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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극기를 태우는 것을 처벌하는 대한민국,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5/06/01 11:06
  • 수정일
    2015/06/01 11:0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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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태극기를 태운 집회 참가자가 결국 경찰의 추적에 의해 체포되고 현재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이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으며 스스로도 국가보안법 피해를 당한 한 동지가 사노신에 이 사건에 대한 긴급하게 기고를 해 주셨다. 기고해 주신 동지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편집자] 


2011년 '박정근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트위터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 청년을 구속하여,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해외토픽감이 되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구속하였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태극기를 태웠던 또 다른 청년을 구속하려고 합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입니다. 2012년 어느날, 제가 사는 집으로 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관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죄, 이적표현물 배포죄)이었습니다. 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중 하나인 트위터 상에서 북한의 정권을 풍자ㆍ조롱하는 내용을 배포하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계정의 글을 리트윗한 것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입니다.

당시 수사당국은 저의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물건들까지 모조리 압수를 하였고,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대공분실로 소환하여 수십차례, 수십시간에 걸쳐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계속해서 합니다.

"국가안보를 해칠 의도가 있었느냐? 배후는 누구이냐? 당신의 행위가 국가안보를 해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국가를 모독할 의도가 있었습니까?'


지난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학살로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는 집회에서 태극기를 태웠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게 수사당국이 몇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질문했던 내용이라고 합니다. '의도'를 파헤치고, 배후를 캐물으면서 세월호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악의적으로 훼손하려는 '대한민국'의 '의도'입니다.

애국자가 아니면, 모두가 죄인이 되어야합니까? 저는 민중에게 폭력적이고 무능할 수 밖에 없는 국가의 본질이 세월호 학살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배 안에서 죽어갔던 희생자들, 울분을 토했던 유가족들, '국가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던 수많은 시민들, 그 모두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사랑할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모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태극기를 태운 청년에게 수사당국이 계속해서 의도를 캐묻고 있습니다. 저는 피의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피의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이 사건에서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기를 모독당했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의도'입니다. 이것이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이고, 우리 모두가 가장 궁금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가택 압수수색을 당하고, 대공분실로 불려가는 황당한 피해를 당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당했던 피해와 지금 태극기를 태웠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가 당하고 있는 '피해'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가지 다른 사건에서 대한민국의 '의도'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도'는 굳이 제가 밝히지 않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혹시나 태극기를 태우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대한민국'이 생각한다면, 저는 그런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캐물음으로써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그러한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피의자가 태극기를 태우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생수를 들이부으며 그를 제지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필자 본인입니다. 수구언론과 대한민국의 '의도'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당시 그 청년을 보호하고 싶은 생각이 우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 한 사람으로써, 그 국가를 지키려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를 당한 한 사람으로써, 이미 2011년 박정근 사건으로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된 대한민국의 사법부에 의해 무고한 청년이 또 다시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저는 애국가를 4절까지 전부 외우고, 태극기의 건곤감리까지 전부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례도, 애국가 제창도 지난 10년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애국'은 강요로 인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속에 강요된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시간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민중에게 '애국'을 강요하고 '모독'이라는 죄로 공포감을 심어 겁박으로 통치할 시간에,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갇혀있는 세월호 학살 실종자 분들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부터 고민하길 바랍니다.
 

2015년 6월 1일 (세월호 학살 411일째)
최용근 (국가보안법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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