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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닥치고 FTA반대’가 아니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12/02 14:20
  • 수정일
    2011/12/02 14:20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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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집회가 끝난 후 시위대 내부의 폭행 사건이 주요 언론과 트위터를 통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친노무현 성향의 한 배우가 오마이뉴스의 손병관 기자를 폭행한 사건이었다. 오마이뉴스의 손 기자가 평소에 노무현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것이 폭행의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폭행사건 자체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폭행을 한 가해자가 상당수의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몇 건의 폭행사건 중 가장 크게 이슈화된 사건은 11월 25일 발생했다. 진보신당 수행비서가 반어법을 사용한 발언을 했는데 그 발언이 FTA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고 오해를 받았다. 발언자는 중년남성으로부터 멱살을 잡힌 채 무대에서 끌어내려졌다. 이에 더해 지잡동(진보적지방잡대동맹)의 한 활동가가 노무현과 나꼼수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연이은 비슷한 내용의 사건에 대해 몇몇 사람들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행위나 해프닝으로 여기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사건 직후 가해자의 행동을 옹호하고 피해자에게는 맞아도 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 그것은 집회참가자 내부에 존재하는 불만이 특정 시점에서 터져 나온 것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닥치고 FTA 반대?

 

현재 FTA 반대 집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 당시에 한미 FTA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민주당 혹은 국민참여당부터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FTA에 반대해왔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과 각종 정치단체들도 참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해왔던 FTA에 대한 평가 역시 다르다. 예전부터 한미 FTA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노무현의 FTA나 이명박의 FTA나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고 후자는 망국적 FTA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꼼수다'의 출연진이 주로 이러한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집회 내부에서는 집회 참가자 내부의 차이와 노무현 전 정권에 대해 비판지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주로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람들 혹은 급진적인 활동가들이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분노표출은 주로 '노무현을 비판하다니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없다'거나 '노무현을 비판할 거면 조중동으로 가라'는 내용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는 노무현 편과 이명박 편 혹은 반MB와 MB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기초해있다. 이러한 이분법이 등장하게 된 것은 최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정치’의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가카헌정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그 정치는 대의제 정치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오히려 몇몇 정치인(혹은 몇몇 보수 인사)에 대한 분노와 조롱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몇몇 정치인들과는 반대로 노무현은 이명박과 대비되는 서민적인 이미지와 현 정권의 희생자로서 대중들이 구심점이 되고 있다. 정치의 내용 자체가 개별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반대로 협소화된 상황에서 노무현은 그 자체로 선이고 진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비판은 어느새 '맞아도 싼 행위'가 되어버린다.

 

우리 닥치지 말고, 토론을 시작하자!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깰 수 있는 것은 결국 집회 참가자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의견개진에 대해 물리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막고 공개적인 논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FTA를 추진한 세력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집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시위의 시작일 뿐이다. 분노의 표출과 함께 서로의 차이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MB라는 개인에 대한 반정립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사회와 정치에 대한 전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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