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9禁'

 

 

'19禁'
  [기자의 눈]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이명박 발언 유감
 
  2007-10-25 오전 9:17:30
 
   
 
 
  '아이들이 볼까 두렵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던 이야기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아이들이 들어도 좋은 이야기인지, 봐도 좋은 장면인지는 늘 애매하다.
  
  신문사 홈페이지까지 야하디 야한 사회
  
  그래서 종종 논란이 된다. 자칫 표현의 자유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통적인 윤리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아이들이 다양한 정보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여 취사선택하는 능력을 키우기 힘들다는 비판도 있다.
  
▲ 24일 저녁 <중앙일보> 홈페이지 화면 가운데 일부.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만 이처럼 선정적인 사진과 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신문사 홈페이지도 대체로 비슷하다. ⓒ<중앙일보>

  이런 논쟁은 주로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음란한 대사나 장면을 놓고 벌어진다.
  
  비록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성폭력적이거나 아이들에게 지나친 자극이 될 수 있는 내용은 규제하자는 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하는 상식이다.
  
  물론 <조선>, <중앙>, <동아> 등 주요 언론사의 홈페이지만 찾아가도, 야한 사진과 글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상식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런 상식을 지지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소설 '강안남자'를 연재하는 <문화일보>에 대해 쏟아지는 사회적 공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음란 사진보다 더 해롭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지지하는 순간,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과연 음란한 대사나 장면만 아이들에게 해로운가. 더 해로운 발언들이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지난 23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이 주최한 교육정책 토론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이날 이 후보는 "주당 수업시수의 법제화 등 교직 우대시스템을 확립해 달라"는 한 토론자의 요구에 대해 "돈 더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이 후보는 "사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명박 후보 교육 공약 관련 기사 모음
  
  - 이 후보 교육 공약 내용
  ☞ 이명박 "대입 자율화…교원도 경쟁해야"
  ☞ 이명박 "메가스터디EBS는 '강사 차이'"
  
  - 다른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반응
  ☞ "이명박, 교육의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리려나"
  ☞ 이명박 교육정책 곳곳에서 십자포화
  ☞ 盧, 이명박 교육정책 비판…"본고사 부활 우려"
  
  - 공약 해설
  ☞ 경쟁만능ㆍ자율화맹신 속에 잊혀진 것들
  ☞ 이명박, 신정아 사건에서 뭘 배웠나
  ☞ 이명박, 왜 '대학경쟁력'은 말하지 않을까
  
  - 해외 사례와 시각
  ☞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그런데 이 후보의 이런 발언은 생각하기에 따라 어지간한 음란물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판단이 앞서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기 쉽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밴 아이들이 자라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놓인다면 쉽게 절망에 빠지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 앞에 놓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더 주는 것' 이외의 방법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절망을 경험한 이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갈구하게 되리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은 아무리 많은 부가 주어져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처럼 불만에 가득한 이들이 모인 사회가 건강한 곳일 리 없다는 점 역시 당연하다.
  
  '빵'만 떠올리는 머리로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책 <희망의 인문학> ⓒ프레시안

  미국의 작가이자 교육자인 얼 쇼리스가 빈민들에게 당장 먹을 빵 못지않게 인문학과 예술 교육도 절실하다고 지적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였다.
  
  모든 것을 화폐 가치로만 계산하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돈을 쓰는 것 이외의 다른 해법을 상상하지 못하는 상황은 누구든 불행하게 만들지만, 당장 주머니가 비어 있는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배부르고 시간 남는 사람들을 위한 장식품 정도로 취급돼 왔던 인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했다. 이어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를 개설했다. 백화점 문화교실 수준의 가벼운 교양 강좌가 아니었다. 대학 전공 과정 수준의 고전 강좌였다.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이런 시도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노숙자와 빈민들이 결코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 고전 공부를 통해 가난 때문에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로 이어졌고, 이렇게 형성된 당당한 자신감은 가난을 극복하는 힘이 됐다. 실제로 '클레멘트 코스'를 이수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난을 벗어나 다양한 전문 직종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다.
  
  역경에 처한 이들을 보며,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데"라고만 생각했더라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결과다.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는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다른 가치들이 갖고 있는 힘과 의미를 깊이 깨닫고 있는 이들만이 창안할 수 있는 사례였다.
  
  "돈이 가장 쉬운 해법"이라고 배운 '88만원 세대'가 느낄 절망은?
  
  다시 한국 현실로 돌아오자. 10대 청소년들조차 스스로의 적성이나 흥미에 관계없이 돈을 많이 벌거나 고용 안정성이 높은 직업만을 희망하는 세태는 이제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 네이버 검색창에 '누드'라는 단어를 입력했을 때, 나타나는 화면.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과 '누드' 가운데 어느 것이 청소년들에게 더 해로울까. ⓒ네이버

  '돈만 있으면 다 되는데'라는 생각은 이미 차고 넘친다. 오히려 부족한 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한 깊은 이해다.
  
  그런데 이 후보의 발언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보다 이미 남아도는 편에 보태는 내용이었다.
  
  가장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신문사들의 홈페이지에도 야한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음란물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해악은 오히려 미미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후보의 발언이 더 해로울 수도 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88만 원 세대'에 편입될 이들이 겪게 될 절망감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요즘에는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여겨지는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19禁'이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자칫 이 후보의 발언을 검색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까 걱정스럽다.
  
'88만 원 세대론' 관련 기사
  
  ☞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 "오늘 하루, 컴퓨터를 끄십시오"
  ☞ "그래, 경부운하 가서 '삽질'이나 해야겠다"
  ☞ "'요즘 20대가 한심하다'는 386은 들어라"
   
 
  성현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