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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김제동씨가 희망제작소 주최로 11일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프로젝트: 청춘비상-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 강연회에서 '내가 생각하는 삶과 직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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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2일 오후 3시 10분]
"잘못돼 봐야 제가 어디까지 잘못되겠습니까. (김제동 소개 화면 바라보며) 이제 '방송인 김제동'도 안 써놨습니다. 뭐 관계없습니다."
거침없었다. 11일 오후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 강연회의 '여는 마당'을 맡은 김제동은 현 정부를 향해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를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을 둘러싼 '좌파논란'부터 시작해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파문,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재오 특임장관의 지하철 출근,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와 4대강 사업까지. 김제동은 "이러다 또 좌파소리 들을라"하면서도 거침없이 발언을 이어나갔고, 관중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은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대안적 일자리'를 제안하는 프로젝트다.
"이승엽 선수가 왼쪽 타석 들어서면 좌파인가, 별 희한한 소리를 다한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내가 생각하는 삶과 직업'. 김제동이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무대에 들어서자, 1·2층을 가득 메운 관중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자그마한 체구의 김제동은 커다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며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하고 스파이더맨 흉내를 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역동적인' 강연을 보여주었다.
이날 관중의 대부분은 20대. "20대 여러분들을 보면서 채무감과 죄의식을 느낀다"는 김제동은 "제가 2년제 대학을 10년 다녔다"며 자신의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2년제 대학을 10년 다닌 이유가, 축제 때만 나가고 응원단장만하고 안 나갔다, 왜냐하면 하기 싫으니까, 재미가 없으니까"라며 '올 F'성적표를 받기 위해 A학점 두 개를 F학점으로 만들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관광 레크레이션 교수님한테 가서 F를 달라 그랬다. 관광 영어선생님한테도 가서 F를 달라 그랬다. 그리고 제가 두 분 손을 잡고, 학교 앞 술집에 갔다. 그 술집이름이 올F였다. 그 술집에 올F 성적표를 가지고 가면 석 달간 술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과감히 스펙을 제거할 수 있는 것,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과감히 남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뭉개버릴 수 있는 것, 필요하다. 그래야 웃고 살 수 있다."
김제동은 이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공짜 술 석 달을 위해 과감히 A 두 개를 포기할 수 있는 것, 이게 쉬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다, 미안하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진짜 그런가, 미안하지만 아니다, 여기서부터 공감하고 출발해야 한다, 아버님이 아주 높은 분이 아닌 이상"이라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위 공직자 자녀 특채 파문을 언급했다.
"예, 그렇죠. 공채가 아니죠. 특채. (한숨을 쉬며) 자, 그만합니다. 별 거를 가지고 다 좌파라 해가지고. 제가 강의할 때 왼쪽을 많이 보면 좌파다. 오른쪽 많이 보면 우파고. 스님한테 좌파라 그러면 안 되죠. 스님이 머리를 왼쪽만 밀면 좌파다. 다 밀면 중도죠.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떤가. 이승엽 선수가 왼쪽 타석에 들어서면 좌파인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한다."
"국무총리 되기 쉽나, 아내 어디 가면 차 대줘야 하고, 쉬운 일 아니다"
'좌파논란'에 일침을 가한 김제동은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우리가 아이였을 때 가졌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7살 때로 되돌아가면, 여러분들은 그때 이미 수십만 개 직업을 꿈꾸고 있었다"며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국무총리를 나열해 나가던 그는 '국무총리'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국무총리 되기 쉽나. 쉽지 않다. 카드도 한~푼도 안 써야 되고, 아내 어디 가면 차 대줘야 하고 그거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이렇게 관용차 내줄 수 있는 것 아니다.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것 같나. 절대 아니다. 싫으면 못한다. 집에 공무원 불러서 청소시킬 수 있을 것 같나. 쉬운 일 아니다. 정말 대단한 마음가짐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접어라. 자기 방 청소를 자기가 하는 사람은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
이재오 특임장관 이야기도 나왔다.
"제가 장담코 이야기한다. 자기 집 앞에 쌓인 눈을 자기가 쓰는 사람은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 교통카드 들고 버스 타는 사람,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술 먹고 지하철 타보지 않은 사람이 아침에 가방 들고 (목소리 바꾸며) "안녕하세요, 지하철 타고 출근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아니면 장관될 수 없다."
이재오 장관은 지난달 30일 취임 이후 자택에서 세종로 정부중앙청사까지 지하철로 출근하고 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정치쇼'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김제동은 "웬만한 마음 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라며,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인사들을 비꼬았다.
"제가 2년 반 있다 토크쇼 하면 여러분들 작살납니다"
다시, '7살 때의 꿈'을 이야기하며 "지금 제가 환상의 짝꿍을 하면서"라고 말하던 김제동은 "지금은 안 하죠, 그건 시청률이 안 나와서 그런 겁니다, 하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그렇습니다"라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녹화를 다 마치고도 결국 전파를 타지 못했던 <김제동쇼>를 연상시키는 발언을 했다.
그는 "나중에 이야기 합시다, 제가 2년 반 있다가 토크쇼 하면 여러분들 작살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런 이야기하면 재밌잖아요, 쿨하게, 시원하게 받아들이면 얼마나 재밌나"라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제동은 "7살짜리 아이들을 보면 솔직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면서 "우리 6살짜리 조카가 꿈이 아파트 경비원이라 그래서 우리 누나가 얼마나 때렸는지 모른다"며 강연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내, "제가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뭐, 어때서, 죄졌나, 관용차가 있나, 청문회 해야 하나"라며 '내가 생각하는 삶과 직업' 강연은 '샛길 아닌 샛길'로 또 다시 빠졌다.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였다.
"얼마 전에 신문기사 보니까 경비아저씨가 배가 좀 나왔다고, 아파트 품격 떨어뜨린다고 주민들이 해고했다. 그럼 그 아파트에 사는 배 나온 주민들은 다 나가야죠. 그것이 공정한 사회다. 나의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목소리 바꾸며) '나에게 잣대를 들이대지마, 난 필요없어'."
"포클레인 기사가 죄 지었나, 4대강이든 8대강이든 파라 그러면 파는 거다"
김제동은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가 어떤 것을 쌓아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별 고민이 없기 때문에 수만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직업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떻게 하면 나의 가치를 돈과 바꿀 수 있는 가를 고민한다"며 다시, 자신의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아파트 경비원이 되고 싶다던 조카가 석 달 후에 꿈을 또 바꿔서 포클레인 기사를 한다 그래서 누나한테 또 맞았다. 포클레인 기사들이 죄졌나. 죄 안 졌다. 파라 그런 데 가서 한 거다. 뭐나 잘못 됐나. 그게 4대강이든 8대강이든, 파라 그러면 파는 거죠. 그래서 정당하게 돈 받아서 정말 피 땀 흘려 가면서, 쓰러져 가면서 일하시지 않나."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4대강 공사에 대한 비판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쓴소리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국무총리 하고 싶다 그러면 때려야 한다. 그 힘들고 험한 길을 왜. 아이들이 국회의원 된다고 그러면 물어봐야 한다. 너 거짓말 잘해? (목소리 바꾸며) '거짓말 잘 못하는데요'. 그러면 안 돼! 넌 안 돼! 꿈 접어, 꿈 접어! 대통령 되고 싶은데요? 너 검찰하고 친해? (목소리 바꾸며) '아니요'. 안 돼! 너 잘못하면 큰일 나, 너."
지난해, 검찰수사를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 어쩌면 김제동 자신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는 발언이 나올 때 마다 관중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은 꿈을 일년에 단 3일만이라도 꾸면 좋겠다"
웃고 박수치는 사이 어느덧 40분의 강연시간이 초과 되었다. 시계를 들여다 본 김제동은 "마지막으로 말씀드린다"며 웃음기를 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해라,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스펙들을 과감히 버리고 앞으로 뛰쳐나가라' 이렇게 이야기하기에는 채무감과 죄의식이 너무 강하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 안다. 솔직히 인정해야한다. 그래서 미안하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술집에서 공짜 술 먹으라고 올F성적표 받으십시오, 여러분 젊지 않습니까' 이 따위 얘기, 정치인들에게나 들어라. 열심히 스펙 쌓아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죄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루만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거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일 년에 3일 이상해라. 그림 그리는 거면 그림 그리는 거, 술 먹는 거면 술 먹는 거. 마음 같아서는 '평생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 힘들다, 안다.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은 꿈을 단 3일 만이라도 꾸면 좋겠다. 7살짜리 아이들처럼."
이날 강연회의 사회를 맡은 박경추 MBC 아나운서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시간이 초과됐다는 신호였다. 박 아나운서를 쳐다본 김제동은 '마지막'이라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며칠 전, 차타고 가면서 안도현 시인의 글귀를 봤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게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거다' 뜨거운 걸 만들어내는 건 여러분이다. 환경을 만드는 것도 여러분이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믿음들을 포기하지 말고, 그 믿음들이 여러분이 갈 길을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행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김제동은 관중석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한편, 김제동의 '여는마당' 이후에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나와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을 소개했다. 스스로 '소셜디자이너'라고 부르는 박 상임이사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로 가면 그 동네에 금만 그어도 자기 왕국이 되는 블루오션이 되고 있다"며 "일자리는 공무원들이 일자리에 앉아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블루오션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박 상임이사는 보도블록 디자이너, 놀이터 흙·모래 관리인, 공공기관 기념상품 제작·판매업, 라벤다 전문 디자이너, 젓갈 소믈리에, 한옥관리사, 도시농업설계사, 그린빌딩 인증 전문가, 매장 배경음악 전문가, 자전거 지도 제작사 등 다양한 대안적 직업을 제안했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한비야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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