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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개량의 경계

 

2007년 한해동안 내역량의 많은부분을 쏟아부었었다.

하나에 빠지면 정신없이 몰입하는 이놈의 스타일 때문에..

다른것을 다 팽개치고 그것에만 몰입했었다.

모든 투쟁이 그렇듯이 이것 또한 승리의 전망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투쟁 자체가 주는 역동성과 흥미진진함은 날 더 열중하게 만들었던거 같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나는 동지들과의 끈끈한 정은 더없이 날 빠져들게 했다.

투쟁의 방향을 둘러싼 여러 가지의 쟁점과 혼선,

본능적 직관은 촉수를 세워 어려운 길이었지만 만들어 나갔다.


한풀 사그러들었다.

내 열정이 아니라,

주체들의 조건이 아니라,

투쟁자체가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을 더 이상 팽개칠수 없어서..

그렇게 나는 서서히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내버려진(최소한 내기준에서, 나에 의해 내버려진) 투쟁과 동지들..

내가 책임지지 못했다는 것이 날 가장 옥죄어 온다.

책임져야 할 위치는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위해 마지막까지 행동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이나 글로 방향과 전망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투쟁은 한순간만 혼란해져도 그 상처가 번져나가는 것이기에..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시기..

난 동지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 그 결정을 존중할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했다..

결국 우리는 결론을 못냈고, 오로지 주체들이 판단해야 하는 몫으로 남겨졌다..


상황이 이리된 것이 어찌 그들탓이랴~

한 동지가 민주노조운동에 회의를 느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 이놈의 민주노조운동의 생명력이 있는걸까?

시지쁘스의 신화처럼 커다란 돌을 계속 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서럽지 않겠는가?

왜 울분이 없겠는가?

지금의 이것을 얻으려고 이렇게 한게 아닌데..

그리고, 정세를 읽지못한것이 아닌데..

투쟁은 총체적인것을, 조직과 투쟁계획과 전술과 전략적 기획과 연대투쟁,

투쟁이 투쟁을 조직한다는 총파업의 신화는 이제 사라졌다.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앞에

단위노조의 투쟁은 그렇게 고립되고, 말라죽어버린다..


나의 판단은 정말 올바랐는가를 계속 되내인다..

정말 올바른판단인가?

조직력이 떨어지고, 투쟁전망을 제출할 수 없는 상황,

이전의 장투와는 전혀 다른 질을 가진 이 싸움을..

보통의 장투는 해고로 인해 길거리로 내몰리거나,

직장폐쇄가 되거나, 뭐 그런 경우인데..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하는 이싸움에서

정규직이 얻을수 있는 것은아무것도 없는 이 상황에서

조직력은 깨어져 나가는 이 상황에서..


조금만 더 버틴다면 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조금을 버티게 하기 위해 어떤 전망을 제시해야 하는가 말이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지금에서 그것이 오로지 나의 문제로 치환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는 입이 안떨어졌다.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할수있는게 이것밖에 없다니..

왜 이런때에 난 눈물을 흘리냐 말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날 더 비참하게 만든단 말이다..

제기랄~~


나또한 상황논리에 젖어있는 것일까?

대중운동이라는 틀 속에서 갇혀 버린 것일까?

일반화되어있는 투쟁의 매뉴얼을 생각하며,

그 경험들에 갇혀 또다른 역동성과 창발성을 잃어버린 것일까?


원칙과 개량의 경계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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