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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보다 형량이 강화된 사노련 2심 재판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12/23 13:29
  • 수정일
    2011/12/27 12:1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

 


지난 주 금요일 12월16일 (舊)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사건에 대한 2심 재판 선고 공판이 열렸다. 올해  2월24일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사노련을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라고 규정하고 오세철·양준석·양효식·최영익 등 4명의 활동가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남궁원·박준선·오민규·정원현 등 4명의 활동가들에게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집시법 위반을 덧붙여 모두에게 벌금 50만원 형을 부과했다.

1심 재판 이후 피고인 측과 검찰 측은 쌍방 모두 항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 2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측의 항소 이유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검찰의 항소 이유만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형량이 더 강화된 판결을 내렸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재판부


2심에서 변호인 측은 첫째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는 점, 둘째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는 별개의 반국가 단체를 전제한 것이나 사노련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로 볼 수 없다는 점, 셋째 사노련이 무장봉기·폭력혁명 등을 언급하긴 했으나 국가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 위협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넷째 박준선 활동가의 2009년 집시법 위반 판결은 집회만 참가했을 뿐 불법 시위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 네 가지 이유를 들어 항소를 제기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소를 제기할 때에 법관이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하고 기타의 서류나 증거물을 첨부·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주로 사노련이 발간한 문서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양의 증거자료들을 공소장과 함께 제출했기 때문에 변호인 측은 1심 때부터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변호인의 주장에 이유가 없다고 이를 기각했다. 

변호인 측이 무죄의 주요 논리로 제기하여 재판의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된 국가보안법 상 국가변란 선전·선동은 북한이라는 특정한 반국가 단체를 전제한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서 재판부는 반국가단체와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는 별개로 성립될 수 있고 북한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체제를 부정하는 표현물을 제작·반포할 경우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것이라는 1심 판결을 재확인했다. 

사노련이 무장봉기·폭력혁명 등을 언급하긴 했으나 국가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사노련이 일부 매체를 통해 제기한 무장봉기·폭력혁명 등이 크지는 않아도 사회 체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변호인 측의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재판부의 주장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박준선 활동가의 불법시위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어디까지가 집회이고 어디까지가 시위인지 애매한 문제에 대해 기준을 정해주기도 했는데 이 역시 굉장히 자의적인 판단 기준이었다. 재판부는 피켓을 들고 같은 구호를 제창한 것은 위세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집회가 아니라 시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아무 소리 않고 아무 주장 없이 조용히 모여 있는 것만이 집회이고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면 시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예배도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제창해 위세를 떨치는 것이므로 시위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더욱 확대된 국가보안법 적용


변호인 측의 항소이유가 몽땅 기각된 반면 검찰 측의 항소 이유는 대부분 수용되었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여러 문서들에 대해 이것들 역시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반드시 무장봉기·폭력혁명·의회주의 반대 등의 단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단체 결성 배경과 전반 맥락을 살펴볼 때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했다고 볼 이유가 충분하다며 항소에 근거가 있다고 인정했다.

또 1심에서 일부 기사만이 이적표현물이라고 규정된 각종 매체(소책자, 신문 등)들에 대해 2심 재판부는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글이 일부라 할지라도 그 글이 담겨있는 매체 전체를 이적 표현물로 규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이러한 태도는 1심의 판결을 더욱 확대 적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단지 사노련 규모가 60여 명에 불과했고 수사과정에서 피고인 다수가 사노련을 탈퇴했으며 그 이후 실질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사노련이 직접 불법집회를 조직하고 주최한 일은 없으며 활동이 주로 토론회와 매체 발간에 한정되어 실제로 이들이 체제에 미치는 위험성이 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각기 징역형의 형량을 6개월씩만 늘리겠다고 판결을 내렸다. 

결국 2심에서는 검찰의 주장이 대부분 관철되었고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된 것은 양효식·양준석·정원현 활동가에 대한 촛불집회 당시 집시법 위반 혐의가 무죄라는 것뿐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재판부의 판결은 1심 재판부의 판결을 확인하고 더욱 확대한 것이다. 1심 판결이 조직의 결성이나 정치활동이 아니라 단순한 문필활동만으로 사회주의자들을 처벌할 수 있게 한 판례였다면 이번 2심은 반드시 체제 전복을 표현하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사회주의 사상과 정치를 담은 모든 문서는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을 수 게끔 법 적용을 확대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사노련 재판은 8·90년대와 달리 사회주의 정치활동으로 인신의 구속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미약하기 때문일 뿐 사회주의자들이 실질적인 정치세력이 되는 순간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송통심위')는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여러 인터넷 사이트들에 올라온 글을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방송통심위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명확할 경우 별도의 재판 없이 곧바로 방송과 온라인상의 표현물들을 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사회주의자들의 매체활동은 커다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변호인 측이 무죄판결을 위해 여러 논리를 제시했지만 이번 재판 결과는 국가보안법이 존치되는 한 현행 국가보안법 아래에서 사회주의자들의 단순한 문필활동 마저도 무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대법원 항소가 남았지만 1·2심 결과와 대법원에서 형량이 아니라 유·무죄만 판단한다는 점을 볼 때 대법원 판결 역시 유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2월15일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박정근 동지

 

 

국가보안법에 맞서는 사회주의자들의 공동행동
 

이번 재판이 있기 전 사노련 공대위는 사노련 사건 무죄판결을 주장하는 공동행동을 조직했다. 사노련 공대위는 2심 재판 전 날인 12월15일을 공동행동의 날로 잡아 국회, 법원, 방송통심위원회 등지에서 1인시위를 조직하고 법원 앞 기자회견과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개최했으며 선고 공판이 있는 다음 날에는 방청투쟁을 조직했다.  

그러나 1심에서 이미 집행유예를 받는 상황이라 2심에서 법정 구속되거나 할 확률은 낮은 편으로 생각되었는지 공동행동에 대한 참여나 관심은 저조한 편이었다. 실제로 일정에 참여한 것은 직접 피해자가 있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노혁추),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 등 조직의 관계자들과 사회주의노동자신문(사노신),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 등 공대위 참여조직에서도 일부뿐이었다. 물론 이런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정치·사회·노동 단체로 확장되지 못하고 공대위 내부 사람들로만 한정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노련 공대위 공동행동이 진행되던 날에 최근 트위터 글 때문에 국가보안법 탄압을 받은 박정근 동지가 대한문 앞에서 1인시위 활동에 동참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다른 자발적인 흐름과 연대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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