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처럼 끔찍한 시간이었다. 한 순간 악몽이면 차라리 깨어나기라도 할 텐데,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 200일이나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295번째로 또 한 명의 실종자가 수습됐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한 생명의 탄생을 축하해야 하는 생일날 황지현 학생은 시신으로 수습됐다. 여전히 9명의 실종자들은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유가족이 되는 소원”을 안고 살고 있다. 유가족들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죽은 아이 시신을 수습하고 먼저 장례를 치렀다고 죄인 아닌 죄인 심정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었던 한 아버지는 참사 이후 받은 스트레스로 말기암 판정을 받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 곁으로 갔다.

 

“병실에 누워 있던 태범이 아버지가 갑자기 활짝 웃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태범이다’하고 말했어요. 태범이가 나타났나 봐요. 마지막에 제대로 말도 못했었는데... 그러고 얼마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오마이뉴스≫, “암으로 숨진 세월호 유족, 마지막 한마디는...”, 2014. 10. 27.)

 

비극이다. 말과 글로 이 끔찍하고 참담한 상황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 중에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있다고 한다. 측은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 비극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눈물짓는다.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한다. 수오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참사를 저지른 원흉들에게 분노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200일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권력과 언론을 포함한 저들의 동패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아 왔는가?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각종 폭력을 당해 왔다. 저들은 희생자 가족들을 죽은 자식 팔아서 한몫 챙기려고 하는 사기꾼으로 취급했다. 권력은 유가족, 실종자 가족, 일반인 가족으로 하나의 죽음을 셋으로 나눠서 분열시켜 왔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권력은 희생자 가족들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국정원은 단식 투쟁을 하는 유가족의 사생활을 캐고 사찰과 감시를 했다. 대다수 언론 역시 권력자 편을 들며 유가족들을 매도하고 거짓과 허위 선전을 일삼아 왔다. 급기야 저들 언론에 의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까지 전락했다. 일베는 세월호 단식자들 옆에서 폭식투쟁을 하며 자신들이 인간의 탈을 쓴 금수임을 증명했다. 피비린내 나는 현대사 최대의 학살사건을 저지른 서북청년단을 재건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을 때려 부셔야 하는 적으로 만들고 있다.

 

 

권력과의 싸움만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

 

이 끔찍한 비극의 당사자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졌기에 자식 잃은 슬픔을 위로받고 치유받기는커녕 저들 지배자들에게 증오와 적대를 한 몸에 사게 됐는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 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애지중지하고 키우던 자식 잃은 부모들이 도대체 왜 아이들이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요구를 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저런 유형무형의 거대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태범이 아버지’ 빈소 앞에서 한 유가족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죽인거야, 정부가. 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쳐. 그래도 구조를 안 했잖아. 구조 안 하고 애들을 죽였잖아. 태범이 때문에 속병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 아니냐.” (≪오마이뉴스≫, 같은 기사)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구조하지 않아서 죽은 학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저들은 해상재난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상재난사고라면 왜 한사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난하면서 국정원을 비롯한 경찰과 검찰, 언론이 총동원되어 민감한 정치 사건으로 스스로 만들고 있는가? 저들의 모순된 행보로부터 세월호 참사가 일반적인 해상재난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저들 스스로가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200일은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세월호 학살 200일을 맞는 지금 다시 진실을 위해 싸워 나가자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세월호 학살 책임자인 정부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조차도 세월호 진실 은폐의 공범임이 분명해졌다.

200일 동안의 경험으로 우리가 확실하게 깨닫게 된 또 다른 교훈은 저들 권력자들과 타협과 중재, 청원으로는 결코 진실규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진상규명 회피처로 추악한 몰골이 드러난 국회가 아니라 정치권력과의 흔들림 없는 투쟁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다. 태범이 아버지 인병선 씨는 이렇게 우리에게 유언을 남기고 떠나갔다.

 

“내 몸이 이래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요 끝까지 싸워줘요. 끝까지 밝혀줘요...”

 

세월호 학살 200일, 이 땅을 같이 살아가는 산 자들이 이 처절한 유언을 반드시 집행하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4/11/03 18:59 2014/11/03 18:59
Tag //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searcher416/trackback/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