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황혼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  이육사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