욕에 맞서 싸우려는 성소수자 대중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무지개농성은 단순히 성소수자운동 활동가 몇 명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으며,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청농성은 지금까지 운동의 성장결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자체로 성소수자 주체를 변화시키는 경험이기도 했다. 가람 활동가는 2007년 차별금지법 투쟁, 2011년 서울시의회 점거농성, 2014년 서울시청 점거농성까지의 투쟁에서 성과는 투쟁으로 얻어진 제도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투쟁을 통해 만나고 힘을 받게 된 성소수자 주체들의 변화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농성의 과정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농성장을 지나며 농성의 이유와 성소수자의 개념에 대해 묻는 시민에게 당당하게 성소수자의 의미를 설명하며 커밍아웃을 하던 농성단의 모습을 꼽았다. 이러한 모습은 성소수자로서 당당할 수 있는 집단이 만들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농성은 성소수자 운동과 다른 운동과의 연대가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보여주었음이 지적되었다. 나라 활동가는 환경, 여성, 장애운동 등 다양한 시민단체의 연대,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의 농성물품 지원, 시청 바로 옆 프레스센터에서 농성하던 희망연대노조 씨앤엠 지부의 연대를 이야기하며, 이번 농성을 통해 성소수자 운동이 쌓아온 연대의 폭과 깊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이번 농성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그 투쟁의 대상이 박원순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간 시민단체 출신의 진보적인 인사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던 박원순이 ‘불통’의 대상이었기에 이번 투쟁은 소위 ‘진보진영’, 시민사회 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많은 토론자들 역시 이번 투쟁의 목표와 그 성과로 ‘진보’진영 내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이 ‘진보’의 기준점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나라 활동가는 농성에 들어가면서 애초에 박원순 시장 면담 등 4가지 요구안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실질적인 농성의 목표는 성소수자의 투지를 보여주고 우리의 편이 누구인지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목적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가 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켰을 때부터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비판 성명서를 냈고 농성을 포함한 성소수자 운동의 적극적 활동으로 이 문제가 커다란 쟁점으로 부상했다. 나라 활동가는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장되었으며 따라서 이는 시민사회운동/진보진영의 중요한 준거점이 될 수 있었음을 이번 농성의 큰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보수세력’에 맞선 ‘진보’의 단결을 주장하며 성소수자의 문제제기를 억제하려는 시도에 대한 날선 비판도 나왔다. 명숙 활동가는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진보’진영, 시민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특히 보수와의 편 가르기를 통해 정권교체만을 강조하며 ‘진보’ 내부의 문제제기를 억압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 의제야말로 옛 민주화운동세력들인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세력과 타협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운동/진보진영의 준거점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의제를 억압하는 목소리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왜곡이었다는 것이다. 


투쟁 과정의 민주주의
 

토론 과정에서 가장 논쟁적인 제기된 문제 중 하나는 투쟁 과정의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참여자들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하고 의사소통과정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이번 시청점거농성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발제과정에서 나라 활동가는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부분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농성단의 주요 활동가들이 박원순의 면담요청을 예상치 못하고 당황했던 부분들, 농성장 전체 토론의 분위기와 상반된 농성 종료 결정이 충분히 토의되지 못하고 집행되었던 지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플로어 토론의 참가자 중 몇몇은 농성 중단 결정이 충분히 민주적으로 토론 결정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여성주의저널 일다 기자인 나랑은 농성 5일차인 10일 저녁 박원순의 ‘사과’이후 농성자들의 전체토론에서 ‘박원순의 사과는 형식적일 뿐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방향과 계획도 제시하지 않았기에 농성을 유지하자’는 입장이 다수였음에도 다음날 그와 상반되는 농성중단 결정이 내려졌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농성을 유지하자는 견해가 다수임에도 농성이 일방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 투쟁에서 합의안이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되었는데도 사측과 합의가 진행되는 것과 유사한 상황임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부족한 점은 맞지만 더 싸울 수 있었을지에 대해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음을 지적했다. 특히 형식적이더라도 박원순이 사과를 한 이후에 사회적 여론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리고 그러한 여론 변화와 고립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 상황에서 승리와 성과의 의미를 지킬 수 있었을지 고려한 끝에 내린 결정임을 밝혔다. 물론 냉정한 판단은 필요하며, 판단 결과에 따라 투쟁을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반 상황이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유지 불가능성을 설득하는 과정 역시 그곳에 있던 활동가들의 역할이어야 했을 것이다.
 

조합원 여부가 명확한 노동조합의 투쟁과정과 참가자 범위가 불분명한 시청의 점거농성 과정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었다. 물론 시청 농성장의 참가자들의 경우, 멤버십이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질문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11년, 많은 사람들이 월가점령운동(Occupy)에 주목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무작위로 모인 사람들이 보여준 민주적 의사결정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번 시청점거농성은 갈수록 연대의 중요성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우리의 투쟁과정에서 민주적 의사수렴을 어떻게 이뤄낼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2015년
 

열띠게 진행된 토론회는 2015년에 어떻게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마무리 되었다. 한 편으로는 보수 혐오세력의 논리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가해지고 있는 낙인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고 이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보수 혐오세력이 사용하는 단어와 논리 중에는 ‘종북 게이’, ‘군대에 에이즈가 퍼져서 김정일만 좋아한다’는 등의 소위 ‘종북’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미 진행중인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싸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현재 성북구청장은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라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대해 급작스럽게 예산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는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센터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참여로 기획된 이 사업에 대해 성북구청장은 ‘목사들과의 약속’을 이유로 예산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인권도시’ 등을 표방하면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은 끊임없이 분리 배제하는 흐름에 대한 투쟁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다양한 평가지점과 앞으로의 과제들을 갈무리하면서 2015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아이다호데이에 혐오에 맞서는 적극적인 활동을 만들어 갈 것을 이야기하며 막을 내렸다.
 

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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