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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타란티노의 난장

 

 

펄펄 끓는 타란티노의 난장

DEATH PROOF
2007.09.04 / 김뉘연 기자 

‘적어도 죽음은 보장된다(death proof)'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건축한 헤모글로빈의 성전 안으로 기꺼이 들어갈 만하다. 살인과 공포, 욕설, 구타, 질주, 스릴, 섹스 등이 진탕을 이룬 영화 <그라인드하우스> 속 타란티노의 신작 <데쓰 프루프>가 9월 6일 드디어 국내 도착한다. 제대로 망가지는 커트 러셀과 일곱 명의 미녀들이 벌이는 난장판, 그 한가운데서 빛을 발하는 이 ‘싸구려’ 내지는 ‘쓰레기’ 영화는 그저 닥치는 대로 즐겨야 제 맛이다.

"그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어라. 잠들기 전에 우린 갈 길이 머네. 들었는가, 버터플라이? 잠들기 전에 우린 갈 길이 머네."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지금 최대한 느끼하게 이 시를 읊고 있는 남자는 ‘진짜 귀엽고 화끈하고 재미있고 첫눈에 '뻑갈' 만큼 잘생긴’ 스턴트맨 마이크, 커트 러셀이다. ‘버터플라이’ 바네사 펄리토가 대꾸한다. “내 친구 말이, 바 안쪽 주크박스가 멋지다네요. 거기서 랩 댄스를 기다릴래요?” DJ 정글 줄리아의 라디오 방송을 탔던 모종의 약속이 이뤄지는 순간. 이제 커트 러셀,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뜨겁도록 숨 막히는 절정의 3분이다. 남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바라보는 여자들로 하여금 ‘무성’ 내지는 ‘중성’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도록 종용하는 이 지상 최대의 섹시한 랩 댄스는 안 그래도 펄펄 끓는 타란티노의 새 영화, <데쓰 프루프>를 더욱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하긴, 행여 버터플라이가 랩 댄스를 추지 않았다면 커트 러셀, 아니 스턴트맨 마이크의 실로 무서운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을 테다. (그의 말마따나)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기억해두겠어!” 또는 “수첩에 적어놓겠어!” 진짜로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죄다 적어놓는 이 치사한 사나이는 버터플라이에게 랩 댄스를 추지 않으면 그녀 이름 밑에 이렇게 적는다고 협박한다. “겁쟁이!” 일단 타면 결코 죽지 않는다는 차, ‘100% 데쓰 프루프’를 몰고 다니는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어울리는 행동은 아무래도 아닌 듯한데 말이다.

"한 편 가격으로 두 편을!"

‘롤링스톤’의 평론가 피터 트래버스가 말한 대로 위와 같은 홍보문구라도 써 붙여야 할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를 연속 상영하는 영화 <그라인드하우스>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7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저예산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 영화 전용극장 ‘그라인드하우스(Grindhouse)’ 주변을 감돌던 어떤 기운을 다시금 불러낼 필요가 있다. 타란티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라인드하우스는 대도시의 오래된 집과 같았다. 3, 4편의 영화를 밤새서 틀어주는 심야영화관이자 부랑자들의 잠자리로도 최고의 장소였다. 경찰을 피해 도망 중이라면 저녁 내내 그곳에 피해 있으면 됐다. 영화가 끝나고 아침 6시에 쫓겨나면 잠깐 밖에서 걷다가, 극장이 열면 다시 돌아오면 됐다."

섹스와 폭력과 공포가 난무하는 선정적인 B급 영화들을 그라인드하우스가 보여주는 방식은 바로 ‘동시상영’이었다. 그리고 그라인드하우스에서 살다시피 어린 시절을 보냈음이 분명한 두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베르토 로드리게즈가 의기투합해 밀어붙인 동시상영 프로젝트 <그라인드하우스>가 지난 4월 6일, 북미의 평화로운 부활절 휴일에 처음 공개됐다. 본편 2편과 타란티노의 아이디어라는 가짜 예고편 4편을 더한 상영시간은 무려 191분. 당연하게도 R등급이었으며, 때문에 그다지 좋은 흥행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여담 하나.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가 그라인드하우스 세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물증이 있다. 어느 날 로드리게즈가 타란티노의 집에 놀러 갔다가 어떤 영화 포스터에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은 그라인드하우스 영화 포스터(당시 동시상영됐던 )였다는 것. 오래전부터 두 편의 영화를 붙여 만들고 싶어했던 로드리게즈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타란티노의 제안에 반색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는 9월 6일 드디어 국내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는 <그라인드하우스> 전편이 아닌, 그중 일부인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다. 이 영화를 수입한 스폰지에서는 <그라인드하우스> 중 또 다른 한 편인 로드리게즈의 좀비영화 <플래닛 테러>는 오는 11월 개봉될 예정이며, 극중 삽입된 4편의 가짜 예고편은 아쉽게도 구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일단 우리는 그라인드하우스의 ‘동시상영’ 개념을 만끽하지는 못하는 셈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20일 국내 언론에 공개된 <데쓰 프루프> 시사풍경은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가 지금 왜 다시 추억의 그라인드하우스를 스크린에 불러냈는지를 생각하게끔 했다. 질주하는 카 체이싱에 열광하고, ‘언니’들의 액션에 감탄하며, 기막히고도 속 시원한 반전에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치는 기자들은 ‘나 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영화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데쓰 프루프>는 이렇듯 취향 맞는 이들끼리 왁자하게 몰려다니며 함께 보고 즐길 만한 영화, B급 취향을 지닌 소수를 위한 모종의 아지트였던 그라인드하우스의 정신을 고스란히 품은 영화인 것이다.

"제길, 이런 싸구려, 아니 쓰레기 영화 같으니라구"

<데쓰 프루프>는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당하는 여자들 그리고 복수하는 여자들. 언뜻 주인공처럼 보이는 스턴트맨 마이크 역의 커트 러셀은 실은 <데쓰 프루프>의 진정한 주인공인 ‘언니’들을 전시하기 위한 미끼다. 그는 오직 쾌감을 위해 이리저리 떠돌며 자동차로 언니들을 쫓아 들이받으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두 패거리의 언니들은 결코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 텍사스 주의 작은 도시 오스틴, 스턴트맨 마이크는 모처럼 신나는 밤을 보내고자 하는 섹시한 라디오 DJ 정글 줄리아와 그녀의 친구 알린, 셰나를 노린다. 두 번째 에피소드. 이번에는 테네시 주 레바논 시에서 노닥거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애버나시, 모델 리, 스턴트우먼 킴과 조이가 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생각보다, 아니, 결코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그릇 또한 예상보다 더욱 균열이 심하다. 사실 이는 영화 오프닝에서 예견된 바이기도 하다. “본 영화 속 화질변환, 중복편집, 음향사고 등은 모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 의해 의도된 것입니다.” 과연 심상치 않은 공지사항이다.

타란티노에 따르면 1960~70년대 그라인드하우스에서 상영했던 저예산 B급 영화들은 그야말로 날것과 같았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경우 개봉 초기에 본다면 프린트 상태가 괜찮았다. 하지만 엘 파소의 자동차 극장에서 틀고 나면 그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타란티노는 자신의 영화 <데쓰 프루프> 역시 ‘싸구려’ 내지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영화에 빈번히 나타나는 불안정한 흔들림, 스크래치, 온갖 잡음, ‘gone missing’이라는 자막과 함께 불현듯 사라져버리는 장면 등은 <데쓰 프루프>가 철저히 그라인드하우스 정신에 입각한 영화라는 기준에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불어 <데쓰 프루프>에서 촬영까지 담당한 타란티노는 CG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고수한다. 타란티노의 이러한 마인드는 극중 스턴트맨 마이크, 커트 러셀이 내뱉는 대사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요즘엔 물론 CG가 대세야. 하지만 <배니싱 포인트 Vanishing Point>(1971)나 <더티 매리 크레이지 래리 Dirty Mary Crazy Larry>(1974)를 제작하던 시절에는 진짜 사람이 모는 진짜 차들이 부딪혔어. 그래서 스턴트 팀은 차에 탄 사람이 어떤 충격에도 죽지 않도록 ‘데쓰 프루프’ 차량을 특수 제작하게 됐지. 진짜 안 죽나 보려고 돌벽을 향해 시속 2백 킬로로 돌진한 적도 있어." 이제 남은 것은 질주하는 자동차 액션 신. 평소 훌륭한 카 체이스 액션의 공식은, “80%는 착한 편이 추격을 당하고 나머지 20%는 착한 편이 추격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혀왔던 타란티노는 영화 <데쓰 프루프>에서 실제로 그 공식을 증명해 보인다. 특히 마지막 20분을 완벽하게 책임지는 언니들의 ‘잇 카(It car)’, 1970년식 440엔진 닷지 챌린저! 그렇다. <배니싱 포인트>에서 배리 뉴먼이 연기한 주인공 코왈스키가 탔던 그 차다. 그저 닥치는 대로 질주하는 이들의 쫓고 쫓기는 신나는 추격전, 그 끝은 그동안 매끈한 CG가 애써 덮고 있던 원초적인 흥분과 충격으로 수렴된다. 또한 타란티노 영화에서 슬래셔가 빠질 리 없다. 온갖 장르를 한데 뒤섞는 데 남다른 재능을 가진 타란티노가 추격 신에 더한 슬래셔 역시 1970년대 고전 슬래셔영화가 주는 느낌 그대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까마득히 잊고 있던 말초적인 자극을 부러 깨우는 타란티노의 목표는? 아니나 다를까 이번 영화에서도 극중 바텐더 워렌으로 기꺼이 카메오 출연한 타란티노를 두고 텍사스 언니들이 하는 말이 있다. "워렌이 내는 거야." "여기 룰 알지? 워렌이 내는 건 닥치고 원 샷이야." "닥치고 원 샷!"

"언니들, 잘못 건드렸어"



"저기 좀 봐. 웬 70년대 패션?" "맙소사." "타임머신에서 추락했나봐." "어떻게 저런 꼴로 다니냐?" 얼굴 한쪽에 굵직한 흉터를 품은 스턴트맨 마이크, 커트 러셀을 두고 이렇게 대놓고 욕할 수 있는 여자들이라면 역시나 손바닥만 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걸치고 빈티지 머스탱을 모는 텍사스 언니들밖에 없다. 게다가 무려 무알코올 ‘버진 피냐 콜라다’를 마시는 이 고독한 스턴트맨은 일순 변태적 성욕의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이다가 마지막에 제대로 망가진다. 온몸으로 발산되는 남성성을 무기 삼아 느끼한 척 폼을 잡지만, 그럼에도 타고난 선한 눈매만은 감출 수 없는 커트 러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커트 러셀을 둘러싼 일곱 명의 ‘핫’한 여배우들이다. 남자들만큼 욕하고, 남자들 못지않게 지저분한 섹스 토크를 나누며, 반쯤은 술과 대마초에 전 일곱 미녀는 타란티노 영화에서 또한 빠질 수 없는 시시콜콜한 수다를 위해 기꺼이 입을 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린제이 로한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등장하는 애버나시(로사리오 도슨), 스턴트우먼 킴(트레이시 톰스)과 조이(조이 벨), 그리고 매거진 ‘얼루어’ 모델 리(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는 소위 ‘영화판’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파티를 방불케 하는 촬영장에서 각기 영화감독, 조명담당, 전기담당,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를 꼭 닮은 스탭에 눈독을 들인다는 그녀들의 수다는, “내가 찍었던 감독이 대릴 한나 대역과 잤다”는 식의 그렇고 그런 종류의 것이다. 어쩌면 평소 타란티노가 즐겨왔던 수다보다는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타란티노 고유의 색깔이 역력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그녀들이 있다. 먼저 첫 에피소드에서 차마 눈을 뜰 수도,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도 없을 정도로 뜨거운 랩 댄스를 불사하는 버터플라이(바네사 펄리토). 한편 ‘삐쩍 마른 가짜 금발’의 히피 팸으로 분한 로즈 맥고완은 <그라인드하우스> 속 또 다른 영화 <플래닛 테러> 포스터에서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칼과 끝내주는 다리 ‘머신 건’을 자랑한다. 그리고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열광해 마지않을 닷지 챌린저 보닛 위 진정한 스턴트우먼, 조이 벨이 있다. 극중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실제로 뉴질랜드 출신의 스턴트우먼으로,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를 대신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렇듯 커트 러셀과 언니들의 치고 박는 한판승으로 올 여름을 접는 <데쓰 프루프>는 거침없는 생명력을 뿜어내는 100% 타란티노식 난장판이다. 이만하면 아무리 박한 평가를 내린다 해도 팝콘을 즐기며 볼 만큼은 되는 썩 재미난 영화가 아닌가. 물론, ‘시카고 선타임스’의 리처드 로퍼가 지적한 대로, 팝콘이 피와 함께 흩날려도 괜찮다는 전제가 따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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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란 무엇?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의 <그라인드하우스>를 낳은 극장문화, 그라인드하우스에서 주로 상영했던 영화들은 바로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이었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키워드는 ‘저예산’과 ‘대중성’. 한 마디로, 최대한 저렴하되 최고로 재미있게 찍는 영화를 말한다. 영화의 질보다 양, 예술성보다 상업성에 비중을 둔다는 의미에서 쇼비즈니스 용어에 속하는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다루는 범주는 실로 다양하며 무엇보다 자극적이다. 금단의 섹스, 무자비한 폭력, 마약, 누드, 성도착, 살인, 괴수물을 넘나드는 소위 B급 영화들은 영화매체가 등장했던 초창기부터 존재해왔다. 예를 들면 (1935)의 경우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소녀들과 결혼하는 문제를 주목했으며, 마약중독을 다룬 (1936) 같은 영화도 있었다. 이런 작품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하던 시기 메이저 영화사가 애써 피했던 문제를 건드려 관심을 샀다. 그러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영화적 금기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면서부터다. 대중의 취향과 맞닿아 있었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은 또한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사고를 다뤘으며, 따라서 단시간에 대중의 자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핀란드, 한국, 베트남 등에서 일어났던 전쟁에 대한 영화도 여러 편 만들어졌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다시금 학문적인 관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보다 세분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흑인 관객을 겨냥했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팸 그리어가 <코피> <폭시 브라운> 등에 출연, 인기를 독차지했다. 소프트코어 포르노와 비슷한 섹스플로이테이션이라면 러스 메이어의 영화들. 그리고 최근의 <아즈미> 시리즈와 <킬 빌>을 낳은 새로운 사무라이 칼싸움, 참바라영화. 좀비영화의 경우 조지 로메로의 영향권아래 있었다. 선혈이 난무한 스플래터 또는 고어영화의 대가는 허셀 고든 루이스. 1963년 작 <피의 축제>가 대표작이다. 그리고 여감방 시리즈와 <몬도 가네>로 대표되는 혐오 영화. 서부영화의 변종으로 주로 이탈리아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던 스파게티 웨스턴도 있다. <장고> <데쓰 라이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밖에 오토바이 폭주족을 소재로 삼았던 바이커영화의 경우 1953년 말론 브랜도가 출연했던 이 첫 테이프를 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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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는 어떤 영화?

<그라인드하우스>의 또 다른 축인 <플래닛 테러 Planet Terror>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씬 시티> 감독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작품이다. 오는 11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플래닛 테러>는 한 마디로 좀비영화다. 이를테면 <좀비>나 <시체들의 새벽>과 같은 고전적인 좀비물을 보다 다이내믹하게 변주했다고 보면 된다. 배경은 식인 군인들로 둘러싸인 텍사스의 한 마을. 클럽의 고고 댄스걸이었던 팜므 파탈 체리(로즈 맥고완)는 좀비의 습격으로 근사한 다리를 잃게 된다. 옛 남자친구 레이(프레디 로드리게즈)가 그녀에게 의족 대신 선물한 것은 다름 아닌 '머신 건'. 이제 체리와 레이는 좀비들을 초토화시킬 정예팀을 이끌게 된다. <데쓰 프루프>에서 그저 그런 금발 미녀로 출연했던 로즈 맥고완이 누구보다 근사한 다리의 각선미를 뽐낸다. 한편 타란티노는 무려 강간범으로 카메오 출연하고, 이밖에도 브루스 윌리스와 블랙 아이드 피스의 싱어 퍼기 등이 깜짝 등장한다.

더불어 <그라인드하우스>를 빛내는 것은 <플래닛 테러>와 <데쓰 프루프>를 잇는 4편의 가짜 예고편들이다. 슬래셔 <호스텔>을 만들었던 일라이 로스의 예고편 'Thanksgiving', 전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로 알려진 에드가 라이트의 'Don't', 롭 좀비의 나치와 늑대인간 이야기 'Werewolf Women of the S.S', 그리고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와 데니 트레조의 끝내주는 복수담 'Machete'가 그것.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만날 루트가 없어 그저 아쉽기만 한 이 예고편 아닌 예고편들이 부디 영화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B급 정서 압축해 예고없이 “펑!”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한겨레 김소민 기자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60~70년대식 인물·분위기에
근육질 여성들 화끈한 복수극
허 찌르는 ‘피범벅 액션’ 여전

 

뭐 하자는 거야? 화면에 비가 내리듯 ‘치지직’거리는 스크린에 제작사 ‘디멘션’의 로고가 그야말로 싸구려 골동 모조품 냄새를 풍기며 뜬다.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그 시절의 홈비디오처럼 입자는 거칠다. 필름이 중간에 튀는 것도 모자라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는 1970년대 외진 골목 동시상영관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뭔가 굉장한 의미를 찾아 해부해가며 봐도 상관은 없지만 뭘 그럴 것까지야. 그냥 팝콘 씹어먹으면서 통쾌한 자동차 추격과 사지가 떨어지는 ‘슬래셔’ 공포물의 쾌감에 소리 질러가며 보길 권한다.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쓰 프루프’
 
애초에 기획이 그렇다. 타란티노가 친구인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 집에 놀러 갔더니 싸구려 동시상영관(그라인드하우스라고 불린다) 포스터가 굴러다녔다고 한다. ‘너도 여기 좋아해’ ‘나도 좋아해’ ‘동시상영 보는 것처럼 니가 한편 내가 한편 B급으로 만들어 붙여버릴까’ 그런 식으로 나온 게 영화 〈그라인드하우스〉다. 그중 타란티노 작품이 〈데쓰 프루프〉, 로드리게즈 작품이 〈플래닛 테러〉(11월 개봉 예정)다. 둘을 합치면 거의 4시간, 결국 쪼개 개봉하게 됐다.

어림잡아 3분의 2는 시시한 잡담이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지닌 여자 3명이 먼저 등장한다. “맨날 내가 대마초 조달해야 돼. 힘들단 말이야” “엉덩이는 내 엉덩이 정도는 돼야지”…. 주크박스에서는 60~70년대식 달콤하고 낭창거리는 노래들이 주야장천 흐르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꼬실 궁리에 바쁘다. 종업원 워렌으로 출연한 타란티노는 “원샷”을 외치며 술잔을 돌린다. 다만 타임머신 타고 등장한 듯한, 기괴한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만 해골 그림 자동차를 끌고 여자들을 몰래 따라다니며 긴장감을 조금씩 높여간다. 그 자동차 이름이 바로 죽음을 피해 간다는 뜻의 ‘데쓰 프루프’다. ‘이제 수다 좀 그만하시지’라는 푸념이 나올 때쯤, 오래 참은 만큼 더 세게 뒤통수 후려치는 타란티노식 팔다리를 뎅겅뎅겅 자르는 피범벅 액션이 휩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2라운드. 배우의 메이크업 담당인 애버나시, 좀 맹한 배우 리, 스턴트 우먼 킴과 조이가 스턴트맨 마이크에 대항할 차례다. 애버나시 휴대폰의 발신음은 〈킬빌〉의 주인공 브라이드(우마 서먼)의 주제곡이다. 그러니 이들은 “꺄악” 소리치며 도망다니는 공포영화 속 여성들과는 유전자부터 다르다.

영화에는 강한 여자들과 60~70년대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친다. 조이 역은 〈킬빌〉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 대역을 했던 조이 벨이 맡았는데 컴퓨터 그래픽 없이 마지막 20분 자동차 추격 액션을 몸으로만 펼친다. 〈데쓰 프루프〉는 기다리고 기다려 압력을 꽉꽉 밟아뒀다가 여성들의 허를 찌르는 장쾌한 복수극으로 한방에 터뜨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60~70년대 액션 추격물 〈식스티 세컨즈〉와 〈배니싱 포인트〉를 침이 튀도록 찬양하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배기량 빵빵한 그 시절 자동차들이다.

타란티노 영화들에서 유머는 가장 비장한 장면에서 허무하게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킬빌〉에서 머리 반쯤이 잘려 죽어가는 오렌 이시가 “네 칼 한조의 칼(명품 칼)이 맞구나”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복합적인 캐릭터라 은근슬쩍 허를 찔러대는 매력을 지녔다. 처절한 사건들은 종종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다. 그런 면에서 〈데쓰 프루프〉의 스턴트맨 마이크는 앞선 타란티노식 인물들보다 단순하고 전형적인 편이다. 잡담은 옹골진 유머를 맺지 못하고 흐트러진다. 그럼에도 여자들의 예상을 빗나간 막판 반전은 모든 불만을 쓸어내고도 남을 만큼 속이 후련한 한방이다. 그래서 영화 끝에 꼭 ‘끝’이라고 써주는 고전적 수법으로 마무리된 뒤에도 네 여자의 이름을 불러대고 싶어진다.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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