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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혹은 지루한 스톡홀름

 

 

 

연재기사 |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 종합
 
조용한 혹은 지루한 스톡홀름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26] 스웨덴 스톡홀름 1
텍스트만보기   강병구(kbk81) 기자   
 
 
준비 없는 도착이 가져다준 당황스러움

 
▲ 도착해서 처음 본 스톡홀름 시내의 한가로운 모습.
ⓒ 강병구
 
머무는 내내 한기가 충분히 느껴지던, 바다 밑에 잠긴 공짜 방은 결국 나에게 감기 기운을 선물해 주었다. 심포니호에서 얻은 마지막 선물이랄까? 으슬으슬 추워지는 몸에 더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도착한 스웨덴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아침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쯤, 배는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몸이 괜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함에서 오는 막연한 즐거움은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막상 배에서 내리고 보니 내 수중에 단 한 푼의 스웨덴 돈이 없는 관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배가 도착한 여객터미널에는 현금인출기도 없었고, 터미널의 위치도 스톡홀름 시내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가지고 있는 유로는 적어도 터미널의 빠져나가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러운 도움을 찾을 수 있었다. 어제 심포니호에서 만난 분들과는 다른, 단체관광객들을 만나 그분들이 사용하시는 버스를 얻어탈 수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타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잠시 뒤 스톡홀름 시내까지 태워주시겠다고들 대답해주셔서 버스를 얻어 타게 되었다.

 
▲ 스톡홀름 중앙역의 모습, 중앙역 근처에 주요시설이 몰려있다.
ⓒ 강병구
 
하지만 현지에 와서 구하려고 한 숙소는 더 문제였다.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이 느껴지는 상태에서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숙소를 찾고 싶었지만, 연고도 아무것도 없는 스톡홀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이 한국에 연락해 인터넷으로 이곳 민박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우선 도시의 중심이라 할만한 중앙역을 찾아가 전화카드를 구매하여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으로의 몇 번 통화 끝에 알아본 민박집 전화번호로 한인민박집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통화를 해서 위치를 안내받고, 그곳까지 찾아가고 보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던 상황에서 말이 통하는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고 나니 마음이 푹 놓였다. 새삼 준비 없이 떠나온 내 여행이 너무 힘들게만 느껴졌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스톡홀름의 풍경

 
▲ 중앙역 앞에서 본 반가운 한국차의 모습.
ⓒ 강병구
 
짐을 풀고, 씻고, 간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니 본격적으로 내가 도착한 스톡홀름이란 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스웨덴의 수도라는 객관적인 사실과, 어릴 적 즐기던 부르마블 게임에 등장하던 도시였다는 것 이외에 특별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오래된 도시로서 왕궁 같은 건축물이 유명하겠지만,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보게 될 다른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듯했고, 스톡홀름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전지식 없는, 제목처럼 무작정하게 도착한 스톡홀름의 첫인상은 참으로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느낌이었다. 여객터미널에서 고생하다가 스톡홀름 중심가에 도착하여 시내를 돌아다니던 시간이 한참 점심때쯤인 낮 12시였다. 서울 같았다면 1시간이라는 쫓기는 시간 안에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과 시민들로 매우 분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 중앙역 인근의 쇼핑거리의 붐비는 모습.
ⓒ 강병구
 
하지만 스톡홀름의 점심시간은 그런 종류의 분주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쫓기듯이 어딘가로 향하는 직장인들도,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의 점심시간이었다.

물론 이런 느낌이 스톡홀름에서만 느낀 것은 아니다. 유럽의 도시들이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스톡홀름 시내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북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만큼 백화점과 쇼핑가가 주를 이루는 중심가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행자로서 느끼는 여행지의 주된 느낌이란 것이 있다. 그런 점에서 스톡홀름의 그것은 조용함과 여유로움이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가 서울과 비슷한 분주한 느낌을 주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고풍스러움을, 에스토니아의 탈린이 중세풍의 만화 같은 젊은 느낌(영화 <기사 윌리엄> 같은 느낌이랄까?)이었고, 헬싱키가 평화로움을 주었듯이 말이다.

아마도 스톡홀름에서 겪은 몇 가지 경험들이 이런 인상에 쐐기를 박았을지도 모르겠다. 스톡홀름 여행 둘째 날 국립미술관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의 일이다. 민박집에서 같이 묵고 있던 부부와 함께 그곳을 둘러보다 점심시간이 되어 미술관 안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조금은 넘은, 오후 1시가 조금 덜되었을 시간이었다.

 
▲ 너무나 여유로운 스톡홀름 모습.
ⓒ 강병구
 
같은 시각의 서울이었다면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직장으로 혹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려고 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식사를 여전히 여유롭게 하고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는 차 한 잔을 두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테이블도 있었다(이 테이블 사람들은 우리가 밥을 다 먹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야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급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모두 같이 온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시계를 보아가며 서둘러 먹는 사람은 시간도 여유로운 여행자인 우리가 유일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미술관 관람객일 수도 있다. 혹은 종업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다들 미소를 머금고 식사상대들과 이야기하는데 시끄럽지 않았으며, 그런 그들 누구도 시간에 쫓기듯 먹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다음날 시내의 다른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유롭다 못해 지루하다면?

 
▲ 가장 번화한 세르옐 광장의 붐비는 모습 - 이 날 저녁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었을까?
ⓒ 강병구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른만 못한 것인지 정신없는 한국인의 삶에 너무 익숙한 때문이었는지, 너무나 조용하고 여유로운 스톡홀름의 풍경은 차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지루하다 못해 신물이 났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것도 3일 만에 말이다.

술을 좋아하고 밤에 노는 전형적인 한국인으로서, 황금 같은 주말 저녁 시내중심가 술집도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열려있는 곳이 눈 씻고 찾기 힘든 점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 민박집에 같이 머물던 다큐멘터리 촬영팀 형님들과 함께 술을 한잔 먹으로 시내 중심가로 나왔지만, 밤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임에도 시내에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여행서에 소개된 몇 안되는 술집들도 한산하거나 영업이 끝났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주말저녁 술도 안 마신다는 건가? 그런 것에 비하면 새벽 3시까지 운행하는 지하철은 너무 생뚱맞았다.

민박집이 있던 곳은 시스타(Kista)라는 스톡홀름 외각의 신도시였다. 그곳에 위치한 30년된 아파트가 민박집이었는데, 어찌나 동네가 조용한지 조금 늦은 시각 길거리에서 떠들기라도 하면 주민들이 밖을 내다볼 지경이었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스톡홀름. 마음 한 쪽에서는 이런 곳에서 편히 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지만, 다른 한편 이런 곳에서 살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무래도 나에겐 스톡홀름에 살기엔 부적당한, 음주가무를 즐기는 동이족의 피가 너무 많은 듯했다.

 
  [여행팁 19] 스톡홀름에서  
 
 
 
▲ 너무나 조용했던 민박집 아파트 모습
ⓒ강병구
작년 5월 필자가 도착했을 당시 스톡홀름의 한인민박은 두 곳이 있었다. 사전정보 없이 유스호스텔 숙박을 생각하고 도착한 곳이라 한인민박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행에 따른 피치 못 할 사정으로 급히 한국에 연락을 하면서까지 알아보니 한인민박이 있기는 있었다.

혹여 스톡홀름을 가시려는데 한인민박의 존재를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지 몰라서 필자가 묵었던 민박의 홈피 주소를 남긴다. 민박집은 깔끔했고 머물기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필자가 있었던 기간이 비수기라 성수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한인 아주머니와 스웨덴인이신 아저씨 두 분 다 매우 친절하셨고, 한국말을 잘하는 아들분이 인상적이었다.

민박집 홈페이지 : http://www.stockholmminbak.se

환전에 관한 팁 : 유로권을 여행하다 북유럽에 와서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점이 환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편하게 유로가 통용되던 곳을 여행하다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에 도착하면 환전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또 나중에 소개할 비유로권 동유럽과는 달리 시내에서 유로가 통용이 거의 되지 않는다. 유로로 지불하려고 하면 환전소에서 바꿔오라고 한다.

시기마다 환율이 어떻게 다를지 모르니, 북유럽에서 쓸 돈을 모두 미리 환전할 필요는 없지만, 도착해서 수고롭지 않을 정도의 돈은 미리 환전해오자. 적어도 교통비를 지불할 50유로 안팎의 돈은 미리 환전해 오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동유럽과 또 다른 점은 북유럽 화폐가 남아도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동유럽화폐가 남으면 서유럽에서는 거의 재환전이 불가능한 것에 비해, 북유럽 화폐는 그럴 걱정은 없으니 남는다고 다 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환전을 여러 번 하는 것에 따른 손해는 있지만 말이다. / 강병구
 
 
 
 
개인적인 사정으로 예고된 날짜에 기사를 올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4월 16일(월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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