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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이 아니라 반격이 필요하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물론, 스스로를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정의당 또한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한 바 있어 예상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4일 현재 최종 입장은 이렇다. ‘농담을 하며 웃어 넘겼던 당시 분위기를 녹취록에 대한 편향적 해석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노선에 비춰보았을 때 녹취록에 담긴 내용들이 완전히 가공된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입장이 국면을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이른바 진보ㆍ좌파진영이라고 하는 곳의 분위기는 다양하다. 일단 국정원의 국면전환용 공안탄압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는 입장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태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는 이번 사건이 기존의 공안사건들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선 투쟁과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진보ㆍ좌파운동의 혼란은 공안탄압의 활로를 열어줄 뿐이다. 통합진보당의 위기가 좌파에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차원의 공안사건

 

국정원이 케케묵은 공안사건을 터트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얻어낸 것은 기존의 것들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의 공안사건들은 국정원의 조작 여부를 떠나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몇 차례 남북의 군사적 마찰이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긴장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국민들 사이에서 눈앞에 닥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종북 운동권들이 북한 정권을 위해 활동을 한다는 혐의는 구체적인 군사적 대립과 연결되지 않았다. 시대착오적인 소수의 세력들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이번 그림은 다르다. 국민들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세력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제시하고 있는 자료도 그럴만한 수준이다.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8/29), “RO, 습격 목표인 통신ㆍ유류시설 답사”(8/30), “이석기, 전작권ㆍ미군기밀 빼내려했다”(8/31)라는 헤드라인을 보면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떠나 이들이 구체적인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파괴계획을 추진하려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그림은 ‘종북 운동권의 이미지를 넘어 종북 테러리스트의 이미지에 가깝다. 게다가 그 주도자가 주요 국가정보에 접근 가능한 입법기관, 즉 국회의원이라는 점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국정원의 퍼즐을 함께 맞출 때인가?

 

물론 녹취록이 담고 있는 상황이 실제로 어떤 수준의 이야기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이 던져준 녹취록 하나로 이만큼 온 것이다. 실제로 어떤 수준의 논의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됐다. 국정원과 언론이 그리는 그림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데 정의당이 일조했다. 문제는 정의당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운동세력들과 진보언론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일까. 기존의 사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의 문제였던 반면,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에 해당하는 형법의 문제로 던졌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해온 세력들의 혼란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정의당의 공보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올렸다.

 

물질적 기술적 준비, 보스턴 폭탄, 철탑 폭파 같은 것은 사상의 자유를 넘어선 일탈이며 용인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 당원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130명이 모여서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이를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국회의원이고 정당 간부들이었다.”



심상정 의원 또한 국민으로부터 헌법적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으로서 법이 정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이런 판단에는 이미 내란선동과 내란음모에 해당하는 형법 위반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이런 입장을 냄으로써 정의당은 국정원이 진보진영에 바란 바를 정확히 수행하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 통합진보당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의 불법유출과 언론의 보도로 녹취록은 세상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의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과 사실관계의 공정한 확인을 위한 조치로, 국정원에 왜곡 편집되지 않은 동영상 전체의 공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작 녹취록의 원본인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분별한 여론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위법수집증거를 공개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 영역을 완전히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법절차에서 사건 관계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극히 부당합니다. 오늘 제가 녹취록에 관하여 말씀드리는 것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는 관련자 각자의 방어권이 완전하게 행사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마치 비상사태라는 듯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탄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문제제기는 완전히 정당하다. 우리는 이를 지지하고 구체적인 탄압들에 함께 맞서 방어해야 한다. 정의당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등의 입장을 통해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력으로 드러내고 싶은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국정원을 민주주의 세력으로 포장해주는 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다.

 

국정원의 안보 민주주의, 반성이 아니라 반격이 필요한 때

 

사실 국정원과 같은 공안기관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최근 촛불운동을 불러일으킨 대선 개입 문제였다.

 

그러나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공안기관의 존재 이유는 정치사상과 활동을 감시하고 제약함으로써 지금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정원 같은 초법적인 정보기관은 그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와는 공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그러나 이런 공안기관들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위협을 계기로 안보가 민주주의의 전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위협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보가 전제된 민주주의, 안보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무엇을 뜻하는가.
 

미국의 NS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이 국제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도청과 감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 관타나모는 여전히 치외법권이 되어 아무런 민주적 절차와 이유 없이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사람들을 가둬놓고 있다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보의 민주주의는 감시ㆍ통제의 강화이자 정치적 자유의 제약, 즉 민주주의의 후퇴인 것이다.

 

따라서 안보 민주주의의 기준은 명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안보 민주주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필요한 명목일 뿐이다. 저항운동과 관련된 모든 세력은 감시와 통제, 탄압의 대상이 될 것이다. 벌써 통합진보당 다음은 어디를 향할지 계산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우리의 정치의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자고 말할 때가 아니다. 그렇게 우리가 범위를 정한다고 해서 탄압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우리 스스로 저들이 원하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거나,탄압의 대상이 되어 더욱 수세로 몰리는 것 두 가지 길로 내몰릴 것이다. 정의당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점점 보수화되어 스스로 저들이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그런 반성을 선언한다고 해서 국정원이 진보ㆍ좌파정치와 저항운동에 대한 탄압을 멈출 가능성은 전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성이 아니다. 더 강력하게 국정원 해체와 국가보안법 폐지, 감시와 통제 철폐를 주장해야 할 때다.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라는 원칙

 

정의당은 헌법을 부정하는 정치를 배제하는 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그런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정당으로서 그런 입장을 제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국가권력이 헌법을 기준으로 정치사상과 활동의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정치사상과 활동의 자유에 대한 기존의 진보ㆍ좌파진영의 주장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는 정치가 있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배제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에 의해 제한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정치노선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국가권력에 의해 탄압받는다면 함께 맞선다는 것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지 않았는가.

 

또한 이번 사건에 내란음모와 내란선동이 적용된다면 이 또한 정치의 자유의 제약이 강화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통합진보당 내 일부세력이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떳떳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들을 속이면서 지지율을 확보한 것에 대한 비판은 국가권력의 탄압에 의해서 이루어져야할 일이 아니다.

 

국가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 새로운 사회를 위한 행동을 가로막을 권한은 없다

 

정의당의 주장은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정치, 3권 분립의 민주주의가 허상이라고 말하는 정치를 배제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정권이 저항운동을 탄압한 논리와 다르지 않다.

 

헌법의 정신을 뜯어 고칠지 뛰어 넘을지,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결정을 할지 말지, 새로운 민주주의를 정립하기 위한 시도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들의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헌법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박근혜처럼 부정한 방식으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정의당의 주장은 세계 곳곳에서 혁명의 분위기가 고조되며 급진적인 좌파 운동이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거리에서, 직장과 공장에서, 우리의 모든 생활공간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국회에서도 이러한 급진적인 좌파 정치가 탄압받지 않고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하는 것 아닌가.

 

국가권력의 탄압을 진보ㆍ좌파운동의 반성의 계기로 삼자는 코미디는 그만두자. 민족주의 좌파의 정치를 비웃음거리로 만들며 자신의 정치가 우월하다고 자위하는 코미디도 그만두자.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선 투쟁,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국가보안법, 형법 상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적용에 반대한다.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서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진보ㆍ좌파운동을 방어하자.

-국정원을 해체하자.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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