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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동향] 독일, 극우파에 반대하는 수천명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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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동향] 독일, 극우파에 반대하는 수천명 시위
picis picis@jinbo.net
극우파에 대한 수천명 항의 시위

투 사(the Millitant) 62호 / 5.18


칼-에릭 이작손, 독일 라이프치히 - 동부독일 작센주의 주도인 이 도시는 지
난 노동절 독일의 정치적 양극화의 중심부였다. 극우파인 민족민주당(NPD)은 전
쟁기념물인 국민전투비(Volkerschlachtdenkmal)에서 만오천명의 시위를 조직하
였다. 이 석상기념물은 1813년 나뽈레옹의 격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30년
대 나치와 구동독 스탈린주의 정부 양자 모두에게 전통적인 집회장소였다. 민족
민주당 시위는 1933년 국제적 노동절인 메이데이를 "국민적" 경축일로 선언한
나치의 전통을 따라 소집되었다. 라이프치히 시의회는 이 우파의 시위를 금지했
지만, 고등법원은 이러한 금지를 기각하였다.
노동조합, 정치정당, 교회, 예술가들은 이 전쟁기념탑 주변의 광장에서 "용기
를 보여주는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의 나치즘에 대항하는 록 콘서트를 조직하였
다. 만여명의 사람들이 여기에 참석하였고 "파시즘은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된
다"라는 깃발을 전쟁기념탑 꼭대기에 매달아서 민족민주당의 시위에 항의하였
다. 다음날 수천명의 경찰이 4천명의 민족민주당원과 그들의 지지자들을 따라갈
때, 그 깃발은 여전히 탑 꼭대기에 걸려있었다.
독일 전역에서 청년을 비롯한 사람들이 반대시위에 참여하였다. 5월 1일 오전
9시 주로 라이프치히에서 온 수백명의 청년들이 전날밤 경찰이 광장 주위에 설
치한 폭동예방벽[역주-(주로 극우파와 좌파간의) 시위와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빈발하는 독일 등의 유럽에서는 양 시위대들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저지
선을 설치한다]에 모여들었다.
10대 후반의 학생인 마커스 핑거는 내가 탑 꼭대기의 깃발을 사진찍고 있는
것을 보자 "어제의 콘서트는 대단했습니다"라고 말을 걸어왔다. 일찍 나온 시위
자들은 "나치를 몰아내자"라고 외쳤고, 노란색 폭스바겐 버스에 매단 커다란 스
피커로 연호를 이끌었다. 곧 경찰이 방벽 위로 물대포차를 몰고 왔고 반대시위
자들은 이 지역을 떠나라고 도발적으로 명령하였다.
잠시 후 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리를 내려와 방벽에 있는 반파시스트 시위
대에 결합하였다. 그들은 베를린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었는데, 경찰
이 버스를 수색하느라 조금 늦게 온 것이었다. 경찰은 결국 어떤 무기도 발견하
지 못했다. 시위대의 전면에는 "실업은 외국인[노동자-역주]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의 문제이다"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경찰은 반대로 돌아서서 슈토터리츠(Stotteritz)가로 평화적인 행진을 시작하
며 나치즘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을 합류시키고 있던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았다. 라이프치히의 청년들과 독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
시위에 합류하였다. 행진대열이 수천명으로 불어나자, 국민전투비를 둘러싼 방
벽으로 다시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대포 세례는 또다시 반대시위를 후퇴하게
만들었다. 반파시스트 시위대 일부는 바리케이드를 들어내고 보도블록을 깨서
경찰의 물대포에 던졌다. 반대시위대는 사람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5
천명의 사람들이 다른 방향을 통해 전쟁기념탑을 둘러싼 경찰 저지방벽에 다다
랐다. 여기에 모인 시위대는 한시간여 동안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했고, 민족
민주당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쳐댔다. 경찰은 또다시 충돌을 조장하려 했지만 이
번에는 실패했다. 버스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조직자들은 계속해서 외쳤다. "선
동에 넘어가지 맙시다! 돌을 던지지 맙시다! 이는 경찰이 원하는 것입니다!"
베를린일보(Berliner Zeitung)의 2일 보도에 의하면, 민족민주당 시위대는 3
천에서 4천 정도 되었고 이는 주최측의 예상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었다. 민족민
주당 지도자 우도 포이크트(Udo Voigt)는 이 집회에서 연설을 통해, "본의 정당
들[서독 정당들을 지칭-역주]과 국제자본"을 비난했다. 참가자들이 들고있던 플
래카드에는 "독일인을 위한 일자리를!", "국민적 저항이 여기서 행진한다", "불
평하지 말자 - 투쟁하자"라고 쓰여있었다. 반파시스트 집회에 참여한 청년들 일
부는 노동운동에 도움을 청하며 의식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베를린에서 온
게오르그 로데와 우도 판 렝겐은 독일금속노조(IG Metall)의 깃발을 들고 있었
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자신들은 독일 금속노조 간부들에게 시위 지지를 요청
했다고 한다. 그들은 깃발을 받았지만, 공식적인 승인은 받지 못했다.
라이프치히 대학 의과대생인 프리더 바이스바하는 반대시위를 보기 위해 자신
의 자전거를 타고 왔다. 그는 독일노총(DGB)이 시내에서 주최한 노동절행사에
참여했었다. "여기에 더많은 사람이 있고 독일노총의 시위보다 훨씬 젊음이 넘
칩니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이 시위에 공감합니다만, 폭력적이 될지도 모르
기 때문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생각에는 라이프치히의 많은 사람들이 나
와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독일 전역에서 약 5십만명의 사람들이 노조의 노동
절 행사에 참여했고 베를린에서는 독일노총이 주최한 시위에서 만여명이 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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