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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복지국가의 쓰레기" 독일에서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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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복지국가의 쓰레기" 독일에서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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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쓰레기" 독일에서도 일어났다


정병기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학 박사과정


3월 5일 전국 200여개 도시에서 2차 시위를 벌인 독일 실업자들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실업 신고 의무화와 취업 노력 증명 강제 조항의 철회와 단협에 따
라 임금이 지급되는 일자리의 제공 및 공공 교통요금 인상 반대였다. 그러나 사
회 노동과 경제적 부를 기준으로 판단되기를 거부하며, 생존의 위협에서 일어선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다른 사회형태를 실험할 수 있
고 또 해보자"(실업자저항 행동위원회 연설문 중에서)는 데 있기도 하다.
현재 독일의 실업자는 연방 노동청의 3월 5일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480만
명을 웃도는 전국 평균 12.6%에 이른다. 특히 동독지역은 21.3%로 서독 10.4%의
두 배를 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58세 이상의 실업급여 수령자와 직업교육 이
수 중인 자, 임시 노동자 등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합하면 그 수
는 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296 마르크인 실업급여는 공공 사회 단체가 기준으로 하는 최저 소
득(2000마르크)의 64.8%에 불과하다. 더욱이 최근에 실시하게 되는 실업 신고
의무화와 취업 노력 증명의 강제화는 실업자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의 일조차도
감수하게끔 할 소지가 많다. 왜냐하면 독일의 사용자들이 점차 단협 준수의 의
무가 있는 사용자단체로부터 탈퇴하여 직장평의회와 독자적으로 체결하는 기업
별 협약을 통해 해고와 임금삭감 혹은 낮은 임금을 조건으로 하는 임시고용을
관철해 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곧, 정확히 파악된 실업자들을 취업 노력
증명의 강제화를 통해 저임금 고용에 내몲으로써 이러한 노동관행을 법적으로
정당화시켜 줄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독일 실업자들의 시위는 지난 2월 5일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조직적 실업자
시위라는 의미를 갖는 이 날 시위도 전국 200여 개에서 동시에 전개되었으며,
정당, 노조, 사회단체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전국적인 실업자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이날의 시위는 전국의 매체를 장식했으며 엄청
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요구 수준에 그쳐, 각
정당들의 차기 선거에 이용될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노조와 사회단체
등은 소극적 연대에 한정됨으로써 공동의 시위가 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3월 5일의 시위는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도 비판하는 등 보다 근본적
인 사회문제와 궁극적인 목표도 제시하면서 저항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실업자 운동을 노조운동 내에 묶어 두려는 기성조직으로서의 관성을 가
진 노조와는 갈등을 일으켜 시위는 양분된 채 각자 다른 곳에서 치르게 되기도
했다. 실제 2월 5일의 시위에서 노조는 단협상 모임을 위해 오후 4시까지 시위
를 끝내 줄 것을 시위 실업자들에게 요구해 빈축을 사기도 했었다.
시위는 일단 올 가을의 연방의회 선거 때까지만 지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목
표가 관철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실업자 조직 내부에서도
의견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비단 시간적 제한이라는 전
술상의 차이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량실업의 궁극적 원인을 비단
보수 기민당 정권이나 그 정책에서 찾느냐, 아니면 자본주의 질서 자체에서 찾
느냐라는 관점상의 차이도 내포하고 있다.
3월 5일의 시위가 지난 달의 시위에 비해 근본적인 문제인식을 제기하는 데에
는 성공했으나, 그러한 인식의 확대와 공유를 위해서는 아직 운동의 발전 과정
을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독일 노동자 내부에서 단일노조로서 권
위를 가진 노조는 개혁되지 않는 한, 실업자 운동의 발전에 적지 않은 장애요소
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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