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정말로 사회적 대타협을 할 의지가 있나?
- 양극화문제가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대연정보다 덜 시급한가
칼잡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또 다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그 연설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
노동조합도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도 정리해고가 어려운 제도 아래서, 비정규직과 대다수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 정부와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다양한 고용기회를 만들어주는 대타협을 이뤄내야 할 것입니다.이제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해온 “대기업 노조책임론”과 “사회적 대타협” 필요성에 대한 강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언급이다. 임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해온 원론적인 이야기의 반복일 뿐, 어떠한 새로운 구상이나 진전된 제안도 발견할 수 없다.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노대통령이 사회적 대타협 카드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외로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7월 언론사 편집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사회적 대타협 구상을 거의 포기한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인용해 보자.
노사정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뼈아픈 것입니다.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소위 유럽식의 어떤 질서, 그걸 한번 만들어 본다는 것이었는데 좀 과욕이었던 거 같습니다. 대화를 어떻게 해볼, 아직까지 대화의 길을 찾질 못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해서 좀 성공하지 못한 정책이죠. 현재까지로는 큰소리만 해 놓고 이루지 못한 정책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쉽게 생각하고 있구요. 노력은 계속 하겠습니다.불과 한달 전에 “과욕”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한 정책을 8.15 경축사에서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현재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는 점점 나빠지면 나빠졌지 개선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와 있던 한국노총마저 탈퇴를 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노사정 대타협을 다시 꺼내기 위해서는 노동계가 자신들의 입장을 재고해 볼만큼 뭔가 솔깃한 제안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지난 2년 동안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원론적인 제안을 지금 와서 반복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참여정부가 현재 낮은 국민지지도로 고생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사회 양극화 현상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껏 여기에 대해 별 뾰족한 대책을 못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양극화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유일하게 정부가 일관되게 언급해 온 것이 네덜란드 혹은 아일랜드 식의 사회적 대타협 구상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성패가 정권의 앞날을 좌우할 수 있다는 각오로 한번 야무지게 추진해 봐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양극화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이 사회적 대타협 구상마저 지금처럼 뜨듯 미지근하게 추진한다면, 사실상 참여정부의 양극화 대책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사회적 대타협이란 것은 잊을 만 하면 한번 툭 던져 보고, 또 잊을 만 하면 다시 한번 언급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위해 편지를 네 번 썼다면, 민주노총, 한국노총과의 대타협을 위해서는 편지를 40번도 더 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연정을 위해서 박근혜 스토킹 한다는 소리까지 들은 노대통령이라면,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서는 이수호 스토커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물론 가치판단은 다르겠지만, 사회적 양극화라는 현상이 지역주의 정치의 잔존과 비교해서 그렇게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의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이제 양단 간에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정말로 사회적 대타협 구상이 양극화 현상을 막기 위한 최선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각오로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반면 한국적 현실에서 이 구상이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다면, 이제 별 의미 없이 노동계의 양보를 촉구하는 일은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양극화 문제에 대한 어떠한 정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이제는 그 해결 의지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 참여정부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뼈아픈 인식이 없으면 참여정부의 지지율 반전은 대단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여당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DJ 한명이 입원했을 때 온 여권이 혼비백산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 정성의 반만이라도 이 양극화 문제에 보인다면, 최소한 “진정성 부족”으로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댓글 목록