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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으로 피는 작은 꽃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과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이 남긴 과제

  • 분류
    여성
  • 등록일
    2011/12/26 16:08
  • 수정일
    2011/12/28 09:39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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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14일, 금속노조와 현대글로비스는 2010년 8월 제기된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 원직복직, △근무환경에서의 불이익 금지와 업체 폐업 시 피해자 고용승계, △가해자 징계해고 △직장 내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과 재발방지 노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피해 노동자가 해고된 지 1년4개월, 상경농성을 시작한지 197일만이었다. 피해자는 내년 2월1일자로 현장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성희롱,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

 

지금도 성희롱(성폭력)은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30일 있었던 ‘여성노동자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및 대안연구 토론회’에서 발표된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7개 연맹과 각 지역본부의 여성노동자 1,652명 중, 39.4%가 최근 2년 내에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측과 직장 동료들의 압박 속에서도 꿋꿋이 문제제기 한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투쟁은 인권위 제소와 법정투쟁 등 청원투쟁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이번 현대차 아산공장 여성노동자는 1인 시위, 농성 등을 통해 현대차 자본을 직접 압박하는 투쟁 방식을취했다. 성희롱에 대해 문제제기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자 그녀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아산 공장 앞에서, 서초경찰서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이어나갔다. 이 투쟁은 지금까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섰던 어떠한 투쟁보다도 집단적인 대응이 이루어졌다.

 

성희롱 문제, 노동운동의 의제가 되었나?

 

그러나 아산공장 내의 노동조합들은 이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피해 여성노동자는 징계해고된 직후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과 함께 아산공장 앞에서 1인 시위와 농성을 진행하였다. 그러자 현대자동차 관리자와 경비들이 피해자를 폭행하고 농성장을 침탈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하지만 정규직노조인 현대자동차지부 아산위원회는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탄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충남지역에서 이 투쟁에 지원‧연대하기 위해 꾸려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성희롱 사건 문제해결을 위한 충남지역 연석회의’에도 현대자동차지부 아산위원회와 비정규직지회는 함께하지 않았다.

성희롱 사건이 아산공장 내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산공장의 노동조합들이적극적으로 지원‧연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재의 노동운동이 여성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을 자신의 과제로 여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자동차 공장 내에서 상당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진영은 성희롱/성폭력의 문제에 무감각한 것이다.

아산위원회와 비정규직지회가 이 투쟁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대차 자본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고립에서 벗어나 투쟁을 확대시키기 위해 피해자를 비롯한 투쟁주체들은 서울에 올라와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서울에서 진행된 농성에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소속의 몇몇 여성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연대했다. 하지만 이 사안을 현장에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하거나 연대를 조직하는 등의 조직적 결합시도는여전히 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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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

 

노동조합과 상급단체들이 이 투쟁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여성가족부 앞 농성은 여성운동단체와 정치단체, 정당의 연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농성장은 올 한 해 유난히 많이 이슈로 떠올랐던 반성폭력 운동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성폭력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편견에 맞선 ‘슬럿워크 운동’과 고려대 의대생에 의해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성된 ‘고려대 반성폭력 연대회의’도 농성장에 함께 투쟁했다.

많은 단체와 단위들이 이 투쟁에 함께하면서 이 투쟁은 성과를 남길 수 있었다. 우선 최초로 언어에 의한 성희롱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이 성과에 힘입어 민주노총 산하 여성노동자들은 성희롱에 따른 산업재해를 신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투쟁을 통해 피해자 원직복직과 가해자 처벌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남겼다.

 

피해자의 복귀와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것

 

내년 2월 1일, 여성가족부 앞에서 수천 번 외쳤던 구호 그대로 피해 여성 노동자는 원직복직하게 된다. 하지만 복직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복직은 되었으나 현장의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한 번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또 다른 2차 가해가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여성노동자의 불만과 성폭력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주체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있을 때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고 2차 가해에 대한 집단적인 문제제기와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투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압박과 2차 피해, 공동의 대응을 고민해야

 

어느 투쟁이든 투쟁의 주체들은 심각한 스트레스와 압박, 그리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희롱의 피해자로서 거리에서 투쟁하면서 느껴지는 압박과 스트레스는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희롱 피해자로서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끊임없이 발생하는 2차 피해 등이 있을 수 있다. 이 투쟁의 주체를 지치게 할 만한 것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현대차 자본을 압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은 것은 여론전으로 현대차를 압박하는 것뿐이었다. 여론화시키는 과정은 분명 이 투쟁에 필요한 것이었고, 이는 투쟁하는 주체들에게 힘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희롱 피해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피해자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PD수첩에 이 투쟁에 관한 내용이 방영되었을 때에도 널리 알려진다는 측면에서는 좋지만 한편으로는 TV로 더 널리 피해자의 신원, 얼굴(물론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이 노출되는 것이 피해 여성노동자에게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산업재해 관련 조사를 받으러 근로복지공단에 갔을 때에도 조사관은 오히려 피해자를 ‘죄인을 취조하듯’ 조사하는 등 피해자에게 폭력적일 수 있는 언행을 하였다.

이러한 주위의 상황이 피해자에게 2차적인 피해로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은 농후하다.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에게 부당해고를 자행한 현대차 자본을 압박하는 것은 이 투쟁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와 압박에도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피해자의 치유라는 것을 놓치지 말고, 피해자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주위에서 함께 공감하고 풀어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는 피해자가 현장에 복귀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민이 되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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