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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http://www.youtube.com/watch?v=Gf-Q2rDd6Tw&search=beatles

[MV] Beatles Hey Jude /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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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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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volution
Added on December 29, 2005, 07:48 PM by bigriverharp

 

한 10년전에 한겨래 신문에서 "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라는 코너를 매주 운영했습니다. 나중에는 2권짜리로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는데 정치 사회 문화 외에도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 현대 사상까지 인물 위주로 포괄하는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저는 지금도 이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사가다가? 분실하여 다시 구입한 세트입니다. 언론 고시? 준비하던 동생도 같이 끼고 열심히 봤었습니다... 상식 제고 차원에서).
말미의 내용처럼 레논은 롤랑 바르트나 쟝폴 사르트르와 동급이지요. 한시대가 끝났습니다....

아마도 직접 typing하신 정원창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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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100 - 비틀즈 (1962-1971)



전 세계 젊음 열광시킨 자유와 평화의 화음

뛰어난 음악성에 시대정서,이상담은 대중음악의 전설



파리/고종석 주재기자


한국의 1950년대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시인 고은은 "아, 50년대!"라는 영탄을 피할수 없었다. 어떤 세대, 어떤 공간의 사람에게는 1960년대가 그런 영탄의 대상 일 것이다. 만약 한 연대의 이미지란 것이 있다면 1960년대의 이미지를 짜내고 있는 것은 어떤 사건들과 사람들일까.

많은 현대사가와 저널리스트들은 그 리스트를 케네디가의 영욕, 베트남전쟁, 아이히만 재판, 알제리 독립, 유리 가가린과 잇따른 우주 정복의 무용담, 중국의 문화대혁명, 그리스의 군사쿠데타, 체 게바라의 비장한 최후, 68년 5월혁명과 그 이듬해 드골의 퇴진, 프라하의 봄 같은 항목들로 채울 것이다. 그런 현대사가들이나 저널리스트의 일부를 포함해서 더 많은 수의 대중은, 특히 그들이 60년대에 10대였거나 20대였다면, 그 리스트에 비틀스라는 항목을 기꺼이 끼워 넣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비틀스의 리더격이었던 존 레논이 지금부터 15년전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을 때, 당시의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발표한 애도 성명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그의 정신, 비틀스의 정신은 경박하면서도 진지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이상주의적인 그 세대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경박하면서 진지" 60년대 상징



사실, 비틀스의 60년대 대표성에 대해서는, 그 영역을 대중음악에 한정하다 하더라도 약간의 이의가 제기될수 있다. 그들은 단지 짧은 한 순간 동안만 엘비스 프레슬리 한 사람의 인기를 누르고 팝음악세계의 정상에 머물수 있었다. 정치가요의 전통을 중시하는 이에게 60년대는 비틀스의 시대라기보다는 차라리 보브 딜런이나 조운 바에즈나 컨트리 조 앤 더 피시나 짐 모리슨이나 롤링 스톤즈의 연대다.



그러나 더 대중적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나 더 정치적이었던 보브 딜런들보다도 60년대의 이미지는 비틀스라는 이름에 더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우선 록 그룹으로서의 비틀스의 시작과 끝이 60년대와 일치한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비틀스의 앨범들은 그러나 30년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팔려나간다. 게다가 그들 주위에는 그들의 경쟁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신화가 따라다닐다. 그런 신화들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해낸 일은 코드 사용의 극적인 다양성과 리듬의 혁명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 비틀스식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통한 한 시대유행의 창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 모두는 영국 지방도시 리버풀의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백만장자가 되는 계급상승의 신화를 이룩했다. 그들 모두는 한사람 한사람이 뛰어난 뮤지션이었고 그 네 싱어송라이터의 만남을 통해 그들 재능의 효과는 한껏 증폭되었다. 그들은 록 음악을 대중에게 더욱 더 친숙하게 만들면서도 비록 좌충우돌하기는 했지만 음악의 정치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그들 모두는 적어도 반전주의자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존 레논에게는 음악의 정치적 선동력을 먹어치우는 자본주의 유통회로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다. 요컨대 그들은 백만장자 명망가가 된 뒤에도 자기들을 그렇게 만든 좌우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그 존 레논은 1940년 10월 9일 영국 서쪽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아일랜드계의 가난한 노동자 앨프리드 레논과 극장 안내원 출신의 부인 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 탓에 이모 밑에서 자라난 존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56년에 이미 쿼리맨이라는 그룹을 조직했고 한해 뒤엔 자기보다 두살 어린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제임스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



"전쟁대신 사랑을" 베트남전 반대



그 이듬해에 땅딸한 몸통에 기다란 팔다리를 지닌 조지 해리슨이 쿼리맨에 가입했다. 60년에 실버 비틀스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은 도버해협을 건너 당시 유럽 대중음악의 중심지였던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하찮은 명성을 쌓았다. 앞의 "실버"를 떼고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레논 그룹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노스잉글랜드 뮤직스토어의 사장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었다. 엡스타인은 레논과 그의 동료들에게 60년대 대중음악계를 불태워버릴 수 있는 연료가 내장돼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 자신이 기꺼이 그 점화자가 되기로 했다.



매니저 엡스타인의 제안으로 레논과 동갑내기인 리처드 스타키(에명 링고스타)를 새 드럼 주자로 받아들인 비틀스 4인조는 역시 엡스타인의 주선으로 62년 EMI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싱글 <날 정말 사랑해 줘>를 발표했다.


그들의 뒤이은 싱글 <제발 날 기쁘게 해줘>와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가 잇따라 히트차트 1위를 기록했을 때, 그리고 64년 2월 비틀스의 미국 공연 뒤 그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서 5위까지를 휩쓸었을떠, 이제 비틀스라는 이름은 대중음악사에서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고딕체의 활자가 되어 버렸다. 이어서 비틀스 멤버의 삶을 그리며 영국 노동계급 청년들의 한 단면을 보여준 영화 <어느 힘겨운 날 밤>이 출시됐을때, 더 나아가서 마침내 66년에 비틀스가 집단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전쟁 반대를 선언하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 전부>라는 노래를 통해 무조건의 사랑과 평화를 역설 했을 때, 비틀스라는 이름은 성공한 노동계급과 대항문화와 프리섹스와 마약과 진보운동의 모순된 그러나 가장 강력한 60년대적 상징이 되었다.



67년 여름 엡스타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존이 일본계 미국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가까워지면서 보이기 시작한 비틀스의 분열 조짐은 존에 대한 폴의 라이벌 의식으로 가열돼 71년 그룹의 공식해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룹 해체 뒤에도 윙즈라는 새 그룹을 이끈 폴 매카트니를 비롯해서 비틀스 멤버들은 잇따른 히트 앨범을 발표하며 제 나름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리더격 존 레논, 열성팬에 피살



그룹 해체 뒤 존 레논의 삶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비틀스 시절부터 정치적 급진주의와 인도의 초월명상, 정신 요법등을 오가며 멤버들 가운데 가장 "히피적인" 면모를 보였던 존은 그뒤 타리크 알리, 로빈 블랙번 제리 루빈 등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앵글로 색슨 국가의 신좌파 청년들과 어울리며 급진적 정치운동가로 변모했다. 부인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에 정착해서 반전, 인권운동, 북아일랜드 독립지원운동에 매진하며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운동가요 <민중에게 권력을><이매진>등의 노래를 만든 이 시기의 레논은 닉슨 행정부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고, 공화당 정부는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계속적인 추방명령과 FBI를 동원한 미행과 감시를 통해 그의 사생활을 옥죄었다.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그의 열렬한 팬임을 주장하는 마크 채프먼에 의해 자기 집 앞에서 살해됐다. 바로 그 해에 사르트르, 티토, 에리히 프롬, 롤랑 바르트, 앨프리드 히치콕, 헨리 밀러, 팔레비, 장 피아제, 스티브 매퀸 ,로맹 가리 같은 이름들이 세상을 버렸다. 한 시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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