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문화] 지슬, 끝나지 않는 이야기2 : 대한민국의 탄생신화

이정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제주도에 대해 잘 모른다. 심지어 가본 적도 없다. 어디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게으른 성격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갈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 두 가지는 늘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하나는 92년 대선 후에, 고(故) 정운영 선생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이야기로 당시 백기완 후보 득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제주도였는데 아마도 4·3항쟁의 영향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제주도에 친척을 둔 친구가 해준 얘기였는데, 정부가 신정이라고 해서 양력으로 설을 쇨 것을 권장할 때 다른 지방에 비해 제주도에서 양력설을 쇠는 비율이 아주 높았다는 얘기였다. 이유는 나라 말을 거스르면 큰일 난다는 생각 때문이라는데 이 역시 4·3의 영향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한 지역에 행해진 국가 폭력의 상흔이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 것이었는가를 예증한다.

<지슬>이 다루는 제주도 4·3항쟁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탄생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이다. 해방 이후 일제경찰을 그대로 중용하는 등 실정을 저지른 미군정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불만은 1948년 4월3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실시에 반대하는 봉기로 이어졌다. 신생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국가 정통성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하여 강경진압에 나섰다.

정부는 산으로 숨어들어간 남로당 중심의 무장대 뿐 아니라 제주도민 전체를 잠재적 반란자로 규정하고 1948년 10월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지역을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11월 계엄령이 선포되자 해안으로 이주하지 않는 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산간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실시되었다. 제주도민에 대한 국가적인 학살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인 1954년까지 이어져 3만 명 가까운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공(反共)의 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렇게 빨갱이로 몰린 제주도민들의 피를 자양분 삼아 탄생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슬>은 진압군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갔다가 결국 학살당한 어느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초혼제의 형식을 빌려 풀어내는 영화이다.

4·3항쟁 같은 무거운 역사적 비극에 굿과 같은 제의의 형식을 차용해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자칫 역사의 무게를 떨쳐버리고 섣부른 화해와 용서로 이야기를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밀 쿠스트리차가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랬고 황석영의 <손님>도 그런 함정에 빠졌다. 이 작품들은 역사의 비극 속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원한을 한 판의 굿과 잔치를 통해 살풀이처럼 털어버리자고 달콤하게 속삭인다.

그러나 희생된 자들의 무수한 한이 서린 역사의 무게를 과연 누구의 권리로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전두환을 용서할 권리가 과연 김대중이나 살아남은 광주시민들에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한이기 때문이다. 간혹 지나치게 성숙한 예술가들이 보이는 함부로 용서하고 멋대로 화해하는 용기는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지슬>의 큰 미덕 중 하나는 제의라는 형식을 빌려오면서도 결코 용서하려고도 화해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가해자들을 악마로 만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용서하지도 않는다. 말없던 어린 신병이 아편쟁이 김 상사를 솥에 삶아 죽일 때 <지슬>은 자신이 회색의 영화가 아니라 흑백의 영화임을 명확히 선언한다.

어느 평론가는 <지슬>의 영화적 논리가 허술하고 이야기와 이미지가 따로 논다면서 영화는 사진집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허나 돌이켜 보면 영화의 역사는 늘 서사논리와 이미지의 투쟁의 역사였다. 관객들을 향해 쇄도하는 기차,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삭발한 여인의 얼굴, 눈알을 도려내는 면도날 같은 강렬한 이미지들은 언어논리로 가둘 수 없는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다. 서사논리는 언제나 이런 이미지들을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이야기 속으로 붙잡아 넣으려 한다. 그것이 실패할 때 이야기를 뚫고 나오는 이미지의 강렬함이 한 영화의 전부가 되어 버릴 때도 간혹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기억은 늘 이미지로 나타난다. 꿈이란 기억되었지만 언어화되지 못하고 의식 밑으로 깊이 가라앉은 이미지들이 우리가 잠든 틈을 타 느슨해진 의식의 표면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꿈속에서 체험하는 것은 사실 비논리적인 이미지의 연속이다. 꿈에서 깨어나 글로 기록하거나 말로 설명하고자 그것들을 언어논리로 포획하려 들 때 우리는 오히려 그 이미지들의 신비한 인상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처럼 대부분 흘러나가 버리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논리로 구성된 역사적 기록이나 사회과학적 분석은 이미지가 주는 생경한 충격을 오히려 빛바랜 것으로 만들 때가 많다. 반대로 이미지가 주는 생경한 충격이야 말로 화석화된 글과 말을 넘어 영원한 기억으로 각인될 때도 있다. 광주항쟁을 기록하고 분석한 그 어떤 글보다 신입생 때 멋모르고 학생회실이나 동아리실에 굴러다니던 광주항쟁 사진집을 펼쳐보았을 때 받은 충격이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흔한 경험일 것이다. 광주항쟁을 주제로 했던 무수한 세미나와 토론들과 읽었던 글들이 거의 다 머릿속에서 사라져간다 해도 그 이미지들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야기와 분리되어 마치 혼령처럼 부유하는 <지슬>의 이미지들은 그것이 가진 상기의 힘을 빌려 기록과 서사 같은 언어논리로는 표현하기 힘든 오래전에 망각된 혼령들의 한을 6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 여기로 불러들인다. 그래서 그것은 죽어간 혼령들의 한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영화 바깥의 맥락과 조우하여 여전히 국가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제주도의 현실을 환기시키기에 이른다.

물론 아름답고 세련된 <지슬>의 이미지는 광주항쟁의 잔혹한 사진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만큼 아슬아슬하다. 예컨대 능욕당하는 여성의 신체에 비유되는 제주도 대지의 이미지는 아름답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을 뿐더러 진부하고 유치한 문법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거기 홀려 길을 잘못 접어들 수 있는 위험에 있기에 항상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치를 피해 국경을 넘으려다 자살한 어느 유태인 미학자는 파시즘은 정치를 예술화하지만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해야 한다고 썼다. 끔찍한 정치논리를 도취적인 미적 숭고로 포장하는 파시즘에 대해 공산주의 예술은 미학적 자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예술제도 속으로 끝없이 오그라들려하는 예술을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미적인 것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나치스가 만들어낸 <의지의 승리>나 <올림피아>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 영화들인가? 그러나 이 영화들이 봉사한 정치논리는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가? 레니 리펜슈탈은 자서전에서 자신은 나치스 지지자가 아니라 단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정치적인 예술은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정치적으로 급진적이었다고 해도 자신의 영화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닿지 않음에 절망했던 고다르의 영화들처럼 그저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영화관에서 나오면 까맣게 망각되는 휘발성 소비재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결국 정치 예술의 성공은 보는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관객이 집에 돌아가서 그 영화가 던진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정치적 실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미학적 성취와 무관하게 성공한 정치영화가 될 것이다.

<지슬>을 단지 하나의 작품으로 환원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흑백화보집에 불과할 지도 모르며, 부유하는 혼령들은 결코 땅으로 내려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부유하는 혼령들을 불러와 빙의하여 다시 한 번 강정을 생각하고 국가의 폭력에 대해 고민한다면 <지슬>의 헐거운 이야기는 진정으로 초혼의 의미를 지니게 될지 모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