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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성폭력.
이는 명백히 민주노총의 성폭력이다.
김상완 가해자를 두둔하기 위해
평 조합원인 한 여성에게 가한 엄청난 권력의 횡포
그들이 우파던, 좌파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없고, 나약한 한 조합원에게 행한 파렴치한 성폭력과
이를 잘짜여진 시스템과 권력으로 옹호하려고 했던 조직적 폭력이다
성폭력사건이 공개되고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없다.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은 없이들 이야기 한다.
어디 소속이고, 어디 조합원이고,, 등등등의 이야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
이 엄청난 성폭력과 권력기구를 통한 폭력앞에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같이 싸워야한다.
운동을 논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미친놈들...
어느 지역에 갔을때 한 동지가 좌파는 인간다운것이 너무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에 한 동지가 좌파야 말로 인간답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댓거리를 했다.
처음동지의 이야기는 활동을 하다보면 잘못한것도 있을 수 있는데 좌파들은 너무 원칙적인 제기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이동지는 아주 감성이 풍부한 동지였는데,
그러한 감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에 대해 다른 동지는 좌파야 말로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그사람들의 활동이 얼마나 인간적이냐는 것이 요지였다.
최근의 고민들이 연동되었다.
개인적 조건과 우리의 실력의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자잘한 관계들,
그런것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우리 전체를 위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것이 전체와 개인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속의 개인이 되기 위해
전체속의 부분이 되기 위해 택해야 할 지점이라면,
그래서 그 부분또한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수 있고, 그렇게 또 재조직되어진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할 텐데말이다.
그 동지가 말했던 인간답다는 것이 가진 단어가 가진
이중적 의미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동지가 울먹이며 다때려치자고 한다.
너무 씩씩한 동지인데..
이틀동안 뒤엎어지고, 또 뒤엎어지고, 또 뒤엎어지면서..
최종 결론은 났다.
맘에 들지 않지만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난 '잘하셨어요~'라는 말밖에 못했다.
이미 저질러진 물이었고,
수습의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최선이다.
이번 판이 문제가 아니고,
이후를 다시 도모하기 위해선 말이다.
왜 항상 사고가 나면 그때서나 관심을 갖게 되는지말이다.
잘 하고 있겠지라는 믿음은 추상일뿐이다.
구체적인 현실에서의 그 믿음은 전혀 구체적 도움일 될 수 없다.
일상에서 전혀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못했고,
그리고 나서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했어야 하고,
늘 같은 과제와 대책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아마추어리즘 아닌가 말이다.
왜이리 속이 쓰리냐..
왜 우리들은 매번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말이다
불균등의 법칙이 있다.
그것이 만고진리이다.
다 내맘같을 순 없지만.
너무 많이 갈갈이 찢겨졌다.
그 밝기만 했던 동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마누라앞에서 첨으로 울었단다.
총회장은 울음바다였다고 하고,
에이씨!!
왜 이리 되는일이 하나도 없냔말이다.
흥이 안난다..정말..
올라오는 차안에서 맘속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시는 가지 않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못할일 하는것같다.
나도 그렇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그렇고...
나이들고 알것 모를것 다 아는 상황에서
맘도 알고, 상황도 알고, 이해도 하고, 용납은 않되고
이런 상황에 대해 계속 더 가는 것이 맞지 않는 거 같다.
어제 뒷풀이하면서 첨부터 다시 하자고 했다.
새로운 것을 다시 해야 할 때가 된거다.
그동안의 관성을 벗고,
새로운 관례와 풍토와 문화를 만드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버티기만 하는 것도 이리 어려운데
버티다가 꺽이지는 못하겠고,
그러다 날은 무뎌지고,
이렇게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처음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21세기 버전으로 업된 초심으로 말이다.
누가 이야기 했듯이
고양기가 있으면, 쇠퇴기가 있다고..
그것이 역사적 법칙이라고..
미국 월가의 쓰나미가 올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저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자기 조절방식 아닌가!
그렇게 역사는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그렇게 다시 쓰여지는 것이 있겠지.
감정을 죽이고, 이성을 더욱더 예민하게 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 인사를 했지만, 우린 또 만날것이다.
그 만남이 더욱 의미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아픔을 버텨야 한다.
#1
네덜란드에 사는 후배가 신랑이랑 잠시 다니러 왔다.
추석날 후배와 후배신랑 피터와 함께 창덕궁에 다녀왔당~~
대학다닐때 늘 보던 곳이었는데, 글세 입장료 내고 들어가 본것은 첨이었다
창덕궁안의 후원(일명 비원이라 불리는..비원은 일본식 표현이란다)도 일품이었다.
창덕궁을 한시간정도 둘러보고, 대학로에에 갔다.
정말 오랜만에 간 대학로는 너무많이 바뀌었다. 대학때는 늘 거기서 놀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주카페가 눈에 화악 들어왔다.
차한잔 묵자고 들어간 사주카페에서 후배는 사주를 보고, 나는 타로를 봤다.
정말 신기하게 잘 맞았다.
사주는 전체적인 운풀이른 해주는 것이고, 타로는 고민이 있을때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준다.
나는 현재의 내 상태와 고민을 이야기 했고, 이에 대해서는 모두다 아웃!!!이엇다...ㅋㅋ
정말..어처구니 없게도말이다..
다음,
후배 사주를 봤는데, 그 친구사주를 보다가 나보고 생년월일을 말하라고 하더니, 나보고 외국에 가란다..ㅋㅋ
사주에는 남자가 없단다...푸하하~~
외국으로 나가면 있다고,,
그 후배녀석도 사주에 남자가 없다며, 그래서 외국인과 사는게 잘 사는 거라구..ㅋㅋㅋ
왜 사나면 웃지요...
#2
네덜란드의 철학..
그 후배는 네덜란드로 들어간지 5년이 되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좋단다. 우리는 늘 서울에서, 한국에서 사니까 잘 모르지만, 거기 가보니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단다.
동물당도 있고, 심지어 총선에서 2명이나 의석을 확보했다고..
인간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동물에 대해서도 존중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
얼마전 네덜란드보다 후진국의 사람들이 시민권을 받을때는 시험을 봐야 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단다. 엠네스티에서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이라는 권고를 하자 바로 제도를 폐기했다고 한다.
현재 네덜란드는 좌파와 기독민주당의 연립정권이라고 하는데 초기보다는 많이 호흥이 떨어지고 있단다. 세계불황의 여파로 살기가 많이 어려워졌고, 좌파정치보다는 계속 우향우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친구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있다. 이 강아지는 산책을 하면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데, 얼마전 집에서 갑자기 일을 봤단다. 설사!
속이 않좋은지 엄청난 냄새를 풍기며..
이를 보고 이 친구가 화를 내며 똥을 치웠다는데 이를 본 피터가 이 친구한테 화를 냈다고 한다. 강아지가 참으려고 하다가 그런건데 그것을 왜 이해못하냐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피터의 생은 어땠길래 그럴까 싶었다.
네덜란드의 문화는 어떻길래...
하긴 네덜란드는 대마도 합법이고, 동성애도 합법적인 나라다.
그 이면에는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피터는 40대 초반인데, 너무 넉넉했다.
그리고 열렬한 사회주의 지지자다. 항상 사회주의 당을 지지한다고 한다.
그는 당원은 아니지만, 사회정치에 관심이 많다.
그친구에게 당을 만들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3
'투명인간'
그 친구는 투명인간이란 표현을 했다.
그래, 바로 그 표현이다.
그렇게 그사람은 나를 평생동안 투명인간 취급했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는 나에게 화를 냈다.
'착해빠져서..그때 그렇게 힘들어놓고, 그렇게 못살게 굴던 그사람을 왜 용서해요?..절대로 그 사람앞에서 울지마요!!'
나보다 더 화를 내는 그 친구앞에서 나는 좀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심 기뻤는지도 모른다.
'어쩌겠어요 이제 철이든거니 이해해야지..'대체로 사람들의 반응은 그랬다.
죽기보다 싫도록 미워했었지만. 세월 앞에서 맘이 녹고있다.
그렇게 앗아간 나의 시간들..
모든것은 과잉되면 문제가 된다. 관심도 과잉이 되면 집착이 되고,
사랑도 과잉이 되면 폭력을 낫는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것은 무관심이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것.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 주는 무력감과 허무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생각해보니, 어렸을대의 그런 무관심이 나에게 자존감을 더 키워준 것은 아닌지싶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것을 배운것은 오히려 아무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적막감에서의 생존적 본능이 아니었을까?
#4
엄마가 뿔났다른 보면서 신은경과 소라의 관계가 참 이상적이다.
신은경은 재혼을 했고, 딸아이 소라가 있다. 소라와 신은경의 관계는 막 처음 만나 친구가 되려고 먼저 노력한다. 소라가 아무리 새침떼기라고 하지만, 신은경이나 소라아버지는 소라의 의사를 존중한다. 애 버르장머리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소라는 신은경에게 새엄마라고 안부른다. '아줌마'라고 부른다.
아빠와 아줌마와 살고있는 소라...
그러면서 소라는 아줌마와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엄마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엄마라고 부를것은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호칭으로 인해 서로가 어떠한 감정도 갖기 전에 기르는 사람과 길러지는 사람으로서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은 나이를 떠나서의 문제이다. 그런 권력관계에서 힘이 없고, 어리고, 나약한 대상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아이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부모들의 관계로 인해서 생겨나는 상처와 폭력.
부모라는 책임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아이때문에라는 알량한 이유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처럼 불행한 것이 있는가?
이혼을 하던 별거를 하던, 아이에 대한 책임은 같이 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러한 가정에 대해 비정상적인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있고, 그것이 마치 대단한 잘못을 한것처럼 비춰지는 사회라는 것이 문제지만...물론 요즘은 이혼부부가 늘어나서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호주제의 폐지가 그러한 역사적 토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점에서 나는 한국사회의 변화가 문화적으로 한 궤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몇시간전에 한 동지와 통화를 하다가 한판하고 말았다.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는데..그게 않된다.
감정의 상태가 최고를 치닫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엄한데서 뺨맞고, 어디서 화풀이 하는 격이다.
어제의 합의에 대해,
그리고 왜 그렇게 되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이다.
지난주에는 분노가 컸다면 이번에는 그런느낌이 아니다.
속상하고, 눈물나고, 의욕이 떨어지고, 뭐..그런..
어제밤에는 한숨도 못잤다. 새벽녁 잠들어 오전내내 자다가,
출근도 늦게하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다가 뉴코아노조의 입장서를 봤다.
삼실에서 그냥 눈물이 쏟아지는데
이것저것이 오버랩되어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자본의 거대한 힘앞에'라는 문구에
우리 동지들 얼굴이 떠올리고
지난 여름 강남킴스매장 안이 떠오르고,
침탈직전 결의를 모으던 동지들이 생각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추석후가 생각나고,,
cctv에 올라갔던 동지가 떠오르고,
그리고..
그랬던 동지들이 자신의 복직을 포기하면서까지 투쟁을 접어야 했던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가 한꺼번에 한컷한컷 지나갔다.
어제 합의했던 동지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기고싶지않았던 건 아닐텐데.
그 어떤 무게감에 그것을 버텨내지 못했던.
이성적으로 보면 다 잘못한 일들이다.
그 사업장에서도 문제지만
그것이 전국적으로 퍼질 여파와
우리운동이 짊어져야 할 짐이 또 하나 더 생겼고
그런데 이제 투쟁이 하기싫어진다.
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둥바둥 해도
그 수준이 그수준으로 머물러 버리는..
시지쁘스의 신화 같다.
억지로 억지로 더 떨어지지 않게만 버티는거
그렇게 버티는 것도 이만큼이나 해야 하는데..
저녁에 ktx고공농성장에 갔다. 정말 가기싫었는데 끌려가다시피 갔다가
끝까지 앉아있지 못하고 왔다.
너무 무겁다.
내일은 좀 쉬어야 겠다.
그동지한테 참으로 미안하다..
일명 '빨간약'이라고 불린다.
어릴때 할아버지할머니와 살았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어린 나는 아까쟁끼를 무척좋아했던거 같다
그 어린 발바닥에 티눈이란놈이 났던 거 같다.
나는 고놈에다 대고 할머니 몰래, 약장통을 뒤져
아까쟁끼를 바르곤했다.
할머니는 빨간약을 늘 '아까쟁끼'라고 불렀다.
어린나는 그것이 일본말인지, 미국말인지도 모른채
그렇게 불렀었고,,
발을 씻기던 할머니에게 들켜 혼나곤 했었는데..
왜 아까쟁끼를 바르면 아픔이 싹 가셨는지..
지금, 이 마음에도 아까쟁끼를 바르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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