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자리에 있습니다. 아니 점점 후퇴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200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고, 진실을 찾아 싸웠습니다. 진실을 조작ㆍ은폐하고 있는 세력에 맞서 싸웠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크고 작은 집회들을 열었고, 도보순례, 삼보일배,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을 진행했습니다. 국회 앞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또 청와대 앞에서의 농성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550여만 국민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습니다. 아니, 뒤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독립된 조사위원회의 요구는 특검 추천에 유가족을 어떻게 참여시키느냐의 요구로, 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어떻게 선임하느냐의 요구로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집회 참가자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상규명을 바라는 유가족과 국민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억압과 폭력으로 진실을 짓밟고 있습니다. 진실을 파묻어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연합 또한 “협상에는 상대가 있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는 허울 좋은 구실로 진실 은폐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며칠 사이 나온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여야는 특검 추천에 일정하게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에 합의했고, 조사위원회 위원장 선임에 있어서도 대통령 임명이 아닌 위원 호선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대신 해경 해체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에 동의하는 것으로 ‘주고받기’를 했다고 합니다(31일이 협상 시한이니, 이 글이 나올 때쯤이면 저들이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더 확실히 밝혀질 것입니다).

 

 

수사권, 기소권을 가져도 진실을 밝히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협상 타결 여부를 떠나, 우리는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특별법입니까? 이러한 특별법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단언합니다. 특검으로 진실을 규명한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특검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적당하게 꼬리와 깃털을 자르는 선에서 범죄자들에게 사법적 면죄부를 주려고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의 특검들이 이러한 특검의 본질을 여실하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수사권 없는 조사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한다? 이 역시 하늘에서 별을 따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예를 생각해 봅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핵심 자료들을 파기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습니까? 그리고 지난 세월호 국회 청문회를 기억해 봅시다. 청와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국회가 요구한 자료에 3%밖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에게도 이러할진대 조사위원회가 어떻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겠습니까? 동행요구권과 출석요구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국회는 그런 권한이 없어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했습니까?

나아가 지난 지면을 통해 수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조사위원회가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작열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같이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쉴 새 없이 내리쬐는 뙤약볕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거센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의 범죄자들은 진실을 끝없이 조작ㆍ은폐하려 들 것이고, 수사를 방해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조사위원회의 설치는 진상규명의 첫걸음일 뿐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대중의 강력한 투쟁이 이와 함께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해 왔던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제완화, 민관유착?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주장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대형 해난사고입니까? 그러면 해경이, 검찰이 철저하게 조사하게 하면 됩니다. 누구의 과실ㆍ책임인지를 정확하게 따지고 이에 따라 처벌하고, 금전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지만 법에 따라 배상하면 됩니다. (물론 이 역시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 일어났던 대형 사고들을 보면, 권력과 자본의 유착 관계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세월호 참사는 “기업과 정치인이 결탁하여 안전관리규제를 완화하고, 관리감독기관은 과적과 불법개조를 눈감아주고”1), “박근혜 정부의 재난 구조 실패에서 비롯된”2) “구조적인 원인”3) 때문에 일어난 사고입니까? 이렇게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출동한 해경은 선원들만 구출했습니다. 민간인들의 구조 활동을 막았습니다. 피의자인 선장을 해경의 집에 재웠고, 그 시간 CCTV 기록은 삭제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지면에 다 담기조차 힘든 수많은 의혹들이 있습니다. 또 참사 첫날부터 지금까지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엄청난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어 구조하고 있다고 언론들이 떠들어대던 그날 밤 그 바다에서는 아무런 구조 활동도 없었습니다. 나아가 세월호의 항적까지 조작해대는 정부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4)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박근혜의 대국민담화 내용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박근혜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불법 과적 등으로 이미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되었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것”,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 “그 원인은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ㆍ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 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해온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어왔기 때문”, “평소에 선박 심사와 안전운항 지침 등 안전관련 규정들이 원칙대로 지켜지고 감독이 이루어졌다면 이번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 “선박 안전을 관리ㆍ감독해야 할 정부와 감독 대상인 해운사들 간에 이런 유착관계”, “20년이 다된 노후선박을 구입해서 무리하게 선박구조를 변경”,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 채 기준치를 훨씬 넘는 화물을 실었는데, 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음”, “각종 특혜와 민관 유착”,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 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업체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 등 비정상적인 사익추구였습니다”, “앞으로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해서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 만들겠습니다”, “안전 대한민국”이라고 입에 발린 거짓말로 세 치 혀를 놀렸던 것에 반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보다 제대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입에 발린 거짓말이냐 좀 더 제대로 하려는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안에 있어서는 똑같다는 말입니다.

 

 

대책회의의 대안과 요구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정부는 왜 규제완화를 계속하고 있나”, “왜 규제강화 방안을 마련하지 않나”, “곳곳에 산적한 위험에 대해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문제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며 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ㆍ말단에게 책임을 돌리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기조를 바꾸고 기업의 이윤논리를 더욱 규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유인물(“더 이상 이 정부에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시민들이 밝힙시다”)에서 국민대책회의는 “기업과 정치인이 결탁하여 안전관리규제를 완화하고, 관리감독기관은 과적과 불법개조를 눈감아주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구조에는 무능하고, 안전마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는 지금의 사회를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304명의 죽음이 억울하게 묻히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죽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이 유인물의 제목처럼, “검찰과 정부, 국회에 기댈 수 없다면 이제 시민들의 힘으로 진실을 밝힙시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시민들과 함께 진실을 밝힐 것이고,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 정치적 책임도 반드시 물읍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유인물(“세월호 특별법,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주춧돌입니다”)에서는 “... 정책입안자들 ... 로비를 받고 규제를 완화해버린 정치인들은 수사를 받지 않고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월 16일자 논평(“세월호 참사 반년, 진상규명 시작조차 못했다”)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유가족이 특별법을 만들고자 한 것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였다. 정부는 재발을 방지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하고 안전규제도 완화되고 있다.”

9월 27일 시청 집회에서 단상에 오른 김혜진 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제 우리가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누가 규제를 완화했는지, 누가 선령규제를 완화했는지 밝혀야 합니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누가 규제를 완화했나! 누가 돈을 받아 처먹었나! 규제완화한 놈, 돈 받아 처먹은 놈들을 수사하라, 처벌하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구조적 안전대책을 마련하라! 이러한 것들이 거칠게 표현하자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제완화, 민관유착으로 인식했을 때,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요구들과 대안들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구조에 대해서도 “박근혜 정부의 재난 구조 실패”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완화, 민관유착이 참사의 원인인데, 정부가 승객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즉, 해경은 구조를 하려고 했으나 구조 시스템의 잘못—구조업무보다 중국어선 단속에 집중했던 해경의 뿌리 깊은 관행과 방향성, 안전업무가 도외시되었던 성과주의, 해난구조업무의 민간위탁 등5)—으로 승객을 구하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말단의 책임자 처벌로는 이 문제가 개선될 수 없으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꼬리 자르기를 하지 마라, “구조 실패”에 더 책임 있는 놈을 처벌하라! 재발방지를 위해 제대로 된 구조 체계를 만들어라! 대책회의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는 학살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라면 여러분들은 시종일관 은폐ㆍ조작질을 해 대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이해가 가십니까? 사고의 원인에서도 대안에서도 정부의 말과 대책회의의 말이 대동소이한데 말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더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책입안자, 정치인, 즉 더 윗선까지 수사하라는 것입니다. 또 정부의 정책을 실제로 바꾸라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윤이 아닌 사람이 중심인 체계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차이 때문에 정부가 그토록 기를 쓰고 이 사건을 은폐ㆍ조작해야 할까요? 더 윗선까지 수사하라구요? 적당한 선에서 잘라내면 되지 않습니까? 특정 사건에 책임을 지고 몇 년씩 살고 나온 (거물)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부 정책을 바꾸라고요? 이것이 은폐ㆍ조작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규제완화, 민관유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자금, 로비 자금 몇 푼 받은 것으로 저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조 실패를 무마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고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권이 아니 이 체제가 흔들릴 정도의 무언가가 아니고서는 이렇게까지 기를 쓰고 나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SBS에서 <추적자>라는 드라마를 했었습니다. 삼성을 정면으로 깠다고 항간에 회자되었던 드라마지요. 거기에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은 낮에는 여야로 나눠 싸우다, 밤이 되면 은밀하게 회동하며 이런저런 현안들 함께 논의합니다. 그것이 단지 드라마 속에서의 이야기일까요? 2014년 9월 26일자 ≪한겨레≫에서 남재희 씨는 과거 자신도 포함되었던 이러한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그런 모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연합까지도 이 문제에 기를 쓰고 나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주고받는 한통속이고, 특히 저들의 지배 체제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중에 발생했다는 것으로부터 조심스럽게 추측을 시작해 봅니다. 그리고 천안함의 침몰을 떠올려 봅니다. 정부는 아직까지 천안함이 ‘북괴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합리적인 정신을 가진 국민들 누구도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안함의 함수도 함미도 아닌 제3의 장소에서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쉴 새 없이 무언가가 미군 헬기에 실려 옮겨지는 방송 장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이 몸소 한 준위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무언가를 유족들에게 전달하는 장면도 TV를 통해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에 말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천안함 재판에서 천안함이 아닌 다른 선박 인양에 참가했다는 증인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잠수함과 선박의 충돌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비일비재합니다. 98년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도 미국핵잠수함과 한국 선박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미 연합 훈련 중, 동ㆍ남해뿐만 아니라 서해에서도 잠수함 훈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는 컨테이너로 보기엔 너무나 길고(적재 컨테이너 전체를 연결한 것보다 더 긴), 한 번에 화면에서 사라졌던(컨테이너는 부력으로 일정 시간 물에 떠 있을 수 있음), 진도VTS의 레이더 영상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사고 해역은 협수로로 물살이 빠르고, 반대편에서 배 한 척이 올라왔다. 충돌하지 않도록 레이더와 전방을 관찰하며 무전을 듣고 있었다”는 3등 항해사 박 모 씨의 진술에도 주목합니다. 보통 선박이면 AIS 이야기가 나왔을 것인데, “레이더와 전방”을 관찰했다는 것은, AIS 신호가 잡히지 않는 물체일 수도 있었겠다는 추정을 해 봅니다. 또한 해경 CN235 정찰기에 찍힌 의문의 물체에 주목해 봅니다. 그리고 김지영 감독도 인정한 급격한 변침은 뭔가와의 충돌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우리의 추측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완화, 민관유착, 구조실패로는, 해경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구조를 막았는지, 정부는 왜 계속해서 모든 것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는지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 번도 정부는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답을 내놓기는커녕, 유언비어를 엄단한다며 전 국민을 사찰하고 탄압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래도 304명이나 되는 생목숨을 수장시키는 나라가 어디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고, 국가란 바로 지배층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리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천안함 침몰 때로 돌아가 봅시다. 천안함의 함수는 어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다음 날까지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선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고는 함수가 침몰한 후 침몰 지점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부터 수색이랍시고 함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함수가 발견되었을 때, 생존자는 전혀 없었습니다.

80년 광주 학살을 떠올려 봅시다. 박정희 독재하의 수많은 사법 살인들, 의문사들을 떠올려 봅시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만 명을 학살한 보도연맹 사건, 3만 명을 학살한 제주 4ㆍ3 사건을 떠올려 봅시다. 지금도 전국곡곡에서 집단으로 매장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계속 발굴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들이 죽여야 했던 우리 국민들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생목숨들을, 억압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최근 전시작전권이 다시 연기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나라 지배층들이 얼마나 미국을 필요로 하고, 미국에 목을 매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굴종은 이 나라 지배층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 듯합니다. 특히, 사회 구조가 더욱더 양극화되면 될수록 사회적 대립이 더욱더 폭발적으로 나타나면 날수록, 미국이 지켜주지 않는 대한민국은 저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이상에서 말한 것을 종합하여, 우리는 세월호는 학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구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구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구조를 막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진실들을 은폐ㆍ조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국민을 사찰하고 탄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부 간의 공조를 통해, 민주연합도 체제 유지에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국민에 대한 학살 은폐, 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책회의의 기조는 투쟁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우리의 추측이 맞다면, 지금처럼 싸워서는 진실에 한 치도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권과 이 체제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면, 우리도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강위력한 대중 투쟁 없이는 저들의 은폐ㆍ조작ㆍ방해 공작을 막아낼 수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사 원인에 대한 우리의 추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처럼 싸워서는 진실 가까이 한발도 디딜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국민대책회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 “끝까지 지켜줄게”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무엇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지켜주겠다는 것입니까? 규제완화로, 선박선령 완화로, 과적으로, 부실한 고박으로 일어난 가슴 아픈 사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것,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기조로는 누가 돈 처먹고 규제를 완화했는지,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는지 수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윗선의 누가 “구조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수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수많은 의혹들은, 이미 대책회의가 주장하는 참사의 원인들 아래로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설령 이런 기조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다고 한들, 정치인 몇 명, 고위관료 몇 명 더 잡아 처넣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안전사회’라는 허울 좋은 이야기는 참사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투쟁의 방향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칠 때, 왜 대책회의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조로는 “박근혜 퇴진”을 외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규제완화, 민관유착에 의해 발생한 구조적 사고이고, 해경은 애초에 그런 선박을 구조할 능력이 없었던 겁니다. 이전부터 있었던 부패와 무능이 도의적 책임은 될지언정, 이것으로 현 정권의 “퇴진”을 외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한 대책회의는 재발방지를 위해, “국가재난안전관리체계는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도록 재구성”하고, “정부는 이런 기업의 탐욕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6)라고 주문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좀 심하게 이야기해 봅니다. ‘구하지 않았는데, 죽였는데’, 무슨 놈에 재발방지입니까? 광주학살 재발방지를 위해, 정부에 정책 방향 전환과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까? 아니면 학살자는 물러가라고, 학살자를 처단하자고 투쟁해야 합니까?

 

 

유가족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유가족들은 “왜 죽였냐”며,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구조도 없었던 그날 밤을 울부짖으며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재발방지”와 “안전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해경은 구조초기 해군의 투입도 막았고, 미군의 도움도 거절했습니다. 소방본부의 구조시도도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현장책임자였던 123정 정장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습니다”라는 유가족의 성명서(“검찰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입장 및 요청사항”, 2014. 10. 7.)는, 같은 문단에 있는 “구조실패”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구조를 막은 것입니까? 구조를 안 한 겁니까? “구조실패”입니까? 또 같은 성명서에는 “국정원 지적사항”과 “선내 CCTV 정지”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규제완화, 민관유착에 있다는 대책회의의 기조와 맞습니까?

유경근 대변인은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유가족들, 생존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며, 에어포켓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구조하러 온 해경이 과연 구조하러 온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이런 이야기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것이 다른 많은 의혹들과 함께 단순한 하나의 의혹으로 취급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존중합니다. 가슴에 품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하지만 버스도 5분마다 오는 시내버스, 한 두 시간마다 오는 시외ㆍ고속버스, 아니면 불러야지만 오는 전세버스가 있듯, 대변인께서 말씀하시는 그때가 분명히 오긴 하겠지만, 언제일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분들이, 바로 희생자 유가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히 저희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수많은 사실들을 폭로하고 그 힘으로 더 많은 국민들을 모아내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권에 맞서 지금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만시지탄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지금 싸움에서 우리가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금과 같은 기조로 계속 싸워서, 진실을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지금처럼 계속 간다면 과연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물론 패배 속에서도 언젠가 국민들은 다시 일어나 싸우겠지만, 이미 한번 패배한 국민들이 다시 일어나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유가족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과연 세월호 참사가 규제완화로, 민관유착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그렇다면, 수많은 의혹들과 은폐ㆍ조작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여러분들이 주장하셨던 의혹들은, 대책회의의 기조와 이미, 아니 처음부터 충돌하고 있던 것 아닙니까?

 

 

새롭게 싸웁시다! 함께 투쟁합시다!

 

오늘로 참사 200일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투쟁을 냉정하게 되돌아봅시다. 우리는 전진하고 있습니까, 후퇴하고 있습니까? 진실 규명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까? 진실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싸움이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추를 하나씩 채워갈수록 투쟁은 아귀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후퇴를 멈추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격하기 위해서는 이런 옷은 집어던져 버려야 합니다.

지금의 대책회의의 기조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결코 진실을 규명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적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상태로의 진군한다면 백전백패입니다. 한걸음씩 전진할수록 우리는 진실에 가까이 가기는커녕, 오히려 진실과 멀어질 것입니다.

 

1) 이런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우리는 싸움을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제완화, 민관유착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다시 시작합시다! 수많은 의혹들에 비추어 볼 때, 뭔가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민들이 모여 다시 시작합시다!

정부는 구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모여 시작합시다! 구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았다고 죽였다고, 이것은 학살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모여 함께 싸웁시다!

쓰러질 때까지 아니 한번 패배한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싸울 것입니다. 유가족의 아픔에 비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가지고, 우리의 분노를 가지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 싸움은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보듬고, 위로하기 위한 투쟁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문객이 아닙니다! 유가족을 위한답시고, 눈물 흘리고 끝까지 함께한다는 소리나 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진실규명을 위한, 우리 손으로 학살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우리의 슬픔을 가지고, 우리의 분노를 가지고 끝까지 싸웁시다! 그것이 진정 누구보다도 진실을 원하는 유가족들과 진정 함께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2) 이 싸움은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는 싸움입니다. 이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입니다. 저들도 이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는다면, 진실 규명에 한 치도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학살자 처벌은 고사하고, 더욱 큰 탄압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한국 사회는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의 전면적 후퇴 상황에 있습니다. 다시 전면적 파쇼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제2의 항일독립투쟁, 제2의 4.19 혁명, 제2의 6.10 항쟁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민들이 함께해야 합니다. 공안탄압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함께해야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싸워야 합니다. 자신의 생존권과 권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쌀시장 개방에 맞선 농민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 땅에 평화를 지키려는, 자주를 쟁취하려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시민ㆍ노동자ㆍ농민ㆍ청년ㆍ학생들이 나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합시다! 우리 손으로 학살자를 처벌합시다!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읍시다! 이 땅의 평화를 지켜냅시다!

 

※ 이러한 것이 말로만 되는 것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에 동의하는 제 단체와 개인들이 함께 모여 향후 투쟁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간단한 소개와 연락처, 이메일 주소를 문자로 남겨주시면, 회신드리겠습니다.

진실을 찾는 사람들 010-8528-6140

 

추기) 누군가 이러한 우리의 주장에 “그럼 당신들은 안전사회에 관심이 없다는 말인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 답한다. 우리는, 아니 이 땅의 누구라도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라. 우리가 주장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안전사회로 연결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며, 이것이 우리의 싸움을 엄청나게 교란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진실규명을 위해서, 이러한 주장은 철저히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1)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유인물] 세월호 참사의 진실, 시민들이 밝힙시다”.


2) 2)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안전대안팀, “[기획]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안전대책의 문제점”,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안전대책의 문제점≫ 토론회 자료집(2014. 10. 29.), p. 5.


3) 3) 박상은(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 위원), “참사의 구조적 원인, 반드시 밝혀야 한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중간평가와 앞으로의 과제≫ 토론회 자료집(2014. 10. 28.), p. 70.


4) 4)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지영 씨는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통해, 해수부에서 발표한 항적 기록이 조작된 것이라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선수값(HDG)과 코스값(COG)을 비교해 보면 비현실적인 값들이 보이고, 특히 발표된 AIS 데이터상 점들의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 보면, 세월호 최고 속도의 2배가 넘는 구간들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구간은 평균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운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가 불과 몇 초 사이에 급가속과 저속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는 기존 발표된 세월호의 항적은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데이터들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김 씨의 주장에 대한 정부 측의 과학적인 반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5) 박상은, 앞의 글, pp. 72-3.


6) 6) 박상은, 앞의 글, p.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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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19:00 2014/1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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