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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21
    우중충한 구름
    파란달-1
  2. 2008/10/21
    우습게도..
    파란달-1
  3. 2008/10/20
    배려
    파란달-1
  4. 2008/10/13
    2008/10/13
    파란달-1
  5. 2008/10/12
    우리는 원숭이다
    파란달-1
  6. 2008/09/04
    하염없이
    파란달-1
  7. 2008/06/20
    열사투쟁을 외면한.
    파란달-1
  8. 2008/06/17
    장례가 끝났으니 어떻게 하자는거지요?
    파란달-1
  9. 2008/06/13
    민주시민장
    파란달-1
  10. 2008/03/23
    품앗이..
    파란달-1

우중충한 구름

하루종일 우중충한 날씨의 연속이다

미쳤다..

아침부터 울어보긴 첨이다..

전화소리에 잠이 깼다.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울어버렸다.

회의못가요~~

이야기를 하는데 목이 메었다.

그리고 눈이 뜨거워졌다..

 

전화를 끊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삼실에 와서도 일이 손에 잘 않잡힌다.

그냥 멍하니 앉았거나,

사이트 써핑을 하거나

할수없이 꼭 지금 해야 만 하는 일을 챙기는정도..

 

뭔가를 해야 할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

 

미친거다..분명!!

 

기륭이 오늘 침탈을 당했다고 한다.

일요일 찾아갔던 콜텍-하이텍 농성장이 생각났다.

 

거기도 곧 그렇게 될까..

 

날씨만큼 지랄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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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우습게도 기억들이

아직도 날 괴롭힌다

 

문득 문득

기억나고 무너진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오늘도 날 뒤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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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누가 하자고 했냐고?

자기들이 먼저 해야겠다고 하더니,

그것도 1년이 지난듯한데..

갑자기 들이밀며 숨을 헐떡이게 한다.

 

씩씩하게 산다는 것때문인가?

아무렇지 않은듯 보이는것 때문인가?

나란 존재가 그리 가벼워 보이는 것인가?

나의 이중성인가?

 

그 문제와 이문제가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

나란 존재는 없는건가?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활동가지만,

감성이 살아있는 인간이기도 한것을,

그리고,,

 

아니,

오히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뭘까?

아직도 그 분노와 억울함이 가슴 깊은 곳에 있는걸까?

 

그 어떤 내용으로 다시 정리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을..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제와서 다시..

 

꺼내 보기도 싫은것을 말이다.

 

보통 화면으로 글을 읽는 것을 잘 하는편이다.

그런데 화면에 띄우고 프린트를 하면서도

화면안에 있는 내용이 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25장짜리의 종이쪼가리..

그리고 첫장에 나와있는 경과,

아...

나도 잊고 있는 그 경과..

 

사실 자체도 잊고 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그 후속 처리의 과정은 더욱더..

 

염장지르는 것도 아니고,

어찌 이럴수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만나기를 거부하고,

읽기를 거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제기랄!!!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그렇게 갑자기,, 불쑥,,내밀고는

사실과 다른것을 확인하란다.

 

기관지 글 쓴것을 감수하듯이 말이다.

이건 기관지글이 아닌데 말이다.

이건 행정적으로 중앙위에 제출해야 할 문서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조금이라도 나를 배려해 줄 순없는건가??

 

아직도...

이렇게...

곪아있는데 말이다..

 

어찌해야 하는지..

정말...

미쳐버리겠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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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

 

운동말고는

할수 있는것도,

하고싶은것도,

해야하는것도

없는가..

 

간만에 하루 휴가를 받았다.

투잡을 하다가 쓰리잡이 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데

일은 6배가 된 기분이다.

 

여기 일정이 이렇게 되면

고걸 피해서 저기 일정을 이렇게 잡고,

그러다 보니 쉴수 있는 날이 없었는데..

 

휴가였다.

음. 정확히 두군데에서는 휴가였구

그러니깐 하나는 그냥 쌩깠다..ㅋㅋ

 

하루종일 밀린 집안일들을 하다가

집에 컴이 없어서

피씨방에 왔다..

 

집에서 별로 할 것두 없고..

아..

이런날은 어디 바람이나 쐬러 가야 하는데

그것도 일이되어버린다..

귀차니즘의 발동..

 

영화를 볼까 뒤적이다..

그것도 관두고,,

 

째즈댄스를 신청할까 하다가

도저히 시간이 않맞아서 한 시간을 검색하고

포기했다.

 

뭔가 새로운 분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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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숭이다

드디어 인간의 세상을 만들기위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지노비에프가 '우리는 원숭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단다.

코민테른 의장까지 햇던 지노비에프가 이야기했던

원숭이의 세계는 지금의 야만의 시대다.

 

우리는 아직 인간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진정 인간을 위한 세상은 어찌 구성되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어떤 철학과 가치가 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미지의 세계를 위해

항해의 돛을 올렸다.

 

인간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켜야한다.

아직은

털도 많고,

이목구비도 또렷하지 않고,

두발로 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인간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작을 결의했다.

 

10년...

그렇게 잃어버린 십년앞에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가슴벅찬 그 무엇이 맘속에서 꿈틀거린다.

 

시작이 반이라는 의미는

거리가 아니라 이제 겨우 방향을 잡았을 뿐이다.

그 방향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이는 커질 것이다.

우리가 한 걸음을 더 크게 내딛기 위해

이제 그 한걸음에 대한 대중적 검증의 과정을 거칠때

비로소 우리는 또다른 한단계 높은 단계로 올라갈 것이다.

 

연영석의 '간절히'라는 노래가 너무도 가슴깊이 울렸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는가?

인터네셔널가를 부를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던

동지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현장과 지역과 부문의 동지들이 주장하는 정치연설은

가슴깊깊은 울림이었다.

마지막 출범선언문을 외치는 동지의 목소리에

심장이 떨렸다.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수십번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망울에 고이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뒷풀이때 드디어 터졌다.

수도꼭지를 달은것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내가 울자격이 있는지조차 부끄럽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동지들이 생각났다.

반드시 있어야만 선배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

그토록 고생했던 그 선배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

많은 동지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 많은 동지들때문에 희망을 발견하고 있지만

난 그 선배들이 없는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분들한테 너무너무 미안했다.

이 감격은 그들이 수십년전부터 만들어왔던

운동의 축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온전히 우리만 향휴한다는 것이

너무 죄스러웠다.

 

내 생에 이런 날이 올까라는 것은 언제나 꿈이었다

그런데 꿈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준비운동을 한 건 아닐까?

그건 우리 모두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당을 건설하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에 대해

현실적 고민보다는

모두 20세기의 기억에 가려

그렇게 머뭇거린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더 많은 것이 남았다.

그래도 오늘은 이 감격을 조금더 즐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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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담배를 물고있다. 주구장창~

 

얼마전 한동지가 나한테 미친년이라고 하며 뜰에 있는 해바라기를 하나 갖다줄테니 꽂고 다니란다.

그러면서 니는 미친년이고, 나는 미친놈이다라는디..

 

미치지 않고, 정말 살수 없는 세상은 맞는거 같다.

 

삼실을 않나갔다. 공식적인 월차를 쓰긴 첨인듯. 아니, 비공식적이라도,

한 2년동안 이놈의 몸둥이는 아프지도 않더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래도 주섬주섬 챙겨 피씨방으로 왔다.

삼실나가 사람들 마주치기도 싫고,

사람들에게 또 어제저녁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그걸 조심하기 위해 신경쓰기도 싫고,

그냥 혼자 있고 싶다.

 

오늘밤까지 꼭 작성해야 할 작업이 있어서 왔는데,

정말 돌아버리겠다.

너무 어렵다.

뭐가 문제인지.

왜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는 평가는 별 의미가 없는데.

현상만 나열하고 있다.

 

근데 끊임없이 왜? 왜? 왜? 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는다.

왜???

 

어제 케이티 엑스 집회에 잠깐 앉아있는데

고공탑과 그 밑의 천막을 보다가

현대자동차 공장안에도 이런 풍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랬다면 이렇게는 않되었을텐데.

그건 뭐냐면 지도부의 의지니깐..

 

현자에 있는 어떤 동지가.

컨베이어 노동자의 설움을 민투위가 아니면 누가 닥아주냐고 하더라

어떤 새끼가 그걸 야기할 수 있냐고, 현장에서 모두 관리자 눈치나 보는 것들이..

그런 민투위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하소연

 

아무리 대공장 귀족노동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해도,

정말 컨베이어 노동자의 삶은 너무 피폐하다.

쉼없이 반복되는 노동에,

 

한 동지가 사실 2교대 않되었음 좋겠어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왜요? 라고 물으니,

나이 50다 되어서 3시에 마치면 할게 없어요..라는

등산도 하루이틀이지,

새롭게 뭘 배우기도 어렵고, 그동안 이렇게 살았던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변화앞에 있는 노동자들..

시간이 많아 지는 여유조차 두려운 우리 컨베이어 동지들..

 

아.. 속이 터질것 같아서...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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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투쟁을 외면한.

* 기관지 글

 

 

열사투쟁을 외면한, ‘대책없는’ 대책회의!!

 

 

‘열사’를 ‘님’이라 부르는 대책회의!

 

40일이 넘게 진행된 촛불, 광우병쇠고기 협상무효 투쟁의 과정에서 두분의 동지가 분신을 했고, 그중의 한분은 생을 마감했다. 한 국가의 내각을 바꾸고, 대통령이 스스로 ‘명박산성’을 쌓아 숨어버리게 만든 촛불은 그 위대한 힘에도 불구하고, ‘열사’를 ‘님’이라 부르며 무기력하게 떠나보냈다.

이병렬 열사는 5월 25일 전북 코아백화점앞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보수친미정권 명박을 규탄하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단호히 맞서야 한다”는 자필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남겼다. 그리고, 6월 9일 전신 80%의 3도화상을 입고 화마와 싸우다 운명했다.

열사가 운명하자마자 광우병 대책위는 상황실 회이에서 ‘이병렬 조합원에 대해 민주시민장으로 5일장’을 결정했다. 장례를 바로 치르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날 저녁 대표자회의에서 최종 ‘6일장’을 결정했다.

스스로 분명한 요구를 던지며 분신했고, 화마와 싸우다 돌아가신 그 분의 요구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던 9일, 87년을 재현하자며 사력을 다해 조직하던 그날, 전국적으로 70만명이 모여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전국을 돌아다니기 바로 전날 광우병 대책위는 그런 어이없는 결정을 했다.

 

투쟁을 핑계삼아, ‘열사’를 버리다?

 

6월 10일 백만대회는 실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였다. 시청 앞 그 넓은 대로에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촛불을 가로질러, 21년전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의 상여가 들어왔다. 사회자는 시민들에게 이한열 ‘열사’에 대한 뜻을 기리자고 했다. 바로 전날 돌아가신 이병렬 ‘님’과 이한열 ‘열사’는 뭐가 그리 달랐을까?

이병렬 열사는 공공서비스노조 조합원이고, 공공운수연맹 조합원이고,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민주노총이든, 공공운수연맹든, 공공서비스노조든 이 국면에서 돌아가신 이병렬동지를 왜 열사로 규정하지 못했는가? 열사가 돌아가신 다음날인 10일 공공서비스노조는 이병렬 ‘님’에서 이병렬 ‘노동열사’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광우병 대책위는 여전히 열사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열어준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직접행동, 거리의 정치를 탄생시켰다. 그동안 노동조합이 투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달라야 하는가? 시민들이기에 ‘열사’라는 호칭을 쓸수 없는가? 그런데 왜 6월 10일 이한열 열사에 대해서는 ‘열사’라고 부르며 21년 전을 기념했는가? 유관순열사도 있고, 윤봉길열사도 있다. 1900년도 일제에 폭거에 항거했던 분들을 우리는 열사라고 불렀다. 촛불이 열어준 국면에서 오히려 전 국민적인 열사로 정확히 규명해야 했다. 그것은 개념의 확장이 아니고, 매우 객관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열사투쟁은 ‘열사의 뜻을 이어받는’ 투쟁이다. 노동운동의 역사상 분신하고 나서 열사대책위로 전환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다. 가족들의 완강한 요구로 인해 열사대책위를 구성하자마자 장례를 치른 경우는 있지만, 열사투쟁 자체를 거부한 분신대책위가 존재했는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선배열사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투쟁해 왔고, 열사를 열사로 규정하지 않았던 수많은 어용노조와의 투쟁을 통해 건설되어왔다.

분신하고 이틀이 지난 5월 27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죄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광우병 대책회의는 열사가 돌아가시자 마자 열사투쟁을 저버렸다. 그들이 촉구했던 그 내용이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촛불투쟁이 잘 되고 있기 때문에 열사투쟁을 하지 말고, 장례를 치르는게 맞았다는 주장이 있다. 열사투쟁은 투쟁이 어려울 때 기폭제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이고 기획적인 투쟁이 아니라, 열사투쟁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열사투쟁으로 인해 이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열사투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는 민주노총의 최근 열사투쟁이 너무 무기력하여 동력이 안되는 노조를 믿을 수 없었다는 것 또한 핑계이다. 살인당한 동지앞에 산자는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열사투쟁’이다.

광화문에 빈소를 차리고, 촛불대오의 조문을 받고, ‘이병렬을 살려내라’는 구호라도 원없이 외쳤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이 억울함은 없었을 것이다.

 

살인자, 이명박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자!

 

6월 20일까지 선전포고를 한 광우병 대책회의는 이제와서 돌연 ‘정권퇴진투쟁’을 결정한바가 없다고 한다. 온갖 신문에 20일까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퇴진 투쟁으로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보도되었고, 심지어 조선일보에서는 ‘정권퇴진을 명령한다!’는 선정적 카피를 뽑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정권퇴진투쟁을 결의한 적이 없고, ‘정권퇴진에 불사하는 투쟁’이라는 말장난을 늘어놓고 있다.

광우병대책회의의 줄타기는 당장 멈춰야 한다. 20일까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애초 발표했던 대로 이명박정권퇴진투쟁으로 가면 된다. 뭐가 그리 두려운가? 열사투쟁으로 전화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기조의 혼란함의 연장성에 놓여있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이병렬열사를 죽이고, 김경철씨를 분신하게 한 것은 바로 ‘이명박정권’인 것을. 이제, 살인자 이명박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해야 한다. 열사를 욕보이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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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가 끝났으니 어떻게 하자는거지요?

점심밥 묵다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례가 이제 끝났으니, 어떻게 하자는 건지 야그좀 해보자는 거다!!

허걱!!

장례를 하면 않된다고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자는지 이야기를 해보자고???

너무 열이 받았다.

말도 제대로 않나오고,

언성만 높아졌다. 가만들어보니, 왜 자기가 그런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동지는 10일 밤 , 서울대 장례식장 잔디밭에서 분명히

'원칙적으로는 맞는데, 장례를 미루자는 말을 못하겠다' 고 했었다.

근데 이제와서 '장례하는게 맞다는 판단을 했다'는 거다

 

첫째 이유는 전북동지들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

둘재는 민주시민장에 대해 구지 노동장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는것

셋째는 민주노총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최근 민주노총이 한 열사투쟁이 모두 그모양이었다는것.

넷째, 우리 사업장이 파업을 할 조건이 않된다는것.

그동지는 시민들의 투쟁이 훨씬더 급진적이고, 잘 되고 있기 때문에, 투쟁의 정점에서 장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정세에 대한 판단은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이 이미 조합원들보다, 운동가들보다

훨씬더 능동적이고, 계급적인 요구를 걸고 있다는 것과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조합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상태..

민주노총의 상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우린 그런 점에 모두 일치했다.

그런데 왜 장례를 했냐는 거다.

 

난 열사가 외친 요구가 쇠고기수입반대, 이명박퇴진, 한미FTA무효였는데,

우린 아직 그 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 투쟁에 열사투쟁이 어떤 폭발점을 가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게 만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민주시민장에 대해서는 꼭 노동장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50만명이 모인 자리에서 국민열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투쟁을 다 떠나서 기본적으로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열사의 요구를 기리는 열사투쟁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도대체 이런법은 없었노라고 말이다.

 

근데 너무 정세판단이 달랐다. 나중에 제대로된 토론을 해보자고 했을 뿐..

감정은 격양되었지만, 전화로 다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니까..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도저히..

열사 장례식에 않갔다. 울산 출장을 잡고는 거길 갔다.

한 동지가 전화가 왔었다. 장례투쟁에 얼마나 모였냐고..

장례투쟁에 가서 뭐하냐고 이야기 했다.

투쟁도 못한 것들이 장례투쟁은 왜가냐고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사실 면목이 없었다.

 

난 그동지가 류기혁 열사투쟁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했는지,

그때문에 그 모든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제기했었는지 기억한다.

 

나도 류기혁 열사투쟁때의 논쟁에 대해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과오에 대해 그 동지들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평가서를 통해 반성을 했고, 조합원들에게 신문으로 배포했다. 그리고도 이후에 계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았다.

 

그 당시 조건과 조합원의 상태 등등의 이야기들은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다.

열사는 열사인거고, 열사투쟁을 못한 것은 문제제기를 받아야 한다.

당시 류기혁 열사는 가족들의 완강한 의지로 3일만에 가족장을 치뤘다.

비정규지회에서는 첫날 류기혁 조합원이라고 했고, 둘째날부터 열사라고 했고,

열사로 규정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가족장으로 장례를 서둘렀다.

그래서 평가만 남았다.

그리고 한달뒤에 비정규지회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공식 열사로 규정했다.

 

난 분명히 그때도 지금도 열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사투쟁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한 동지들은 활동가로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당사자던, 나같은 먼곳에 있는 활동가던 말이다.

노동조합의 체계에서의 질서와 조건 등등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활동가로서 어찌할 것인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랬었다.

그리고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되는 것에 대해 난 한번도 그 당시의 구체적 정황과 조건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 반성하고 있어요,,그들도, 나도,.,.그렇게만 이야기 했었다.

당시 울산의 동지들과 이야기 할때도 열사다라고 이야기 했다. 몇동지들은 전화를 피했고, 장문을 편지를 써서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동지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세게 주장하진 않았다. 우리가 언제 열사가 아니다라고 했냐고 오히려 항변했었다. 열사인지 아닌지 해당 노조에서 판단하면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었다. 최소한 나한테 솔직하게 말했을 수 있는데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오늘 전화온 동지가 2년전쯤 류기혁열사문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랬었다. 문제가 있죠..그래서 조직 총회에서 반성적 평가서를 채택했어요..라고 나는 이야기 했었다. 

 

근데 지금은 너무도 당당하게 장례를 하는게 맞았다고 이야기 한다.

열사투쟁은 의미가 없다는 거다. 왜냐? 이미 정세가 고양되어있기때문이라고..

어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혁신은 바로 이런것에 대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런 것밖에 없는 현실이 괴롭지만 평가는 제대로 해야 한다.

그날 서울대 병원에서 그 회의에 참관을 했으면서, 그자리에 드러눕지 못했던 나에대해 너무도 자괴감이 든다.

나는 그 순간 왜 그렇게 못했을까? 그렇게 하는게 맞는가, 안맞는가를 계속 망설였다.

여기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대책위 참가단체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나왔다.

 

오늘 그이가 이야기 했듯이. 서울에서 대책위에도 결합하지 않았다는게 이해가 않된다고 한 것에 대해.. 그것을 우리가 받아야 하는 질책이고 평가라면 받아야 한다.

 

정말, 나도 잘한게 없는데, 이렇게 승질만 내고, 열만받아하는 것 또한

입만가지고 운동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가 몬지 도통 모르겠다.

 

 

 

 

그때 그때 다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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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장

14일에 한단다.

이병렬 열사에 대해 열사로 공식적인 규정도 못한채

이렇게 열사를 보낸단다

 

세상천지 어느 분신대책위가 돌아가시자 마자 장례일정을 잡는단 말인가?

열사를 열사로 부르지 못하는 노조는 어용노조다

자기 조합원이 분신을 했는데, 화마와 싸우다가 돌아가셨는데

공공서비스 노조는 열사로 규정하지 않다가 문제가 생기자

그제서야 열사로 규정했다.

그리고, 열사투쟁을 하지 않기로 하고, 바로 장례일정을 잡는 것에 동의했다.

파업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미쳤다..모두 미쳤다..

 

9일 저녁 진행된 대책위 회의에서 공공을 대표해서 이근원대협실장이 들어와있었고, 장례일정을 잡는 것을 주장했다. 광우병 대책위 박석운 집행위원장도 장례라도 잘 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이야기 했다. 

그런 것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다.

공공연맹 위원장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근원대협실장은 자기 입장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윽박을 질렀다.

이게 도통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아무런 답변이 없냔 말이다.

 

왜??

 

그 책임에 있던 사람들이 왜 한마디도 하지 않냔 말이다

 

몇년전만해도 미친듯이 날뛰던 그자들이

왜 자기 문제가 되니, 아무것도 못한다고 이야기 하냐는거다

남의 노조 조합원이 아니고, 

바로 자기 노조 조합원인데도 말이다. 

 

난 듣고싶다.

최소한 어떤 변명이라도,

어떤 사과라도

어떤 반성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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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

꽉찬 일주일..

사실 오늘도 약속이 하나있었다.

갑자기 빵꾸난 지금..

공짜시간을 얻은거 같다.

 

어제는 회의가 있었다. 비정규투쟁단위들과 함께하는 회의..

비정규투쟁사업장들이 모여서 비정규공투단을 구성했고,

장기투쟁사업장도 왔구..

담주 공투일정을 잡고, 시간별로 어디로 갈까..등등을 정하는데

너무 화가났다..

민주노총은 도대체 뭘하는지..

왜 우리가 이런회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해서 화가나는게 아니라..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사업장, 비정규투쟁을 하는 곳도 있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투쟁도있고

멀리 구미서 코롱동지까지 있었다.

물론 서울본부가 있긴 했지만..

이건 엄밀히 서울본부의 역할이 아니라는거다!!

 

민주노총이 안하니, 서울본부도 대신(?)하고 있는거 아닌가!!

도대체 뭘위해 존재하는 민주노총인가?

 

힘겨운투쟁을..

답없는 투쟁을..

품앗이 연대조차도 어려워..

투쟁사업장끼리 한사업장 갔다가, 다른 사업장 갔다가..

이게 모냔 말이다!!!

 

품앗이 연대를 넘어서는 공투기획은 없었다.

그 품앗이 연대조차도,

우리도 이번달 안에 한번 해야 하는데...등등의

이야기들이 각 사업장이 조건에 따라 즐비했다.

그래도 차마 그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그동지들은..

'우리 사업장도 사실..이런데..이야기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아..

정말 짜증났다..

 

3시간동안 2주투쟁동선 잡는 투쟁..

이건 아닌데...

이런 연대투쟁은 아닌데..

 

근데 여기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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