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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일베는 왜 ‘광주’에서 폭발하였나

7월 23일 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첫 화면. 기독교와 청소년, 여성, 전라도에 대한 비하가 주를 이루고 있다.


광주민중항쟁 역사왜곡 사건을 계기로 이미 일베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왔다. 이미 논란이 한차례 지나간 것으로 보이지만, “일베는 왜 ‘수지 입간판 성폭행 사건’에서 문제화되지 않고 ‘광주민중항쟁 역사왜곡 사건’에서 문제가 되었나”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고 넘어가야할 지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혹자는 일베가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초청행사를 통한 실질적인 현물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조작’된 것이라며 그동안 이루어진 많은 분석들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정원의 작업이 일베를 활성화할 수는 있었을지언정, 일베를 받치고 있는 광범위한 정서가 존재하지 않는 한 순간 접속 2만 명이라는 수치는 나오기 힘들다고 본다. 일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베는 여성, 이주자, 전라도, 민주화 운동 세대, 청소년 등의 집단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그동안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방식으로 표출하여 뜸하지 않게 여론화되었다. 이런 정서의 배경에는 스스로를 성적으로 무능력한 남성으로 여기는 ‘남성성의 위기 표출’, 일상이 된 경쟁 속에 형성된 ‘보편적인 루저 심리’, ‘정치에 대한 냉소와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일베는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위험한 곳’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사회적으로 매장 당해야할 존재들로 낙인찍힌 것은 5.18 광주민중항쟁이 북한 개입에 의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이다.



왜 ‘광주’가 문제가 되었나

누군가에게 있어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일베의 ‘왜곡’은 엄청나게 큰 문제일 수 있다. 특히 민주화 운동의 계보 속에 광주민중항쟁을 위치 짓는 것이 중요한 386 민주화운동 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은 북한이 개입하여 일어난 폭동’이라는 주장을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청춘을 바쳐 이룩한 민주화의 결실이 땅에 짓밟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들의 ‘민주화’가 한국 역사에서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들에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여기는 것은 이미 지배세력의 한 축이 되어버린 386세대의 입지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해온 점도 분명하다. 아무리 민주당이 무능력해도 친일독재의 계보에 있는 새누리당은 아니지 않느냐는 정서 따위가 그렇다.

따라서 주목해야할 것은,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사회적으로 재확인함으로써 지배세력으로서의 힘 또한 재확인 할 수 있는 ‘386세대의 사회적 위치’를 봐야한다. 한윤형이 ‘네오라이트는 누구의 유산인가’(시사인 298호)라는 글에서 정리한 것에 비춰 일베를 둘러싼 논쟁의 지형에 대해 말하자면, ‘깨어있는 시민’이라 스스로 칭하는 세력이 386세대와 연합하여 386 이후 세대의 냉소주의, 허무주의와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386세대는 한국에서 이러한 여론지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력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386세대가 일베의 역사왜곡에 대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 역사의 장본인이기에 이를 부정하는 기존의 보수세력이나 그들을 따르는 ‘젊은 것’들에게 민주화 운동 역사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에 대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출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역사교육을 잘 받으면 해결될 문제일까? 이런 인식은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단적으로 책 많이 보고 공부 열심히 한다고 정치적으로 우파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문제는 그 역사를 받아들이게 하는 현재의 삶이다.

386 이후 세대에게 있어 386세대는 직장에서는 권위적으로 굴고, 민주화 운동 했다면서 근로기준법도 안 지키고, 비정규직이거나 실업자인 나에게 온 데서 ‘갑’질 하고 있고, 두 번이나 집권했는데 내 삶은 나아지는 게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민주화 운동 담론은 그들의 현재 삶과의 모순을 더 극적으로 만든다. 386세대가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신성시하는 모습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지는 386 이후 세대들이 자신의 삶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두리반 투쟁에 함께하고 여의도소음대폭격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던, 일베와는 정치적으로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는 ‘밤섬해적단’이라는 밴드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386세대를 비꼬기도 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퇴근 후에 넥타이를 존나 풀고 찾아와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곡 워어어어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밤섬해적단, <386 sucks>

 

물론 촛불운동의 가장 큰 귀착점이 나꼼수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386세대의 정치를 어떤 방식으로든 공유해나가는 386 이후 세대의 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386 이후 세대의 광범위한 반새누리당 정서 속에 386세대의 담론이 겹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대를 중심으로 일베와 같은 집단이 등장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386세대가 신자유주의의 추진과 함께 하나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여 자신들을 삶을 망친 것 때문이 아닐까? 386세대의 현재 모습으로부터 그들이 신성시하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비꼬기 시작한 것이지, 보수세력이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왜곡하고 지금 세대들이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 운동 역사를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신성시 하면서 386 이후 세대들을 역사에 무지한 세대로 규정하고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오히려 일베가 발 딛고 있는 정서를 강화할 것이다. 냉소와 분노, 결집력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혐오정서의 배경이 교육이 아니라 그들의 배제된 삶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아마도 그 집단들의 삶에 기반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정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촛불운동 내내 확인되었던 좌파의 공백 아닐까. 일베에 의해 촛불운동이 386세대의 담론과 함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촛불운동이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비췄을지언정 386세대의 민주주의를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좌파는 어떤 마땅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 ‘수지 입간판 성폭행 사건’은 이 정도의 저항을 불러오지 않았나

한 남성 일베 이용자가 광주 출신 연예인 수지의 사진이 사용된 입간판을 성폭행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홍어산란기’라는 제목으로 게시판에 올렸다. 게시자는 얼마 전 검거되었다. 이 사건은 비교적 크게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민주화 운동 역사 왜곡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불러왔다. ‘미친 놈’ 혹은 윤리적으로 도를 넘어선 경우로 여겨지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사건은 대대적인 일베에 대한 규탄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이 사건은 사실 여성들이 어느 장소에서나, 어떤 방식을 통해서나 남성들의 성적 지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는 개인적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성적 매력을 지닌 여성’이 어떻게 다뤄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기 있는 여자연예인이 왜 이런 대상이 되는지 의아할 수 있으나, 실제로 군대나 남중남고처럼 젊은 남성들만 모여 있는 집단에서 TV 등에 등장하는 여자연예인들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동시에 쌍욕을 하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반응이다. 여성은 언제든지 남성의 욕구를 위해 성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대상이므로, 그 여자연예인이 지금 손에 잡히지 않지만 ‘네가 얼마나 잘난 여자이건 간에’ 어차피 남성의 성적 지배 아래에 있다는 것을 그 쌍욕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성별권력이 드러나는 사건’에 대한 흔한 반응과 다르지 않다. 성별권력은 대부분 권력이 아닌 개인의 윤리 문제로 다뤄진다. 각기 조금씩 다른 색깔을 지닐지언정, 성별권력에 대한 이런 사회적 태도는 여론형성을 주도하는 세력들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된장녀, 김치녀라는 유행어에 깔려 있듯이 여성혐오 정서는 일베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주민 혐오도 마찬가지다. 이주민에 의한 범죄율이 전체 평균에 비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범죄 사건과 인육 및 장기밀매에 대한 소문들을 뒤섞어 아주 강도 높은 혐오 담론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386세대를 포함한 여론 주도층이 강하게 맞선 적이 없다. 오히려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편승하는 여론을 찾아보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 여성혐오, 이주민혐오는 분명 일베와 같은 특정 집단이 아닌 한국사회 전반의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일베에 대한 낙인은 일단 일베의 고립을 가져왔다. 그러나 일베를 특별히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규정하여 사회적 여론형성에서 배제시키는 과정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한 편으로 위험한 담론들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걸림돌을 놓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혐오정서가 오히려 사회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라는 것을 가리는 과정일 수도 있다.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 부분을 지적해온 임재성은 일베에 대해 “대중이 감히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2013/6/5 “일탈적 놀이 즐기는 누리꾼일 뿐이냐, 세력화 가능한 여론집단이냐”)

따라서 오히려 일베의 위험성을 주목해야할 지점은 이 부분이다. 한국의 여론 지형에서 역사왜곡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동북아의 강화되는 민족주의와 발맞춰 여성혐오와 이주민혐오 정서는 오히려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의 결집과 지지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베를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고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형성한 담론이 사회 불안정의 심화가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베 이용자들 중에 실제로 학력이나 자산 측면에서 높은 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사회 불안정의 심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불안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것인지는 예단할 수 없다. 따라서 일베에서 드러난 사회적 불안의 담론들이 이후 어떤 계기로 강화되고 구체적인 형태로 결집할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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