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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갈라진 재능투쟁, 다시 함께 날 수 있을까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3/08/01 10:36
  • 수정일
    2013/08/01 10:4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지난 6월11일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2000일을 넘었다. 햇수로 6년째. 노동운동 역사상 최장기 농성투쟁이다. 하지만 더 큰 힘을 모아야 할 이 때 재능 해고자들은 소위 “종탑파”와 “시청파”로 나누어져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문제가 지난 몇 개월 동안 수도권 운동진영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정작 이와 관련해서 단체나 정치조직에서 입장을 낸 곳은 드물다. 대개의 경우 언급조차 피하고 있다.

이런 기묘한 침묵 속에서 SNS를 중심으로 개인들 간의 상호비방 수위가 도를 넘고 있다. 이 투쟁에 오랫동안 연대해온 여러 단체들과 개인들도 양 편으로 갈려 많은 활동가들이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박스] 재능투쟁의 역사와 의미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의 노조는 1999년 11월에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재능교육 정규직노조와 구별하기 위해 재능교육교사노조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가 2006년 학습지노조 산하로 편입되면서 재능교육지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재능지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정규직노조로 비단 학습지노동자들 뿐 아니라 특수고용·간접고용노동자 투쟁의 선봉이 되어왔다.

99년에서 2002년 사이에 건설된 비정규직노조들은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극심한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붕괴했다. 하지만 재능교육교사노조는 설립 다음 해 7500여 명 중 절반이 넘는 3800여 명을 조직했으며 2000년에는 특수고용노동자 최초로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대중적 노조로 안착하는 듯 보였다. 이후 학습지노동자들의 투쟁은 대교, 구몬, 웅진, 한솔 등 다른 학습지 회사로 퍼져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 11월 소산별체인 전국학습지산업노조가 출범했다.

재능지부가 지금처럼 소수의 조합원들만 남아 장기농성 투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2007년 단체협상 과정에서 당시 이현숙 지도부가 사측이 요구한 수수료제도를 합의한 것이었다. 이 제도는 그만두는 회원의 비율이 커질수록 임금이 삭감되게끔 되어있어 학습지노동자들에게 2십여만 원에서 백여만 원까지 임금삭감이 예상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현숙 지도부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강행하여 불과 네 표 차이로 합의안을 가결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곧 지도부의 사주를 받은 대리투표와 부정투표가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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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현숙은 재능지부 지부장과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리한 합의안을 밀어붙인 것은 산별노조로서 특수고용자들이 맺게 된 최초의 임단협 체결이라는 성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새 수수료 제도 도입으로 임금이 크게 삭감되자 많은 노동자들이 퇴사를 선택했다. 2007년 6천여 명이던 재능교육 교사노동자의 수는 한 해 만에 45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현장이 황폐화되고 부정투표가 드러나자 단협 개악에 반대했던 조합원들은 학습지노조와 재능지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던 이현숙 지도부를 끌어내리고 새 지도부를 구성하여 2007년 말부터 농성투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학습지노조 강종숙 위원장·유득규 사무처장, 재능지부 유명자 지부장·오수영 사무국장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후 노조간부들은 차례로 해고 됐고 노동조합에 대한 극심한 탄압이 뒤따랐다. 2008년에는 이현숙 지도부가 개악한 단협 마저 사측에 의해 파기되고 2010년부터는 대대적인 노조탈퇴 공세가 시작되었다. 노조 탈퇴를 거부한 조합원들은 모두 해고되었다. 이 사태를 초래한 이현숙, 정순일, 최민정 씨 등 전지도부 측들도 2010년 11월 결국 해고되어 농성투쟁에 결합했다. 조합원은 11명으로 줄어들었고 재능지부는 해고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5년간 2000일 넘게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

가장 노사협조적인 상급단체로 알려져 있는 서비스연맹은 새 지도부 등장 이후 재능지부의 농성투쟁을 사실상 방치했다. 2011년 4월 재능 사측은 농성투쟁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서비스연맹을 통해 자신들의 안을 제시했는데, 해고자들의 단계적 복직과 복직유예기간 중 생계비 50만원 지급하겠지만 단체협약 체결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서비스연맹은 이 안을 갖고 해고자들과 논의했으나 해고자들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안을 받고 복직할 수 없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전부터 결합도가 떨어지고 있던 서비스연맹은 이를 계기로 모든 전술 논의의 중심이 되어온 <재능지부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이하 ‘공대위’)>에서도 철수했다.

사측의 회유 안에도 불구하고 재능지부는 이명박 정권 내내 단협 원상회복과 해고자 전원복직을 걸고 농성 투쟁을 계속했다. 비록 소수의 투쟁이었지만 이 투쟁은 용역을 동원한 사측의 농성장 침탈 등 극악한 탄압에 완강히 맞서며 특수고용노동자의 간접고용 문제를 전면화 시켰고, 연대단체들과 함께 공대위를 꾸려 지금까지 수도권 연대투쟁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해왔다.■


사건의 재구성

문제의 발단은 작년 3월 재능 사측이 서비스연맹을 통해 해고자들을 우선 복직시켜 줄 테니 단체교섭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해 보자고 제안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안은 노조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그전까지 태도에 비해 상당히 전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서비스연맹은 전국학습지산업노조(이하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 지부(이하 ‘재능지부’)에 이 안을 수용할 것을 종용했으나, 강종숙·유명자 지도부는 단협의 우선 회복이 원칙임을 주장하면서 사측이 제시하는 선(先) 복귀 후(後) 단협 논의는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종숙·유명자 지도부는 조합원들을 설득해서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비대위 구성 이후 강종숙·유명자 지도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유득규 당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은 수용할 수 있는 안은 아니지만 일단 사측과 직접 교섭을 여는 것이 중요하므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고, 오수영 당시 재능지부 사무국장은 즉각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나중에 작성한 문서에서 사측이 줄 수 있는 최대치를 내주었다고 평했다고 한다.

사측의 교섭요구로 작년 5월부터 교섭이 재개됐지만 강종숙·유명자 지도부는 단협 원상회복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완강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교섭이 계속되던 7월 유득규 사무처장과 오수영 사무국장은 차례로 학습지노조와 재능지부 임원에서 사퇴했다. 사유는 각기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유명자 지부장과 함께 교섭위원이었던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때 아마도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의견불일치가 원인이었던 듯하다. 결국 교섭은 8월에 최종 결렬되고 종탑 농성투쟁 이전까지 사측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부터 여러 가지 문제로 삐걱거리던 재능지부의 의사소통 구조가 완전히 깨진 것도 대략 이때부터이다. 유명자 지부장이 더 이상 조합원들과 회의를 하지 않겠다는 문제의 발언을 한 것도 이 무렵이었고, 그 뒤 학습지노조 위원장과 지부장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들(소위 이후의 ‘종탑파’ 8인)이 따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여민희 조합원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교섭 결렬 이후 작년 말부터 지도부를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강도 높은 전술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명자 재능지부장과 강종숙 학습지노조 위원장은 고공농성 같은 극한전술을 반대하고 시청 농성장을 유지하며 사측에 대한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종숙·유명자 지도부가 강하게 반대하자 조합원들은 지난 2월 강종숙 위원장과 유명자 지부장에게 종탑농성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오수영·여민희 조합원이 종탑에 올라갔다. 그 동안 전술 논의의 중심이던 공대위 참여 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두 조합원이 종탑에 올라간 2월6일 유득규 조합원은 기존 공대위와 논의 없이 2011년 이후 공대위에 불참하며 재능지부 투쟁을 방기하고 있었던 서비스연맹과 통진당을 포함한 확대회의를 열겠다고 연락을 돌렸다. 2년 만에 회의에 들어온 서비스연맹은 곧바로 유명자 지부장의 임기 문제부터 거론했다.

이후 몇 차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논의들이 있었지만 결국 조합원들은 임기 만료를 이유로 유명자 지부장을 해임하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선언하여 비대위 위원장에 종탑에 올라간 오수영 재능지부 전사무국장을, 집행위원장으로 유득규 학습지노조 전사무처장을 선출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이하 ‘비없세’)의 활동가들이 양측의 중재에 나섰다.

비없세가 제시한 중재안의 핵심내용은 양측이 한 발씩 물러나서 재능지부 비대위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임기가 다 된 강종숙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대의원 대회를 통해 직무대행으로 선출하여 재신임하자는 것이었다. 학습지노조 직무대행 자격으로 강종숙 위원장이 교섭의 최종 체결권을 가지고 교섭이 마무리된 뒤 학습지노조와 재능지부는 정식으로 선거를 열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중재는 실패로 돌아갔다. 비없세 활동가들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중재안 자체는 본질적으로 밀실야합의 성격을 띤 것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선거를 치르려고 했다는 발상 자체가 떳떳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안이 어느 정도까지 비대위 측과 합의가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선거 결과를 합의했다는 사실을 문서화 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문서상으로는 대의원대회를 통한 직무대행의 선출에 합의한 것만 남았는데, 비없세 측은 강종숙 위원장을 직무대행으로 선출하는 것까지 합의가 됐었다고 하고 비대위 측은 그런 내용을 합의해 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습지노조 선거 당일 직접 황창훈을 후보로 추천한 비대위 측의 강경식 조합원도 비없세 측으로부터 강종숙이 당선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거듭 문자가 왔었다고 밝히고 있으니 비없세가 강종숙의 재신임을 전제로 하고 중재에 나섰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어쨌든 결과는 2월27일 열린 학습지노조 직무대행 선거에서 강종숙과 함께 황창훈이 후보로 추천되었고 경선 결과 황창훈이 학습지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선거는 강종숙·유명자 지도부가 지적하는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의 요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중재자들의 의사와 달리 학습지노조 직무대행 선거는 유명자·강종숙 지도부의 완전한 배제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고 비대위의 절차적 합법성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결과했다.

학습지노조 선거 이후 유명자·강종숙 지도부는 종탑 측이 비대위 체제를 해소한다면 새로 선출된 황창훈 학습지노조 직무대행을 교섭대표(교섭체결권자)로 인정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기존 공대위 소속 연대단위들이 포함된 가칭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습지노조 양측 각 1인, 공대위 단위 1인 포함 3인의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하자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공동위원장과 교섭위원의 연석회의에서 교섭 및 투쟁방향을 논의하고, 공투위 소속 모든 단위와 개인이 참여하는 전체회의를 열어 그 결과를 교섭 및 투쟁방향에 반영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을 이미 획득했다고 판단한 비대위 측으로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는 안으로 보였을 것이다. 종탑 측 주변 인사들은 노조의 적법한 절차에 따른 정당한 투표 결과에 승복하라는 비판을 유명자·강종숙 측에 퍼부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측은 재능 해고자들이 다 참여하지 않는 교섭은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재능지부의 분열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섭이 교착에 빠지면서 공대위 회의를 통해 양측이 몇 차례를 논의를 했으나 비대위 해소가 여전히 쟁점이 되면서 논의는 공회전을 반복했고 반목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 통장 문제 같은 부차적인 문제가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논란은 더욱 진흙탕 싸움으로 빠지게 되었다. 교섭국면을 재개하고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종탑 농성투쟁 전술의 목표는 의미를 잃었고 6월11일 각자 따로 2000일 기념행사를 진행한 것에 드러나듯 양측의 자존심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혼탁한 논란이 흐린 문제의 핵심

최근까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강종숙·유명자 지도부에게 분명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듯하다. 발단은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 SNS에 유명자 지부장에 대한 지지 멘트를 남기면서 비롯되었다.

하종강 소장은 재능지부의 내부 갈등을 투쟁의 원칙을 지키려는 자와 출세주의자의 대립으로 규정하며 유 지부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는데, 별다른 근거를 밝히지 않고 툭 뱉는 이런 식의 코멘트는 이후 재능지부를 둘러싸고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막말들이 난무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종탑 농성을 지지한다는 소수의 몇 사람이 SNS에서 강종숙·유명자 동지에게 퍼붓고 있는 언사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소위 ‘시청파’에서도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이들에 비하면 그 양과 질에서 결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대개 이전부터 재능지부 투쟁에 결합해온 사람들이 아니라 최근에 이 투쟁이 이슈가 되면서 결합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누구든 투쟁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지만 상황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삭제하고 일방의 입장을 배타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활동이 양측의 갈등과 반목을 더욱 조장할 뿐 투쟁에 별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재능지부 투쟁에 연대하던 활동가들 상당수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는 논쟁과 양측의 신경전에 질려 차라리 양쪽 다 안 가는 편을 선택하고 있다. 그 결과 양측의 농성거점에는 배타적 지지자들 외에는 발걸음이 거의 끊기고 있다.

재능지부의 내부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수도권 투쟁사업장 활동가들이나 좌파 성향의 활동가들은 여전히 강종숙·유명자 지도부에게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동지는 최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만약 비대위 측이 제기하는 대로 “기존 지도부 임기 만료와 조합 내부 회의의 부재, 독단적인 사업 운영 등”이 문제였다면 “이런 문제를 굳이 종탑에 올라서 해야 했냐”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종탑 농성전술에 대한 주변 활동가들의 의혹을 요약하고 있다.
재능지부처럼 조합원이 소수화된 장기투쟁 사업장에서는 노조체계가 이미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부장 임기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대개 약식으로 이루어지거나 사실상 자동연장 되는 경우가 많고 재능지부에서도 이미 그런 예가 있었다.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탑에 올라가 교섭 공문을 띄우면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 저의가 의심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소수로 남은 조합원들 중에서 또 몇 명을 배제하고도,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투쟁해온 기존 연대단위들을 버리고도 종탑 농성 같은 극한투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종탑 농성전술 자체가 완전히 기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이 있지만 일단 교섭국면을 다시 열기 위해 사측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고자 한 다수 조합원들의 열망이 반영된 전술로 바라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서비스연맹의 행태와 일부 조합원들의 지나치게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보았을 때 후퇴한 안을 수용하고 투쟁을 마무리 짓는 성격의 투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끝없는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심과 상호불신이다. 중간에서 한쪽을 대변하는 척하는 몇몇 사람들은 이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여러 복잡한 사정과 사태들 때문에 흐려지고 있긴 하지만 결국 논란의 본질은 “단체협약 복원, 해고자 전원복직”라는 원칙을 확고히 붙잡고 계속 투쟁할 것이냐, 일단 사측이 제시한 전향적인 안을 가지고 교섭을 시작할 것이냐의 문제로 보인다. 이는 원칙의 문제라기보다는 전술적 판단의 문제이다. 사실 2000일 넘게 투쟁을 해온 상황에서 투쟁의 원칙이라는 것도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 동안 목숨을 건 공장점거 투쟁 끝에 결국 사측의 희망퇴직 안을 받았을 때, 기륭전자와 동희오토 해고자들이 기나긴 농성 투쟁 끝에 결국 단계적 복직 안을 수용했을 때, 그것을 두고 기회주의라고 비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이런 결과들이 “승리”로 치장되는 것은 문제이겠지만 투쟁을 시작하지도 않는 관료들의 투쟁과 수백 수천일 최선을 다해 투쟁한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런 판단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는 함께 투쟁을 해 왔던 동지들과 집단적으로 판단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이른바 법·제도적인 절차에 하자가 없다 해도 계급운동의 전통에서 그것은 직권조인이고 어용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재능지부의 투쟁과정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정상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깨졌으므로 지도부를 뒤엎고 그동안 전술논의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온 공대위 체계를 부정하는 일종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가?

비대위 측이 제기하는 조합원과의 소통 단절에 대해서는 유명자·강종숙 지도부가 해명해야 할 문제이다. 아무리 감정적 골이 깊다 해도 노조 내부에서 조합원들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지도부는 문제가 있다.

한편 비대위는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인 공대위를 배제하고 조합원들끼리 배타적으로 논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도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위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했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전술의 결정은 오랫동안 함께 투쟁해 온 연대단위 동지들과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투쟁의 걸림돌로 기능해온 서비스연맹과 종탑 농성전술을 결정해서 지도부를 몰아내고 기존 연대동지들을 배제한 과정은 결국 종탑 농성이 교섭을 위한 술수가 아니었냐는 의심을 낳을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상호간에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이 이런 것임에도 이에 대해서는 양측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이른바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에 기준한 정당성은 어찌됐건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종탑 측이 좀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쟁의 원칙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누구도 강종숙·유명자 지도부의 정당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연대단위 다수가 강종숙·유명자 지도부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빠”라서, 혹은 온정주의에 빠져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견지해온 원칙성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양측이 이 두 가지 자기 근거를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며 모든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제 이 두 가지가 과연 절대적인 기준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비타협적인 투쟁이 절대적인 원칙인가

재능지부 투쟁에서 인적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이현숙 등 전임지도부 간부들이 해고되어 농성장에 결합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강종숙·유명자 지도부가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과 2년 사이에 조합원들의 관계가 역전된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는 결국 뭐라고 말해도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07년 학습지노조와 재능지부 지도부를 겸하고 있는 이현숙을 끌어내리고 새롭게 지도부를 세울 때, 유명자 동지와 오수영 동지는 지부장과 사무국장으로 나란히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사이였다. 오랜 진통 끝에 2009년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다시 정식으로 선출했을 때는 강종숙과 유득규가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이들은 모두 전임 이현숙 지도부를 타도하는 투쟁에서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이들마저 강종숙·유명자 지도부에 등을 돌린 걸 전부 이현숙, 통진당, 서비스연맹의 농간으로 돌리는 건 무리한 얘기이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발언이나 글을 보았을 때 어느 정도 과장을 감안한다 해도 그동안 강종숙·유명자 지도부의 언행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강종숙·유명자 지도부가 배제되는 과정에 적지 않은 부당함이 있었고 투쟁의 원칙이라는 문제에서 정당성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지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임기 문제 역시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조합원들을 소집해서 논의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이를 문제가 될 때까지 방치해 온 것은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해온 지도부의 오만과 독단이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비없세의 중재가 실패하고 학습지노조 선거에서 패배한 뒤 강종숙·유명자·박경선 3인 명의로 제출된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의 과정과 종탑농성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은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조합원들에 대한 폭로였을 뿐이었다. 종탑 쪽 동지들로부터 사실 자체에 대한 반박이 나오지 않는 걸로 볼 때 이 글은 많은 부분 사실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안타깝게도 당사자들의 생각과 달리 읽는 사람들에게 별로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웠다. 이글 대부분은 “저들은 투쟁을 접고 싶어 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불성실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자기 생계를 위해 투쟁을 소홀히 한 사람들이다”라는 고발과 인신공격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5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투쟁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심리가 그렇게 엄청난 죄인가? 생계문제 때문에 투쟁을 소홀히 한 것이 과연 그렇게 엄청난 죄인가? 조합원들이 지쳤을 때 이를 안고 가는 것도 지도부의 역할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투쟁해온 사업장에서 당위적인 투쟁원칙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래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토론이 되지 못하며 결국은 대화의 단절로 끝나고 말 것이다.

강종숙·유명자 지도부가 투쟁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은 당연히 높이 사야하겠지만 건강한 관계 맺기와 의사소통에 있어서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개인의 어렵고 힘듦을 호소하는 것이 운동의 대의에서 벗어난다는 사고방식, 보다 더 센 투쟁을 옹호하는 과도한 투사적 운동문화가 결국 두 명의 조합원을 종탑으로 내몰고 강종숙·유명자 지도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쟁점이 되고 있는 재정 문제도 강종숙·유명자 지도부는 재능지부에 모인 후원금들은 연대 동지들이 투쟁하라고 준 돈이니 이 투쟁이 끝나면 다른 투쟁사업장에 인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맞다. 그렇게 사용되면 참 좋을 것이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나 그 돈의 사용방식에는 지금까지 함께 투쟁해 온 재능지부 조합원들의 권리도 있다. 지도부 두 사람이 일방적으로 좋은 곳에 쓰자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이 노동자민주주의인가

서비스연맹과 통진당 같은 조합주의자들은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이 절대적인 원리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종탑을 지지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논리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조합원 다수가 지지하는 노조체계와 투쟁전술을 왜 소수가 따르지 않는가라는 점에 집중되어 있다.

강종숙·유명자 지도부 역시 똑같이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 문제를 제기한다. 시청 측은 자진 사퇴한 임원이 1년 동안 피선거권을 가질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규약·규정상 유득규·오수영 조합원을 임원으로 선출한 비대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대해 비대위 측의 강경식 조합원은 이미 조합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런 규약·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비대위 측이야말로 규약·규정을 근거로 강종숙·유명자 지도부를 몰아내지 않았는가?

이런 식의 규약·규정 놀음은 투쟁하는 노동자의 방식이 아니라 노조관료들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관료들조차 자기들이 유리할 때는 서슴없이 규약·규정을 위반한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사례에서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다.

문제의 핵심은 이미 재능지부의 투쟁이 재능지부 해고자만의 투쟁이 아닌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재능지부 농성투쟁은 애초부터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으로부터 버림받은 투쟁이었다. 2010년 9월 공대위가 결성된 뒤 재능지부 투쟁의 전술은 항상 연대단위들과 함께 논의되어 왔다.

재능지부처럼 수 년 간의 장기투쟁 끝에 투쟁하는 조합원이 손에 꼽을 만큼 소수화되고 연대단위들에 의존성이 큰 투쟁사업장에서 노조체계의 절차성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조합주의자들이 노동자민주주의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은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일 뿐 노동자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노동자민주주의는 노조의 규약·규정에 제약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항상 투쟁하는 이들의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에서 투쟁은 자주 조합원의 울타리를 넘어 확대되곤 했다. 그러나 조합주의자들과 관료들은 늘 투쟁을 제약하고 연대를 외부라는 명목으로 배제하며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을 근거로 의사결정의 범위를 제약하려 해 왔다. 하지만 이는 “제 3자 개입 금지” 같은 자본의 논리와 다름없는 발상이다.

과연 재능지부 투쟁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조합원들만의 힘이었는가? 싸울 때는 필요한 동지지만 중요한 결정은 우리끼리만 하겠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논리인가? 연대와 주체를 선명히 가르고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이 우리에게 있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조합주의 논리는 운동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서비스연맹 관료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기존 공대위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협소한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을 근거로 투쟁하는 사람들의 더욱 광범위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대단위들 다수가 종탑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다른 모든 상황과 맥락을 삭제하고 오직 절차적인 합법성을 근거로 상대의 의견을 억누르는 일방적 논리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유명자·강종숙 지도부 및 연대 단위들은 여러 차례 종탑 측에 조합원들과 연대단위 및 개인들이 공동의 의사결정을 통해 투쟁의 방향을 논의하자고 제기한 바 있다.

이미 종탑 농성투쟁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비대위는 사측으로부터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전술로 종탑 농성을 선택했다. 그 전술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 이러한 극한투쟁을 계속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일 것이다. 비대위 측은 “단협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요구에서 후퇴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밝힌바 있는데, 그런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 소위 노조의 절차적 합법성이라는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동지들의 제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재능지부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해고 조합원들이 다시 단결하고 이를 중심으로 흩어진 연대 대오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지금처럼 양측으로 갈라져 분란이 계속되고 연대 단위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어느 쪽도 투쟁의 전망은 없다.

종탑 농성투쟁의 끝이 다시 논란과 상호 비방으로 얼룩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향후 투쟁의 방향과 수순, 재정 문제 등이 수도권 운동진영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비대위 문제 같은 노조의 체계문제가 과도하게 쟁점이 되고 있는 면이 있지만, 그것은 현행 자본주의의 법·제도적 한계로 말미암은 형식적인 문제일 뿐이다. 지부장이 누구냐, 교섭권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들보다 양측 모두 구속력 있다고 합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선결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는 재능지부 투쟁에 참여한 연대 단위 및 개인들에게 폭넓게 열려져야 할 것이다. 시청에 연대하던 종탑에 연대하던 소속과 상관없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여 투쟁의 전망을 놓고 평등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가지고 모든 문제에 대해 수평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런 민주적 총회의 방식으로 투쟁과 교섭의 주요한 전술적 논의가 결정될 때만이 어느 한 쪽이나 개인의 독단적 결정을 막고 다수결 같은 민주적 의사결정 장치들이 다시 구속력 있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합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투쟁하는 자들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재능지부 문제의 해결은 어느 일방만의 논리가 아닌 투쟁하는 자들의 민주주의로 해결되어야 한다. 만약 이미 너무 커져버린 감정적인 골들 때문에 양측의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변의 연대단위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자신의 입장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혼탁한 논쟁을 보고 주체가 아닌 연대 세력들이 너무 나선 게 문제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빈대 몇 마리 때문에 집을 몽땅 다 태워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부세력들은 보다 광범위한 연대의 의지로 자정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건강한 연대 동지들과 단위들이 너무 말을 아끼고 주체의 문제로만 맡겨 놓고 방치해 온 것이 오히려 문제를 키워왔던 것이 아닐까.


이태영
 

*그동안 재능 투쟁에 대한 여러 글들이 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최덕효 씨에 의해 자극적인 제목과 멋대로 편집으로 난도질당한 것이 문제제기 되어왔다. 사노신은 이미 오래전에 최덕효 씨가 그런 식으로 남의 기사를 옮기는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이 글 역시 그렇게 이용되는 것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며 (어떤 식의 이름과 명의를 쓰든) 최덕효 씨에 의해 이 기사가 무단으로 전제·배포·복사·수정·인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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