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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하게
칼럼니스트 임경선
Q 착한 남자 만나고 있음요. 괜찮지만 심심해서 문제. 요즘 나쁜 남자가 자꾸 눈에 들어와서 확 사겨볼까 싶은데, 어째요?
Q 연애, 밀고 당기기 잘해야 오래 사귄다는데 도저히 못하겠어요.
Q 여자친구만 보면 성욕이 제어가 안 됩니다. 결국 하고... 후회합니다.
Q 모태 솔로입니다. 노력하지만 안 생겨요.
Q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롭다. 도대체 연애는 왜 해야 하는 건가?
Q 하고 싶어도 못한단 대학생이 많다. 어흑.
Q 상담 하다 보면 보통 어떤 질문이 가장 많이 들어오나?
Q 확실히 관계에서의 수동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하나.
Q 상담해주는 사연의 조건은 뭔가?
Q 질문에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까?
Q 남과 비교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 동의한다. 그런데 남과 다르다 싶으면 불안하니까.
여자의
Q 칼럼 연재와 라디오 진행하면서 ‘연애 상담가’로 유명해졌다.
Q 연애 상담은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다. 남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 아닌가.
Q 당신은 매체에 나오는 다른 카운슬러는 해주지 않는 말을 한다. “여자는 귀여워야 해” “밀고 당기기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더라” “살부터 빼” 이런 말들. 정말 솔직하다.
Q 남성팬이 많다는 것이 재밌다. 돈 안 쓸 것 같은 소개팅 남 때문에 고민하는 여대생에게 ‘연인은 의식(衣食)해결용 아냐’라는 조언했던 글 같은 경우,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Q 당신이 말하는 매력적인 여자의 정의를 내려달라.
요리사는 집에서 라면 먹고, 개그맨은 집에서 과묵하다는데, 연애칼럼니스트의 연애는? 오오, 일치된다. 스스로 표현에 따르면 ‘연애 체질’이다. 첫 연애는 열다섯. 중간 휴지기 없이 대학 때는 여자 친구들 눈치 보일 정도로 계속 캠퍼스 커플이었고 직장 다니면서는 꾸준히 사내커플이었다. 외국 남자와 결혼할 것 같다던 친구들의 예상과 달리, 만난 지 3개월 만에 청혼을 해온 한국 토종 남자와 9년 전 결혼해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 “아쉬워요. 그럼 앞으로의 연애는 어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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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소비'?…정용진 부회장에게 답한다"
기사입력 2010-09-21 오전 9:27:48
▲ <완벽한 가격> 표지. ⓒ프레시안 |
▲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의 한 장면. |
박휘순의 노래 개그는 천재적이라고 생각함. 이렇게 똑똑한 색휘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 1. 김동률-아이처럼 & 코리아나-손에 손잡고 "사랑한다 말하고~벽을 넘어서" 2. 만화 '메칸더 V' & 장윤정 -어머나 "메칸더 메칸더 메칸더~ 이러지 마세요" 3. 박상민-해바라기 & 비틀즈-렛잇비 "사랑해요 사랑해요 세상에 말 다 지우니 이말 하나 남네요~ 렛잇비" 4. 지영선-가슴앓이 & 설운도-사랑의 트위스트 "아~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5. 편승엽-찬찬찬 & 군가-그리운 어머니 "차디찬 글라스에~엄마사진 꺼내놓고 엄마얼굴 보고나면~밤깊은 카페의 여인" 6.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 & 현숙-요즘여자 요즘여자 "황산벌의 계백 맞서싸운 관창~요즘 여자랍니다" 7. 박휘순-'뜨거운 형제들'中 '메모리' "메모리~128메가 메모리~용산에서 샀어요" *보너스* 8. 진짜사나이 &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얼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9. 90년대 이덕화 'Try CF' & 송윤아-분홍립스틱 & 포카리스웨트 "지금 이순간 내게로 다가와~분홍빛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멋진남자 멋진여자~포카리스웨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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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 ||||||||||||||||||||||||||||||||
마흔 앞두고 만난 지방 남자인데, 전화통화로는 너무 좋은데 확신이 안 서요
Q 39살 된 여자입니다. 선을 봤는데 저는 서울에 살고 그 사람은 충남에 살고 있습니다. 만난 것은 한 번이지만 전화통화를 많이 했습니다. 종교가 같고 직장도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이 드는데 막상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전화할 때처럼 좋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별을 고했는데 일주일 후 다시 전화가 와서 또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통화하고 나면 ‘그래, 이 정도면 됐어’ 그러다가도 다음날이면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부정적이 됩니다. 여자의 변덕이라 하기엔 무리라는 생각에 잠도 못 이룹니다. 혼자인 것이 편해서 그런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그 멀리까지 가서 사는 것에 자신이 안 생깁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이런 기회가 별로 없는데 말이죠. 아직도 남자의 외모를 보는 건지 그 사람에게서 매력을 못 느끼는 건지 나 자신을 모르겠습니다. 그는 키가 작고 통통하거든요. 어른들은 남자는 살아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던데, 솔로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과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혼재되어 날마다 남자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저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글을 씁니다.
A 지난번 칼럼에 이어 선택의 문제 2탄. 이 나이에 배부른 소리 하다가 있는 것마저 놓쳐 평생 외로이 혼자 살 것이냐, 하지만 이대로 결혼했다간 어쩌면 이 뒤에 나한테 좀더 잘 어울리는 남자가 나타나는 건 아닐까 - 확실히 고민되는 선택이긴 합니다.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로운 경우를 상상해보는 거니깐요. 하지만 고민 백날 해봤자 뭐합니까. 지금처럼 한 눈 감고 한 눈 뜬 상태에선 결혼할까 말까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결혼까지 가기가 힘든데. 결혼은 대개 두 눈을 질끈 다 감고 있거나 아니면 두 눈 다 번쩍 뜨고 있을 때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의 백지 상태에서 뭣 하나 남자에 대한 혼란이나 고민, 의심 하나 없이 그저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결혼한다’, 혹은 남자라면 충분히 쓴맛 단맛 다 맛보았다고 생각해서 이젠 더 이상 남자한테 기대를 갖기보다 내가 되레 남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는 자비의 경지까지 올라갔을 때 결혼은 자연스레 내게 찾아옵니다. 마음이 투명하고 열려 있는 상태니까 타인을 내 인생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처럼 눈을 한쪽만 뜬 경우는 조금 골치가 아픕니다. 남자에게 아직도 기대하고 꿈꾸는 부분이 있으면서 동시에 남자의 야비함과 나약함이 하는 수 없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남자를 두 눈 질끈 감고 믿고 싶지만 또 속고 싶지도 않아 두 눈 번쩍 떠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은 감은 상태로 밀고 당기기를 한동안 하게 되는 건데요. 대개 그 상황이 오래가면 남자들은 기분이 상하면서 그럴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 젊고 착한 여자에게 마음을 주길 원합니다. 이로써 그녀의 마음은 한층 더 의심 가득해지고 탁해지게 되죠. 눈 깜빡깜빡거리며 이리저리 남자를 수화기 너머 탐구한다고 해도 열 번 통화 한 번 직접 만나는 것만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열 번 채팅 한 번 통화한 것만도 못하고요. 혼란스러울 때는 머리를 쓸 게 아니라 발을 써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 중 내가 가장 젊은 것은 바로 오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말 퇴근길에 불쑥 충남행 버스를 잡아타고 그를 만나러 가봅시다! 이것이 현 상태에서 상황을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여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내가 움직인 거리만큼 아마도 그동안 안 보였던 것이 더 명료하게 보일 것입니다. 원거리 관계의 한계보다 기회를 이용하잔 말입니다.
로드무비 한 편 좀 찍어봅시다. 충남에 도착하면 그에게 전화해서 또 한번 정겨운 통화를 한 후, “실은 저 여기 왔어요”라고 그를 깜짝 놀라게 해주며 주말을 그곳에서 보낼 거라고 말해보세요. 그동안에 얼굴을 본 것은 맞선이라는 매우 비일상적 상황. 그의 홈그라운드, 즉 실제로 결혼 후 공유하게 될 일상 속 그의 모습, 그리고 그 배경 속에 함께 출연하는 나의 모습을 몸소 보고 느끼고 오란 말입니다. 그의 단골집에 가서 밥도 먹어보고, 가능하면 그의 집에도 가보고 기회 닿으면 그의 방 쓰레기통도 뒤져보고…. 한편 들이대듯 불쑥 나타나 압박전술을 거는 여자에게 남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너무 궁금해지는데요, 우쭐해지며 거만하게 굴거나, 여자가 스토커인 양 두려워하며 부담스러워하거나,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하거나, 셋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마 이 남자의 태도와 기량, 당신에 대한 감정, 그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무자비하게 드러나게 되겠지요. 결혼은 고정된, 혹은 과장된 프로필과 이력서만 검토한 후 ‘이 정도면 됐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과 하는 거잖아요. 순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전화방놀이와는 차원이 다른 ‘관여에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를 더 좋아할 수 있을지, 제대로 정나미가 떨어져서 돌아올지, 아직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둘 중 하나로 결론날 거라는 것 하나는 확신합니다. 이것만큼 그와 나를 동시에 총체적으로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깐요. 뭘 귀찮게 버스 타고 지방 내려가서까지 만나야 하냐고요? 그럼 계속 혼자 속 편히 사는 방법도 정말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급격한 액션을 취하기보다 조금 더 천천히 추이를 살피겠다고요? 예, 불혹의 나이 마흔살 생일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칼럼니스트/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
현실, 현재, 받아들임, 지나감
내가 아무런 욕심도 없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못해서.. 그래
미안해 난 부처를 동경하지만 내가 부처이지 못해서 그래
그래서...무장해제를 시켜버리면 난 더 힘들어
그러니까... 차갑게 굴더라도 이해해.
그게 과연 될지 모르겠지만...
서운하겠지만...
살 날은 많으니 나도 나를 보호하고 싶어서 그래.
"레게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김반장(35)과 라국산(29)은 레게그룹 'I&I 장단(이하 장단)'의 멤버다. 2년 전 김반장과 프랑스 출신 레게음악가이자 화가인 롸스타만이 만나 시작된 장단은 레게의 하위장르인 덥(dub) 음악을 하는 밴드로 자메이카의 토속음악과 한국 전통 판소리를 섞어 독특한 색깔의 음악을 선보여왔다. 현재 김반장은 I&I 장단 외에도 또 다른 레게그룹 '윈디씨티'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이 두 그룹이 속한 레이블 비빔프로덕션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리고 I&I 장단에서 퍼커션을 맡고 있는 라국산은 마포공동체라디오의 레게 전문방송 '와다다 라디오'에서 DJ로 활동 중이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흡사 신앙간증을 떠올리게 한다. 답변을 주로 했던 김반장은 노래 잘하는 전도사(?), 맞장구를 주로 쳤던 라국산은 신실한 신자 같다. 이들에게 레게는 단지 좋아하는 음악을 넘어, 지향하는 삶의 태도이자 하나의 종교다. 2시간의 인터뷰는 주로 레게 용어와 정신에 대한 설명 1시간 + 밥 말리 찬양 30분 + 앨범 소개와 기타 등등에 30분이 소요됐다.
▶ 수유동 비빔프로덕션 소속사 혹은 작업실의 위치는 주류와 비주류 뮤지션을 분류하는 얄팍하고 속물적인, 그러나 편리한 잣대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SM엔터테인먼트와 JYP 건물은 서울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있고, 수많은 인디레이블들은 서울 상수동과 합정동(소위 홍대 주변)에 위치해있다. 물론 상수동에 8층 빌딩을 세운 YG엔터테인먼트 같은 예외적인 사례도 있지만 대략 사무실의 위치는 소속 뮤지션 혹은 사장님의 활동반경 및 주요 팬층(또는 타깃소비자) 등등을 짐작하는 근거가 된다. 굳이 이런 구분법을 적용하자면 비빔프로덕션은 비주류 중 비주류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가 진행된 비빔프로덕션 사무실 겸 스튜디오는 서울 수유역에서도 약간 떨어진 주택가, 한 카센터 지하에 있었다. "홍대만 해도 가격이 비싸요. 여기 온지는 윈디씨티 때부터니까, 한 5년 됐죠. 분주하지 않고 단순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곳이 좋은 작업실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는 산도 있고 그런데 가는 게 좋은데…. 산 주변은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인디씬'에 속하는 걸 꺼려한 이들은 스스로를 '레게씬'이라고 규정해서 말했다. 레게음악 밴드들이 속해있는 비빔프로덕션은 지난해 자메이카에 방문한 김반장을 비롯한 몇몇 뮤지션들이 "파편화되고 있는 현대의 사람들을 Roots and Culture(전통과 문화)를 통해 다시 묶어주고, 다양한 색깔의 여러 문화들을 함께 비빈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Q : 비빔프로덕션을 반장님이 만드신건가요? 궁금합니당. A : (김반장)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JAH)이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빈칸에 제 이름만 채워넣었습니다. <윈디씨티 게시판 질문 중> ▶ 레게 스타일, 레게 스피릿 ※ 용어설명 ① 레게(Reggae) : 1960년 대 이후 자메이카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넓은 의미의 음악장르. 자메이카 음악의 한 장르인 스카와 록스테디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 루트레게, 덥, 부갈루 등 다양한 하위 장르로 나뉜다. 인터뷰에서는 단지 음악 뿐 아니라 자메이카 라스타(라스타파리안 Rastafarian)의 헤어스타일, 패션, 생활방식과 신념 등등을 통틀어서 레게스타일로 규정한다. ② 밥 말리(Robert Nesta Marley) : 자메이카 태생의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대표곡 'No Woman, No Cry' 'I Shot the Sheriff' 등이 있으며 기념비적 앨범인 'Legend'(1984)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림. 1981년 36세의 나이로 요절. ③ 바빌론 : 라스타 용어에서 바빌론이란 서구에 지배당하는 물질만능의 상업적 세계를 뜻함. ④ 드레드 락 : 라스타들이 하는 헤어스타일. 소위 말하는 레게머리. - 일부에선 윈디씨티와 김반장을 레게 1세대라고 합니다. 1세대라는 게 맞는 표현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어찌됐건 개인적으론 영광이네요. 사실, 레게라는 말은 1990년대부터 많이 들어왔죠. 닥터레게를 필두로 김건모씨의 핑계라던지… 심지어 김흥국씨도 레게파티라는 곡을 낸 적 있어요. 당시 김흥국씨가 터번 쓰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러니까 그분은 자메이카를 아랍으로 생각한거죠(웃음). 그런 노래들은 레게의 핵심이 담겨 있다기 보단, 레게의 리듬을 차용한 레게풍 가요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 그럼, 레게음악의 핵심요소는 뭔가요? "표면적으론 단순 명확해요. 째각거리는 재그드(jagged) 기타와 깊고 풍부한 베이스, 긴장감 있는 드럼을 갖추고 있어요. 거기에 농부 같은, 흙냄새가 나는 목소리의 가수가 노래를 하죠. 토속적이고, 진솔하고, 울림이 있는 음악이에요. 또 본질을 얘기하자면 레게음악은 자연과 함께 하는 음악이죠. 쉽게 얘기해서 빌딩 짓는 거보다 논밭을 가꾸면서 목가적으로 사는 것, 소박하고 검소하게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의 형태를 레게라고 불러요." - 레게음악에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항음악이라고도 하던데요. "당연한 거죠. 자연과 더불어 전통과 뿌리를 지키며 살려고 하는데 세상은 계속 도시화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을 안하잖아요? 한국이든 자메이카든 마찬가지고. 지구 사람들이 어디가나 비슷하듯, 퍼버티(poverty), 빈민도 어딜 가나 비슷해요. 그 안에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은 비슷한 거죠. 그걸 우린 바빌론, 물질 만능사회라고 부르는데요. 그 사람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유명세나 가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 예를 들어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같은, 맙소사! 이런 문명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레게음악은 저항음악이 되지 않았겠죠. 그냥 자연을 노래하는 음악이 됐겠죠." - 음악이 단순하고 메시지를 담은 게, 포크음악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포크음악에 맞춰 춤추긴 힘들죠? 그런데 레게는 진정한 댄스음악이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춤추기 좋죠. 레게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몸이 어떻게 움직여지는지 느낄 수 있어요. 진정한 댄스음악이죠." 이들에게 레게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형식의 음악'이다. 단 레게는 탐욕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즉 내면의 자유와 평안함에 더 비중을 두는 듯 했다. 이들은 "(레게와 비교하면) 록의 자유로움은 '방종'에 가깝다"는 말도 했다. "록 뮤지션은 빨리 죽어요. 반면 레게 뮤지션은 장수하고, 60이 넘어도 청년의 몸이잖아." - 청빈한 삶을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네, 맞아요. 레게음악은 '내가 왜 이게 없지' 생각하기보다,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죠. 사실 법정스님이나 이런 분도 그런 이야길 많이 하셨는데, 단 레게는 그렇게 헤비(heavy)한 얘기를, 와다디 바디다 바다바바~(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신나게 하는 거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노래를 듣고 '인생은 이런 거야, 미국의 맨하탄 뭐 그런 데로 떠나는 게 아니라, 땅을 경작하고 나무를 키우고 살자' 이렇게 되는 거죠." - 철학이 참 멋져요. "밥 말리 형이 이런 얘길 했어요. '음악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네가 잊고 있던 거를 고통 없이 후려 갈겨 주는 거야.' 저희는 레게음악이 우리의 미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레게음악은 지역화가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거든요. 오키나와, 후쿠오카, 하와이, 태국의 여러 지역, 심지어 아이슬란드처럼 추운 나라에서도 파카입고 레게 연주하는 밴드가 있어요." - 반면 한국은 레게음악의 그런 특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요. "한국은 많은 음악장르를 그저 표면적으로 소비하는데 그치잖아요. 지역문화에 흡수해서 젊은 문화와 섞여 발전해 가야 하는데, 우리가 지역문화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지금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뿌리를 잊은 상태 같아요." ▶ 라스타 문화 레게음악을 얘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게 자메이카의 라스타 문화다. 라스타(라스타파리안 Rastafarian)은 드레드 락 머리를 하고 평화롭고 욕심 없는 삶을 추구하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을 믿는 이들을 말한다(대표적으로 전설의 레게 뮤지션 밥 말리는 라스타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라스타파리아니즘'은 1930년대 아프리카에서 자메이카로 끌려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흑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종교운동의 일종이다. 인터뷰에서 이들은 이 자메이카의 종교운동을 우리의 동학운동에 비유해 설명했다. "원래 자메이카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이었어요. 거길 스페인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을 데리고 와서 노예처럼 훈련시킨 거죠. 그 과정에서 도망자들이 생겨났어죠. 채찍을 피해 도망친 흑인 노예들이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이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 거죠. 레게는 그 라스타라는 종교에서 나온 거예요. 그러다 보니 roots, 뿌리에 대해 많이 강조하죠."
이들은 roots, 뿌리 개념이 레게문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자메이카인)은 그들의 뿌리를 이야기하고, 우리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의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예전에 외국잡지 인터뷰를 할 때, 한 기자가 '한국은 GNP도 높고 자메이카와 다른 사회인데 왠 뿌리 타령이냐'는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랬죠. '왜 너희는 보이는 것만 보느냐, 여긴 자메이카보다 더 게토다'. 왜냐, 여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하거든. 우린 삶을 영위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잖아요. 그게 더 큰 문제 아닌가요. 결국 우리도 roots에 대해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거죠." ▶ 밥 말리 비빔프로덕션 사무실에는 밥 말리의 사진 여러 장이 벽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인터뷰 중에 이들은 밥 말리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김반장과 라국산은 공통적으로 밥 말리의 음악을 듣다가 레게에 빠지게 됐다. 밥 말리는 이처럼 수많은 이들이 레게음악에 빠지는 계기다. - 유명한 레게 뮤지션이 많을 것 같은데, 왜 특히 밥 말리가 아이콘이 됐을까요? "밥 말리는 시의적절하게 나타났어요. 그는 칼 대신 기타를 든 장군이었죠. 역사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민중의 난이 일어났는데, 자메이카는 밥 말리 덕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공한 거죠. 사실 지금은 라스타처럼 드래드 락을 한 사람 많이 볼 수 있지만, 밥 말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쉽게 말하면 이들 라스타는 자메이카에서도 하위 계층이었는데, 우리로 치면 각설이 정도 되는 계층에서 장군이 나온 거죠. 밥 말리는 인류에서 자기가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사람들에게 흙냄새를 알렸죠. 지금 자메이카를 지배했던 영국과 스페인에 라스타가 굉장히 많아요. 힘 안 쓰고, 피 안 흘리고 후려친 거죠." ▶ 人道, Guidance 레게 용어설명부터 자메이카 역사까지 먼 길을 돌아 앨범이야기를 꺼냈다. I&I 장단은 최근 활동한지 2년 만에 첫 공식앨범을 냈다. 앨범 타이틀은 '인도'. 사람의 길이라는 뜻과 '인도하다'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한다. "레게가 음악으로만 국한되진 않을 거예요. 길 잃은 많은 친구들에게 장단의 음악이 인도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가치고 그게 우리의 진짜 목표니까요." - 사실 윈디씨티도 레게음악을 하고, 장단도 레게음악을 하는데, 한 그룹에서 다 할 순 없나요? "윈디씨티는 부갈루라는 뉴욕 슬럼가 라틴계에서 나온 레게를 해요. 반면 장단은 자메이카 레게와 우리 판소리를 함께 담죠. 윈디씨티 음악은 세련되게 바뀐 지역화 된 레게음악이라면 장단은 자메이카 흙과 한국의 흙을 섞은 더 뿌리에 가까운 음악이예요."
- 두 그룹의 팬이 다른가요? "윈디씨티 좋아하는 사람은 장단 음악이 어렵다고 하고, 장단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드코어한 곰삭은 음악을 좋아해요. 최근 발견한 특징이 있다면 윈디씨티 음악을 연주할 때 사람들이 눈을 뜨고 보고 있는 반면, 장단 음악을 연주할 땐 다들 눈을 감고 듣고 있더라고요. 둘 다 방방 뜨는 음악인 건 마찬가진데…." - 한국보다 외국 언론에서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서운하진 않나요? "일말의 서운함이 있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지금 상황이 그런 건데.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건 즐거운 거죠. 더 해볼 만 한거죠. 한편으론 이해가 가긴 해요. 많은 한국 음악들이 사람을 지치게 하잖아요. 지나갈 때 듣는 음악들을 보면 다들 '너 얼마 있어? 이거 빨리 사. 너의 주머니가 궁금해' 이렇게 얘기하는 거 같아요." ▶ 너희가 레게를 믿느냐 - 레게음악을 종교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선 맞아요. 잘 알지도 못하고 돈 벌기도 어려운 레게음악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음악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죠. 마치 우연히 심령대부흥회 갔다가 감동받고 교회 다니기 시작한 친구와 비슷한 거예요. 단, 음악은 훨씬 더 세죠. 나이 드신 뮤지션이 '유 가트 노우 유어 셀프~ 유 갓트 노 유어 루츠~' 이렇게 노래하면, 우리는 '오케이, 아멘하자' 이러는 거죠. 종교는 마루 종자에 가르칠 교인데, 레게음악은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치기 보단, 일깨워줬어요." - 음악이 사람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네, 우리는 그게 바로 뿌리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은 미흡하죠. 하지만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나이 먹는 걸 환영해요.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넓게 표현할 수 있겠죠."
- 늙게 되면 새로운 음악을 못하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고 허리가 굽어서 늙었다고 하는 건 옷 잘 입은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닐까요. 젊다는 건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밥 말리가 죽었다고 하지만 그는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영혼이 있으니까요. 밖에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 중에 영혼이 죽은 사람이 더 많잖아요? 청년은 열정과 패기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 수험생이 그런가요? 오히려 아침에 산에 오르는 할아버지가 청년이죠." - 음악을 하는 즐거움은 뭔가요? "삼시 세끼 꼬박 먹고, 즐거운 음악을 하고, 사람들이 우리 연주에 치유 받는 것. 사실 공연 끝난 뒤 페이를 나누면 얼마 되지 않지만, 사람에게 즐거움을 나눠준다는 자부심이 있죠." - 내가 가는 길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없나요? "세상의 많은 가치가 있잖아요. 보통 자기가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겠죠. 다만 레게음악을 하면서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네 말처럼
나는 순수하다고 믿으니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가봐
자기보호 계속 하니까
나도 살아야지....
니 옆에 있으면 다시 나는 뒤로 돌아가 지금의 위치만이라도 지키고 싶어
널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거짓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니가 인정하지 않으니까 부정했으니까
내가 뭘 그렇게 한심하게 살았을까? 진정 남녀관계에 있어서 난 최악인가?
확실히 더 이 현실을 느끼게 되면 이제 그런 비참한 마음을 가져올 내 행동은 하지 않고 싶다
갈수록 끝은 보이지 않고 바닥을 향해 가고 다시 인정하게 되고...
네 앞에서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솔직하고 싶어지지도, 않아 니가 무서워
그래, 거지같은 내 모습을 자꾸 보아야 해서 무섭다고 해 두자.
난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하는 거죠?
몸을 그었어
흔적만 남았어
결국 그래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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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신새벽 어둠 속에서 긴장과 두려움으로 올랐던 길을 아쉽고 후련한 마음으로 되돌아 내려갑니다.
국민들께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리고 정부에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고 촉구해왔던 이포댐에서의 활동을
이제 마무리 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보라고 주장하는 거대 구조물에 우리의 몸뚱이를 대비시킴으로써 그들의 언어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터무니없는 거짓인지 드러냈고 찢기고 발려진 남한강의 아픔을 전하며
4대강 사업이 자연의 안녕과 국민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업임을 밝혔습니다.
남한강에서 가장 우수한 습지 중의 하나인 이포습지를 허허벌판으로 깔아뭉개고
다시 그곳에 외부에서 이식해 온 나무들로 조경하는 따위의 작업이 4대강 사업의 실상이며
mb 정계의 본질임을 폭로했습니다.
우리는 정부와 정치권에 4대강의 홀로코스트를 중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라는 국민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1만여 시민들은 이포댐과 낙동강 함안댐을 찾아 우리의 용기와 열정을 격려해주었고,
수많은 시민들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분노와 의지를 우리에게 보태주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소수가 아니고 여론의 중심이었으며 4분의 3의 국민들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사업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로부터 4대강 사업 재검토 약속을 받지 못했고
국회로부터도 4대강 사업 검증과 합의를 위한 기구 구성 계획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탄원은 버림받았고, 짖밟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저들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입니다. 비판과 반대를 수용할 능력이 없는 정부,
국민의 질책이 두려워 쥐구멍에 숨어버린 정치권의 비겁이 불러온 무정부, 무정치의 비극입니다.
우린 또한 목숨과 현장활동 기간을 두고 저들과 흥정하거나 구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저들의 비정하고 냉혹한 태도는 섬뜩합니다.
귀가 없는 정부, 삽질만 난무하는 정권의 미래가 안타깝고 불구가 된 자연의 역습이 두렵습니다.
간청하는 국민들을 외면하고 사회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일말의 노력조차 거부하는 저들의 오만을 보는것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4대강 사업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대안을 활발히
논의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엄숙하고 치열하기보다 유쾌하고 평화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일과 문제로 함께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부지런히 트윗을 날리고 언론에 기고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생활을 공유하고자 한것은 그런 의도였습니다.
우리의 시도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고, 함께 논의를 진행하면서 성공적으로 운동을 고무시켜주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발전기가 고장나면서 우리와 시민들의 소통은 크게 위축됐고 외부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떨어지면서 진지한 대화가 어렵게 됐습니다. 또한 우리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걱정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달'(4대강 사업)이 가리키는 손가락(우리에 대한 걱정)에 관심이 모아지게 됐습니다.
고마운 부분도 있지만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우리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닳고 헤어진것,
바벨탑 위의 오두막이 춥고 점점 쳐지는 것도 우리에겐 어려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국민행동을 결의하고 거리행동에 나섰고, 종교인들이 촛불을 들면서
4대강을 지키기 운동이 국민의 생활속으로 번져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세상에 돌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 41일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 상판의 열기, 거센 비바람과 축축한 안개, 20여일을 선식에만 의존하면서 겪었던 영양부족,
경찰의 위협과 방해로 인한 수면장애, 지겹도록 반복된 찬성측의 억지방송 등으로 심신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4대강의 생명을 지키는 운동의 맨앞에 우리가 있었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듯이 국민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절멸의 위기에 놓인
4대강 생명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으로 우리는 두려움없이 싸웠습니다.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기다리는 난관에 대해서도 의연히 대처할 것입니다.
사법기관에 의해 자유를 빼앗길수 있고, 이미 대림산업이 청구한 손해배상금액은 9900만원(1인 1일 300만원)
에 달하고 있습니다만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사업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었지만 합리적 수준에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대림산업의 주장처럼 공사가 늦어진것이 사실이라면 그 기간동안 생명을 연장한 것들의
목숨값으로 알고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동안 세상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포댐 밖에 지원 상황실을 꾸리고 같은 시간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
우리의 활동과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동분서주했던 단체들, 이곳을 방문해주시고
촛불을 들어 주셨던 시민들, 그리고 걱정하고 이해해주셨던 국민들께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의 벗이 되어주었던 할미새, 개똥잠자리, 강도래, 왜가리... 이포의 달, 별 바람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로 인해 불편을 느끼고 고생을 하신 지역주민들,
경찰들, 공사 관계자들 그리고 가족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또한 우리의 노력이 미약하여 희망으로 꽃피우지 못한 것에 대해 흰수마자, 단양쑥부쟁이, 물떼새,
수달, 재두루미에게 또 남한강 모래, 여울, 습지에게 죄송한 마음 남깁니다. 우리는 지금 떠나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합니다. 운동가는 좌절하지 않으며, 멈추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늘 생명 그곁에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께서도 새로운 공간, 새로운 활동에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0. 8. 31
[출처] 4대강 저지 이포댐 농성 활동을 마치며 (보따리 학교) |작성자 빛살
정작 나를 울린 것은, 말이지.
이 글 아래 있는 세 사람 - 구치소 유치장에서 면회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그 세사람의 활짝 웃는 얼굴이었어. 자신 그 존재 전부를 건 사람이 그렇게 웃을 수 있어.
나는 너에게 나를 걸 수 있을까? 미안해.
널 오래도록 좋아하겠다고 확신을 주지 못해서.
나, 나의 감정, 여전히 떫은 감 같은 것.
가슴시린 날, 가슴이 아리던 순간. 인정하기 위한 한 발자욱씩의 걸음.
죽비로 깨우치는 나날
그간 내가 행한 이별들에 대한 업보인지도..
내가 있되 내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용해되는 그런 나였으면...
튕겨나오는 나 말고.. 스며들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사랑으로 아프게 하는 내가 아니었으면
투정으로 힘들게 하는 내가 아니었으면
너를 찡그리게 하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아하면 도대체가 정신이든 몸이든 정상이 아니다.
도저히 그렇게 안 된다
그래서 미쳐야, 누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언젠간 깨어나더라도....
정말 진리란 뭘까? 나도 너도 오롯한 존재로 잘 살아가는 것..이겠지?
행복해라 그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네가 보고 싶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었어
그리고 너무 자주 볼 수 밖에 없기에 내가 어떻게 거부할 수가 없어서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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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항상 해야 하는 익숙해져야 하는 과제같아서
오늘도 배추밭 만들기 위한 괭이질과 삽질에 돌입
아주 대충 괭이질만 해 두었다 고작 그것에 힘이 빠졌다
흐흠... 약골이다. 나는 김약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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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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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우석훈씨가 유럽의 자영업연합의 독점권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유럽은 길드조직의 전통이 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우리도 동종업자들끼리는 연합체가 있죠. 우석훈씨는 소상인들 혹은 자영업자들과 지역경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소상인이나 자영업자는 소부르주아지적인 존재이고(이게 나쁘단 얘기가 아니라 그런 속성으로 이해해야한다는 것이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지만 또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단결해서 막아내죠. 그리고 이 사람들은 혁신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저항해요. 왜냐면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때 가장 먼저 망하는게 자신들이니까요. 유럽은 대자본의 질서가 있고 이런 소자본의 질서가 있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이나 사민주의의 전통도 강하기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강하죠. 이를테면 예전엔 손님이 왕이 아니라 종업원이 올때까지 기다려야했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자들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자영업자 밑에 있는 노동자들은 힘을 합치기 힘들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자영업자나 소상인은 죽어야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유럽과 비교해서 말씀하시지 말고 다르게 접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까르푸는 현지화전략에 실패해서 망한 것으로 알고있는데..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