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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가 끝났으니 어떻게 하자는거지요?

점심밥 묵다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례가 이제 끝났으니, 어떻게 하자는 건지 야그좀 해보자는 거다!!

허걱!!

장례를 하면 않된다고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자는지 이야기를 해보자고???

너무 열이 받았다.

말도 제대로 않나오고,

언성만 높아졌다. 가만들어보니, 왜 자기가 그런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동지는 10일 밤 , 서울대 장례식장 잔디밭에서 분명히

'원칙적으로는 맞는데, 장례를 미루자는 말을 못하겠다' 고 했었다.

근데 이제와서 '장례하는게 맞다는 판단을 했다'는 거다

 

첫째 이유는 전북동지들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

둘재는 민주시민장에 대해 구지 노동장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는것

셋째는 민주노총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최근 민주노총이 한 열사투쟁이 모두 그모양이었다는것.

넷째, 우리 사업장이 파업을 할 조건이 않된다는것.

그동지는 시민들의 투쟁이 훨씬더 급진적이고, 잘 되고 있기 때문에, 투쟁의 정점에서 장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정세에 대한 판단은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이 이미 조합원들보다, 운동가들보다

훨씬더 능동적이고, 계급적인 요구를 걸고 있다는 것과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조합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상태..

민주노총의 상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우린 그런 점에 모두 일치했다.

그런데 왜 장례를 했냐는 거다.

 

난 열사가 외친 요구가 쇠고기수입반대, 이명박퇴진, 한미FTA무효였는데,

우린 아직 그 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 투쟁에 열사투쟁이 어떤 폭발점을 가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게 만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민주시민장에 대해서는 꼭 노동장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50만명이 모인 자리에서 국민열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투쟁을 다 떠나서 기본적으로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열사의 요구를 기리는 열사투쟁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도대체 이런법은 없었노라고 말이다.

 

근데 너무 정세판단이 달랐다. 나중에 제대로된 토론을 해보자고 했을 뿐..

감정은 격양되었지만, 전화로 다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니까..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도저히..

열사 장례식에 않갔다. 울산 출장을 잡고는 거길 갔다.

한 동지가 전화가 왔었다. 장례투쟁에 얼마나 모였냐고..

장례투쟁에 가서 뭐하냐고 이야기 했다.

투쟁도 못한 것들이 장례투쟁은 왜가냐고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사실 면목이 없었다.

 

난 그동지가 류기혁 열사투쟁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했는지,

그때문에 그 모든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제기했었는지 기억한다.

 

나도 류기혁 열사투쟁때의 논쟁에 대해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과오에 대해 그 동지들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평가서를 통해 반성을 했고, 조합원들에게 신문으로 배포했다. 그리고도 이후에 계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았다.

 

그 당시 조건과 조합원의 상태 등등의 이야기들은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다.

열사는 열사인거고, 열사투쟁을 못한 것은 문제제기를 받아야 한다.

당시 류기혁 열사는 가족들의 완강한 의지로 3일만에 가족장을 치뤘다.

비정규지회에서는 첫날 류기혁 조합원이라고 했고, 둘째날부터 열사라고 했고,

열사로 규정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가족장으로 장례를 서둘렀다.

그래서 평가만 남았다.

그리고 한달뒤에 비정규지회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공식 열사로 규정했다.

 

난 분명히 그때도 지금도 열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사투쟁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한 동지들은 활동가로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당사자던, 나같은 먼곳에 있는 활동가던 말이다.

노동조합의 체계에서의 질서와 조건 등등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활동가로서 어찌할 것인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랬었다.

그리고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되는 것에 대해 난 한번도 그 당시의 구체적 정황과 조건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 반성하고 있어요,,그들도, 나도,.,.그렇게만 이야기 했었다.

당시 울산의 동지들과 이야기 할때도 열사다라고 이야기 했다. 몇동지들은 전화를 피했고, 장문을 편지를 써서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동지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세게 주장하진 않았다. 우리가 언제 열사가 아니다라고 했냐고 오히려 항변했었다. 열사인지 아닌지 해당 노조에서 판단하면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었다. 최소한 나한테 솔직하게 말했을 수 있는데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오늘 전화온 동지가 2년전쯤 류기혁열사문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랬었다. 문제가 있죠..그래서 조직 총회에서 반성적 평가서를 채택했어요..라고 나는 이야기 했었다. 

 

근데 지금은 너무도 당당하게 장례를 하는게 맞았다고 이야기 한다.

열사투쟁은 의미가 없다는 거다. 왜냐? 이미 정세가 고양되어있기때문이라고..

어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혁신은 바로 이런것에 대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런 것밖에 없는 현실이 괴롭지만 평가는 제대로 해야 한다.

그날 서울대 병원에서 그 회의에 참관을 했으면서, 그자리에 드러눕지 못했던 나에대해 너무도 자괴감이 든다.

나는 그 순간 왜 그렇게 못했을까? 그렇게 하는게 맞는가, 안맞는가를 계속 망설였다.

여기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대책위 참가단체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나왔다.

 

오늘 그이가 이야기 했듯이. 서울에서 대책위에도 결합하지 않았다는게 이해가 않된다고 한 것에 대해.. 그것을 우리가 받아야 하는 질책이고 평가라면 받아야 한다.

 

정말, 나도 잘한게 없는데, 이렇게 승질만 내고, 열만받아하는 것 또한

입만가지고 운동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가 몬지 도통 모르겠다.

 

 

 

 

그때 그때 다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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