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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1
    [펌] 조립 3,4공장 경찰의 공격장면
    파란달-1
  2. 2009/08/11
    [펌]후회 없이 싸웠습니다.
    파란달-1
  3. 2009/01/24
    "여기 사람이 있다"
    파란달-1
  4. 2009/01/24
    더이상은 제발
    파란달-1
  5. 2008/12/21
    [펌] 우리는 지는 방법을 몰랐다
    파란달-1
  6. 2008/10/05
    시작과 끝
    파란달-1
  7. 2008/10/05
    마음어
    파란달-1
  8. 2008/08/07
    너와 나
    파란달-1
  9. 2008/04/16
    글쎄..
    파란달-1
  10. 2008/04/16
    대상화
    파란달-1

[펌] 조립 3,4공장 경찰의 공격장면

조립 3,4공장 경찰의 공격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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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보고

2009-08-05 16시08분 특별취재팀

경찰은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특공대를 투입했다. 조립 3, 4공장 투입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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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후회 없이 싸웠습니다.

후회 없이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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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보고

2009-08-10 13시08분 특별취재팀







부상이 심한 노동자는 동료 노동자들의 의해 손수레로 이동했다.



한 노동자는 그 동안 함께 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며 잊을 수 없는 그들의 얼굴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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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1차 범국민추모대회였던 어제 무대앞 걸개에 크게 써있던 글이야.

참사직후 노동문화일꾼들이 추모걸개를 그렸고,

그 걸개를 현장에 걸어놨대..

그걸 어제 무대 걸개로 떠왔는데..

 

"여기 사람이 있다"는  그말이 자꾸 떠올라..

사건일어나고 스스로 감정이입을 최대한 막아왔었거던..

감정에 자꾸 치우치다 보면 내가 너무 힘들것 같아서말야..

그리고 감정에만 복받쳐서 있는것도 이제는

너무 지긋지긋하자나..

이런 일에 울고불고 하는것도 짜증나고..

근데 어제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이야기하는데 첨으로 눈물이 나더라..

 

지금도 검색하다가 너무 분통이 터지는데,

눈물이 나는거야..

우이씨...피씨방에서 우는것도 쪽팔려~

 

더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살해될순 없자나

더이상은 정당한 권리를 지키려다가 한순간에 죽임을 당할순없잔아

더이상은 니들 잘못으로 인한 화재였다는 뻔뻔한 저놈들의 이야기를 들어줄순 없잔아

더이상은 이렇게 넘어가선 안되잔아

 

열사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던 작년 촛불때

열사투쟁이 자꾸 생각나고,

그때 아무것도 못했던 우리들때문에

결국 또이런 참사를 맞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마저 들어..

 

폐기처분해야할 쓰레기가 아니었는데말야.

쓰레기를 태우듯 홀랑 태워버렸어..

그 분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구..

"사람"..

 

귀찬아할 떼쟁이가 아니라,

홀랑 태워버려야할 폐기용품이 아니라,

존중받고, 행복을 누려야 할 "인간"이었는데 

 

유가족이 민주당의 조문도 거부했데..

20일 열사를 죽이고,

그 이후 그들을 2번, 3번씩 죽이고 있어.

불로 다 태워버리더니,

그 썩어빠진 입으로 이제는

심장을 후벼파고있어..

 

이지랄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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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은 제발

 

더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살해당할순 없다. 

더이상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살해당할순 없다

더이상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살해당할순 없다.

 

더이상 살인자들과 같은 하늘에 살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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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우리는 지는 방법을 몰랐다

“우리는 지는 방법을 몰랐다”

[인터뷰] 김호진 김석원 뉴코아노조 전, 현직 지도부

정문교 기자 moon1917@jinbo.net / 2008년12월19일 12시57분

지난 8월 29일 뉴코아노동조합이 434일의 파업을 접고 합의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에 전면 부각시킨 뉴코아-이랜드의 투쟁이었던 만큼 수많은 말이 오갔다. 일부는 “간부들의 손배소만 취하한 나쁜 합의”라는 극단적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뉴코아노조는 “결과가 초라해 죄송하지만 결과만으로 비정규직과 함께 아픔을 나눈 것까지 묻혀서는 안 된다”는 편지를 인터넷에 올렸을 뿐이다. 긴 침묵에 들어갔다.

▲  참세상 자료사진

뉴코아노조는 434일 파업의 ‘초라한 결과’를 안고 현장에 복귀했다. 파업 지도부는 자신이 서명한 합의서 때문에 현장이 아닌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침묵 속에도 노조를 지키려 신임지도부를 뽑았지만 1,200명이 넘던 조합원은 500여명으로 줄었다.

파업이 끝나고 4개월이 지나 침묵에 잠겼던 뉴코아노조의 전.현직 지도부를 만났다. 해고자인 김호진 전 뉴코아노조 부위원장과 파업때 서울지부 직무대행이었고 지금은 뉴코아노조 수장을 맡은 김석원 위원장이 함께 했다.

“이겼다 졌다는 경계가 애매하다”

김석원 위원장은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심리적 압박이 컸다. 점거도 하고 매출제로 투쟁 등을 벌이며 회사를 압박해 타결수준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이랜드그룹은 홈에버 매각으로 숨통이 틔였다”고 8월 말에 합의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호진 전 부위원장이 조심스레 거들었다. “마지막으로 구속됐는데 나와보니 분위기가 바꿨다. 간부들이 급격히 흔들렸다. 장기파업의 피로도 문제였지만 홈플러스 매각이 직접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쫓기듯 합의한 듯 싶다.”

뉴코아노조 내부 상황이 어려웠지만 먼저 합의하면서 이랜드일반노조는 물론 함께 싸웠던 분들의 심리적 타격도 컸다. 싸움은 뉴코아-이랜드일반노조의 공동투쟁이었다. 그리고 당시 진보 언론은 뉴코아노조 합의에 비판기사를 쏟아냈다.

▲  김호진 전 뉴코아노조 부위원장

“부족한 합의였지만 이랜드일반노조의 합의와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끝까지 비정규직과 함께 했고 전원 복직시켰다. 다만 쫓기 듯 합의하면서 함께했던 조직들과 결과를 공유하지 못했다. 합의안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함께했던 조직들과 의논하지 않은 비판이었다면 비판을 받아서 말을 나눴을 것이다. 패배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지는 법을 몰랐다. 이길 거라 생각했다. 의지가 너무 강했었나” 김호진 후 전 부위원장이 긴 한숨과 몇 번의 침묵 끝에 꺼낸 말이다.

434일 파업투쟁은 뉴코아노조의 첫 번째 패배다. 뉴코아노조는 지난 97년 부도 후에도 이기는 싸움을 했다. “이겼다 졌다는 경계가 애매하다. 그러나 조합원의 아픔을 생각하면 진 투쟁이다. 다만 정규직이 어렵게 투쟁했던 부분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석원 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민주노총이 귀족노조 집합소라는 비판을 받는데 우리는 비정규직과 함께 싸우는 정규직노조의 한계를 시험한 것이다. 정규직 이기주의, 대중추수주의 흐름에서 앞서 싸운 것은 뜻있지만 정세와 여건이 파업을 힘있게 밀어주는데 한계가 있었다. 모험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안정 만을 희망하는 것은 어용노조다”

“비정규직과 함께 한 구조조정 투쟁”

많은 사람들이 뉴코아-이랜드 공동투쟁을 비정규직 투쟁으로 이야기하지만, 이들은 자기들 싸움을 정규직노조의 투쟁이라고 했다. 투쟁 초기 1,200명이 넘는 조합원들 전원이 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뉴코아노조의 투쟁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07년 6월이었지만, 06년 12월부터 투쟁은 시작됐다.

뉴코아가 지방매장부터 계산대를 줄이려고 PDA를 도입하려 하자 노조는 구조조정 시도라 판단해 전면대응했다. 그리고 계산대 업무 외주화 얘기가 나오자 2003년부터 시도했지만 답보상태였던 비정규직을 전력으로 조직했다. 회사가 계산대 업무를 외주화하자 투쟁은 불이 붙었다. 파업과 함께 매장점거에 들어갔다. 뉴코아노조는 “비정규직이 손을 놓지 않는 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규직은 구조조정에, 비정규직은 해고에 전면적으로 저항했다.

“투쟁이 비정규직 문제로만 부각됐다. 구조조정에 맞선 정규직의 투쟁이 뜨지 않은 게 안타까웠지만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조직이 늦어져 비정규직의 주체화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했다. 싸우면서 한계를 극복하려 했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이를 빨리 판단했으면 투쟁이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호진 전 위원장은 비정규직 주체화의 실패가 패배의 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비정규직을 대의원까지 조직하긴 했지만 전술을 판단하는 투쟁대책위원회 성원으로 조직하는 데는 실패했다.

▲  김석원 뉴코아노조 위원장

노조가 이겨도 장기파업이라면 후유증은 크다. 그런데 뉴코아노조의 434일의 파업투쟁은 패배한 투쟁이 되고 말았다.

“깝깝하다”며 김석원 위원장이 이야기했다. “파업 전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했지만, 회사가 그들 일부를 관리직으로 진급시켜 열매는 회사가 가져갔다. 내부 추스르기를 위해 당분간 근로조건 개선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노조의 가장 큰 카드가 파업이지만 무파업 선언을 안 했어도 쓸 수 없다. 투쟁이 싫어서가 아니라 쓴 맛을 봤기 때문이다”

노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에 조합원 조직화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합비가 가압류돼 노조의 일상활동조차 불가능하다. 조합원도 대폭 줄었다. 무엇보다 발목을 잡는 건 ‘패배감’이다. 김석원 위원장이 인터뷰가 끝날 쯤 한 마디했다.

“뉴코아 노조는 비정규직 투쟁으로 사회를 뒤흔들었다. 일반적 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볼 때 선진적이었다. 그러나 나쁘게 이야기하면 모난 돌이 정 맞은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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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누가 먼저 시작했냐는 것은 중요한게 아닌데..

니가 먼저 시작했어도,

니가 먼저 끝낼 수 있는거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꼭 먼저 가는 것이 아니듯이..

 

근데 그렇게 울컥거렸었다.

내가 먼저 시작한게 아닌데..라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앙탈이

맘속에서 기승을 부렸다.

헤어지자는 이야기에 젤 먼저 떠오른 말은

지가 먼저 좋다고 해놓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었었던 거 같다.

 

정말 웃기지만 말이다..ㅋㅋ

 

노래 가사를 듣다가 잠시 어릴적 생각이 났다..

 

 

교통사고가 예고없이 다가오듯이

그렇게 갑자기 사고가 나는 거고,,.

 

그리고

보험처리도 끝나지 않았는데

사고가 또!!!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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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어

지난번에 기륭관련 청계촛불집회 갔을때였다. 문화연대 사무국장이 사회를 봤는데..

마음어에 대한 이야길 했었다.

국어. 영어, 일어 처럼 '마음어'가 있다고..

말로 다 표현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말..

기륭의 94일간의 단식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짠하다', '속상하다', '분노한다', 등등의 표현들을 한다.

그렇지만 그 느낌이 다 전달되는 것이 아니니..

그런데 마음어로 느끼면 어떤 건지 느껴진다..

 

'마음어'

같은 말을 하는데도 마음어로 들으면 달리 들리는 것이 있다.

똑같이 '밥꼭챙겨머거'라고 이야기 해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에 따라 다 다르게 느껴진다. 

 

근데 마음어도 사투리가 있나보다..

마음어로 표현한게 나는 서울말로,  상대는 제주도 말로 하는 거라면

여긴 왜곡이 있기마련,

그래서 마음어도 정돈하는 것이 필요한듯 하다.

 

내가 들은 마음어는 '가'였는데,

니가 말한 마음어는 '와'였다면..

 

그렇게 엇갈린 마음어에 대해선 확인할수도 없다..

그것이 마음어의 결정적 한계이다.

 

때론 가장 정확하게 전달되지만,

때론 가장 왜곡해서 전달되는거..

 

마음어도 표준화를 해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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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너의 상태가 나에게 고스란이 전이되고 있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인연이 싫어서 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게 잘 않된다.

 

너와 처음 만났던, 그날

한 선배와 함께 술을 미친듯이 마시고는

학교 앞 여관에서 잠을 청했다.

그날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나는건 왜일까?

 

너를 많이 알고 있는것 같기도 하고

너도 나를 너무 잘 알고있는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관계라는 것이 무엇이관데

끈으려하면 할수록 조여오는지.

 

너와 헤어지면서 사소한 정따위

깨끗이 씻어버렸다고 생각했고,

그 정이 무엇이던지 그것을 모른척 애써왔다

 

모른척 하고 살아야지.. 암..그래야지 

그렇게 눈을 돌렸고

그렇게 맘을 걷었고,

그런데도

문득문득

손이 가고 있다.

 

왜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너와내가 너무 익숙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것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그런 익숙한 관계를 또 만드는것이 두렵고,

그 지난한 과정이 되풀이되는게 막막하고

그 고독한 과정을 또 거쳐야 하는 것이 두렵고

...

그런데 그런 익숙한 관계가 그립다.

그건 아마도

아주오랜 친구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더 묻지 않아도 내 뜻을 잘 알아주는 동지가 그립거나,

아니면 원초적 본능이 부르고 있는 가족이라는 것이 그리운건지

 

 

엉킨 실타래는 풀어야 하는건지,

놓아두어야 하는건지

무엇이 맞는 건지

세상은 참 어렵다.

 

쉬운게 하나도 없어서 난 운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운동은 너무도 명백한 답이 있으니까

그냥 그 답을 향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운동말고는 말이다.

도통

쉬운게 하나도 없다.

 

익숙한것에 익숙하고

익숙한것이 싫어서 헤어졌고

익숙한것이 미워서 아련하다

 

그런데 말이다.

익숙한 것이 그리울때가 있다.

그냥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그 익숙함으로 알아주는

그런 관계와 인연이 또 어떻게 마련될 수 있겠는가?

 

그 익숙함까지 가는 길은 오로지 세월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를 준 것도, 상처를 받은 것도, 모두 상처 투성이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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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처음인가? 잊어버린건가? 다스릴수있는것인가? 이성이 시키는데 감정이 맘대로 안되는거.. 왜 나는 않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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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

때로 대상화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대상화를 해야 한다 최근 2-3년간 조직때문에 힘든일은 거의 없었다 중앙활동을 그만두고 나서, 정처없이 방황하며서, 삶의 동력이 떨어졌고, 그때 날 가장 두렵게 했더것은 이모의 한마디였다 '동대문에서 하는 옷장사 같이하자~' 별 시덥잖은 말이었는데, 평소같으면 그냥 지나칠말을 그때는 그말에 맘이 기우는 것을 느끼면서 이러다가 안돼지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단 한번도 운동을 떠나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더 내가 집안식구들 모두 미국으로 갈때도 그놈의 운동하겠다고 남아서, 미아리 옥탑방부터 반지하를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내가 이제와서 그런시덥잖은 옷장사에 맘이 혹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때 내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빨리 활동공간을 찾아야 겠단 생각을 하게됐다 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쉼없이 달려왔던 활동을 돌아보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러면 더이상 않되겠다는 생각에 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조직문제 앞에 정면으로 서있다. 자꾸 조직과 내가 일치시되고 있다. 버스안에서 눈물이 막 흘러서... 내렸다. 네온사인이 눈부신 거리를 지나, 집앞 시장골목을 지나 그렇게 걸었다. 누가 이야기 한것처럼 애증을 가졌던 지난 2-3년은 그냥 대상화를 했던 거다 내가 주체가 아니었고, 거리를 두면서, 한탄하면서, 이제는 객관적인 대상화가 필요하다 근데 자꾸 이 죽일놈이 책임감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이 뭐란 말이냐!! 이 주책맞은 감정은 워찌 이리도 날 괴롭히냔 말이다!! 누가 나에게 '조직에 대한 짝사랑좀 그만해'라고 말했다 난 짝사랑에 익숙한 걸까?? 숨이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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